톱니가 맞물려야 한다.
기후 적응을 위해서는 세 가지 적응 마인드셋인 ‘변화’, ‘관리’, ‘협력’ 모두가 동시에 작동해야 한다. 어느 한 가지만 작용해서는 기후 변화에 적응할 수 없다. 인류의 역사에는 이 세 가지 톱니 중 어느 하나라도 어긋나 적응에 실패한 사례가 많이 있다. 반면 세 가지 톱니를 잘 맞물려 적응에 성공한 사례도 있다.
“네덜란드인의 발을 마르게!(Keep Dutch feet dry!).” 네덜란드 물 관리 정책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슬로건이다. 네덜란드는 국토의 55%가 해수면보다 아래에 있거나 홍수 위험 지역이다.(1) 침수와 홍수로부터 자신들의 삶을 지키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수로, 펌프, 방조제 건설에 매진할 수밖에 없었다.
과거 네덜란드 사람들의 마인드는 ‘물과의 싸움’이었다. 하지만 오랜 기간 침수와 홍수를 겪으면서 그들의 관점은 ‘물과 함께 살기’로 변화했다. 일부러 침수 허용 지역을 만들어 도시의 침수를 막고, 배수망과 토지이용방식을 재설계했다. 제방, 수문, 펌프를 이용하여 연속적으로 바닷물을 빼내고 상시로 수위를 관리하는 제도를 마련했다. 12세기부터 지역별 수리 조합(Water Board)을 만들어 관련된 사람들과 기관들이 서로 협력했다. 이 수리 조합은 오늘날까지 운영되고 있다. 현재에도 네덜란드 전역에 21개의 수리 조합이 운영되고 있고, 전체 근로자 수도 1만1천 명에 달한다.(2)
왜 변화, 관리, 협력의 세 톱니가 함께 작동해야 할까? 토목 기술(준비와 관리)만으로는 기후 적응 활동이 지속 가능할 수 없기 때문이다. 바다를 밀어내기보다는 바다와 함께 사는 방식으로 관점을 바꾸어야 했고(변화), 그에 맞춰 공간을 재구성하면서 장기적인 적응이 가능했다. 이를 위해 토지 소유자, 농업 종사자, 지방정부를 묶는 협치(협력)도 필요했다. 이러한 톱니의 맞물림은 오늘날에도 필요하다.
네덜란드에서는 요즘 ‘수륙양용 주택 단지’를 실험하고 있다. 주택에 대한 관념은 ‘땅 위에 짓는 것’이다. ‘성장 마인드’가 지배할 때에는 주택단지를 조성하기 위해 해안가를 매립하여 땅을 확장한다. 하지만 관점을 변화시키면 물 위에도 주택을 지을 수 있다. 물 위의 주택은 완전히 새로운 개념은 아니다. 이미 페루의 티티카카 호수, 베트남 하롱베이 등에서 오랫동안 생활 양식으로 자리 잡고 있다.
기후 변화로 해수면이 상승하여 해안가에 침수 피해가 더욱 심해지는 상황에서 ‘물 위의 주택’이라는 관점 변화는 충분히 가능한 발상이다. 현재 암스테르담의 에이뷔르흐(Ijburg) 지역에는 6개의 인공 섬 위에 수륙양용 주택 단지가 조성되어 있다. 이곳에는 이미 약 4만5천명이 거주하고 있다.(3)
수륙양용 주택 단지를 위해서는 ‘준비와 관리’가 필요하다. 건축 구조 설계, 건축 자재, 에너지, 폐기물 처리 등과 관련한 기술이 지속해서 개발되어야 한다. 주택 건축, 유지 보수 비용도 적정선에서 유지되어야 한다. 장기적인 안정성과 폭풍을 견디는 능력도 추가적인 검증이 필요하다.
‘협력’도 중요하다. 물 위의 주택 단지 건설은 분명 도시의 다른 지역에 영향을 준다. 예를 들면 수상 주택 단지는 도시의 생태 환경을 완전히 바꿀 수 있다. 수질오염이 증가하고 해산물과 해양식물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따라서 에이뷔르흐 지역이 처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도시 전체의 소통과 협업이 반드시 필요하다.
비슷한 상황은 이탈리아의 수상도시 베네치아 사람들도 겪고 있다. 2023년 베네치아는 유네스코의 ‘위험에 처한 세계유산’에 등재되는 신세를 겨우 면했다.(4) 이 목록에 등재되면 1987년부터 유지되어 오던 세계문화유산 지위를 박탈당할 수 있다. 베네치아는 기후 변화로 인한 해수면 상승과 아쿠아 알타(Aqua alta)라 불리는 만조 현상이 겹치면서 매년 수십 차례 침수 피해를 본다. 1996년에는 도시의 90%가 물에 잠기기도 했다.
베네치아는 10년이 넘는 공사를 통해 해수면 상승을 막는 방벽을 설치했다. 모세(MOSE) 프로젝트라 불리는 이 방벽 설치에 총 54억 유로(약 7조 원)가 들었다. 이 방벽은 평소에는 바닥에 눕혀져 있다가 해수면이 1.1m 이상 상승하면 압축공기가 주입되어 수면 위로 떠 올라 바닷물의 유입을 차단한다. 방벽을 설치하는 과정에서도 환경보호단체들의 반대에 부딪혔다. 방벽 설치 후에도 과연 방벽이 효과가 있을지 시험대에 올라 있다. 모세 프로젝트가 기술적인 면에서는 인상적이지만 기후 변화에 완벽한 해결책은 아니라는 비판도 있다. 2019년에는 수문이 완전히 작동하지 못해 도시가 침수되기도 했다.(5)
베네치아는 ‘위험에 처한 세계유산’에 등재되는 것을 막기 위해 대형 크루즈의 접안도 막았다. 하지만 여전히 관광업을 포기할 수도 없다. 베네치아의 유일한 수입원이 관광업이기 때문이다. 관광객이 계속 몰리는 한, 도시는 지속적으로 자정능력을 잃어갈 것이다. 결국, 지속적인 협력과 관리가 없다면 기후 적응 활동의 효과도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베네치아 만큼은 아니지만, 일본의 에도(江戶) 역시 수상 도시였다. 에도는 지금의 도쿄를 말한다.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가 1603년 에도를 막부(중앙 정부)의 정치 중심지로 정하면서, 이후 약 260여 년간 일본의 실질적인 수도 역할을 했다. 지금의 도쿄를 보면 언뜻 상상이 안 되지만 에도는 ‘물 위에 떠 있는 도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스미다가와강(隅田川)은 에도의 젖줄 같은 강으로, 막부와 시민들의 교통과 운송의 중심이었다. 지금도 도쿄 한복판을 흐르며 벚꽃 명소로, 유람선 관광지로 유명하다. 니혼바시강(日本橋川)은 에도의 중심 상업지인 니혼바시를 흐르던 강이다. 현재는 강 위에 고속도로가 지나고 있고 최근 ‘복원’ 논의가 활발하다. 칸다강(神田川)은 에도 시대 초기에 치수 공사를 한 곳이다. 도쿠가와와 그의 가신들이 계획을 세워 치수 공사가 진행되었다. 그 외에도 많은 하천들이 에도를 흐르고 있었다.
에도가 정치 중심지가 되기 전에는 홍수에 취약한 늪지였다. 이후 에도의 인구가 급증하면서 식수가 부족해졌다. 도쿠가와 막부는 수도 에도의 물 관리가 정치적 안정의 핵심이라고 보았다. 그래서 ‘수계 대이동’이라는 파격적인 변화를 주었다. 도네가와강(利根川) 하구를 이동시켜 에도만의 바닷물 유입을 줄였다. 하천을 직선화 하고 제방을 축조하여 홍수 위험 지도를 바꿔버리는 결단을 내렸다. 동시에 1653년에는 상수도 관리를 농민 출신 기술자인 다마가와 형제에게 맡겼다. 43km에 달하는 수로와 목제 급수관을 깔아 식수와 소방수, 관개수를 안정적으로 공급했다. 이후에 수문 관리체계도 만들어졌다.
협력도 했다. 막부가 중앙에서 총괄하기는 하지만 번(藩), 수문관리소, 백성들이 역할을 분담했다.(6) 막부는 물 관리의 총괄 기관 역할을 했다. 대표적인 것이 강선 담당(川船方, 가와부네가타), 수로 담당(水方, 미즈카타) 같은 부서였다. 이들은 하천 정비, 운하 개통, 제방 보수, 홍수 후 복구 사업을 총괄적으로 기획하고 재정을 지원했다. 일종의 국가 차원의 컨트롤 타워였다. 번(藩, 다이묘 영지)은 일종의 ‘기초 지자체’이다. 에도 주변의 하천과 운하는 여러 다이묘들의 영지를 관통했다. 막부는 다이묘에게 자기 영지를 지나는 수로와 제방의 유지, 보수 의무를 부여했다. 번은 자기 영민(백성)을 동원해서 제방을 수리하게 했고, 그 비용도 부담했다. 번끼리 책임 구역이 겹치면 갈등이 발생했는데, 이럴 때에는 막부가 직접 책임의 경계와 비용 분담 비율을 정해줬다. 수문관리소는 일종의 ‘현장 기관’이다. 숙련된 장인 집단과 공사를 관리하는 무사들이 상주했다. 그들은 평소에는 수로를 청소하거나 수문을 개폐하는 일을 했고, 홍수가 나면 긴급히 제방을 보수하는 일을 담당했다. 농민들은 부역에 동원되었고, 상인이나 도시 거주민들은 유지 보수에 드는 돈을 세금을 통해 간접적으로 지원했다.
이처럼 에도 시대의 하천은 체계적으로 관리되었다. 그런데 지금의 도쿄에는 이렇게 관리가 잘 되던 하천의 절반 이상이 복개되어 있다. 복개 하천이 많아짐에 따라 도쿄의 홍수 위험이 증가한 것은 아닐까? 지금 당장은 그 답을 알 수 없다. 도쿄는 지금도 물 관리를 위해 지속적인 노력을 하고 있다. 거대한 저류 시설을 만들고, 우회 하천을 만들고, 수문을 운영하고, 촘촘하게 유지 관리를 하고 있다. 하지만 기후 변화가 문제다. 저류 시설이나 수문 설계 시 고려해야 하는 기준도 기후 변화 상황에 맞게 상향 조정해야 하고, 그 용량도 증설해야 한다. 그러지 않고는 복개천이 넘칠 가능성은 점점 커질 것이다.
복개천이 폭우로 인해 침수되거나 넘친 사례는 우리나라에도 있다. 2025년 7월 중순, 사흘간의 극심한 집중호우로 광주 북구의 복개천이 아스팔트 도로 위로 넘쳐 흘렀다. 복개도로에 막혀 있던 용봉천, 서방천, 극락천이 콘크리트 박스 관로를 뚫고 나온 것이다. 보행자와 차량의 피해가 발생했다. 시민들은 떠내려가지 않으려고 발버둥 쳤고, 힘이 없었던 한 노인분이 떠내려가 사망하는 비극이 발생했다. 이 노인분의 주검은 열흘 가까이 지나서야 가족 품으로 돌아갔다.
광주의 옛 지명은 ‘물들’이다. ‘물이 많은 들판’이라는 뜻이다. 무등산에서 흘러나온 수많은 하천들이 광주 시내를 흘렀다. 그런데 이 하천들이 대부분 매립되었다. 광주 시내에만 15군데에 복개 하천이 있다. 광주 시내를 지나는 하천의 총 길이는 6만1천m인데, 그 중 약 4만2천m가 복개천이다. 이 복개 하천은 대부분 구도심에 집중되어 있다. 비가 올 때 광주 도심의 저수조 역할을 하던 광주 최대 저수지이자 유원지인 경양방죽도 일제시대 때부터 매립되기 시작했다. 매립된 경양방죽 위에는 도로가 만들어졌다.(7)
이번 재난은 변화, 관리, 협력이라는 세 톱니가 제대로 맞물리지 않은 결과이다. 첫째, 관성을 깨지 못했다. 복개 방식이 더 안전할 거라는 관성을 변화시키지 못했다. 둘째, 관리가 부족했다. 복개만 하고 하천복원이나 비상 배수시설 등의 기술적 관리 체계가 미비했다. 셋째, 협력이 부족했다. 도시 침수 시스템 설계에 하수도 · 도로를 관리하는 공공기관과 지방정부, 재난관리기관 간의 정보 공유와 협력이 부족했다. 결과적으로 기후 변화로 점차 높아지고 있는 도시 홍수의 위험이 현실로 터진 사례라 할 수 있다.
<참고문헌>
(1) OECD (2014), Water Governance in the Netherlands: Fit for the Future?, OECD Studies on Water, OECD Publishing.
http://dx.doi.org/10.1787/9789264102637-en
(2) Dutch Water Authorities. About. Dutchwaterauthorities.com
https://dutchwaterauthorities.com/about/ (접속일: 2025.07.29.).
(3) Rubin, S. (2025, October 27). Why the Dutch embrace floating homes. BBC.com. https://www.bbc.com/future/article/20220202-floating-homes-the-benefits-of-living-on-water
(4) Parker, C. (2023, August 2). UNESCO Recommends Adding Venice to List of World Heritage in Danger. Smithsonian Magazine. https://www.smithsonianmag.com/smart-news/venice-unesco-world-heritage-danger-180982640/
(5) 박세희 (2019.11.15.). “15년간 7조원 들인 방어벽 ‘모세’는 왜 베네치아를 구원하지 못했나”. 허핑턴포스트.
https://www.huffingtonpost.kr/news/articleView.html?idxno=89756
(6) Japan Society. The polity of the Tokuugawa Era. Japansociety.org.
https://japansociety.org/news/the-polity-of-the-tokugawa-era/
(7) 이삼섭 (2025.08.15.). “광주의 복개천, 도시 홍수로 존재를 드러내다”. 시사IN 다음채널.
https://v.daum.net/v/202508150822426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