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적응 마인드셋 10

적응 마인드셋 3: 고립에서 협력으로

by 박성훈

이제 인류가 고립(Isolation)에서 벗어나, 협력(Collaboration)을 통해 위기 상황에 적응한 사례를 살펴보자.

‘고립’은 개인, 조직, 또는 국가가 외부와 단절되어 소통과 협력이 이루어지지 않는 상태이다. 고립은 기후 적응과 같은 복합적인 문제 해결 과정에서 각자의 한계에 갇히게 만든다. 반면 고립과 대비되는 ‘협력’은 다양한 주체들이 공동의 목표를 위해 함께 소통하고 자원을 공유하며 시너지를 창출하는 과정이다.

고대 사람들도 협력의 중요성을 깨닫고 있었다. 그들은 협력을 통해 인구를 늘리고, 행동의 다양성을 높여 생존확률을 높였다. 2012년 네이처(Nature)지에 실린 논문에서 연구자들은 고대 석기시대 인류의 소셜 네트워크가 지금의 우리와 어떻게 다른지 추정했다. 연구자들은 샌프란시스코의 대학생 집단이든 불가리아의 방직공 공동체든 사람이 모이는 네트워크에는 공통의 특징이 있다는데 착안해서, 고대 석기시대 인류의 네트워크도 유사한 특징을 공유할 거라는 가설을 세웠다. 예를 들면 어떤 네트워크라도 소속된 사람의 사회적 관계 수, 한 사람의 친구 두 명이 서로 친구일 확률, 비슷한 사람끼리 연결될 확률은 유사하게 나온다.

석기시대 사람들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할 수 없어서, 연구자들은 석기시대 사람들과 가장 유사한 생활 방식을 유지할 것으로 추정되는 탄자니아의 수렵채집인 집단인 하자(Hadza)족을 연구 대상으로 삼았다. 하자족 캠프 17곳의 성인 200명을 연구한 결과, 하자족의 소셜 네트워크에는 현대의 네트워크와 유사한 특징이 있었다. 우선 비슷한 사람들끼리 연결되는 경향이 있었다. 하자족의 경우, 나이, 체지방, 악력이 비슷할수록 우정을 쌓을 가능성이 컸다.

흥미로운 사실은 협력적인 사람들, 예를 들어 더 많은 꿀을 기부하는 사람은 다른 협력적인 사람과 연결고, 협력적이지 않은 사람은 다른 비협력자와 연결된다는 점이다. 이를 통해 연구자들은 협력자들이 서로 연결되어 혜택을 더 봄으로써 협력자들의 인구가 더 증가하게 된다고 주장했다. 또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하자 사회에서는 집단 내부보다 집단 간 협력의 다양성이 더 크다는 점이다. 진화생물학자들은 협력이 진화하고 퍼지려면 집단 내부보다 집단 간 협력 행동의 다양성이 더 커야 한다고 주장해 왔는데, 오랜 기간 수렵채집인으로 생존해 온 하자족에게도 그 특징이 발견된 것이다.(1)

우리는 다양한 문명권에서 고립을 벗어나 서로 협력하며 기후 변화에 대응해 온 사례를 찾을 수 있다. 존 무라(John Murra)는 미국의 저명한 인류학자이다. 영어권 발음에서는 그의 성을 ‘머라’로 발음한다. 하지만 그가 평생을 안데스 산맥에서 인류학 연구를 했기 때문에 스스로 스페인어권의 발음인 ‘무라’를 선호했을 것 같다. 무라 교수는 수직적 군도(Vertical Archipelago)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여기서 ‘군도’는 바다 혹은 호수에 여러 섬이 무리 지어 있는 것을 말한다. 안데스 산맥에 사는 사람들을 연구하고 ‘수직적 군도’라는 은유적인 표현을 쓴 이유는 무엇일까?

안데스 산맥에 사는 사람들이 마치 섬처럼 분리되어 있으면서도 군도처럼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살기 때문이다. 안데스 지역은 고도에 따라 식생이 극단적으로 나누어져 있다. 고산지대에는 감자와 퀴노아를 재배할 수 있고, 라마와 알파카를 키울 수 있다. 중간 고도에서는 옥수수, 콩, 과일이 자란다. 저지대는 열대 계곡인데 코카, 고추, 과일이 자란다. 그런데 가뭄, 서리, 홍수와 같은 자연재해가 어느 한 지대에서 발생하면 그 지대에 사는 사람들의 생존 기반이 흔들릴 수 있다.

그래서 안데스 사람들은 단일 지역에서만 자급자족하는 대신, 서로 다른 고도에 흩어져 사는 친족 집단과 교환 네트워크를 형성했다. 이를 통해 안데스 사람들은 지리적인 고립에서 벗어나 협력을 통해 생존할 수 있었다. 이에 대해, 무라 교수는 “안데스 사회는 단일 생태지대의 생산성에만 의존하지 않고, 체계적으로 리스크를 분산시킨 사회”라고 평가했다.

상호 호혜적 네트워크가 어떻게 작동했는지 가상의 시나리오로 살펴보자. 15세기 페루에 사는 한 농부의 이야기이다. 그의 이름을 ‘쿠시(Kusi)’라고 하자. 쿠시는 안데스 지역 토착 언어인 케추아어로 ‘기쁨, 행복, 번영’을 뜻한다. 고대 잉카 제국에서도 쿠시라는 이름을 가진 인물들이 있었다. 지금도 페루, 볼리비아, 에콰도르 일부 지역에서는 쿠시가 남자 이름으로 사용된다.

쿠시는 안데스 산맥 해발 3천800m 고산지대에서 감자를 수확하고 라마를 키우며 살고 있었다. 어느 해 서리가 심하게 내리며 감자 수확을 망쳐버렸다. 하지만 쿠시 가족은 굶지 않았다. 그의 친족 중 일부는 해발 2천m 계곡에서 옥수수를 재배하고 있었고, 또 다른 친족은 아마존 근처에서 열대과일을 길렀기 때문이다. 쿠시는 평소에 감자와 라마 털을 그들과 나눠왔었다. 그 덕에 쿠시 가족은 옥수수와 열대 과일을 얻어 굶어 죽지 않을 수 있었다.

비슷한 사례는 로마 시대에도 있었다. 안노나(Annona) 곡물공급망은 다양한 지역의 곡창지대와 네트워크를 형성하여 기근 리스크를 줄여줬다.(2) ‘안노나’는 라틴어 Annus(해, 한 해)에서 파생된 말이다. 본래 ‘한 해의 수확’을 뜻하는 말이었다. 그런데 로마 공화정 말기부터 제정 초기에는 안노나의 뜻이 수확이란 보통명사를 넘어서서 점차 국가가 관리하는 공식 곡물 조달 · 배급 시스템을 지칭하는 고유명사가 되었다. 로마인들에게 안노나는 ‘국가가 시민을 먹여 살린다’는 의미로 황제의 권위를 상징하는 말이었다. 그래서 로마 시대 동전에도 안노나가 ‘풍요의 뿔’을 든 여신으로 의인화되어 묘사되고 있다.

로마와 같은 대도시가 지역 내의 농산물에만 의존하면, 기후 변화로 인한 흉년이 들 때 즉시 식량 위기가 발생한다. 그러면 국가가 안정적으로 운영될 수 없다. 그래서 로마는 황제 제정 시대에 안노나 장관(Praefectus Annonae)이라는 관리직을 따로 두었다. 안노나 장관은 곡물공급망을 관리했다. 이집트나 시칠리아의 곡창지대에서 로마로 곡물을 수송하고 로마 시민에게 무료 또는 저가로 배급하는 일을 맡았다. 국가와 상인, 로마의 부속 도시가 연결되어 곡물의 조달, 해양 수송과 로마에서의 분배가 이루어졌다.

중국에는 대운하와 조운(漕運) 체계가 있었다. 중국은 북쪽은 춥고 건조해 농산물 수급이 불안정했지만, 남쪽 특히 양쯔강 유역은 벼농사가 발달한 풍요로운 곡창지대였다. 그런데 북쪽에는 정치 중심지인 장안과 북경이 있었기 때문에, 황실과 관료, 북방 군대의 식량을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것이 국가 존립에 직결되었다. 하지만 북방에서만 식량을 조달하면 가뭄이나 한랭기에 바로 기근이 발생하였다. 실제로 당나라, 송나라 초기에는 흉년이 들어 기근이 발생하고, 민란으로 이어지는 패턴이 반복되어 황실의 통치력이 약화되곤 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남쪽 곡창지대에서 북쪽 수도로 곡식을 수송하는 대운하와 조운 체계가 발전했다. 대운하는 단순한 물길이 아니라 수백만 명의 수도 백성을 살리고, 국가의 안전을 유지하는 생명선이었다. 명나라, 청나라 시기에는 매년 수백만 석의 곡물이 대운하를 타고 북경으로 운송된 기록도 있다.(3)

이러한 조운 체계는 단순히 ‘대운하를 만들었다’는게 아니라, 이를 운영하기 위한 강제력과 인센티브가 결합된 체계이다. 조운 체계가 작동하기 위해서는 첫째, 강력한 왕권이 필요하고, 중앙집권적인 통제가 작동해야 했다. 송나라의 조운사, 명나라의 조운도사 같은 수운을 담당하는 전담 관청이 설치되어 수천 척의 선박과 수만 명의 인력을 직접 통제했다. 조운 체계의 관리에 실패할 시 수도와 군대가 곧바로 기근에 직면하기 때문에 이 체계는 황제가 직접 챙기는 ‘국가 안보 차원의 사업’이었다.

둘째, 이익 배분이 있었다. 조운 선박의 관리 인원과 선원은 대부분 강남(江南) 지역의 상인들이었다. 수송을 맡은 상인은 운임과 부수적인 상업 활동으로 이익을 얻었다. 예를 들면 곡물을 운송하고 돌아올 때 수도에서 구매한 사치품을 운송해 강남 지역에 팔아 이윤을 남길 수 있었다. 셋째, 엄격한 책임 추궁도 있었다. 곡식을 제때 북경으로 운송하지 못하거나, 부패와 횡령이 드러나면 해당 관리와 선장은 유배, 파직, 중형까지 받았다.(4)

중세 유럽 북부의 발트해 · 북해 연안 도시들의 한자 동맹(Hanseatic League)도 좋은 협력 사례이다. 유럽 북부에는 작은 자치 도시들이 발달했지만, 기후는 춥고 토지가 비옥하지 않아 식량 자급이 어려웠다. 특히 13세기의 소빙하기 때 흉작과 기근이 자주 발생했다. 초기 북부의 도시들은 근교 농업에만 의존하다가, 한 해 흉작이 곧 기근으로 이어지고, 고립된 도시는 식량난으로 붕괴하거나 급격한 인구 감소를 겪었다. 이에 북독일, 네덜란드, 발트 연안 도시들은 자신들의 강점인 해상 교역을 활용하여 한자 동맹을 형성했다.

곡창지대인 폴란드, 리투아니아에서 생산된 곡물을 리가, 그단스크 같은 항구에서 수출하여, 네덜란드, 북독일의 도시로 대량 공급했다. 그 덕분에 북부의 도시들은 자체 농업 생산에만 의존하지 않고, 교역 네트워크를 통해 식량을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었다. 협력 네트워크가 기후 충격을 완화하는 역할을 한 것이다.(5)

한자 동맹의 성공 요인은 매우 복합적이다. 곡물, 목재, 아마, 타르 같은 대량 · 저마진(Bulk & low margin)의 화물은 여러 가지 위험 때문에, 장거리 무역을 하면 이윤을 내기 어렵다. 부패, 손실, 불량, 항로 지연의 위험이 큰 구조 때문이다. 보통은 이런 제약 때문에 짧은 거리 내에서만 거래할 수 있었다.

하지만 한자 동맹에는 첫째, 컨토르(Kontor)라는 무역 사무소가 있었다. 런던, 브뤼주, 베르겐, 노브고로드 등 주요 무역 거점에 설치된 무역 사무소가 상인들의 집단적 이익을 대표하고, 세금, 관세, 거래 규칙을 표준화함으로써 거래 비용(Transaction cost)을 획기적으로 줄였다. 둘째, 상인법(Lex Mercatoria)이 가격, 품질, 계량, 계약 이행을 표준화해 어디서 거래하더라도 규칙이 같다는 신뢰감을 조성했다. 이 상인법은 국가 법체계보다 더 빠르고 일관된 집행을 보장했다. 셋째, 한자 법원(Hanseatic courts)이 있었다. 상호 분쟁 발생 시, 각 도시의 한자 법원이 신속한 판정을 내려 장기간의 소송을 피하게 해줬다. 신뢰 기반의 빠른 분쟁 해결은 운송 지연이나 신용의 붕괴를 막았다.

이처럼 한자 동맹은 공동의 규칙, 공동 집행, 집단 신뢰 시스템을 구축했기 때문에 위험을 줄이고, 개별 상인의 거래 비용을 획기적으로 낮출 수 있었다. 그 결과 곡창지대의 곡물이 먼 북부 도시까지 안정적으로 공급될 수 있었다. 오늘날로 치면 국제 해상 보험, 국제 상사 중재, 국제 통일 규범 같은 무역 규칙의 선구적 역할을 했다.(6)


<참고문헌>

(1) Shaw, K. & Technica, A. (2012, January 27). Stone Age Social Networks May Have Resembled Ours. Wired.com. https://www.wired.com/2012/01/stone-age-social-networking/

(2) Medieval History Geek. Rome’s Fifth Century Grain Supply. Medieval History Geek.
https://medievalhistorygeek.wordpress.com/2013/06/23/romes-fifth-century-grain-supply/ (접속일: 2025.07.29.).

(3) Zhang, T. (2023). Ch.1. A Short History of Qing Taxation. In The Ideological Foundations of Qing Taxation (pp. 37–75). Cambridge University Press eBooks. https://doi.org/10.1017/9781108995955.003

(4) Wikipedia. Government of the Ming dynasty. Wikipedia.org.
https://en.wikipedia.org/wiki/Government_of_the_Ming_dynasty (접속일: 2025.07.29.).

(5) Andersson, F. N. G., & Ljungberg, J. (2015). Grain Market Integration in the Baltic Sea Region in the Nineteenth Century. The Journal of Economic History, 75(3), 749–790.
https://doi.org/10.1017/s0022050715001102

(6) Andersson, F. N. G., & Ljungberg, J. (2015). 10절 5번과 동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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