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적응 마인드셋 9

적응 마인드셋 2: 무능에서 관리로

by 박성훈

이제 무능(Incapability)에서 벗어나 준비와 관리(Control)를 통해 적응에 성공한 사례를 살펴보자.

8절에서 우리는 관성이라는 ‘우물 사고’에 대해 살펴보았다. 우물 사고에서 벗어났다고 하더라도, 위기상황에 대응할 준비가 부족하면 ‘무능력’할 수밖에 없다. 위기 상황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미리 위기 상황을 준비하고, 변화를 ‘관리’해야 한다. 변화를 관리하기 위해서는 ‘기술적인 관리’와 ‘제도적인 관리’가 필요하다.

고대 이집트 사람들에게 나일강은 축복이자 공포였다. 기원전 2천 년경 중왕국 시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 ‘나일강 찬가(The Hymn to the Nile)’에는 나일강에 대한 이집트 사람들의 경외심과 두려움이 잘 드러나 있다. “당신은 사람을 살리고, 곡식을 자라게 합니다. 당신의 물줄기가 없으면, 생명도 없습니다.”(1)

매년 여름이면 에티오피아 고지대의 빗물이 몰려와 홍수가 일어나고, 이 홍수는 나일 양안의 토지를 검게 적셨다. 이 검은 흙을 케메트(Kemet)라고 하는데, 홍수가 만들어낸 기름진 퇴적토로 농사에 필요한 영양분을 충분히 담고 있다. 하지만 이 홍수의 강도는 매년 달랐다. 홍수의 강도가 너무 약하면 토지가 충분한 물과 영양분을 머금지 못해 흉년이 들었고 곧바로 기근으로 이어졌다. 반대로 홍수의 강도가 너무 강하면 제방이 무너지고 마을이 물에 잠겼다.

고대 이집트인들이 모든 것을 자연에 맡겨두는 ‘무능’은 그들의 생존을 위협했고, 우리가 영화나 역사책에서 접했던 신격화된 절대 왕권도 요원해 보였다. 이 무능이 계속되었다면 우리는 피라미드와 스핑크스 같은 거대한 건축물을 볼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집트인들은 홍수를 ‘기술적으로 관리’하는 도구를 발명했다. 강의 수위를 기록하는 나일로미터(Nilometer)이다. 초기 형태는 단순한 계단식 우물이었다. 나일강의 물이 우물에 들어와서 어느 계단까지 물이 차올랐는지를 관찰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수로와 연결된 기둥에 정밀한 눈금을 표시했다. 관리자는 강의 수위를 매일 기록하고, ‘올해는 풍년이 들지, 흉년이 들지’를 예측했다.

브리태니커 사전은 나일로미터를 ‘파종 · 수리 · 세금 계획을 결정하는 행정의 기초 도구’라고 설명한다.(2) 나일로미터는 단순히 수위를 측정하는 도구가 아니라, 행정 체계와 연결된 ‘제도적인 관리 도구’였다. 측정을 통해 적정 수위가 확인되면 풍년이 예상되어 세금을 높게 부과했다. 수위가 부족하면 기근을 대비해 세금을 낮추고 곡물을 비축해 놓은 국고를 개방했다. 과잉 범람이 우려되면 제방 보수 인력을 미리 동원했다. 이를 통해 이집트 왕조는 사회적 안정을 유지할 수 있었다.

수위 측정뿐 아니라 이집트인들은 수리(修理) 사업도 벌였다. 홍수가 나면 저지대 분지의 제방을 열어 홍수를 의도적으로 유입시켜 분지를 강물로 가득 채웠다. 범람이 끝나면 제방을 닫아 물이 서서히 빠지도록 했다. 이 과정에서 퇴적토가 고르게 퍼져 토지의 생산성을 극대화했다. 이집트 사람들은 단순히 강의 흐름에 생계를 맡기는 게 아니라, 측정하고 계획하고 관리하는 체계를 갖춘 것이다.

우리는 고대 이집트의 한 농부의 이야기를 상상해 볼 수 있다. 그의 이름은 하피(Hapi)라고 하자. 이집트인들이 나일강을 신격화해서 ‘홍수의 신’이라는 의미로 부르는 말이다. 평민 집안에서 아이가 태어나면 ‘나일강이 먹여 살려주길 바라는 의미’로 홍수의 신 이름을 붙였을지도 모른다. 마을에서 농사 잘 짓기로 소문난 하피는 매년 홍수가 시작되기 전에 고대 이집트 왕국의 수도였던 멤피스의 나일로미터에 달려갔다. 관리소 문 앞에서 관리인이 일을 끝내고 집에 갈 때를 기다렸다가 퇴근하는 관리인에게 측정 수위를 물었다. ‘올해는 16큐빗(약 8m)이야, 적정한 범람이다. 풍년이 들 것이야.’ 하피는 그 말에 안도하며 씨앗을 뿌리고, 세금으로 낼 곡식의 양을 계산했을 것이다.

그러나 몇 해 뒤, 수위가 기대치보다 훨씬 낮게 측정되었다. ‘올해는 흉년이 들 것이야.’ 측정 관리인이 근심 가득한 얼굴로 말했을 것이다. 하피는 여느 해처럼 씨앗을 뿌리고 열심히 농사를 지었지만, 관리인의 말처럼 흉년이 들었다. 다행히 파라오는 세금을 줄여줬고, 국고에 쌓아놓은 곡식을 풀었다. 하피와 가족들은 배불리 먹지는 못했지만 굶주리지는 않았고, 모두 파라오에게 감사한 마음을 가졌을 것이다.

만약 수위 측정 시스템 없이 관성적으로 파종을 하고 세금도 기존처럼 부과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흉년이 들면 가뜩이나 먹고 살 곡식이 없는 데 세금까지 내야 해서 백성들은 더 굶주렸을 것이다. 다음 해에는 얼마만큼 파종해야 할지 감을 잡을 수 없어 불안해했을 것이다. 이집트 사람들은 파라오의 권능을 의심하고, 국가에 대한 불만을 표출했을 것이다. 과연 이집트 왕국은 오래 존속할 수 있었을까?

고대 이집트인들은 나일로미터를 통해 나일강의 변덕을 ‘관리 가능한 시스템’으로 바꾸는데 성공했다. 과학적 관측을 바탕으로 행정 시스템을 운영하여 국가의 지속가능성을 높였다. 덕분에 수천 년 동안 안정적으로 왕국이 존속할 수 있었다. 이 사례는 ‘무능에서 관리로’의 마인드셋 변화를 보여줄 뿐 아니라, 기술적 관리와 제도적 관리를 동시에 보여주는 가장 극적인 사례이다.

이제 중국으로 가보자. 중국의 스촨성(四川省)은 서부 내륙에 위치한 넓은 성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스촨을 ‘사천’으로 발음한다. 사천 하면 자연스레 사천요리가 떠오른다. 다들 매운맛의 대명사인 마라(麻辣) 요리에 대해 들어봤을 것이다. 훠궈, 마라탕, 마파두부 같은 요리가 우리나라에서 인기 있는 사천요리다. 삼국지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스촨성이 성지 같은 곳이다. 유비, 관우, 장비, 제갈량이 활동했던 곳으로, 유비는 이곳에서 촉한을 세웠다. 스촨성 곳곳에는 제갈량의 신기에 가까운 전략 전술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온다.

스촨성은 지리적으로는 티베트고원과 접해 있어 고산지대와 평야가 공존하고, 양쯔강 상류에 있어서 수자원도 풍부한 지역이다. 문제는 여름에 덥고 습해 비가 오면 홍수가 잘 난다. 2024년 8월에도 스촨성 티베트족 자치주인 캉딩시에서 홍수와 산사태가 발생하여 19명이 사망하거나 실종되었다. 이러한 인명피해에 대해 사전 경고와 대피 시스템이 미흡했다는 전문가들의 지적도 있었다.(3) 진위를 확인하기는 힘들지만, 중국 정부가 티베트족 자치주에 대한 사전 방재 조치에 소극적이라는 비판도 있었다.

과거에도 스촨성에는 홍수가 자주 났었다. 특히 양쯔강의 좌측에서 합류하는 민강(岷江) 지역 사람들은 반복적인 홍수 피해에 시달렸다. 봄철에 고원의 눈 녹은 물이 급류로 내려오면서 토사와 함께 범람해 그 피해는 더 컸다. 그런데 사람들의 대응 방식은 관성적이고 단기적이었다. 당시의 대응은 주로 제방을 쌓아 물을 막는 방식이었다. 그런데 이런 방식은 토사 퇴적과 수압 증가로 인해 더 큰 범람을 유발하는 경우가 많았다. 민강은 진흙이 굳어 만들어진 이암으로 구성된 지질이라 쉽게 침식되었고, 무엇보다 경사진 곳에서 내려온 급류의 힘에 제방도 자주 무너졌다. 물길을 인위적으로 막거나 돌려서 농경지를 보호하려고 했지만 피해는 매년 반복되었다.(4)

기원전 250년경, 춘추전국시대 말기에 이빙(李冰)이란 사람이 나타났다. 이빙은 진나라의 지방 관리이자 수리 전문가였다. 그는 수리 방식을 완전히 바꾸었다. 물길의 자연스러운 흐름을 거스르지 않고 강을 ‘어미강’과 ‘자식강’으로 나누어 수위를 조절했다. 돌과 대나무를 엮은 구조물로 유속을 분산시켜 침식도 방지했다. 이 시스템은 두장옌(都江堰) 수리 시스템이라고 불린다. 2천 년 넘게 지금도 작동 중인 세계 최장수 수리 시스템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도 등재되었다. 두장옌 시스템을 통해 스촨 분지의 농업 생산력이 높아지고 안정적인 물 공급도 가능해졌다.(5) 재미있는 점은 두장옌의 관리 시스템이 자연스러움을 거스르지 않는 도교 사상과 결합하여 민간 신앙으로도 발전했다는 것이다. 그만큼 두장옌이 스촨성 사람들의 생존에 큰 영향을 미쳤다는 뜻이다.


우리 선조들도 물을 ‘기술적으로 관리’ 해왔다. 충북 제천의 의림지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저수지이다. 의림지를 포함하여 김제 벽골제, 밀양 수산제 등 우리나라에서 오래된 3대 저수지가 있는데, 그중에 지금까지도 들판에 물을 대주는 역할을 하는 저수지는 의림지가 유일하다. 제천이 한자로 방죽 제(堤) 자에 내 천(川) 자를 사용하는데, 의림지 때문에 제천이라는 지명이 탄생했을 것으로 추측하는 사람도 많다고 한다.(6)

의림지를 축조한 사람은 ‘우륵’으로 알려져 있다. 우륵은 신라 진흥왕 시대의 가야금 명인으로 더 유명하다. 전해지는 얘기에 따르면 우륵이 제천의 뒷산 용두산의 개울을 막아 큰 저수지를 만들었고, 이 저수지가 인근 논밭에 풍요를 가져왔다고 한다. 가야금 연주자이자 작곡가가 저수지까지 만들었다니, 기록에 남아 있지는 않지만, 그는 천재가 아니었을까? 700년의 세월이 흐른 뒤 고려시대 현감 박의림이 의림지를 개축했고, 그때부터 의림지의 이름이 박의림의 이름을 따서 불려졌다는 얘기도 전해진다.(7)

우리 선조들의 흉년과 기근에 대한 ‘제도적 관리’ 기록도 있다. 조선시대의 법전인 「경국대전」은 세조 때 편찬을 시작하여 성종 때 최종본이 완성되었다. 「경국대전」에는 ‘의창’과 ‘상평창’에 대한 규정이 등장한다. 의창은 흉년에 구휼을 하는 기관이다. 평시에 농산물을 비축하였다가 흉년에 백성들에게 나누어 준다. 상평창은 곡물 가격을 안정화시키는 기관이다. 시세 안정을 목적으로 매입과 방출을 통해 곡물 가격을 조정한다.

현종 11년, 1670년에 흉년이 들어 대기근이 발생했다. 「조선왕조실록 중 현종실록」에 따르면, “팔도의 흉년과 굶주림으로, 길에 굶어 죽은 시체가 가득”한 상황이었다. 현종은 사망자와 유민이 증가하여 민심이 돌아설 것을 걱정했다. 10월 15일, 현종과 신하들은 조정에 모여 조세 감면에 대해 논의한다. 신하들은 조세 감면의 필요성을 말하면서도 나라의 살림살이가 빠듯한 것을 걱정했다.(8)

특히 청나라에 바칠 조공 물량을 맞춰야 하는 것이 걱정이었다. 현종 자신도 청나라 심양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효종(봉림대군)이 청에 볼모로 잡혀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청과의 관계가 그러하다 보니 기근이 들어도 조공 물량은 맞춰야 했다. 현종실록 5월 2일 기록에는 “지금 백성들이 굶주려 죽은 자가 길에 가득하고, 청에 사신을 보내려 해도 말 사료와 식량을 구하기 어려워 준비가 막막하기 어찌해야 하겠는가”라는 현종의 탄식이 기록되어 있다.(9)

현종은 조세의 전면 혹은 절반 감면을 명령했다. 왕은 “전부 감하는 것이 비록 좋긴 하나, 나라의 예산을 어찌한단 말인가. 다만 팔도의 백성들이 굶주려 죽을 지경이니 구별해서 역을 면제하여 이들을 보존하지 않을 수 없다. 재난 피해가 특히 심한 읍은 전부 감하고, 그다음은 반을 감하여 조정의 진휼하는 뜻을 보임이 좋겠다”고 말했다.(10)

「경국대전」의 규정대로라면 각 지방 관청에서는 의창을 통해 백성들에게 곡식을 나눠주고, 상평창을 통해 곡식을 유통시켜 곡물 가격의 폭등을 막았을 것이다. 하지만 정말 그렇게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현종실록」에는 다음과 같은 사관의 탄식이 나온다. “아, 이 해의 처참한 기근을 차마 말로 할 수 있겠는가. 홍수와 가뭄과 바람 서리의 재변이 팔도가 똑같아서 곡식이 여물지 않아 굶주려 죽은 사람이 길에 널렸다. 목숨을 잃는 재앙이 전쟁보다 심하여, 백만의 목숨이 거의 모두 구렁텅이에 빠지게 되었으니 실로 수백 년 이래에 없었던 재난이었다. 대개 쌓아서 저축하는 것이 천하의 대명이거늘 국가가 평소에 비축한 것이 없이 갑자기 홍수와 가뭄을 만나 백성들이 굶어 죽는데도 구제하지 못하였으니, 아, 비통한 일이다.”(11)

위기 상황을 미리 준비하고 관리하지 못하면, 이렇게 백성들이 고통받는 것이다.


<참고문헌>

(1) Wikipedia. Hymn to the Nile. Wikipedia.org. https://en.wikipedia.org/wiki/Hymn_to_the_Nile (접속일: 2025.07.29.).

(2) Britannica. Ancient Egypt, The Early Daynastic period. Britannica.com. https://www.britannica.com/place/ancient-Egypt/The-Early-Dynastic-period-c-2900-c-2544-bce (접속일: 2025.07.29.).

(3) 이재준 (2024.08.04.). “중국 쓰촨성서 홍수·산사태로 교량 붕괴...19명 사망·실종”. 뉴시스.
https://www.newsis.com/view/NISX20240804_0002837160

(4) 원자후이(允嘉徽) (2022.08.31.). “물부족 일으킨 중국 댐과 ‘천혜의 땅’ 만든 고대 수리시설”. The Epoch Times.
https://www.epochtimes.kr/2022/08/396398.html

(5) 원자후이(允嘉徽) (2022.08.31.). 9절 4번과 동일

(6) 한국관광공사 (2014.05.22.). “지금도 제 기능 다하는 가장 오래된 저수지, 의림지”. 한국관광공사 웹페이지.
https://korean.visitkorea.or.kr/detail/rem_detail.do?cotid=0a7774ca-e01e-46e7-9d5c-b7a8569a9b9c

(7)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의림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웹페이지.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43208 (접속일: 2025.07.29.)

(8)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중 현종실록 18권」.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조선시대 사료DB.
https://db.history.go.kr/joseon/main.do (접속일: 2025.07.29.)

(9) 국사편찬위원회. 9절 8번과 동일

(10) 국사편찬위원회. 9절 8번과 동일

(11) 국사편찬위원회. 9절 8번과 동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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