우리가 병목을 쥐고 있다.
강남 신세계 백화점 지하 주차장에는 서울에서 가장 큰 차수문이 있다.(1) 그런데 이 차수문은 빗물이 못 들어오게 막는 용도가 아니다. 오히려 지하 주차장에 들어온 빗물이 밖으로 못 나가게 막는 용도다. 폭우가 쏟아지면 주변 지역의 침수를 막기 위해 백화점 지하 주차장이 거대한 빗물받이가 된다. 이 빗물받이로 최대 2만 2천 톤의 빗물을 가둘 수 있다. 축구장 크기의 공간에 3m 높이의 빗물이 담기는 엄청난 용량이다.
강남은 저지대인 탓에 비가 오면 주변의 빗물이 모인다. 강남에 건물이 많이 들어서면서 빗물 배수는 더 어려워졌다. 그렇다 보니 우리나라 가장 부촌의 이미지와 맞지 않게 집중호우때에는 도로, 상가, 아파트가 침수된다. 인명 피해도 이어지고 있다. 2022년 ‘100년 만의 폭우’로 강남의 한 건물 지하 주차장이 물에 잠겼다. 실종자가 발생했고, 며칠 뒤 시신이 발견되었다.(2)
기후 변화로 ‘100년 만의 폭우’는 더 빈번해지고 있다. 아파트 지하 주차장 침수 사례도 늘고 있다. 2023년에도 강남 신축 아파트 지하 주차장이 침수되었다. 전문가들은 기후 변화에 맞춰 배수 시설의 용량 기준을 높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아파트는 ‘단지 면적’과 ‘연평균 강우량’을 토대로 빗물 처리 용량을 정하는데, 최근 몇 년 사이에 과거 연평균 강우량을 웃도는 폭우가 빈번하게 내리고 있다. 지금의 배수 시설로는 폭우에 대응하기 힘들다.
하지만 배수 시설을 늘리는 데는 비용이 든다. 침수 피해가 있었던 아파트의 건축 설계사는 “1년 중에 고작 며칠을 버티려고 감당해야 하는 돈이 한두 푼이 아니다. 그게 몇백억 원 단위다. 조합원들의 부담금이 늘어난다”고 한탄했다.(3)
배수 시설 용량만 늘린다고 침수 문제가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하수 시설이 못 받쳐주면 소용이 없다. 서울시가 공공하수관 처리량을 시간당 95mm에서 100mm로 올렸지만, 이 역시 역부족이다. 해당 아파트 지하 주차장이 침수됐을 때 시간당 50mm의 폭우가 내렸는데, 문제는 이 폭우가 며칠에 걸쳐 집중적으로 내렸다는 점이다. 강남의 건물 지하 주차장에서 인명 피해가 났을 때 내린 비의 양도 며칠에 걸쳐 총 400mm가 넘는다.
배수 시설과 하수 시설의 용량을 당장 늘릴 수 없다면, 지하 주차장에 차수판이라도 설치해야 한다. 서울시는 차수판 설치 비용의 절반을 지원해 준다. 2023년 KBS의 보도에 따르면, 이 사업의 대상이 되는 침수 위험 아파트는 82곳이었는데, 차수판을 설치하고 침수 피해에 대비한 아파트는 29곳에 그쳤다. 53곳, 즉 위험 아파트의 65%는 차수판을 설치하지 않았다. 그중에서 주민들이 설치를 거부한 곳은 8곳이다.(4) 차수판이 설치되면 차량 출입이 어렵고 그 설치 비용도 주민들이 분담해야 하기 때문이다.
기후 변화의 피해를 줄이기 위한 좋은 방법이 있어도, 주민들이 불편해하고 또 돈이 아까워 거부하면 어찌할 도리가 없다. 만약 폭우가 내릴 가능성이 있어서 백화점의 차수문이 작동되었다면 백화점 주차장에 차량이 드나들 수 없다. 자기 차로 백화점을 이용하려는 고객은 다른 주차장에 주차하거나, 아예 대중교통을 이용해야 한다. 이 불편한 상황에서 고객의 불만이 커진다면, 백화점도 언제까지 백화점의 지하 주차장을 빗물받이로 내어 주기는 힘들 것이다.
비단 ‘불편함’과 ‘돈’ 문제 때문만은 아니다. 기업으로서 기후 변화의 피해를 줄이려는 행동이, 주민 처지에서는 잠재적인 ‘위험’이 될 수도 있다. 2022년 태풍 힌남노(Hinnamnor)가 포항을 강타했다. 이상 기후로 인한 500mm의 폭우에 포항제철소 옆을 흐르던 하천이 범람했다.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하천물이 포항제철소 안까지 들어온 적이 없었지만, 이번에는 고로(용광로) 안까지 물이 들어갔다. 고로는 온도와 순도 유지가 생명이다. 고로 안까지 빗물이 들어갔기 때문에 쇳물을 모두 버리고 고로를 식히고 청소하고 쇳물이 펄펄 끓을 때까지 새로 끓여야 한다. 이 과정에 오랜 시간이 들고 그만큼 경제적인 피해도 크다.
포항제철소는 두 번 다시는 수해를 입지 않기 위해, 바로 다음 해에 2m 높이의 차수벽을 1.9km구간에 걸쳐 설치했다. 기업 측면에서 보면 매우 칭찬받을만한 대응이다. 하지만 차수벽 반대편에 사는 사람들의 입장은 달랐다. 차수벽 반대편에는 대형마트, 주민자치센터, 보건소, 주택 단지가 있는데, 이 지역은 평소 비가 조금만 내려도 물이 차오르는 저지대다. 이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포항제철소의 차수벽 때문에 반대편에 있는 주택가의 침수 위험이 커질까 우려한다. 주민들의 우려에 포항시도 포항제철소에 추가 대책을 요청하고 있다.(5)
강남 신세계 백화점의 지하 빗물받이, 서울시의 아파트 차수문 지원 사업, 포항제철소의 차수벽 모두 기후 변화로 인한 피해를 줄이려는 활동이다. 이를 기후 ‘적응(Adaption)’ 활동이라고 한다. 기후 ‘적응’은 기후 변화를 직접적으로 해결하는 활동은 아니다. 대통령직속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 (2026년 1월 1일부, 국가기후위기대응위원회로 변경)에 따르면, 기후 변화에 대응하는 방법에는 ‘완화’와 ‘적응’이 있다.(6) ‘완화’는 기후 변화가 더 심해지지 않도록 온실가스를 감축하는 활동이다. 즉, ‘완화’가 기후 변화를 직접적으로 해결하려는 활동이다. 반면 ‘적응’은 기후 변화로 인한 당장의 피해를 줄이는 활동이다.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2026년 1월 1일부, 국가기후위기대응위원회로 변경)에 따르면, 지금까지는 ‘완화’, 즉 온실가스 감축에 관심이 집중되었다. 하지만 기후 변화의 피해가 현실이 되면서, 당장의 피해를 줄이는 ‘적응’이 주목받기 시작했다.(7)
2025년 7월 초, 서울 기온이 기상 관측 이래 최고 기온인 37.8도를 기록했다.(8) 7월 8일 하루에만 238명의 온열질환자가 발생했다.(9)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5월 중순부터 7월 중순까지 누적 온열 질환자는 약 2천 명, 폭염 때문에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는 초과사망자는 10명에 달한다.(10) 문제는 이러한 이상 기후 현상이 매년 더 자주 발생하고 피해 규모도 커질 거란 점이다. 우리가 기후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면 그 피해는 점점 더 커질 것이다.
기후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일반 국민이 일정 수준의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 더 나아가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공공기관, 기업의 기후 적응 활동을 적극 지지해줘야 한다. 하지만 지금까지는 기후 적응에 대한 정부, 공공기관, 기업의 역할만 주로 강조됐다. 상대적으로 주민, 대중, 소비자의 기후 적응에 대한 역할은 저평가되어 왔다.
기후 ‘완화’가 ‘기업’에게 초점을 맞춘다면, 기후 ‘적응’은 ‘대중’에게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이것은 누가 역할을 더 해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모두가 완화와 적응에 나서야 한다. 다만 ‘누가 병목(Bottleneck)을 쥐고 있는가’를 말하는 것이다.
기후 ‘완화’의 병목은 기업이 쥐고 있다. 기후 완화 활동의 상당부분은 기업 영역에서 탄소 포집 기술을 개발하고, 저탄소 에너지원을 개발하며, 원재료 생산부터 제품 폐기와 재활용 까지 제품의 저탄소 라이프사이클을 만드는 노력에 의존한다. 지금껏 없었던 새로운 기술의 개발과 큰 규모의 공정 혁신이 필요하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공공기관은 규제와 인센티브로 병목을 잘 뚫는 윤활 역할을 해야 한다.
반면 기후 ‘적응’의 병목은 주민과 대중, 소비자가 쥐고 있다. 사실 기후 적응에 활용되는 기술 대부분은 완전히 새롭거나 복잡한 기술이 아니다. 방조제와 차수막을 설치하며, 폭우 예측 시스템과 온열 환자 관리 시스템을 만드는 일은 대부분 지금껏 개발된 기술과 제도를 좀 더 개선하여 ‘적용’하는 수준이다.
하지만 이를 받아들이는 주민과 대중, 소비자의 입장은 완전히 다르다. 첫째 기존의 생활공간이 침해될 수 있다. 새롭게 설치된 배수 시설이나 차수벽 때문에 멀리 있는 길을 돌아가야 할 수도 있다. 매일 즐겼던 해안 절경을 방조제 때문에 즐길 수 없을지도 모른다. 점점 열대 식품으로 바뀌는 식자재에도 적응해야 한다.
둘째, 상당수의 기후 적응 활동은 주민들이 세금으로, 혹은 수익자부담으로 비용을 내야 한다. 물론 당장의 ‘적응 비용 지출’이 나중에 더 큰 ‘피해 비용 지출’을 줄일 수 있다. 하지만 미래의 비용은 ‘손에 잡히는 청구서’가 아니기 때문에 지금 당장은 현재의 비용을 생각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견해 차이 때문에 기후 적응 활동은 쉽게 수용되기 어렵다. 기후 적응 활동에 대한 두 가지 완전히 다른 사례를 비교해 보자. 일본 후쿠이현의 아스와카와(足羽川ダム) 댐은 홍수 조절 댐이다. 댐 공사는 1994년에 시작되었지만 수몰 지역 주민과 대중의 강한 반발에 1997년 공사가 중단되었다.
약 220가구가 수몰될 예정이었는데 이들에 대한 보상 협상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채 이주를 강제했다. 당연히 주민들의 반발이 심해졌고, 지방정부는 많은 설득 노력을 기울이지도 않은 채 공사를 중단했다. 공사가 중단된 후 2004년 7월, 집중호우가 후쿠이현을 강타했고 인근 강의 제방이 무너졌다. 1만4천 채의 가옥이 침수되었고 다섯 명이 사망했다. 이 사건 이후 수몰 지역 주민과 진보 정당의 지속적인 반대에도 불구하고 2006년부터 다시 댐 공사가 시작되었다.(11)
그동안 아스와카와 댐을 지으려는 정부와 공공기관은 보상 협상도 제대로 해주지 않고 수몰 지역 주민들을 강제 이주 시키려 했다. 주민들 반대가 심하다며 공사도 중단시켰다. 그러다가 기후 재난을 겪고 나서야 서둘러 다시 댐을 만들 겠다고 나섰다. 이를 지켜본 수몰지역 주민들은 무슨 감정이 들었을까? 뭔가 신뢰할 수 없고, 억울하고, 손해를 봤다는 기분이 들지 않았을까?
또 다른 예를 살펴보자. 2025년 7월 뉴요커(The New Yorker)에는 노스 캐롤라이나에 사는 미혼모 사라(Sarah)의 이야기가 소개되었다.(12) 사라는 어린 시절 웨스트 버지니아의 시골 농장에서 살았다. 그녀의 가족은 야생에서 채집한 음식재료로 음식을 해 먹고 물도 직접 정수해서 마셨다. 탄소 배출과는 거리가 먼 삶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아무리 준비가 잘 된 사람이라도 대비하기 어려운 재난에 압도당한 기분을 느낀다”고 했다. 2025년 7월 노스 캐롤라이나에는 열대성 폭풍 샹탈(Chantal)이 엄청난 비를 퍼부었다. 그 지역은 이미 한 해 전에 허리케인 헬렌(Helen)이 108명의 목숨을 앗아간 곳이다. 사라는 폭우를 뚫고 서둘러 집으로 돌아가면서 집에 혼자 있을 딸 엘레나(Ellaina)를 걱정했다. 대학생인 엘레나는 한 해 전 허리케인 헬렌이 몰아칠 때 학교 캠퍼스에 있었다. 그녀는 인근 댐이 무너진다는 소식에 산등성이로 피신했다가 겨우 차를 얻어 타고 그곳을 탈출했다. 산사태로 도로가 끊겨 차는 여러 번 방향을 바꿔야 했다. 그날에 대해 엘레나는 “제 삶의 모든 것이 지도에서 사라지고, 마치 독성 홍수(Toxic flood)에 휩싸인 것 같았다”고 말했다.
사라와 엘레나는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을까? 작년에 이어 올해 또 폭풍이 몰아치는 것을 보며 불안하고, 절망하고, 무력감에 빠지지는 않았을까? 노스 캐롤라이나 지방 정부가 허리케인 헬렌의 피해 지역에 치수 작업을 아무리 잘했던 들, 그게 사라와 엘레나에게 와닿기나 했을까?
이 두 가지 이야기에서 기후 적응을 방해하는 두 가지 태도를 유추할 수 있다. 첫번째 사례에서 우리는 후쿠이현 수몰지역 사람들의 냉소주의(Cynicism)를 걱정해야 한다. 두번째 사례에서는 사라와 엘레나의 허무주의(Nihilism)가 우려된다. 냉소주의, 허무주의 모두 기후 적응을 방해하는 태도다.
· 냉소주의(Cynicism): 사회적 위선이나 권위에 대한 불신. 상처받지 않기 위해 미리 조롱하는 자기 방어적 태도 (예: ‘겉으론 기후 대응을 말하지만, 속으론 다 이익을 챙기려는 거야’와 같은 태도)
· 허무주의(Nihilism): 삶이나 존재 의미를 부정. 무력감과 절망에 빠짐 (예: 모든 건 다 사라지고, 아무 의미도 없을 거야’와 같은 태도)
<참고문헌>
(1) 이강 (2023.07.13.). “‘거대 장벽’ 쌓은 포항...초대형 수조 자처한 강남”. SBS News. https://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7267154
(2) 곽진산 (2022.08.14.). “폭우 때 지하주차장은 ‘거대한 하수구’... 대피 요령 3가지”. 한겨레신문.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1054647.html
(3) 송민선 (2023.07.18.). “기록적 폭우에 줄줄 새는 아파트...침수 원인은?”. TV조선 뉴스.
https://news.tvchosun.com/site/data/html_dir/2023/07/18/2023071890194.html
(4) 윤아림 (2023.03.13.). “서울시, 아파트 등 지하주차장 물막이판 설치비 지원”. KBS News.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7625233
(5) 김정혜 (2023.06.12.). “포스코 2m 거대 차수벽 설치에 포항시 ‘부글부글’”. 한국일보.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3061212450001742
(6)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 (2025.04.28.). “기후변화 대응, 완화, 적응”.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 웹페이지 [지식창고]. https://www.2050cnc.go.kr/base/board/read?boardManagementNo=69&boardNo=5320&searchCategory=&page=1&searchType=&searchWord=&menuLevel=2&menuNo=97 (접속일: 2025.07.29.)
(2026년 1월 1일부, 국가기후위기대응위원회로 변경됨,
http://www.pcccr.go.kr)
(7)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 (2025.04.28.). 1절 6번과 동일
(8) 김잔디 (2025.07.24.). “연일 폭염에 온열질환자 107명...올해 누적 2천명 육박”. 연합뉴스.
https://www.yna.co.kr/view/AKR20250724148700530
(9) 류현준 (2025.07.08.). “서울 ‘37.8도’ 7월 상순 역대 최고...이례적인 7월 ‘40도’”. MBC News.
https://imnews.imbc.com/replay/2025/nwdesk/article/6733565_36799.html
(10) 질병관리청 (2025). “2025년 온열질환감시체계 운영 결과 (5.15~7.1)”. 질병관리청 웹페이지 [보도자료].
https://www.kdca.go.kr/board/board.es?mid=a20501000000&bid=0004&act=view&list_no=728121 (접속일: 2025.07.29.)
(11) 위키피디아. “아수와가와 댐”. 위키피디아 웹페이지. https://en.wikipedia.org/wiki/Asuwagawa_Dam (접속일: 2025.07. 29.).
(12) Pishko, J. (2025, July 15). Chased by Climate Disaster in North Carolina. The New Yorker. https://www.newyorker.com/news/the-lede/chased-by-climate-disaster-in-north-carolin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