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의 숲에서 영화 읽기-<어바웃 타임>
십 년 전 영화 <어바웃 타임>(2013)은 이제 무료 영화채널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TV에서 우연히 이 영화를 만나면 채널을 고정하면서 여러 번 보게 된 영화랍니다. 늘 편안했죠. 이 글을 쓰려고 영화를 다시 보았습니다. 여전히 편안하고 아름다운 영화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흔한 CG 하나 없이 영국 남부 콘월의 풍경과 함께 영화의 시간은 평화롭게 흐르고 있었습니다. 인물들은 각자 자신들의 평범한 삶을 살아가고, 카메라는 그들을 유쾌하게 담아내고 있었습니다. 장점을 찾았습니다. 그들이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은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점, 팀과 아버지(빌 나이)의 ‘시간 여행', 팀의 결혼식 등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로맨틱코미디 영화에서 '시간 여행'과 같은 SF 요소를 가져온 경우는 종종 있습니다. <미드나잇 인 파리>를 재미있게 본 기억이 있네요. (아, 참, 여기에도 <어바웃 타임>의 훌륭한 배우 '레이철 맥아담스'가 출연한답니다.) 팀의 남계(男系)로 이어지는 시간 여행은 '과거 특정 시간의 선택을 달리 해 현재를 바꾸‘죠. 시간 여행이 제한적이고 부차적 요소로만 작동한다는 게 특징입니다. 팀의 시간 여행은 살아가면서 우리가 마주하게 되는 '선택'의 다른 형태로 보이기도 하죠. 그래서인지 현실의 삶에서 주체는 자신이라는 점을 끊임없이 보여주려고 합니다.
'선택'에 관한 좋은 기억은 많지 않습니다. 전 그렇습니다. 그것 말고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 삶이 더 풍요롭지 않았을까, 부끄럽고 후회스러운 선택을 피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죠. 그러다 보면 문득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이 생각나곤 합니다. 내가 마주한 수많은 선택의 순간들, 아쉬움, 다른 선택으로 펼쳐졌을 나의 운명에 대한 호기심, 두려움 등이 주르륵 늘어서곤 합니다.
내가 <어바웃 타임>을 처음 보았을 때 '선택' 이외의 또 다른 장면이 다가왔습니다. 팀이 임종 직전의 아버지와 떠난 시간 여행입니다. 카메라는 팀과 아버지를 멀리서 잡습니다. 그들은 소년 팀과 젊은 아버지로 돌아가 있었죠. 이 장면을 보고 어린 시절 나의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공중목욕탕이나 샤워시설이 없었던 가난한 마을에서는 인적이 없는 개울가를 이용하곤 했습니다. 해 질 녘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차가운 개울물에서 놀다가 본 아버지의 젊고 싱싱한 나신(裸身), 아직도 기억이 선명합니다. 저렇게 시간 여행이 가능하다면... 잠시 꿈을 꿨습니다.
팀의 아버지가 아들의 결혼식에서 한 인사말은 지금도 인상적입니다. 그는 '아들 팀의 아버지라는 사실이 자랑스럽다'거나 '남자 셋을 사랑했는데, 그 셋은 처남 데스몬드, 전설의 재즈뮤지션 BB 킹, 그리고 아들 팀'이라고 합니다. 자기 아들의 아버지가 된 사실이 자랑스럽다고 하는 아버지의 말을 들은 아들, 그는 또 자기 아들에게 그렇게 말할 것입니다.
나는 종종 사람을 판단하는 '나의 기준'에 대해 아주 가까운 이들과의 사석에서 감히 말하곤 합니다. 기준은 '속된가, 그렇지 않은가'라고. 이는 근거를 제시할 만큼 객관적이지 않습니다. 그저 내가 누군가를 가까이하거나 거리를 두는 기준이기에 어떤 경우에도 겉으로 드러내지 않습니다. 속되다고 여길 때 마음속 깊이 혐오하고, 적절한 거리를 유지할 뿐이죠. <어바웃 타임>이 속되지 않은 삶을 살아가는 방식들을 여러 가지로 보여주고 있다는 점, 내가 이 영화를 좋아한 이유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