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나 조용히, 그리고 서서히 다가오는지도
나는 내가 무너지는 순간을 보았다.
예전엔 익숙했다.
이니셔티브에 대한 가설과
성공 지표를 먼저 세우고 기획을 시작했다.
그게 내가 생각하는 '당연한' 흐름이었다.
하지만 최근 몇 달 사이 나는 달라졌다.
요청이 오면 그저 "네" 하고 기획서를 쓴다.
항상 더 나은 최선이 있다고 믿던 나는
빠르게 받아들이는 사람이 되었고,
이제 더는 질문하지 않는다.
그렇게 무뎌진 나를,
이번 프로젝트에서 마주했다.
예전 같으면 당연히 걸려졌을 문제를
나는 아무 의심 없이 넘겼고,
디자이너의 한 마디에 비로소 자각했다.
그날 이후, 계속 생각이 났다.
내가 그런 기획을 했을 리 없다.
그게 이상하다고 생각조차 못 했다는 게 놀라웠다.
요즘 그런 생각이 든다.
나는 무력감에 꽤나 취약한 사람인 것 같다.
내가 주도적으로 문제를 찾을 수 없고
빨리 아웃풋을 내고 피드백 받을 수 없을 때
나는 말수가 줄고 병이 난다.
아무도 내게 책임을 묻지 않는데도
내가 나를 점점 더 내려놓게 되는 기분이다.
지금 나는 많이 지쳐있나 보다.
그걸 알게 된 것만으로도
조금은 다행이라고 생각하려 한다.
예전엔 남들이 먼저 말해줘야만 알 수 있을 정도로
스스로에게 무심한 사람이었으니까.
"아니? 나 하나도 안 힘든데?"
그렇게 말하는 게 익숙했지만,
그 말이 꼭 진심은 아니었다는 걸 이제는 안다.
그러니까 이 무력감은
불빛이 꺼진 줄도 모르고
어둠에 익숙해져 있던 나를 비추는 순간
느낀 서늘함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지금 나답지 않다는 걸 알려주는
묵직한 알람이었을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