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주체성 있는 민족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적응을 돕는 두 가지 특징이 있다. 첫째는 ‘주체성’이고, 둘째는 ‘눈치 문화’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주체성과 눈치 문화는 행동 전환의 속도를 높이고 공동체 규율을 강화하기 때문에 급격한 기후 변화의 위기상황에 특히 유리하다.
국가가 흔들릴 때, 우리 민족은 ‘나부터 나서야겠다.’고 생각하는 주체성이 있었다. 조선시대 임진왜란 당시, 백성들은 무능한 조정이 한양을 버리고 도망치는 것을 보았다. 아마도 심한 무력감을 느꼈을 것이다. 힘들게 일궈낸 삶의 터전이 파괴되고 가족들이 죽임을 당하는 상황에서, 아무런 잘못 없이 엄청난 피해를 보는 데 억울함을 느꼈을 것이다. ‘나라가 나를 버렸다’는 깊은 좌절감에 빠졌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선조들은 ‘고향을 지키겠다’며 들고 일어났다. 전국 각지에서 자발적인 의병 활동이 벌어졌다. 이름 없는 백성들이 몽둥이와 농기구를 들고 왜군에 저항했다. 이들은 정규군은 아니었지만, 곽재우, 고경명, 조헌 같은 의병장을 중심으로 게릴라전을 펼쳤다. 왜군의 보급로를 끊고 전투의 흐름을 바꾸는데 크게 이바지했다. 무력감과 억울함, 좌절감을 느꼈던 백성들은 ‘우리’가 뭉치면 나라를 구할 수 있다는 주체감을 느꼈을 것이다.
일제 강점기에, 일본의 강압적인 통치와 수탈은 우리 선조들에게 지울 수 없는 깊은 한을 남겼다. 우리가 잘못해서 일제에 짓밟히는 게 아니지 않은가. 이런 억울한 상황에서도 당시 조선의 조정과 대한제국 정부는 백성들을 제대로 지키지 못했다. 우리 선조들은 ‘내가 해결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3·1 운동이 전국적으로 일어났다. 백성들의 봉기는 다양한 형태의 독립운동으로 이어졌다.
사심이 담긴 여담이지만,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에서 3년 만에 미국의 감옥에서 출소한 유진 초이(이병헌 배우)가 한 신사(박정민 배우)의 길 안내를 해주며 조선의 상황을 전해 듣는다. 그리고 유진 초이가 그 신사에게 조선에는 독립을 위해 싸우는 사람들이 있어 희망이 있다고 말한다. 그 신사는 자기도 그중의 한 명이라며 통성명을 하자고 한다. 유진 초이는 자신을 최유진이라고 소개한다. 그리고 들려오는 이름. ‘안가 창호입니다’. 당연히 이 만남은 실제가 아니지만, 이 장면에서 감동하지 않은 우리나라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1997년 국가 부도 위기라는 청천벽력 같은 상황에서 많은 국민이 아무런 잘못 없이 직장을 잃고 고통을 받았다. 우리 아버지들, 형들과 누나들은 엄청난 억울함을 느꼈을 것이다. 그분들이 외환 위기를 만드는데 무슨 잘못을 했단 말인가? 하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 억울함을 단순히 절망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전 국민적인 ‘금 모으기 운동’을 벌였다. 자발적으로 금붙이를 내놓으며 국가를 살리려는 노력은 ‘내가 해결하겠다’는 강한 주체감이 발현된 사례이다. 아직도 금 모으기 운동 생중계 방송에서 ‘시어머니가 주신 금붙이’라며 반지와 팔찌를 내어놓으며 울음을 터뜨렸던 여성분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그런 애국심이 발현된 상황을 보며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오죽하면 ‘국뽕’이라는 신조어가 생겼겠는가.
위기 상황에 대한 정부와 기업의 대응이 미흡할 때, 주체성은 문제 해결의 출발점이자 우리 스스로를 지키는 안전망이 될 수 있다. 우리 역사에서 주체성이 발현된 사례를 보며, 우리는 기후 재난 상황에서도 같은 희망을 기대할 수 있다. 기후 적응 활동을 위해 지역 사회와 주민들이 스스로 조직화하여 지역의 해결 과제를 주도할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다.
‘눈치’도 중요한 기제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눈치를 잘 본다’. 이 말의 의미는 ‘사회적 규범에 대한 민감성’이 높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한국인이 COVID-19때 마스크를 잘 착용했던 것은 사회적 규범에 대한 민감성이 높기 때문이다. 마스크를 착용하는 것이 ‘사회에 도움 되기 때문’에 마스크를 착용한 것이다. 반면 미국 사람들은 한국 사람들보다 마스크 착용률이 낮았다. 이러한 결과에 대해 연구자들은 다음과 같이 조언했다. ‘한국인에게는 마스크 착용의 사회적 이점을 설명하고, 미국인에게는 스스로 마스크 착용을 시도해 보도록 권장해야 한다.’(1)
미국인들에게 ‘스스로’ 해보도록 권하는 이유는 그들의 개인주의 성향이 높기 때문이다. 연구자들이 47개국 사람들을 대상으로, 문화적 특성에 따라 어떤 메시지가 효과적인지 비교연구를 해봤다. 그랬더니 미국, 유럽과 같은 개인주의 국가에서는 환경에 대한 ‘개인적인 관심’이 행동으로 이어지는 경향이 강했다. 반면 한국, 일본과 같은 집단주의 국가에서는 개인적 관심보다 사회적 규범, 즉 ‘다른 사람들이 그 행동을 한다는 인식’이 행동 예측력을 높였다. 이에 연구자들은 한국과 일본처럼 집단주의 성향이 강한 곳에서는 ‘남들도 한다’는 사회적 규범을 전달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고 조언한다.(2)
사람들에게 사회적 규범을 전달하는 것은 마케팅 개입(Intervention)의 한 유형이다. 사회적 규범 개입이란 규범적 정보를 제공하여 사람들의 규범적 신념을 바꾸는 것이다. 11개국에서 진행된 연구에서, 규범적 신념이 기후 행동을 증가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 응답자들에게 정부가 대체 연료 차량(AFV, Alternative Fuel Vehicle)의 구매를 승인하는 정도, 다른 사람들이 AFV에 대해 긍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다는 정보, 그리고 자신의 동네에도 AVF가 돌아 다니고 있다는 정보를 알려주자 AFV 구매 의향이 높아졌다. 또 다른 연구에서는 가정의 에너지 소비량을 다른 가정의 평균 에너지 소비량과 비교하여 피드백을 제공하는 것이 가정 에너지 사용량을 효과적으로 줄이는 것으로 나타났다.(3)
개입의 다른 표현은 ‘메시징(Messaging)’이다. 스웨덴 예테보리 대학교의 심리학과 교수인 마그누스 베르크퀴스트(Magnus Bergquist)는 사람들이 친환경적인 행동을 취하도록 설득하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다. 최근의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마그누스 교수는 “행동을 바꾸는데 가장 효과적인 전략은 사회적 규범, 즉 다른 사람들이 하는 일이나 다른 사람들의 승인 또는 반대에 대한 인식을 지적하는 것이다. 사회적 규범의 효과는 인센티브와 교육의 효과를 뛰어 넘는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사람들에게 다양한 메시징의 효과를 물었을 때, 사람들은 사회적 규범 메시징의 효과가 없다고 말하는 경향이 있다.”.(4)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의 생각이나 행동을 눈치 보고 따르면서도, 정작 본인은 그렇지 않다고 느끼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이미 사회적 규범을 ‘내재화(Internalized)’하고, 그 내재화된 규범을 따랐을 가능성이 있다. 다른 사람의 생각을 따르는 게 아니라 무의식중에 내재화된 생각, 즉 ‘내’ 생각을 따르는 것이다. 예를 들면 공원이 깨끗할 때,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이 공원에 쓰레기를 버리지 않는다’는 사회적 규범을 내재화한다. 아무도 없는 방에 불이 꺼져 있을 때,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이 에너지 절약을 위해 불을 끈다’는 사회적 규범을 내재화한다.
그리고 그 내재화된 규범을 마치 내 생각인 양 무의식적으로 행동에 옮긴다. 572개 실증연구로부터 31만 명의 데이터를 얻어 메타 분석한 연구에서, 내재화된 규범은 친환경적 행동의 가장 강력한 예측 변수였다.(5)
그런데 ‘눈치 보는 문화’는 ‘집단주의’와 엮여 비판받기도 한다. 극단적 집단주의는 당연히 문제다. 하지만 적절한 집단주의는 기후 변화 대응에 도움이 된다. 개인주의가 개인의 목표에 초점을 두는 반면, 집단주의는 조직의 목표에 초점을 두는데, 기후 변화 대응은 집단적 목표가 우선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2021년 미국인 2천500명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집단주의 성향이 강할수록 친환경적 정책을 더 많이 지원하고, 친환경적 행동을 더 많이 한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6)
그렇다고 ‘개인주의가 문제다’ 이런 의미는 아니다. 개인주의 국가일수록 기후 변화 정책의 성과가 더 높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92개국의 세계 가치 조사(World Value Survey) 데이터를 분석해 본 결과, 개인주의 문화가 강한 국가일수록 기후 정책 수행 수준이 높게 나타났다. 이는 개인주의 문화가 정부의 효율성을 높이고 여성 정치 참여 확대를 높여 기후 정책을 뒷받침하기 때문으로 보인다.(7) 결국 개인주의, 집단주의는 성향이 다른 것이고 모두가 다 기후 변화 대응에 도움이 될 수 있다. 다시 말해, 우리의 ‘눈치 보는 문화’를 집단주의라고 비판할 필요는 없다는 뜻이다.
기업 CEO들의 집단주의 성향도 환경오염을 줄이는데 긍정적인 영향이 있다. 2022년에 발표된, 중국 CEO들에 관한 연구에서 집단주의 성향이 강한 지역에서 태어난 CEO들이 개인주의 성향이 강한 지역에서 태어난 CEO들보다 실제로 오염을 더 많이 줄이는 성과를 보였다. 중국 정부는 2003년부터 배출 수수료를 부과하는 등 배출 규제 정책을 도입했는데, 집단주의 CEO들은 개인주의 CEO보다 생산량을 줄이지 않고도 더 배출량을 줄였다. 재미있는 사실은 CEO들의 집단주의 · 개인주의 성향을 출신 지역의 쌀과 밀 농사 비율로 측정했다는 점이다. 벼농사는 충분한 관개, 준설, 파종, 잡초 제거, 이앙, 밭고랑 정비가 필요하다. 벼 농사꾼들은 노동 교환을 통해 이 많은 노동 수요를 충족해왔다. 그래서 벼농사 지역의 집단주의는 다른 지역보다 높다. 반면 밀농사는 관개 작업이 덜 필요하고 노동 투입량도 적다. 그렇다 보니 전통적으로 밀농사 지역은 개인주의 성향이 더 높다.(8) 모두가 알다시피 우리 나라는 벼농사를 지어왔고, ‘품앗이’라는 노동 교환을 통해 노동 수요를 채워 왔다.
기후 적응 활동에 동참하는 것이 ‘개인의 이해’, 혹은 ‘작은 집단의 이해’에 반할 때도 있다. 육지가 해수면보다 낮은 네덜란드에서는 홍수 위험을 줄이기 위해 강에 ‘공간을 더 주는’ ‘Room for the River’ 프로젝트가 있다. 제방을 내륙으로 후퇴시켜 강이 범람할 공간을 확보하고, 강바닥을 낮춰 하천의 수용력을 높이는 사업이다. 사실 이 사업을 통해 라인강 유역의 홍수 위험이 많이 감소했다. 그런데 일부 지역에 사는 주민들은 피해를 보았다. 예를 들면 네이메헌(Nijmegen) 지역에서는 기존 제방을 내륙 쪽으로 이동시키는 과정에서 강변 주택 지역 사람들을 이주시켰다. 농경지가 습지로 전환되어 농경지를 잃은 주민들도 있었다.(9) 이 상황은 ‘국가적 이해’로 보면 잘 된 사업이지만, 개인의 이해 또는 작은 집단의 이해에는 반하는 상황이다.
상당수의 기후 적응 활동이 개인의 이해 또는 작은 집단의 이해보다는 다수의 이해 또는 국가적 이해를 따라야 한다. 그러한 상황에서 ‘눈치 보는 문화’가 강할수록 또는 집단주의 문화가 강할수록 개인의 이해보다는 ‘집단의 이해’를 수용하는 경향이 강하다. 개인 차원에서 보면 불합리할 수 있지만, 집단 차원에서 보면 ‘눈치 문화의 긍정적 힘’을 잘 이용한 것이다. 우리 국민이 COVID-19을 극복해 냈을 때를 회상해보면, 초기에는 확진자 한 명의 동선이 공중파 방송을 타고 전국에 방송되기도 했다. 개인의 이해 차원에서 보면 엄청난 인권 침해다. 하지만 집단의 이해 차원에서 그 순간의 인권 침해는 용납되었다. 그리고 우리 스스로도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보며’ 행동했다. 마스크를 쓰기 불편해도 썼고, 삼삼오오 모이고 싶어도 약속을 미뤘다. 이런 ‘눈치 문화의 긍정적 힘’으로 우리는 기후 위기에 적응해 낼 수 있다.
<참고문헌>
(1) Chang, H. J., Min, S., Woo, H., & Yurchisin, J. (2021). Mask-Wearing Behavior During the COVID-19 Pandemic: A Cross-Cultural Comparison Between the United States and South Korea. Family and Consumer Sciences Research Journal, 50(1), 5-26.
https://doi.org/10.1111/fcsr.12416
(2) Eom, K., Kim, H. S., Sherman, D. K., & Ishii, K. (2016). Cultural Variability in the Link Between Environmental Concern and Support for Environmental Action. Psychological Science, 27(10), 1331–1339. https://doi.org/10.1177/0956797616660078
(3) Nolan, J. M. (2021). Social norm interventions as a tool for pro-climate change. Current Opinion in Psychology, 42. https://doi.org/10.1016/j.copsyc.2021.06.001
(4) Italie, L. (2025, March 26). Role models. Peer pressure. Rewards. What really gets people to act more sustainably? AP News. https://apnews.com/article/climate-sustainability-carbon-footprint-6a15fdbcbef0187b47518b18f50010dc
(5) Helferich, M., Thøgersen, J., & Bergquist, M. (2023). Direct and mediated impacts of social norms on pro-environmental behavior. Global Environmental Change, 80.
https://doi.org/10.1016/j.gloenvcha.2023.102680
(6) Sherman, D. K., Updegraff, J. A., Handy, M. S., Eom, K., & Kim, H. S. (2021). Beliefs and Social Norms as Precursors of Environmental Support: The Joint Influence of Collectivism and Socioeconomic Status.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Bulletin, 48(3). https://doi.org/10.1177/01461672211007252
(7) Vu, T. V. (2023). Individualism and climate change policies: international evidence. Journal of Economics and Development, 25(1), 22–36. https://doi.org/10.1108/jed-10-2022-0189
(8) Wang, S., Huang, Y., Zhong, C., & Li, B. (2022). Chief Executive Officer Collectivism and Corporate Pollution Abatement Behavior: Evidence From Industrial Firms in China. Frontiers in Psychology, 13. https://doi.org/10.3389/fpsyg.2022.946111
(9) 워터저널 (2009.09.05.). “Part01. 네덜란드 홍수예방 하천복원 사례”. 워터저널.
https://www.waterjournal.co.kr/news/articleView.html?idxno=92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