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적응 마인드셋 5

자신감이 필요하다.

by 박성훈

이제 자신감과 주체성에 대해 얘기할 차례이다. 그런데 이 얘기를 하기 전에 짚고 넘어갈 것이 있다. 기후 ‘적응’을 얘기하는 책에서 왜 ‘불안’을 얘기하고, ‘인식’과 ‘대처’를 얘기하고, ‘회복’을 얘기할까?

사실 ‘인식’, ‘대처’, ‘회복’의 과정이 없더라도 ‘적응’은 할 수 있다. 그런데 그 적응은 정부와 기업의 적응 활동을 그냥 받아들이는 수준일 것이다. 아마도 우리가 2절에서 이야기한 ‘낮은 수준의 적응(반응적 적응과 효과 중심 적응)’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기후 위기에서 생존하는 데 필요한 것은 ‘주체적인 적응’이다. 2절에서 설명한 선제적 적응과 원인 중심의 적응 같은 높은 수준의 적응이다.

그렇다면 ‘인식’, ‘대처’, ‘회복’이 있어야 높은 수준의 적응이 가능하다는 것일까? 과연 이들의 관계는 어떻게 될까? 사실 이 전체의 관계를 한 연구에서 규명한 예는 거의 없다. 대부분의 연구는 전체 중에서 두 가지, 혹은 세 가지의 관계만을 보았다. 예를 들면 2025년에 이스라엘 성인 600명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는 기후 변화에 대한 ‘인식’과 문제 중심 · 의미 중심 ‘대처’의 관련성을 분석했다. 그 결과 기후 변화에 대한 인식이 높은 사람들이 대처 전략을 많이 쓰는 것으로 나타났다.(1)

그런데 2024년에 이란의 농부들을 대상으로 한 ‘심리적 회복 모델’ 연구에서 이 네 가지의 관계를 동시에 규명하려 했다.(2) 이란은 기후 변화로 가뭄이 심하다. 가뭄으로 농부들이 경제적으로 타격을 입고, 정신 건강 문제도 겪고 있다. 연구자들은 여러 선행 연구를 바탕으로, 가뭄에 잘 ‘적응’할수록 ‘대처’를 잘하게 되고, ‘대처’를 잘할수록 기후 불안으로부터 잘 ‘회복’한다는 가설을 세웠다. 이를 도식화하면 다음과 같다.


이론적인 모델: 적응 → 대처 → 회복


하지만 실제 400명의 농부를 대상으로 가설을 검증해보니 이 관계가 일방향적이지 않음을 알게 되었다. 연구자들이 모델을 수정해가며 내린 결론은 적응과 대처가 상호작용하여 회복력을 높인다는 것이다. 적응을 잘할수록 대처도 잘하고, 대처를 잘할수록 또다시 적응도 잘하게 된다.


수정된 모델: (적응 ↔ 대처) → 회복


이제, 아직 소개하지 않은 이 모델의 앞 단계로 가보자. 연구자들은 첫째, 농부들이 가뭄에 대한 ‘지식’이 풍부하고, 둘째, 가뭄의 위험에 대한 ‘인식’ 수준이 높고, 셋째, 지역의 농업 ‘인프라’ 수준이 높을수록 가뭄에 대한 ‘적응’도가 높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에 연구자들은 가뭄에 대한 교육과 인식 제고 프로그램, 가뭄을 대비한 농업 인프라의 구축이 가뭄에 대한 적응을 높인다고 제안한다. 이를 도식화하면 아래와 같다.


확장된 모델: 지식과 인식/인프라 → (적응 ↔ 대처) → 회복


여기까지가 이 연구의 결론이다. 여기까지도 훌륭하다. 기후 적응과 나머지 기제들의 관계를 규명한 연구도 거의 없을뿐더러, 이 연구는 될 수 있으면 인과관계를 추정해 보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우리가 나름대로 이 연구 결과를 발전시키기 위해 ‘시간’ 개념을 넣어보면, 장기적으로 ‘회복’은 더 높은 수준의 ‘지식과 인식/인프라’, 더 높은 수준의 ‘적응’과 ‘대처’를 불러올 수 있다. 그래서 다음과 같은 선순환 모델이 가능하다.


선순환 모델: {지식과 인식/인프라 ↔ (적응 ↔ 대처)} ↔ 회복


이쯤에서 다시 한번 더 짚고 넘어가 보자. 기후 ‘적응’을 다루는 이 책이 ‘적응’ 이후 단계까지 생각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기후 변화 문제를 해결하려는 ‘대처’ 전략과 기후 불안의 ‘회복’까지 강조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선순환’ 효과 때문이다. 기후 변화에 대한 단편적인 적응 단계를 넘어, 기후 변화 문제를 직접적으로 해결하려는 ‘대처’ 단계까지 나아가고, 기후 불안으로부터 ‘회복’할 수 있어야 ‘높은 수준의 적응’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 책이 이 부분을 강조하는 이유는 현재의 기후 적응이 우리 인류가 겪었던 빙하기, 흑사병 못지 않은 ‘생존’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비가 많이 내리니 차수문이 불편해도 참아야지’, ‘열대 과일이 많이 나니 낯설어도 먹어야지’, 이 정도의 불편함을 감수하는 것만으로는 절대 생존할 수 없을 것이다. 정부와 기업이 떠주는 밥만 수동적으로 먹다 보면 결국 ‘난 아무것도 할 수 없어. 내가 뭘 해봐야 무슨 소용 있겠어’라며 허무주의에 빠지고 좌절하고 희망의 끈을 놓게 될 것이다. 반면 기후 변화의 문제를 직시하면서, 무력감과 우울감을 극복하면서, 행동하며 ‘적응’하는 것이 생존으로 가는 길이다.

기후 적응을 얘기하는데 여러 가지 심리 용어들이 등장해서 혼란스러울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감정의 변화 과정은 정말 복잡한 것 같다. 같은 기후 불안을 겪으면서도 어떤 경우는 허무주의의 늪에 빠지고, 어떤 경우는 회복의 과정을 밟는다. ‘대처’ 개념을 정립한 스웨덴 심리학자 마리아 오얄라(Maria Ojala) 교수도 ‘감정의 복잡함’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감정은 모두 똑같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은 절망에 빠져 우울해하지만, 어떤 사람은 ‘이제 살아야겠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미래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가졌던 사람들이 기후 문제에 영향을 미쳐 더 나은 미래를 만드는 데 기여할 수 있다는 강한 믿음을 가질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여러분, 기후 변화는 걱정하지 마세요. 기업들이 기술 개발을 진행 중이에요’라고 말해선 안 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말은 오히려 냉소주의만 더 키울 뿐이다. 허무주의도 마찬가지다. 복잡한 감정의 얽힘을 이겨내야 한다. 오얄라 교수는 이에 대해 “사람들은 빨리 희망으로 넘어가고 싶어 하지만, 심리학은 힘든 감정에 맞서고, 그 감정을 명명하고, 이야기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3)

우리가 이처럼 기후 변화에 맞서고, 직시하고, 직면하기 위해서는 ‘자신감’과 ‘주체성’이 필요하다.

네덜란드의 호우와 폭염 스트레스를 겪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연구는 자신감의 중요성을 잘 보여준다.(4) 원래 연구자들은 사람들의 ‘기후 변화와 위험에 대한 인식’이 높으면 기후 적응도 잘할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연구 결과 ‘기후 변화와 위험에 대한 인식’이 기후 적응 ‘의도’를 높이는 데는 효과가 있었지만 1년 이내에 실제 적응 ‘행동’을 이행하는 데는 효과가 없었다. 반면 자신의 행동이 효과가 있을 거라는 믿음, 즉 ‘자신감’이 높을 경우, ‘의도’를 넘어 실제 기후 적응 ‘행동’으로 이어졌다. 기후 인식이나 위험 인식만으로는 적응 행동이 자동으로 나타나지 않으며, 자신감 수준이 높아야 적응 ‘의지’가 ‘행동’으로 옮겨졌다.

자신감의 한 형태는 효능감(Efficacy)이다. 특정 상황에서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는, 역량에 기반한 자신감이다. 미국인 2천200명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자기 효능감, 정부와 집단에 대한 효능감은 기후 위험을 줄이려는 정책에 대한 ‘지지’와 기후 위험 완화 행동에 대한 ‘참여도’를 높였다.(5) 이러한 결과는 위험에 대한 인식의 효과를 통제한 상황에서도 유의미하게 나타났다.

이란 농부들의 선순환 모델로 돌아가 보면, 기후 재난에 관한 지식을 높이고 지역의 재난 대비 인프라를 구축하는 ‘준비’는 기후 대응에 대한 효능감(Efficacy)을 높이는 요인이 된다. 효능감이 역량에 기반한 자신감이기 때문이다. 이 효능감은 기후 변화에 대한 ‘적응’과 ‘대처’를 더 잘하게 만든다. 이 관점에서 선순환 모델을 다음과 같이 수정해 볼 수 있다.


최종 선순환 모델: {준비(자신감) ↔ (적응 ↔ 대처)} ↔ 회복


기후 위험에 대한 준비(지식과 인식, 인프라)와, 여기서 오는 자신감(효능감)은 적응과 대처를 더 잘하게 한다. 그리고 기후 불안으로부터 더 잘 회복할 수 있게 한다. 회복은 다시 준비도와 자신감을 높여 더 높은 수준의 적응과 대처를 가능하게 한다.


주체성도 중요하다. 주체성은 ‘내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인데, 이때 ‘내가’ 한다는 점이 중요하다. 그래서 주체성의 의미는 자기 결정력, 통제력, 주도권이다.

15~25세 청소년, 청년 240명을 대상으로 한 실험 연구에서 주체성이 높을수록 대처 전략을 더 많이 쓰는 것으로 나타났다. 높은 주체성을 부여받은 그룹은 의미 중심 대처를 더 많이 활용했다. 다만 문제 중심 대처도 더 많이 활용하는지는 통계적으로 유의하지 않았다. 그런데 반대 상황에서는 의미 있는 결과가 나왔다. 낮은 주체성을 부여받은 그룹이 낮은 문제 중심 대처 능력을 보였다.(6)

주체성은 타고나는 게 아니라 기후 불안 상황에서도 배움을 통해 체득할 수 있다. 브리트니 리드(Britnee Reid)는 노스캐롤라이나주 중학교에서 과학을 가르친다. 리드는 기후 불안에 대응하는 활동가들의 모임인 ‘기후 정신 건강 네트워크(Climate Mental Health Network)’와 ‘국가 환경 교육 재단(National Environmental Education Foundation)’이 함께 만드는 ‘교사용 기후 키트(Toolkit for Middle School Educators)’(7) 시범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이 키트는 교사들이 학생들의 기후 관련 정신 건강을 지원하고 학생들의 감정을 스스로 관리하게끔 돕는 방법들을 담고 있다. 예를 들면 학생들이 환경 타임라인에 자신과 자연과의 상호작용을 기록하는 것이다. 이러한 활동에 대해 리드는 “가끔 학생들은 불안하고, 화가 나고, 두려움을 느낄 수도 있지만, ‘내가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어’라고 다짐하는 것 같다”고 말한다.(8)

이 책이 기후 적응에 대해 왜 이렇게 희망적인지 궁금하다면, 의도된 것이다. 배움을 통해 자신감과 주체성을 가질 수 있도록 일부러 희망적인 사례들을 소개하는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기후 변화에 대한 스토리를 바꿔야 한다는 연구가 있다. 이 연구에 따르면, 기후 관련 뉴스 스토리의 98%는 부정적이다. 그런데 사람들의 ‘행동’을 이끌기 위해서는 타인의 행동에서 배우게 해야 한다. 따라서 기후 변화에 대해 긍정적인 행동을 취하는 사람들의 다양한 이야기를 제공하면, 사람들의 긍정적인 행동을 유도할 수 있다.(9)

기후 변화에 ‘적응할 수 있냐, 없냐’는 우리의 ‘자신감’과 ‘주체성’에 달렸다. 기후 적응을 위해서는 ‘기후 변화에 적응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내가 할 수 있다’는 주체성이 필요하다. ‘자신감’의 답은 인류의 역사에서 찾을 수 있다. 인류는 빙하기에도 적응했다. 수십만 년에 걸쳐 빙하기에 적응해 온 DNA가 우리 핏속에 흐르고 있다.

‘주체성’의 답은 우리 선조들과 ‘바로 지금 우리들’에게서 찾을 수 있다.


<참고문헌>

(1) Shinan-Altman, S., & Hamama-Raz, Y. (2025). The Interplay Between Climate Change Exposure, Awareness, Coping, and Anxiety Among Individuals with and Without a Chronic Illness. Climate, 13(6). https://doi.org/10.3390/cli13060124

(2) Tahernejad, A., Sohrabizadeh, S., Mehrabi, Y., & Mashhadi, A. (2025). Investigating the conceptual model of the formation of psychological resilience in farmers affected by droughts in Iran using structural equation modeling. BMC Public Health, 25. https://doi.org/10.1186/s12889-025-23098-0

(3) Sethi, S. (2021, December 2). How to Not Melt Down Over Our Warming Planet. Wired.com. https://www.wired.com/story/climate-change-anxiety-tips-maria-ojala/

(4) van Valkengoed, A. M., Perlaviciute, G., & Steg, L. (2023). From believing in climate change to adapting to climate change: The role of risk perception and efficacy beliefs. Risk Analysis, 44(3).
https://doi.org/10.1111/risa.14193

(5) Bostrom, A., Hayes, A. L., & Crosman, K. M. (2018). Efficacy, Action, and Support for Reducing Climate Change Risks. Risk Analysis, 39(4). https://doi.org/10.1111/risa.13210

(6) Asbrand, J., Spirkl, N., Reese, G., Spangenberg, L., Shibata, N., & Dippel, N. (2025). Understanding coping with the climate crisis: an experimental study with young people on agency and mental health. Anxiety, Stress, & Coping, 38(1), 1–16.
https://doi.org/10.1080/10615806.2024.2388255

(7) Climate Mental Health Network. (2023). Climate Emotions Toolkit for Educators. Climatementalhealth.net. https://www.climatementalhealth.net/middle-school (접속일: 2025.07.29.)

(8) Italie, L. (2025, June 25). 4절 6번과 동일

(9) De Meyer, K., Coren, E., McCaffrey, M. S., & Slean, C. (2020). Transforming the stories we tell about climate change: from “issue” to “action.” Environmental Research Letters, 16(1).
https://doi.org/10.1088/1748-9326/abcd5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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