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정희의 <한계령을 위한 연가>
사랑에 빠진 이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환희의 감정에 사로잡히기를 원합니다. 그런 환희가 자신의 내면에 충만하기를 바라거나 자신으로 인해 연인이 환희의 순간에 다다르기를 소망하겠죠. 거기까지 이르지 않더라도 서로를 바라보는 시선이 온전히 사랑스럽고 아름답기를 바랍니다. 연인들은 그 사소한 이야기들을 나누며, 거기에 상대를 매료시키려 혼신의 힘을 쏟을 겁니다. 그런 메시지를 주고받는 그 시공간은 황홀이라 명명해도 될 것입니다. 그들은 그렇게 사랑에 빠져들어갑니다. 그래서 그들은 황홀의 시간 속에 놓여 있다고 말할 것입니다. 그때 그들이 마주한 세계는 지난 세계와 다를 것입니다. ‘그때 바라본 하늘은 정녕 어떠했는가?‘라는 질문을 받으면 그대들은 '찬란했다'거나 '황홀했다'라고 답할 것입니다. 그 순간을 경험한 이들의 시야에 들어온 풍경은 고유의 속성을 상실한 채 다가올 것입니다. 세계의 차원은 달라지고 이제 세계를 구성하는 모든 것들은 경이로움으로 채색됩니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소리는 영롱할 뿐 아니라 그들의 사랑을 예찬하는 선율이 됩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사랑이 시작된 지점을 정확히 알지 못할 겁니다. 그저 어느 순간 서로에게 매혹돼 있는 자신들을 발견하게 되는 겁니다. 사랑의 주체와 대상 사이의 교류일 것이겠지만, 매혹된 그 순간을 깨닫기가 가능할지 모르겠습니다. 매혹의 계기라는 게 그대들을 제외한 이들에게는 사소하겠지만, 그대들 사이를 스쳐 지나간 지극히 짧은 순간들 속 특정한 몸짓과 표정, 그러니까 물건을 집기 위해 천천히 허리를 굽히거나 웃으면서 입을 가리기 위해 올리는 하얗고 여린 팔, 상대와 눈을 마주하면서 조심스럽게 움직이는 입술 등, 수많은 기호들을 예민하게 해석하고, 심지어 들숨과 날숨의 세기까지 살피면서 대상에게 집중한 결과입니다.
문정희 시인의 <한계령을 위한 연가> 속 화자는 그런 사랑을 꿈꾸고 있습니다. 사랑의 황홀을 꿈꾸는 화자는 '고립'을 소망합니다. ‘황홀’이라는 단어는 언제나 매혹적입니다. 프랑스의 비평가 롤랑 바르트에 따르면 '황홀'이라는 프랑스어는 아주 오래전 ‘유괴’의 뜻으로 쓰였다고 합니다. '황홀'과 '유괴'의 의미가 어떻게 상통할까요? 짐작하시는 것처럼 '사로잡힘'입니다. 누군가에게 매료돼 황홀에 빠진 적이 있다면 그/그녀에게 사로잡히는 상상은 그리 낯설지 않을 것입니다.
오오, 눈부신 고립
사방이 온통 흰 것뿐인 동화의 나라에
발이 아니라 운명이 묶였으면
동해 바다로 가는 터널이 생기기 전입니다. 도시를 벗어나 도로를 달리다 보면 산속으로 들어가는 구부러진 길이 나타납니다. 눈이 내리기 시작하면 고립을 걱정하게 됩니다. 차라리 고립이라도 되었으면, 운명이 묶였으면 하고 바랍니다. 자신이 선택하고 매료당한 그 주체에게 사로잡히기를 간절하게 소망합니다. 자신은 대상이고, 연인은 사랑의 주체가 됩니다. 그 주체에 의해 고립되기를 원하는 사랑, 그런 것들을 꿈꾸는 시라서 특별하게 다가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