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기억 속 홍콩의 거리들

낮과 밤, 모두의 기억

by Phillip

2012년 마지막 날, 처음으로 해외여행을 나선 W군에게서 연락이 왔다. 올 테면 따라와봐- 무슨 배짱인지는 모르겠으나 뜬금없이 도발을 해오는 W군에게 짐짓 모른 척 넘어가 주기로 하였다. 이래저래 쟁여둔 쌈짓돈은 50만 원 정도. 호사스러운 여행은 못되어도 사나흘 홍콩의 습한 공기 몇 모금 머금을 여유는 되리라. 이내 마음을 정하고 티켓을 끊었다. 도발은 너의 몫, 뒤따르는 책임도 너의 몫. 모자라는 여비는 W군이 보태기로 합의를 보고 비행기에 올랐다.


# 홍콩의 뒷골목



한때 홍콩의 액션 누아르가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던 시절이 있었다. 내- 가 아니라 내 어린 시절의 기억 속에 삼촌들, 띠동갑 사촌 형들은 영웅본색의 주윤발을 따라 한답시고 성냥개비를 입에 물고 입술로, 혀로 빙글빙글 돌리다 우리 엄마에게 혼나곤 하였다. 1인 2역을 맡았던 주윤발, 2003년 투신하여 세상을 등진 장국영, 간간이 한국 영화에서도 얼굴을 볼 수 있는 적룡 보다도, 내겐 홍콩 누아르의 아버지라 불리는 감독 오우삼의 이미지가 더 강하게 기억 속에 남아있다. 이유는 페이스오프를 너무 재미있게 봐서... 이 부분은 기회가 되면 다른 글에서 다뤄 보고자 한다.


어쨌거나 2012년 말, 홍콩의 뒷거리는 여전히 비정해 보였다. 전 세계 최고 수준의 지대로 인하여 다닥다닥 붙어버린 건물들, 그 사이로 홍콩의 뒷골목이 펼쳐진다. 실외기에서 나오는 기분 나쁜 열기와 지저분하게 널브러진 쓰레기들. 영화의 한 장면이 오버랩되는 이 거리를 실제로 거닐어 보면 생각 외로 무미 무취하다. 지저분하다는 그 밖에는.


#침사추이, 선착장으로 향하는 길



홍콩은 홍콩 섬, 란타우 섬, 그리고 카오룬 반도로 이뤄져 있다. 많은 관광객들이 카오룬 반도에서 홍콩 섬으로 넘어가는 방법으로 스타페리를 선택한다. 차량이나 지하철을 타는 것보다 훨씬 나은 경치를 감상할 수 있다. 밝은 대로, 혹은 우중충한 대로 홍콩의 매력을 느낄 수 있다.


빅토리아 선착장 근처는 늘 사람들로 붐비운다. 관광객들 뿐만 아니라 현지인들도 스타페리를 꽤 많이 이용한다. 깨끗하고 탁 트인 전경을 뒤로한 채 걸음을 재촉하는 이들은 십중팔구 현지인이다. 여기도 별반 다를 바가 없다. 우리네 사는 곳과.


#굴다리를 가득 메운 사람들



페리를 타고 빅토리아 피크로 향하는 길목 길목엔 사진과 같은 굴다리들이 여럿 존재한다. 굴다리를 지날 때마다 자리를 펴놓고 앉아 도란도란 수다를 떨고 있는 이들이 보여 현지인을 붙들고 그네들이 뭐하는 사람들인지 물어보았다. 대부분이 필리핀에서 건너온 가정부들이라고 한다. 달리 할 일이 없는 휴일에는 이렇게 그저 자리를 펴놓고 비슷한 처지인 이들을 만나 담소를 나누며 시간을 보내곤 한단다.


괜히 가슴이 헛헛해지는 장면이었다.


#홍콩의 밤거리



별들이 소곤대진 않는다. 그러나 분명 홍콩의 밤거리엔 본연의 색이 존재한다. 낮엔 아무런 생각 없이 지나쳤던 침사추이의 거리가 밤이 되자 매혹적인 본연의 색을 드러내며 나를 잡아끌었다. 채근하는 W군을 뒤로하고 연신 셔터를 눌러대었다.



8시가 넘자 신년을 화려한 불꽃놀이와 함께 맞으려는 이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조단 역에서 빅토리아 선착장까지, 붉고 은은한 조명을 따라 두 시간 가까이를 걸어 스타의 거리에 다다랐다.




돌아오는 길도 인산인해. 인파를 피해 작은 골목을 따라 이동하기 시작하였다. 붉은빛에서 노란빛으로 조명이 변한다. 그래도 홍콩은 야경인 것인가. 홍콩의 색에 잠시 취해 거릴 거닐다 숙소로 돌아갔다. 암만 그래도 사람들로 붐비는 곳은 힘들다. 그런 건 매일 아침 07시 20분, 여의도로 향하는 9호선 지하철로 족하다.



P.S.

괜히 섬찟했던 쇼윈도의 그녀. 눈 마주치면 괜히 무서운 그녀이다. 한적한 침사추이 밤길 거니시는 분들은 조심하시기를.



#홍콩

#여행

#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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