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수면 상승에 적응하기
전 세계 곳곳에서 해수면 상승으로 인한 피해가 발생하고 있다. 남태평양의 섬나라 투발루는 평균 해발고도가 1.5m에 불과해 지금, 이 순간에도 국토 전체가 바닷물에 잠기고 있다. 인도네시아 자카르타는 하루에 약 7mm씩 땅이 바닷속으로 꺼지고 있다. 해수면 상승과 겹쳐 2050년까지 도시의 40~50%가 물에 잠길 것으로 예측된다. 미국 플로리다 마이애미는 해수면 상승과 만조가 겹쳐 ‘햇볕 쨍쨍한 날의 침수(Sunny day flooding)’가 반복되고 있다. 부산의 해수면은 1968년 이후 약 15cm 상승했다. 해안 저지대의 침수 위험은 점점 커지고 있다.(1)
이러한 상황에서, 많은 나라가 해안가 침수를 막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중 네덜란드의 ‘강을 위한 공간(Room for the River)’ 프로젝트는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해수면 상승에 대응한 모범 사례로 꼽힌다.
오랜 기간 네덜란드 방재 사업의 방식은 ‘물과의 싸움’이었다. 이는 농경지와 주거지 보호를 우선으로 하는, 인간 중심의 ‘통제’ 관점이다. 그 시작은 1954년의 델타 공사(Delta works) 프로젝트였다. 델타 공사 프로젝트가 시작된 사연을 알기 위해서는 1421년으로 거슬러 가야 한다.
1421년 11월, 네덜란드 남서부 삼각주 내륙(Grote Hollandse Waard)에 홍수가 발생했다. 폭풍과 만조가 겹치면서 흙으로 만든 방조제가 붕괴되었다. 당시 그 지역에는 72개의 마을이 있었는데, 23개의 마을만 남고 나머지 마을과 농경지는 모두 홍수에 파괴되었다. 자세한 기록이 없어 정확한 사망자 수를 알 수는 없지만, 대략 2천 명에서 많게는 1만 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것으로 전해진다.
홍수가 지나간 후, 사람들은 무너진 방조제를 복구하지 못했다. 당시 기술과 자원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홍수에 파괴된 마을의 잔해와 농경지는 수백 년에 걸쳐 자연스럽게 바닷물과 강물이 뒤섞이는 거대한 습지로 변했다. 이 지역은 오늘날 비스보흐(Biesbosch) 습지 국립공원이 되어 있다.
1953년, 비스보흐 지역과 불과 40km 떨어진 연안 지역에 대홍수가 발생했다. 이 홍수로 1천800명이 사망했다. ‘북해 대홍수’로 불리는 이 사건을 겪은 뒤, 네덜란드 사람들은 ‘물과의 싸움’을 선포했다. 1421년 홍수 때와는 달리, 이제는 제방을 쌓을 기술과 자원이 생겼기 때문이다. 네덜란드는 세계 최대 규모의 수리 프로젝트인 델타 공사 프로젝트를 시작했고, 전국 해안가에 홍수를 막기 위한 튼튼한 제방을 쌓았다. 이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1971년 하링블리트(Haringvliet) 댐이 건설되었다. 이 댐은 1953년 홍수에 피해를 본 남서부 삼각주의 사람들을 보호하고 농경지를 지키기 위해 만들어졌다.
그런데 하링블리트 댐이 건설된 이후 비스보흐 습지에 부작용이 생기기 시작했다. 댐의 수문이 닫혀 어류의 이동경로가 차단되어 수산물 생태계가 완전히 바뀌었다. 물이 흐르지 않으면서 적조 현상, 부영양화 현상이 빈번해지고 강변 침식이 일어났다. 댐 건설 후 25년 동안 남서부 삼각주는 죽은 삼각주가 되어 갔다.(2)
결국 ‘물과의 싸움’인 델타 공사 프로젝트는 한계를 드러냈다. 이 프로젝트는 우리가 2절에서 낮은 수준의 적응이라고 평가한 ‘반응적 적응’이었다. 델타 공사 프로젝트는 생태계 파괴와 같은 여러 부작용 때문에 지속 가능할 수 없었다. 하링블리트 댐의 수문을 일정 수준 개방하고 조류의 움직임을 부분적으로 회복시키기 시작했지만, 이러한 조치만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새로운 변화가 필요했다.
네덜란드 방재 사업의 새로운 변화는 바로 ‘강을 위한 공간’ 프로젝트이다. 이 프로젝트는 강의 흐름을 최대한 수용해서 해수면 상승에 대한 장기적인 대응력을 높이는 것을 목표로 한다. 2006년 프로젝트가 공식화된 이후 전국적으로 34개의 프로젝트가 진행되었다. 2006년부터 2015년까지 약 22억 유로가 투자된 대규모 사업이었다.
프로젝트의 핵심은 하천에 ‘공간’을 내줘 생태계도 보전하고, 홍수의 수위와 유속을 자연스럽게 제어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하천의 깊이를 깊게 하고 너비도 넓힌다. 하천의 제방을 후퇴시킨다. 후퇴시킨 기존 제방 터에는 홍수가 머물 수 있는 공간인 홍수터를 만든다. 홍수터를 만들기에 공간이 부족한 곳은 평상시에 목초지로 활용할 수 있는 예비수로를 준설한다. 예비수로는 홍수 때 하천이 우회할 수 있는 수로 역할을 하여 유량의 부담을 줄인다. 우리가 앞서 살펴본 ‘두장옌’의 어미강, 자식강과 같은 효과이다. 그리고 하천에 설치되어 있던 다리와 아스팔트 산책로 같은 지장물을 제거하여 자연스럽게 모래톱이 형성되게 한다. 일부 지역에서는 기존의 방재 시설을 철거하고 자연 생태계를 복원하는 부분적 되물림(Depoldering) 사업도 진행되었다.(3) 예를 들면 과거에 간척된 곳을 간척 전의 상태로 되돌려 자연에게 물길을 다시 돌려주는 것이다.
그런데, ‘강을 위한 공간’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주민과 전문가의 반발도 있었다. 주민들과 농민들에게는 되물림으로 인해 자신들의 생활 터전이 사라지는 문제가 생겼다. 노르트바르트(Noordwaard)는 ‘강을 위한 공간’ 프로젝트 중 가장 큰 규모의 사업이 진행된 곳이다. 이 곳에는 원래 60가구와 25개 농가가 있었는데, 프로젝트 후 22가구와 8개의 농가만 남게 되었다.(4) 주택과 농가가 철거되고 재배치되는 과정에서 주민들과 농민들의 강한 저항이 있었다. 농민들은 트랙터를 몰고 프로젝트 추진단의 진입을 막으며 “우리를 위한 공간은 어디에 있는가?(Where is room for us?)”라는 구호를 외쳤다.(5)
전문가들은 세 가지 지점에서 해당 프로젝트를 비판해왔다. 첫째는 초기에 사용된 수리 모델이 정책적 결정을 강하게 구속해 현장의 새로운 데이터 반영을 제약했다는 것이다.(6) 둘째, 장기적인 퇴적과 강바닥의 변화 예측이 설계에 충분히 반영되지 않아 예상보다 더 많은 홍수나 다른 지역의 침수를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는 비판이다.(7) 셋째, 수백 년간 형성된 전통적이고 역사적인 경관과 유산이 훼손될 수 있으며, 이는 물리적 안전과는 별개의 사회문화적 손실이라는 비판이었다. 이러한 비판의 타당성 여부는 아마도 언제인지 모를 다음 대홍수 때 검증이 될 것이다. 비판에도 불구하고 프로젝트가 과연 효과가 있을지, 아니면 비판대로 예상치 못한 더 큰 피해가 발생할지 말이다.
정부는 주민과 전문가의 비판을 줄이고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노력했다. 우선 생활 터전이 사라지는 가구와 농가의 땅을 매입하고 이주비를 지원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매입과 이주 지원에 들어간 비용이 전체 사업비의 상당 부분을 차지했다.(8) 지역에 따라 대안적인 설계안도 마련했다. 예를 들면 농가를 언덕 위로 올려 추가적인 안전장치를 마련하는 대안적 설계를 통해 주민들의 불안을 줄이고자 노력했다.(9) 일부 프로젝트에서는 지역 주민 · 단체와의 협업 모델을 비교적 성공적으로 적용해 갈등을 줄이기도 했다.(10)
‘강을 위한 공간’ 프로젝트는 성공적인 측면과 한계를 동시에 안고 있다. 성공 측면에서, 자연 친화적인 방식으로 홍수 위험을 줄이고 생태적 · 경관적 개선을 이뤄냈다. 많은 전문가와 국제사회에서 이 프로젝트는 ‘모범 사례’로 인식되고 있다.(11) 반면 한계점도 있었다. 프로젝트별로 주민들의 수용성이 크게 달랐다. 어떤 곳은 협력적이었던 반면, 다른 곳은 갈등이 컸다. 전문가들은 초기부터 주민들을 투명하게 참여시키고, 공정하게 보상하며, 모델의 불확실성을 수용하는 유연한 적응 관리 없이는 갈등이 커진다고 조언한다.(12)
남태평양 섬 투발루는 국토가 점점 바닷물에 잠기고 있어서, 국민들이 다른 나라로 이주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미 식수까지 바닷물에 오염되고 농경지도 침수되어 생활을 유지하기 어려운 상황이 시작되었다. 이에 투발루 정부는 국제사회에 기후난민 보호를 요청 중이다.(13) 과연 이들이 다른 국가로 이주하는 것은 가능한 일일까?
다른 이주 사례를 살펴보며, 그 가능성을 점쳐볼 수 있다. 비록 국가 내의 이주이기는 하지만, 거주하던 곳이 바닷물에 잠겨 주민들이 다른 지역으로 이주한 사례가 있다. 미국 루이지애나주의 ‘장 샤를 섬(Isle de Jean Charles)’ 얘기다.
1830년대 인디언 제거법(Indian Removal Act)에 따라, 루이지애나주와 오클라호마주의 원주민인 빌록시(Biloxi) · 치티마차(Chitimacha) · 촉토(Choctaw) 부족은 삶의 터전을 빼앗겨 버렸다. 그들은 루이지애나주 남부의 작은 섬인 장 샤를에 모여들었다. 그곳은 대부분이 개발 가능성 없는 습지였기 때문에 백인들이 큰 관심을 두지 않는 곳이었다. 덕분에 장 샤를 섬은 세 부족의 은신처이자 자율적인 공동체 공간이 될 수 있었다. 세 부족은 그곳에서 농업, 어업, 굴 양식, 덫사냥을 하면서 자급자족으로 생계를 유지해왔다.(14)
그런데 기후 변화로 해수면이 점점 높아졌다. 1955년에는 2만2천 에이커(8천900만m2)였던 섬이 현재 320에이커(130만m2)로 축소되었다. 면적 기준으로 섬의 98.5%가 사라진 것이다. 섬이 사라진 데에는 백인들이 소유한 석유 회사의 시추와 운하 개발도 영향을 끼쳤다. 개발 과정에서 지반이 약화되고 염수가 유입되어 섬의 침식이 빨라진 것이다.(15)
결국, 2016년 미국 최초의 기후 변화에 따른 이주 프로젝트, ‘장 샤를 섬 재정착(Resettlement) 프로그램’이 시작되었다. 미국 주택도시개발부(HUD, US Department of Housing and Urban Development)로부터 4천830만 달러의 기후 회복력 보조금을 받아, 장 샤를 섬에서 북쪽으로 약 40마일(64km) 떨어진 곳에 새로운 거주지를 조성했다. 500채 이상의 주택, 커뮤니티 센터, 상업 공간이 조성되었다.
2023년까지 대부분의 이주는 완료되었지만, 아직 사업이 완전히 종료된 것은 아니다. 기반 시설은 대부분 갖춰졌지만 공공시설과 경제 활동을 위한 시설도 부족하다. 일부 주민들은 여전히 장 샤를 섬에 남아 이주를 거부하고 있다. 새로운 거주지의 주택 품질 문제와 주택 보험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더 큰 문제는 이 재정착 프로젝트가 장기적으로 성공할 수 있을지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는 점이다. 물리적인 이주는 있었지만, 공동체와 사회문화를 고려한 이주는 없었기 때문이다. 세 부족은 재정착 계획 초기부터 본인들이 의사결정 과정에 충분히 참여하지 못했다며, HUD에 시민권 침해 소송을 제기한 상태이다. 이들은 ‘섬의 토지에 대한 통제권을 사실상 박탈당했고, 문화적 자율성과 권리가 침해되었다’고 주장한다.(16) 과연 이들의 문제는 무엇일까?
이들 세 부족에게 장 샤를 섬은 단순한 거주지가 아니었다. 섬은 조상들의 묘지가 있었고, 친족간의 공동체 공간이 있었으며 전통적인 생계 방식이 가능한 공간이었다. 하지만 새로운 거주지는 말 그대로 전형적인 미국 스타일의 주택단지이다. 새 주택단지는 고지대에 있어 전통적인 어업도 불가능하다. 주택단지에 사냥터와 전통적인 약초 채집을 할 지역이 있을 리도 만무하다. 더 중요한 것은 공동체 의례를 할 공간이 없다는 점이다. 세 부족에게는 가족 단위의 밀접한 주거 배치와 공동체 의례와 구전 전통을 이어 나가기 위한 모임 공간이 필요한데, 새 주택단지는 전혀 그들의 문화적 특징을 고려하지 않은 채 지어졌다.
미국 최초의 기후 관련 이주 프로젝트는 물리적으로는 안전한 공간을 만들었다. 하지만 전통적인 생계 방식과 공동체 문화까지 이주시키지는 못했다. 이를 위한 생태적 · 사회적 고려가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
앞으로 투발루를 포함한 전 세계 곳곳에서 기후 관련 이주 정책이 가시화될 것이다. 그 상황에서, 장 샤를 섬 사례는 단순한 이주가 아닌, 문화적 지속성과 자율성 보장하는 이주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타산지석이 될 것이다.
<참고문헌>
(1) 윤정화 (2025.07.13.). “기후위기 시리즈 기사 ⑤ 침수도시 – 해수면 상승의 최전선”. 국토환경뉴스.
https://www.lenews.kr/news/articleView.html?idxno=6430
(2) 워터저널 (2010.01.04.). “Part02. 네덜란드의 생태복원과 통합공간 계획사례”. 워터저널
https://www.waterjournal.co.kr/news/articleView.html?idxno=9780
(3) Sigmaplan. Depolder. Sigmaplan, Glossary.
https://www.sigmaplan.be/en/glossary/depolder (접속일: 2025.07.29.)
(4) Dutch Water Sector. (2015, October 14). Room for the river programme completes its largest depolderingproject Noordwaard, the Netherlands. Dutchwatersector.com. https://www.dutchwatersector.com/news/room-for-the-river-programme-completes-its-largest-depolderingproject-noordwaard-the
(5) Yarina, L. (2024, February). This River Is a Model. Placesjournal.org.
https://doi.org/10.22269/240213
(6) Teicher, H. (2014). Does room for the River travel? In Web.mit.edu. https://web.mit.edu/nature/projects_14/pdfs/2014-RoomfortheRiver-Teicher.pdf
(7) van Staveren, M. F., Warner, J. F., van Tatenhove, J. P. M., & Wester, P. (2014). Let’s bring in the floods: de-poldering in the Netherlands as a strategy for long-term delta survival? Water International, 39(5), 686–700.
https://doi.org/10.1080/02508060.2014.957510
(8) Wendland, T., Baurick, T., & Granger, C. (2020, March 10). The Dutch Are Giving Rising Rivers More Room. Should We Follow Suit? Pulitzer Center. https://pulitzercenter.org/stories/dutch-are-giving-rising-rivers-more-room-should-we-follow-suit
(9) Dutch Water Sector. (2012, August 11). Room for the river: First dairy farmer moves to new farm on 6m high mound in Overdiepse polder. Dutchwatersector.com. https://www.dutchwatersector.com/news/room-for-the-river-first-dairy-farmer-moves-to-new-farm-on-6-m-high-mound-in-overdiepse-polder
(10) Rădulescu, M. A., Leendertse, W., & Arts, J. (2020). Conditions for Co-Creation in Infrastructure Projects: Experiences from the Overdiepse Polder Project (The Netherlands). Sustainability, 12(18). https://doi.org/10.3390/su12187736
(11) Dutch Water Sector. (2019, April 15). Room for the River Programme. Dutchwatersector.com. https://www.dutchwatersector.com/news/room-for-the-river-programme
(12) Edelenbos, J., Roth, D., & Winnubst, M. (2013, January). Dealing with uncertainties in the Dutch Room for the River programme: a comparison between the Overdiep polder and Noordwaard. ResearchGate. https://www.researchgate.net/publication/285005046_Dealing_with_uncertainties_in_the_Dutch_Room_for_the_River_programme_a_comparison_between_the_Overdiep_polder_and_Noordwaard
(13) 윤정화 (2025.07.13.). 16절 1번과 동일
(14) National Geographic. (n.d.). The Biloxi-Chitimacha-Choctaw Community and Their Land. Education.nationalgeographic.org. https://education.nationalgeographic.org/resource/biloxi-chitimacha-choctaw-community-and-their-land/ (접속일: 2025.07.29.)
(15) Louisiana Division of Administration, Office of Community Development-Disaster Recovery. Isle de Jean Charles Resettlement. Locddr.la.gov.
https://locddr.la.gov/programs/isle-de-jean-charles-resettlement-project
(16) Tesfaye, E. (2024, November 4). Former Isle de Jean Charles residents express frustrations with housing at resettlement site. WWNO. https://www.wwno.org/coastal-desk/2024-11-04/former-isle-de-jean-charles-residents-express-frustrations-with-housing-at-resettlement-si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