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불안하다.
냉소주의의 책임은 선진국과 다국적 기업에 있지만, 허무주의를 넘어서는 일은 우리가 직접 해야 한다.
기후 변화에 대한 허무주의는 사람들이 기후 재난을 직접 경험했을 때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 그 시작은 ‘정신적 상처’이다. 2021년 미국 심리학회(APA, American Psychological Association)는 가뭄, 폭염 같은 기후 재난의 노출이 개인의 스트레스, 불안, 우울, 자존감 저하를 유발한다고 경고했다.(1) 연구자들이 기후 변화와 정신 건강 간의 관계를 연구한 163건의 연구를 분석해 보니, 자연재해 직후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Post Traumatic Stress Disorder), 우울, 불안이 압도적으로 증가하며, 재해 이후에도 장기적으로 정신적 상처가 이어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2)
워싱턴 포스트(The Washington Post)의 재난 전문 기자 브리아나 삭스(Brianna Sacks)는 2025년 캘리포니아 산불을 취재하며, 그녀의 고향 마을이 불에 타는 모습을 직접 목격했다. 브리아나는 자신이 재난 전문 기자임에도 불구하고, 이웃 사람들의 집이 불타는 모습을 직접 바라보는 것은 전혀 “준비되지 않은(Emotionally unprepared)”, 감당하기 힘든 트라우마였다고 고백했다.(3) 브리아나는 기자라는 역할을 수행해야 하면서도 동시에 피해자 가족으로서의 슬픔과 충격, 무력감을 느꼈다.
중국 남부 광둥성의 산골 마을인 셴냔시(Xiangxi)에 사는 리 지에(Li jie)는 농촌 비영리단체에서 사회복지사로 일하며 밭일도 한다. 기후 변화로 광둥성에는 폭우가 증가했고, 2024년 4월에도 폭우로 인한 홍수로 50여 명이 사망했다. 홍수가 밭을 쓸고 지나가면 씨앗이 썩고 식물이 잘 자라지 않는다. 그녀가 밭에서 키우는 참외도 겨우 20개 밖에 수확하지 못했다. 마을 사람 대부분의 농사 수입은 반 이상 줄어들었다. 그녀와 마을 사람들은 큰 정신적 고통에 빠졌다.(4)
정신적 고통은 저소득층, 청소년과 같은 취약한 사람들에게 더 많이 일어난다.(5) 유엔개발계획(UNDP)의 후원을 받아 세계 불평등 연구소(World Inequality Lab)가 발간한 2023 기후 불평등 보고서(Climate Inequality Report 2023)에 따르면, 저개발국가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우울증은 폭염과 홍수 이후 최대 40~60% 폭증했다.(6) 예를 들면 인도네시아에서 홍수로 인한 사람들의 정신 건강 변화를 분석해 보니, 도시 빈곤층은 홍수로 인한 우울증 증상을 경험하였고 그 부정적인 영향도 오래 지속되었다. 하지만 도시 부유층은 홍수로 인한 정신 건강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7)
기후 재난은 청소년들에게도 정신적 압박이 되고 있다. 2025년 4월 미국 국립과학원 회보(PNAS, Proceedings of the National Academy of Sciences of the USA)에 발표된 논문에 따르면, 16세에서 24세의 미국 청년 약 3천 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한 결과 이들 중 약 20%가 기후 변화 때문에 ‘아이를 갖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었다.(8) 기후정신의학연합(Climate Psychiatry Alliance) 창립 멤버이자 정신과 교수인 엘리자베스 하세(Elizabeth Haase)는 “세 살배기 아이들도 기후 불안 증상을 보인다. 틱톡(TikTok)에는 기후 재난으로 테디베어를 잃어버리거나 애완 동물이 죽었다고 흐느끼는 아이들을 볼 수 있다”고 말한다.(9)
심리학자이자 작가인 칼리 도버(Carly Dober)는 홍수와 산불을 겪고 ‘무력감’과 ‘우울감’을 느끼는 청소년들을 상담해주고 있다. 칼리는 기후 재난을 겪은 아이들의 정신 건강이 우려스러울 정도로 나빠지는 것을 목격하고 있다. 그녀가 상담한 학생들은 부모 세대와는 완전히 다른, “망가진 세상”을 물려받고, 수십 년 동안 상황이 나아지지 않을 거라는 생각에 무력감과 좌절감을 느낀다. 그들은 정치권과 주변의 어른들이 자신들을 실망하게 하고 있고, 심지어 그들 세대에게 물려줄 것을 훔치고, 배신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한 학생은 “정말 짜증 나요, 더 나빠질 뿐이에요”라며 절망했다. 그들 중에는 우울감으로 잠을 못 이루는 학생도 있었다.(10)
이러한 현상을 통칭하여 ‘기후 불안(Climate Anxiety)’이라 한다. 미국심리학회(APA)는 기후 변화와 정신 건강의 연관성을 다룬 보고서에 기후 불안을 “기후 변화와 그 영향에 대한 불안 혹은 걱정”이라고 정의했다.(11) 미국심리 학회가 에코 아메리카(ecoAmerica)와 공동으로 발표한 보고서에서는 좀 더 급진적인 정의가 나온다. 기후 불안은 “환경 파멸에 대한 만성적인 공포(A chronic fear of environmental doom)”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기후 변화는 인간의 정신 건강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끼치며 기후 불안을 일으킨다. 기후 불안은 무력감, 우울, 죄책감, 슬픔, 분노 등 복합적인 감정으로 나타난다.(12)
기후 불안과 유사하거나 혹은 하위에 있는 다양한 개념이 있다. 예를 들면 ‘생태 불안(Eco anxiety)’은 기후 불안과 동일한 개념이다. 기후 불안의 하위 개념으로는, 이미 일어난 숲 파괴, 종 멸종 등 생태적 상실에 대한 슬픔을 의미하는 ‘기후 애도(Climate grief)’, 현재 자신이 살고 있는 환경이 파괴되었을 때 느끼는 환경적인 향수병인 ‘기후 향수(Solastalgia)’, 기후 변화 앞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무기력감인 생태 무력감(Eco paralysis), 기후 재난을 직접 경험한 이후 겪는 외상 후 스트레스 반응인 ‘기후 트라우마(Climate trauma)’가 있다.
‘기후 불안’은 누구나 겪을 수 있다. 그런데 일반인들 보다 더 ‘기후 불안’에 취약한 사람들이 있다. 예를 들면 기후 변화를 몸소 연구하는 기후 과학자들은 일반인들보다 더 ‘무력감’과 ‘우울감’에 빠지기 쉽다. 2024년 5월 가디언(The Guardian)은 ‘기후 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 Intergovernmental Panel on Climate Change)’에 기여한 전 세계 380여 명의 기후 과학자들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와 인터뷰를 했다. 다수의 과학자가 기후 변화에 대해 무력감, 우울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어떤 학자는 “희망이 없고 망가졌다(Hopeless and broken)”고 말했고, 어떤 이는 “우리는 바보들의 시대에 살고 있다(An age of fools)”고 말했다. 다른 학자는 “내 아이들이 물려받을 미래에 대해 걱정한다”고 말한다.
인터뷰 대상자 중 한 명인 멕시코 국립자치대학교의 기후 모델링 전문가 루스 세레조-모타(Ruth Cerezo-Mota) 박사는 “때로는 절망과 좌절을 느끼지 않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그녀는 우울증을 겪었다. 루스 박사는 그 시기에 대해 “인생에서 정말 암울했던 시기였다(It was a very dark point in my life), 아무것도 할 수 없었고 그저 버티고 있었다”고 고백한다. 그녀가 무력감을 느끼는 이유는 사람들이 자신과 같은 기후학자의 목소리에 좀 더 귀를 기울였다면 그녀의 고향에서 벌어지는 기후 재난을 피할 수 있었을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제가 사는 유카탄 반도 메리다의 더위가 점점 심해지고 있어요. 작년 여름 최고 기온은 47도였어요. 밤에도 38도까지 올라갔는데 체온보다 높아요. 몸이 회복할 시간이 없어요.” 기록적인 폭염으로 멕시코에도 많은 사망자가 발생했다. 이에 대해 루스 박사는 “이런 일들은 대부분 피할 수 있었던 일이라 매우 답답하다”고 말한다.(13)
사람들은 기후 변화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기도 한다. 와이어드(WIRED)에는 캘리포니아에 거주하는 20대 후반의 음악가 찰리 글릭(Charlie Glick)의 이야기가 나온다. 찰리는 캘리포니아의 기후 변화를 목도하며 음악가로서의 삶에 대해 고통스러운 성찰을 하게 되었다. 그는 “내 삶에 대한 모든 생각이 사라졌다. 정말 충격적이었고, 어디를 봐도 화석 연료만 보였다. 말 그대로 내 자신을 화석 연료의 산물로 생각했다”고 말한다. 찰리는 성공적인 음악가라는 ‘이상적인 상(Ideal type)’이 투어버스, 전용기, 그리고 그들이 비우는 수많은 연료 탱크에 의존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공연 때마다 겪게 될 오염을 생각하는 순간 찰리의 꿈은 금방 빛을 잃어버렸다.(14)
‘공포’도 기후 재난 상황에서 느낄 수 있는 정당한 반응이다. 2023년 7월 카리브해의 유니언 아일랜드에 관측 사상 가장 빠르게 형성된 5급 허리케인 베릴(Beryl)이 강타했다. 자연보호 담당 공무원이자 ‘섬 재난 대비 위원회’ 소속의 로즈먼 아담스(Roseman Adams)는 허리케인 현장에서 공포를 느꼈다. 로즈먼은 이웃집의 보트가 하늘을 떠다니다 강둑에 떨어지는 것을 보았다. 그때 갑자기 이웃집 물탱크가 터져 로즈먼의 집을 덮쳤다. 그는 90세 어머니와 간병인을 화장실로 피신시키고 손이 저린 줄도 모르고 네 시간 반 동안 화장실 문을 꽉 붙잡고 버텨야 했다. 허리 케인이 지나가고 마을 사람들이 밖으로 나와서 그 엄청난 파괴력을 목격하고 울부짖기 시작했다. 로즈먼은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을 믿을 수 없었다. 섬에 있는 건물의 99%가 파괴되었다. 더 두려운 것은 기후 변화로 인해 섬을 덮치는 허리케인이 매년 더 강력하고 파괴적으로 변하고 있다는 점이다.(15)
사람들은 ‘분노’를 느끼기도 한다. 이 역시 정당한 반응이다. 2025년 7월 4일 독립기념일, 텍사스에서 발생한 대홍수로 130여 명이 사망했다. 160명 이상은 여전히 실종 상태이다. 안타까운 사실은 그 중에 30여 명은 여름 캠프에 참여한 여자아이들이다. 이 아이들은 캠프 숙소에서 잠을 자다가 불어난 물에 그대로 쓸려 갔다. 이번 대홍수는 폭풍이 텍사스 중부의 두 강이 만나는 지역에 정체되어 엄청난 비를 쏟아낸 것이 원인이다. 기후 변화로 건조한 텍사스 중부에 이런 폭우는 더 빈번해지고 있다. 그런데 사람들이 분노하는 이유는 따로 있다. 사람들은 트럼프 정부가 피해를 더 키웠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노골적으로 기후 변화를 부정하고 기후 위기를 ‘사기극’이라고 치부하기 때문에, 애먼 여자아이들이 희생되었다고 생각한다. 트럼프 정부는 기상 예보관과 과학자를 해고하고 기후 변화를 다루는 기관과 환경 재난에 공조하는 기구의 예산을 축소했다. 그 결과 국립기상청(National Weather Service)이 이번 홍수에 대한 경보를 발령했지만, 실제 사람들을 대피시키는 공조 기능이 작동하지 못했다. 사람들을 더 분노하게 하는 것은 텍사스 상원 의원인 공화당원 테드 크루즈(Ted Cruz)가 트럼프의 예산 감축법안에 적극적으로 찬성했다는 점이다. 결국, 이번 대홍수로 테드 크루즈의 고향 마을도 강물에 휩쓸려 나갔다. 사람들은 이번 대홍수가 트럼프의 기후 변화 부정, 연방 예산 삭감으로 인한 “독성 칵테일(Toxic cocktail)”이라고 분노한다.(16)
우리가 기후 재난 상황에서 무력감, 우울감, 좌절감, 공포, 분노를 느끼는 것은 자연스럽고 당연한 현상이다. 하지만 이러한 감정을 극복하지 못하면 허무주의에 빠질 수 있다. 특히 사회가 기후 불안에 대해 암묵적으로 침묵을 강요하는 경우, 사람들은 자신의 감정을 해소하지 못하고 더 깊은 무력감과 절망감에 빠지게 된다. 그러면 기후 변화에 적응하기보다는 ‘결국 다 죽고 말 거야, (적응 행동은) 아무 의미도 없을 거야’와 같은 허무주의가 나타나게 된다.
<참고문헌>
(1) American Psychological Association. (2021). Mental health and our changing climate impacts, inequities, responses. Apa.org. https://www.apa.org/news/press/releases/mental-health-climate-change.pdf
(2) Cianconi, P., Betrò, S., & Janiri, L. (2020). The Impact of Climate Change on Mental Health: A Systematic Descriptive Review. Frontiers in Psychiatry, 11. https://doi.org/10.3389/fpsyt.2020.00074
(3) Sacks, B. (2025, April 6). I’m a disaster reporter. But I was not prepared to watch my city burn. The Washington Post. https://www.washingtonpost.com/climate-environment/interactive/2025/la-wildfires-climate-change/
(4) Ye, Y. (2024, November 22). “I find hope in sticking together and keeping each other warm” – This is climate breakdown. The Guardian. https://www.theguardian.com/environment/ng-interactive/2024/nov/22/i-find-hope-in-sticking-together-after-loss-from-the-floods-this-is-climate-breakdown/
(5) American Psychological Association. (2021). 3절 1번과 동일
(6) Chancel, L., Bothe, P., & Voituriez, T. (2023). Climate Inequality Report 2023: Fair taxes for a sustainable future in the Global South. World Inequality Lab. https://wid.world/www-site/uploads/2023/01/CBV2023-ClimateInequalityReport-1.pdf
(7) Carias, M. E., Johnston, D., Knott, R., & Sweeney, R. (2021). Flood Disasters and Health Among the Urban Poor. ArXiv.org.
https://arxiv.org/abs/2111.05455
(8) Kluger, J. (2025, April 29). Climate Anxiety Is Taking Its Toll on Young People. TIME. https://time.com/7280989/climate-anxiety-mental-health-young-people/
(9) Kluger, J. (2025, April 29). 3절 8번과 동일
(10) Dober, C. (2024, January 12). As a psychologist I have witnessed a surge in climate grief. This is what I tell my clients. The Guardian. https://www.theguardian.com/commentisfree/2024/jan/13/climate-change-crisis-fears-despair-younger-generations-impact
(11) APA. (2020, February 6). Majority of US Adults Believe Climate Change Is Most Important Issue Today. Apa.org. https://www.apa.org/news/press/releases/2020/02/climate-change/
(12) Schreiber, M. (2021, March 1). Addressing climate change concerns in practice. Apa.org. https://www.apa.org/monitor/2021/03/ce-climate-change/
(13) Carrington, D. (2024, May 8). We asked 380 top climate scientists what they felt about the future.... The Guardian. https://www.theguardian.com/environment/ng-interactive/2024/may/08/hopeless-and-broken-why-the-worlds-top-climate-scientists-are-in-despair
(14) Wray, B. (2022, May 3). How to Embrace Despair in the Age of Climate Change. Wired.com. https://www.wired.com/story/generation-dread-britt-wray-climate-change/
(15) Adams, R. (2024, November 21). “When the hurricane hit, I saw my neighbour’s boat lift into the sky” – This is climate breakdown. The Guardian. https://www.theguardian.com/environment/ng-interactive/2024/nov/21/my-hands-were-tired-but-i-had-to-hold-on-this-is-climate-breakdown
(16) Mohdin, A. (2025, July 14). Monday briefing: The “toxic cocktail” of climate denial, federal cuts and the Texas floods. The Guardian. https://www.theguardian.com/world/2025/jul/14/monday-briefing-the-toxic-cocktail-of-climate-denial-federal-cuts-and-the-texas-flood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