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억울하다.
우리가 기후 적응 활동에 동참하기 위해서는 냉소주의와 허무주의를 넘어서야 한다. 여담이지만, 냉소주의와 허무주의 보다는 차라리 회의주의(Skepticism)가 낫다. ‘확실한 증거가 없는 기후 적응 활동은 믿지 않겠다’는 회의주의는 오히려 과학적 기후 적응에 도움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냉소주의와 허무주의는 안된다.
물론 사람들이 냉소주의와 허무주의에 빠져 있다고 해서 아예 기후 적응이 불가능하다는 뜻은 아니다. 정부, 공공기관, 기업의 역할만으로 어느 정도 기후 적응은 가능하다. 하지만 정말 ‘어느 정도’일 뿐이다.
2021년 노르웨이 지방정부의 기후 적응 활동을 조사하여 ‘적응의 형태를 이분법으로 분류’한 연구가 있다.(1) 이 연구는 기후 적응을 세 가지 이분법으로 분류했다. 첫 번째 이분법은 ‘하드 적응(Hard adaption)’과 ‘소프트 적응(Soft adaption)’이다. 두 번째 이분법은 ‘반응적 적응(Reactive adaption)’과 ‘선제적 적응(Proactive adaption)’이 있다. 세 번째 이분법은 ‘효과 지향적 적응(Effect-oriented adaption)’과 원인 지향적 적응(Cause-oriented adaption)’이다. 아래는 연구의 분류와 설명을 재구성한 것이다.
이분법 1: 하드 적응과 소프트 적응
· 하드 적응: 자본 집약적인 사회 기반 시설 설치 (예: 방조제, 녹지 공간 조성)
· 소프트 적응: 의사결정 구조 정비와 법제도 마련 (예: 지역사회 네트워크, 인센티브, 법규정, 기후 적응 도시 계획 수립)
이분법 2: 반응적 적응과 선제적 적응
· 반응적 적응: 이미 발생한 기후 재난에 대응하는 조치 (예: 홍수 후 제방 강화)
· 선제적 적응: 미래의 위험을 예측하고 준비하는 행동 (예: 위험 지역 개발 제한)
이분법 3: 효과 지향적 적응과 원인 지향적 적응
· 효과 지향적 적응: 현재 발생하는 기후 변화 위험에 대한 조치 (예: 낙석 방지 시설)
· 원인 지향적 적응: 기후 변화 위험에 상호작용하는 전체 시스템에 대한 조치 (예: 낙석 방지 시설을 구축하기 이전에 교통 인프라, 물류 시스템 전체에 대한 위험 원인 규명)
이 중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두 번째와 세 번째 이분법이다. 첫 번째 이분법인 ‘하드 적응’과 ‘소프트 적응’은 어느 것이 더 ‘수준 높은 적응’인지 판단이 어렵다. 사회 기반 시설(하드 적응)과 법제도(소프트 적응) 모두 꼭 필요하다. 반면 두 번째와 세 번째 이분법은 수준의 차이가 분명하다.
‘반응적 적응’은 낮은 수준의 적응으로, 피해 발생 이후의 적응 활동이다. 반면 ‘선제적 적응’은 높은 수준의 적응으로, 선제적으로 피해 발생을 막는 적응 활동이다. 반응적 적응은 피해 발생 후의 영향을 줄이는 기능은 있지만, 미래에 유사한 피해가 발생할 가능성을 반드시 줄이지는 못한다. 또한 비용 측면에서 볼 때, 반응적 적응에 드는 비용은 ‘연기된’ 조치 비용인데, 이 비용은 예방적 비용(선제적 적응)을 크게 초과하는 경우가 많다.(2)
‘효과 지향적 적응’도 낮은 수준의 적응이다. 반면 ‘원인 지향적 적응’은 높은 수준의 적응이다. 원인 지향적 적응은 위험의 근본 원인을 표적으로 삼을 뿐 아니라, 조치 자체가 어떻게 새로운 위험을 불러오고, 다른 부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지도 함께 고민하는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유엔 환경개발위원회(WCED)는 지속 가능한 개발을 위해 ‘원인 지향적 접근’을 채택하고 있다.(3)
우리가 냉소주의와 허무주의에 빠지면 낮은 수준의 적응 (반응적 적응, 효과 지향적 적응)에 머물 가능성이 크다. 주민들이 정부와 기업의 조치를 불신하거나 혹은 아예 무관심 한데 정부와 기업이 더 많이 노력하여 선제적이고 원인 지향적인 적응 활동을 펼칠 동기가 없다. 전형적인 ‘뒷수습’, ‘미봉책’이 반복될 것이고, 주민들의 냉소와 무관심은 더 커질 것이다.
반면 높은 수준의 적응(선제적 적응, 원인 지향적 적응)으로 넘어가기 위해서는 주민과 대중, 소비자의 적극적인 참여가 필요하다. 정부와 기업의 대응 방식에 문제를 제기하고, 공론과정에 참여하며, 제대로 실행되고 있는지 지켜봐야 한다.
정부와 기업 또한 자신의 기후 적응 활동에 주민, 소비자의 동참을 얻기 위해 이들의 냉소주의와 허무주의를 잘 이해할 필요가 있다.
우선 냉소주의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사람들이 기후 변화에 대해 느끼는 ‘억울함’을 이해해야 한다. 내가 살면서 평생 에어컨을 틀었던 들 그게 기후 변화에 무슨 큰 영향을 끼쳤을까? 그런데 기후 변화로 인한 피해는 왜 내가 고스란히 떠 앉아야 하지? 이런 억울함이다. 백 년 만의 폭우와 홍수, 백 년 만의 더위, 산불, 산사태, 해일 피해… 기후 재난을 직접 겪어본 사람들은 누구나 이런 억울함이 들게 마련이다.
2024년 11월 가디언(Guardian)에는 캐나다에 사는 여성복 디자이너 엘리사(Elisa)의 이야기가 실렸다.(4) 엘리사는 프랑스 니스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냈고, 가족 대부분은 그곳에 남아 있다. 그녀의 어머니는 2015년에 생마르탱 베주비(Saint-Martin-Vesubie)라는 작은 마을에서 아주 매력적인 집을 발견했다. 그리고 저축한 돈을 털어 그 집을 샀고 여러 번 리모델링도 했다. 어머니는 창밖으로 보이는 산과 집 옆에 흐르는 강을 너무 좋아했다. 그런데 2020년 10월 폭풍 알렉스(Alex)가 이 마을을 덮쳤다. 3개월 치에 해당하는 비가 단 하루만에 쏟아졌다. 어머니는 연락이 닿지 않았고, 방송에서는 작은 마을의 소식을 알려주지 않았다. 엘리사의 동생과 삼촌이 생마르탱 베주비로 향했다. 도로가 끊겨 그들은 걸어서 산을 넘어야 했다. 산꼭대기에서 동생이 엘리사에게 전화를 걸어 왔다. 그는 프랑스어로 “아무것도 없다”며 울부짖었다. 동생이 보내온 사진에는 집이 있던 자리가 흔적도 없이 강으로 바뀌어 있었다. 폭풍이 지나간 뒤 가족들은 어머니의 시신을 찾아 다녔다. 2주일이 지난 뒤 야생 늑대들이 냄새를 맡으며 한때 집이 있었던 곳을 서성이는 것을 발견하고 그곳에서 어머니의 시신을 찾을 수 있었다. 엘리사는 이 때를 떠올리며, “엄마는 기후 변화의 희생자예요, 기후 변화는 평범한 사건이 아닙니다. 기후 변화가 문제라는 건 확인할 필요도 없어요. 젠장, 왜 저입니까?”라며 한탄한다.
우리가 기후 변화에 대해 느끼는 억울함은 일정 부분 사실이다. 기후 변화의 주범은 탄소 배출인데, 일반인이 직접적으로 배출하는 탄소의 양은 다른 산업 부문에 비해 적다. 미국 연방 주택 금융청(FHFA, Federal Housing Finance Agency)에 따르면, 미국 가정 주택이 전체 탄소 배출 중 차지하는 비중은 20~30% 수준이다.(5)
1960년부터 탄소배출 데이터를 축적하고 있는 미국 에너지 정보국(EIA, Energy Information Administration)에 따르면, 2023년 기준으로 미국 가정 주택 전체의 탄소 배출량은 산업 부문의 1/3, 발전 부문의 1/4, 운송 부문의 1/6 수준이다.(6) 또한 이 배출량을 미국 전체 가구수로 나눠보면 한 가정이 기후 변화에 끼치는 영향은 매우 미미해 보인다. 물론 산업 부문, 발전 부문, 운송 부문의 탄소가 우리 가정의 소비 생활을 충족해주기 위해 배출된다는 것은 모른 척하고 하는 말이다.
그런데 분석의 틀을 바꿔보면, 우리가 느끼는 억울함은 ‘정말’ 사실이다. 실제로 사회경제적 지위, 지역에 따라 환경적 피해가 불공정하게 발생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을 ‘기후 불공정(Climate injustice)’ 또는 ‘기후 불평등(Climate inequality)’이라고 한다.
기후·에너지 정책 연구자이자 활동가인 권승문 씨의 저서 「기후난민」에는 폭염에 노출된 야외 노동자, 반지하 주민, 돈벌이 때문에 도시를 떠날 수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다뤄진다. 이들은 탄소 배출에 가장 적게 영향을 끼친 사람들이지만, 가장 큰 피해를 본다.(7) 캔자스 대학 사회복지학과 강준모 교수는 쪽방촌에 1년간 생활하면서 쪽방촌 주민들의 탄소 배출을 측정했다. 창문 하나 없는 0.5평짜리 방에서 배출하는 탄소가 미미한 수준인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한여름 쪽방촌의 건물 온도는 60도에 임박한다.(8)
기후 변화를 초래한 원인에는 저개발국가, 빈곤국가의 잘못보다는 선진국과 다국적 기업의 잘못이 더 크다. 그동안 그들은 ‘성장’을 통해 막대한 이득을 취했다. 하지만 그 부작용으로 인해 저개발국가와 빈곤국가는 나라가 바닷속에 잠기는 피해를 입거나 폭우와 산사태 피해를 입는다. 대부분의 탄소는 부유한 글로벌 북부(Global north)에서 배출하고 피해는 글로벌 남부 사람들(Global south)이 보기 때문에, ‘글로벌 북부의 오염자, 남부의 피해자’라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유엔난민기구(UNHCR)가 매년 발표하는 동향보고서(UNHCR Global Trends Report 2024)에 따르면, 2024년 기준 전 세계 강제 실향민은 약 1억 2,300만 명이고 그 중 약 4,500만 명이 기후 재난에 따른 실향민이다.9 이들 대부분이 글로벌 남부에 사는 사람들이다. 세계적인 구호 단체 옥스팜(Oxfarm)의 2025년 보고서에 따르면, 글로벌 북부의 부유한 국가는 전 세계 탄소 배출량의 40%를 배출한다. 반면 글로벌 남부의 아프리카는 전 세계 탄소 배출량의 4%만을 배출한다. 하지만 기후 변화의 피해를 글로벌 북부보다 더 많이 받고 있다.(10)
2025년 세계적인 학술지 네이처(Nature)에 게재된 연구에서, 연구자들은 1990년부터 2020년까지의 지구 온난화에 각기 다른 소득 계층이 미친 영향을 분석했다. 그 결과 전체 온난화의 20%는 상위 1%의 부유한 개인에게서 비롯되었다. 이들의 개인 탄소 배출량은 평균보다 20배 많았다. 상위 1%는 전세계적으로 매달 발생하는 ‘100년 만의 폭염’ 증가에 평균보다 26배, 아마존 지역 가뭄 증가에는 17배 많은 책임이 있었다.(11) 가디언의 2023년 보도에 따르면, 상위 1%의 부자는 전용기, 요트를 즐기느라 전 세계 인구 66%의 가난한 사람보다 더 많은 탄소를 배출하고 있다.(12)
화석연료 생산업체들도 문제다. 옥스팜의 보고서에 따르면, 1988년 이래 엑손모빌, 쉐브론, 코노코필립스 등 100개의 화석 연료 생산업체들의 탄소 배출량은 전 세계 배출량의 71%를 차지한다.(13) 하지만 이들 기업은 기후 재난에 책임지는 자세를 취하지 않는다. 글로벌 위트니스(Global Witness)에 따르면 2022년에만 석유·가스 기업들이 세전 이익으로 4조 달러를 벌었다. 이는 개발도상국에서 발생하는 연간 기후 피해 비용인 4천억 달러의 10배에 해당되는 돈이다. 하지만 이들은 기후 대응에는 돈을 거의 쓰지 않았다. UN이 운영 중인 ‘손실 및 피해 기금(Loss and Damage Fund)에는 이 4천억 달러 피해 비용의 0.2%도 채 되지 않는 돈만 모여 있다.(14)
이런 불공정하고 불평등한 상황에서 우리가 느끼는 억울함은 정당한 감정이다. 이 억울함을 조금 고상하게 표현하면 ‘공정한 세상 오류(Just-world fallacy)’에 빠진 것이다.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세상이 공정하다고 믿는 ‘인지 편향’이 있다. 이 인지 편향에 따라, 우리는 ‘나쁜 일은 나쁜 사람에게만 일어난다’고 믿는다. 하지만 내가 부당한 피해를 보게 되면 이러한 믿음이 도전받는다. 기후 변화에 대해 무고한 피해를 보았다는 느낌은 공정한 세상에 대한 믿음을 깨트린다. 그 결과 사람들은 선진국과 다국적 기업 중심으로 펼쳐지는 기후 정책에 대해 불신하고 ‘모두가 자기 잇속을 채우려 한다’는 냉소주의에 빠지게 된다.
이처럼 냉소주의의 책임은 글로벌 북부의 선진국과 에너지 회사를 포함한 다국적 기업에 있다. 2025년 7월 국제사법 재판소(ICJ, International Court of Justice)는 “국가들이 기후 의무를 이행해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기후 변화로 피해를 입은 다른 국가들이 소송을 통해 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고 밝혔다. 비록 권고적 의견으로 법적인 구속력은 없지만, UN 최고 사법기관의 의견이란 점에서 상당한 도덕적 권위를 지닌다. 환경단체들은 즉각적인 환영을 표했고, 이번 조치가 전 세계의 기후 행동 방향을 결정하는데 큰 전환점이 될 것으로 희망하고 있다.(15)
이러한 조치들을 통해, 선진국과 다국적 기업이 기후 대응에 더 책임을 보여야만 우리가 가진 냉소주의가 해소될 수 있다.
<참고문헌>
(1) Selseng, T., Klemetsen, M., & Rusdal, T. (2021). Adaptation confusion? A longitudinal examination of the concept “climate change adaptation” in Norwegian municipal surveys. Weather, Climate, and Society, 13(3). https://doi.org/10.1175/wcas-d-21-0024.1
(2) Lecocq, F., & Shalizi, Z. (2007). Balancing Expenditures on Mitigation of and Adaptation to Climate Change. in World Bank Policy Research Working Papers, 4299.
https://books.google.com/books?id=4uhIDPz8xB0C&printsec=frontcover&hl=ko&source=gbs_ge_summary_r&cad=0#v=onepage&q&f=false
(3) WCED (1987). Our Common Future. in Report of UN WCED. UN.org.
https://sustainabledevelopment.un.org/content/documents/5987our-common-future.pdf
(4) Holman, S., & Chwelos, A. (2024, November 19). “I’m imagining what my mother went through in her last seconds” – This is climate breakdown. The Guardian. https://www.theguardian.com/environment/ng-interactive/2024/nov/19/im-imagining-what-my-mother-went-through-in-her-last-seconds-this-is-climate-breakdown
(5) Brolinson, B., Shui, J., & Wilson, N. (2024). Tracking Our Footprint: CO 2 Emissions from US Single-Family Homes. in FHFA Staff Working Paper Series.
https://www.fhfa.gov/document/wp2405.pdf/
(6) EIA. Energy-Related CO2 Emission Data Tables. EIA. https://www.eia.gov/environment/emissions/state/ (접속일: 2025.07.29.).
(7) 권승문 (2025). 『기후난민: 기후는 누군가에게 결코 평등하지 않다』. 드레북스.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216848021
(8) 강준모 (2023.09.26.). “쪽방촌과 탄소배출 불평등(1/2)”. 서교연 웹진 인-무브. https://en-movement.net/459/
(9) 유엔난민기구(UNHCR) (2025). “2024년 세계 난민 동향”. 유엔난민기구 웹페이지 [UNHCR 동향보고서].
https://www.unhcr.org/kr/reports-and-publications/global-trends (접속일: 2025.07.29).
(10) Marsh, M. (2025.04.09.). What is climate justice?. Oxfamamerica.org..
https://www.oxfamamerica.org/explore/issues/climate-action/climate-justice/
(11) Schöngart, S., Nicholls, Z., Hoffmann, R., Pelz, S., & Schleussner, C.-F. (2025). High-income groups disproportionately contribute to climate extremes worldwide. Nature Climate Change, 15. https://doi.org/10.1038/s41558-025-02325-x
(12) Watts, J. (2023, November 20). Richest 1% account for more carbon emissions than poorest 66%, report says. The Guardian. https://www.theguardian.com/environment/2023/nov/20/richest-1-account-for-more-carbon-emissions-than-poorest-66-report-says
(13) Marsh, M. (2025.04.09.). 2절 10번과 동일
(14) Evans, A., Gayle, D., & van der Zee, B. (2024, November 11). Carbon credit trade rules approved, breaking lengthy deadlock – Cop29 day one, as it happened. The Guardian. https://www.theguardian.com/environment/live/2024/nov/11/cop29-live-the-climate-summit-gets-under-way-in-azerbaijan
(15) Furness, V. (2025, July 24). Sustainable Finance Newsletter - Who is responsible for climate change? Reuters. https://www.reuters.com/sustainability/sustainable-finance-newsletter-who-is-responsible-climate-change-2025-07-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