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립’은 언제부터 매력적인 명사가 되었을까?

자립과 의존의 이분법 파헤치기

by 김성현



남에게 피해를 끼치는 건 패배주의자들이나 하는 짓이다. 얹혀살거나 피해 끼침은 곧 나의 존재가치를 격하시킨다. 우리는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 계속해서 열심히 일한다. 내 자리를 만들고, 돈을 벌 수 있는 수단을 찾고, 누군가로부터 의존하지 않기 위해 자립과 독립을 꿈꾼다.


근데 만약 누군가 당신에게 당신은 한 번도 자립한 적이 없고, 앞으로도 자립할 수도 없다고 말한다면 뭐라고 할 건가?


“나는 내 집도 있고, 집이 없더라도 직접 버는 돈으로 꼬박꼬박 월세도 내고 있어. 경제적으로 자립했고, 나만의 신념과 가치관을 가지고 사는데도?”


성공적인, 주체적인, 독립적인.


어느새 자립이라는 단어 뒤에는 긍정적인 형용사가 붙기 시작했다. 자립은 본래부터 매력적인 단어였을까?


자립했다는 가짜 포만감


다들 자신이 자립했다고 믿는다. 나도 그렇게 믿었다.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개체, 개인. 나만이 가지고 있는 사적인 생각. 그 모든 개인적인 게 나를 구성하며 나는 나라는 존재 자체로 온전하다.


“나는 드디어 자립했구나!”


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아래의 인용글을 읽어보자.

자본주의의 등장으로 시장이 확산되고 동시에 생산 패턴이 변화하면서, 18세기 후반과 19세기 초에 자립도 새로운 방식으로 정의되었다. 계약 체결 능력과 임금 노동이 상호교류에 기반을 둔 경제 관계를 대체함에 따라, 자립은 경쟁적 시장에서 개별적 성공과 관련된 것이 되었다.


자립은 사회 아래 만들어진 단어다. 자본주의 사회는 경제성장을 촉진하기 위해선 공생보단 누군가를 비켜나가 개별적으로 성공함을 부추겼고 이 속에서 태어난 ‘독립적인 개인’이라는 성공적인 사회모델은 자립이라는 허상을 부추기는 매력적인 동상이 되었다. 그래서 그 동상은 고독하다. 왜냐면 실존하지 않는 모조품이며 가짜 인간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독립적인 존재임을 다시금 확인하며 가짜 성취감과 포만감을 느낀다.


자립의 반대 선상엔 의존이 있다?


자립은 경제적 성장과 함께 매혹적인 단어로 바뀌었고, 그와 반대로 의존은 마치 자립의 반대말처럼, 항상 기울어져있는 시소처럼 자립의 매력적인 성공을 더욱 돋보이게 만드는 그림자가 되었다. 이젠 의존이란 단어를 경중을 따지는 저울 위로부터 내려주어야 한다.


경멸받는 명사 ‘의존’


의존

1.

다른 것에 의지하여 존재함.


의존이란 단어에는 윤리적 낙인이 찍혀있다. 그것은 남에게 기생하는 상태, 독립적으로 일어설 힘이 없는 상태, 독립된 개체로서 온전한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상태로 낙인찍혀있다.


“너는 너무 의존적이야,”

“나한테 의존하지 마!”

“언제까지 부모님한테 의존하고 살래?”


이 말은 (= 독립적으로 존재해라)는 의미와 동일하다. 의존이라는 명사가 들어간 문장은 대부분 부정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자본주의가 태동하기 이전, 의존이란 단어는 위와 같은 부정적인 의미가 담긴 단어가 아니었다. 이는 함께 공생함, 공존, 함께 도와가며 살아감이라는 의미에 유사했다.

그러나 지금의 의존은 공동체의 존립을 가능케 하는 원동력이라기보다는 개인의 결함을 나타내는 표지가 되었다.


남이 없으면 살아갈 수 없는 존재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인간’이라는 단어는 그 자체로 하나의 존재론이다. ‘인’ 자는 사람들이 필연적으로 ‘서로 기대어 의지’함을 표상한다. 결국 인간이란 ‘다른 사람들 사이에서 서로 기대어 의지하는 존재자다.


개인주의가 판치는 사회 아래 자립은 정말 존재하는 상태처럼 꾸며져 왔지만 애초에 우리는 한 번도 자립(독립)한 적 없다. 우리는 누군가의 도움을 받으며 자라왔고, 그들 또한 누군가의 돌봄 아래 목숨을 부지하며 자랐다. 심지어 우리가 앉아있는 의자부터 당신이 그렇게 멀리하고 싶은 타인이 만든 것이다. 우리는 사회 공동체인 동시에 ‘서로 존재’이다. 인간은 남이 없으면 존재할 수 없다.


우리는 자립이라는 단어의 뜻을 재정비해야 한다. 자립은 의존의 반대말이 아니다. 자립은 ‘의존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율적인 상태’이다. 그러므로 의존이란 장애인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관계론에 근거하여 모두가 의존 아래 살고 있으며 누구든 의존함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장애운동의 궁극적 목표는 장애인이 의존을 선택할 수 있는 사회, 자율적으로 선택을 할 수 있는 또 다른 의미의 ‘자립’을 선택할 권리를 가질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다.


모든 생물은 “자기 완결적이고 자율적인 개체라기보다는 오히려 다른 생물과 물질과 에너지, 그리고 정보를 교환하는 공동체”이다. “‘남’이 없다면 우리는 살아갈 수 없다.” - 린 마굴리스


인간은 타인과의 접촉 속에서 끊임없이 존재하고 살아가는 생물이다. 우리는 타인으로부터 자립한 적이 없으며, 서로서로의 의존과 돌봄 속에서 생명을 부지하며 살아가고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보았을 때, 마침내 ‘자립할 수 있는 비장애인’, ‘의존적인 장애인’이라는 이분법적 시선에서 벗어나 우리 모두가 동등한 관계에서 함께 공생하는 동반자임을 인식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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