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계 회사 생활 #1 - 영문 이력서에는 없는 것들

by 품행제로

이 글은 예전 국내 회사에 입사 지원을 할 때 경험을 바탕으로 작성한 것으로 지금 사정과는 많이 다를 수 있음을 미리 알려 드립니다. 국내 기업과 해외 기업 수십 곳을 지원하면서 작성했던 이력서들 중 국내 이력서에 비해 영문 이력서에는 없는 것들을 적어 봤습니다.


사진

많은 국내 이력서에는 증명사진을 요구하는 곳이 많다. 사회생활을 막 시작하면서부터 국내 회사에 다닐 때까지는 주기적으로 증명사진을 찍었었다. 조금이라도 잘 나오게 찍고 싶어서 평이 좋은 찾아가기도 하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른 곳을 찾아가 두세 번씩 찍기도 했다. 물론 대부분의 결과물은 나와 너무나 다른 사진들이었다. 그래도 많이 손대어진 사진일수록 뭔가 안심이 되었다. 아마도 채용 담당자가 이력서를 받고 제일 먼저 눈이 갈 곳이 사진이 아닐까 싶어서였다. 분명 내가 아닌 사진인데 무슨 의미가 있나 싶기도 했다. 최근에 본 기사이다. 채용 시 사용하기 위해서 10만 원이 넘는 컬러 증명사진을 찍고, AI를 프로필 사진을 사용한다는 내용의 기사였다. 서류 전형 합격을 위해서 증명사진 하나에도 얼마나 많은 관심을 갖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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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계 기업 수십 곳을 지원하면서 한 번도 사진 제출을 요구한 적은 없었다. 외국 회사들은 보통 정해진 이력서 양식이 없기도 하지만 온라인 양식으로 지원을 받는 곳에서도 어디에도 사진을 업로드하라는 메뉴는 찾아볼 수 없었다. 그들이 나의 얼굴을 처음 보는 것은 서류 전형이 통과한 뒤 인터뷰에서였다. 인터뷰 전에는 내가 어떻게 생겼는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외국계 회사를 오고 나서는 증명사진을 찍어본 것이 언제인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가족 관계

국내 이력서 양식에서 정말 이해가 안 가는 항목 중 하나가 가족 관계이다. 회사를 위해서 일해야 하는 직원을 뽑는데 가족 관계는 어떤 용도일까? 예전에 결혼을 했거나 자녀 수가 많을수록 회사 일을 열심히 할 가능성이 높다는 통계를 본 적이 있다. 책임을 져야 할 가족이 많을수록 회사에 대한 충성도가 높아진다는 말이다. 어느 정도 공감은 할 수 있지만 그런 용도만으로 가족 관계를 적으라고 하지는 않을 것 같다. “가화만사성”이라는 말을 너무 많이 들어오면서 자라온 우리라서 평안한 가정일수록 정서적으로 타인과의 관계에서 문제가 없는 사람일 가능성이 높아서 요구하는 것일까? 나의 짧은 생각으로는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외국계 회사를 지원하고 다니면서 단 한 번도 나의 가족 관계를 물어보거나 제출을 요구받은 적이 없었다. 기껏해야 비상시 연락할 수 있는 연락처 정도였다. HR 부서와의 인터뷰에서도 결혼을 했는지 자녀는 몇 명인지 물어보는 경우는 드물었다. 지금도 회사 인사 시스템에 들어가 보면 나의 가족 정보는 입력되어 있지 않다. 오히려 이런 개인적인 정보는 회사에서 몇몇 친한 사람들만 알고 있었다. 그만큼 사적인 것들은 회사에서 물어보지 않았다.


성적

국내 회사를 지원하면서 제일 적기 싫었던 항목이 대학 성적이었다. 나의 대학교 성적은 정말 화려했다. 4.5점 만점에 4점대가 넘치는 세상에 3.5도 못 받았으니 말 다했다. 그것도 1, 2학년 때 너무나 망쳐놨던걸 3,4 학년 때 간신히 복구한 게 이 정도였다. 물론 성적 자체보다는 학업을 얼마나 성실히 했는지 보기 위해 성적을 제출하라고 했을 것이다. 등수와 점수로 많은 것들이 정해지고 많은 것들이 판단되는 우리나라에서는 어쩌면 당연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 회사는 입사 과정이나 합격 후 대부분 졸업 증명서와 성적 증명서를 제출하게 된다. 외국계 회사를 수없이 지원하면서 난 단 한 번도 내 이력서에 학점을 적어본 적이 없다. 물론 자랑스럽지 못한 학점인 이유도 있지만, 어느 이력서에도 학점을 적으라는 요구는 없었다. 심지어 합격을 한 뒤에도 졸업 증명서나 성적 증명서를 제출하라는 요구를 받아 본 적도 없다. 기술적인 면접을 통해 합격이 된다면 그 사람의 실력에 대한 증명은 끝난 것이다. 학창 시절 학점이나 졸업장으로 그 사람의 실력을 판단하는 것을 적어도 나는 겪어보지 못했다.


신체

예전에 몇몇 국내 회사 지원할 때 신체 정보를 적었던 기억이 있다. 지금은 너무나 사적인 정보라 없어졌을 거라고 생각한다. 직원을 뽑는 과정에 왜 그 사람의 키와 몸무게를 적으라고 했는지 지금 생각하면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것도 너무 작아 보이고 싶지 않아 1센티미터 정도는 올려 적었던 기억이 있다. 너무 작거나, 너무 뚱뚱하다면 결격 사유가 되었던 것일까? 물론 내가 모델 지원자였다면 아주 필수적인 정보가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큰 키와 날렵한 몸매가 반드시 직종도 아닌데 키와 몸무게를 적어야만 했다.

외국계 회사에서는 신체적인 정보를 적은 적이 없었다. 물론 지원하는 과정에서 (아마도 법적으로) 현재 장애가 있는지 어떤 인종인지 물어보는 항목이 필수적으로 있다. 그것도 내가 답하기 싫으면 하지 않아도 된다. 이런 질문들은 아마도 인종이나 장애에 따른 불평등을 막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키와 몸무게에 따른 불평등은 찾아볼 수 없었다.


자기소개서

국내 기업 지원을 위한 이력서를 쓰면서 정말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이는 부분이 자기소개서이다. 본인에 대한 간단한 소개를 적는 경우도 있지만, 많은 회사에서 특정 주제에 대해서 글들을 요구한다. 대표적인 것들이 “성장 과정”, “성격의 장단점”, “지원 동기”, “입사 후 포부” 등이었다. 쉬운 것 같으면서도 다른 지원자들과의 차이점을 위해서 정말 많은 노력이 필요한 부분이었다. 이런 것들을 쓰면서 과연 인사 담당자나 채용 담당자가 이 글을 모두 읽어 볼까 궁금하기도 했다. 수십 명 정도의 글은 읽어 보겠지만, 수백 수천 명이 지원하는 경우에는 제목만 읽기도 힘들 것이다.

외국계 회사에서는 자기소개서라는 것을 요구하는 경우는 없었다. 가끔 Cover letter를 요구하는 곳은 있었다. 하지만 Cover letter는 나 자신을 간단히 소개하고 어떻게 지원을 하게 되었는지 하는 정도였다. 내 성격의 장단점이나 내가 살아온 환경을 장황하게 적을 필요는 없었고, 최소한의 글로 나를 짧게 어필하는 정도였다.



국내 기업의 채용 절차에 비해 글로벌 기업들의 채용 절차가 모두 합리적이고 바람직하단은 의미는 아니다. 하지만 그동안 외국계 기업에 지원을 하면서 느낀 점은 회사에서 요구하는 점들이 대부분 이 사람이 실질적으로 회사에서 필요한 사람인지 판단하기 위한 것들인 것 같았다. 누구도 나의 키에 대해서 물어본 적 없었고, 나의 학점에 대해서 물어본 적이 없었다. 나의 성격의 장단점보다는 내가 어떤 경력을 갖고 있는지를 항상 궁금해했고, 나의 모든 영문 이력서에는 그런 내용들이 대부분이었다. 남들과 독창적인 스토리를 만들려고 고민하지 않아도 되고, 화려한 미사여구를 사용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에서는 나에게는 부감이 확실히 덜 한 이력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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