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래스톤베리 2017 리뷰
어느 덧 벌써 네 번째 날 아침. 이제 텐트촌의 풍경과 생활에도 점점 익숙해진다.
오늘은 나오는 입구도 한 장 찍어보았다.
파크 스테이지 가는 길에 들러 본 티피 필드 입구. 인디언 천막을 가까이서 보니 정말 히피하다.
오늘의 첫 공연 Amber Arcade. Dreamy pop 계열의 음악을 하는 밴드였는데, 비가 와서 그런지 생각보다 사람이 많지는 않았다. 역시 꾸리꾸리한 날씨에는 포스트락이 짱이다.
오늘 아침에는 Falafel을 먹어봤는데, 딱 예상가능한 맛이었지만 괜찮았다. 이제 Cider가 없으면 밥을 먹는게 어색하다.
다른 스테이지로 이동하기 전에 부스들을 둘러봤는데, 여기 파크스테이지 부스에도 사회적인 문구를 가진 표어들이 많이 보인다. 피켓만 있는게 아니라 부스에 들어가면 사람들이 관련 주제로 연설도 한다.
그리고, 이번 글라스토에서 가장 보고 싶었던 Busted를 보러 Avalon Stage에 왔다.
Busted는 2000년대 초에 데뷔했던 영국 출신의 팝 펑크밴드다. 나는 이 밴드 때문에 중학생 때 음악 블로그도 만들어서 운영한 적도 있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2005년에 해체했다. 그런데 거의 10년이 지난 2014년에, 그들은 뜬금없이 McFLY와 결합해서 McBUSTED라는 밴드로 활동한다는 깜짝 소식과 함께 새로운 싱글을 발표했다. 그리고 아예 2016년에는 Busted의 이름으로 11년만에 재결합해서 새로운 앨범을 내버렸다. 언젠가 한번 해외에 나가서 공연을 봐야겠다는 생각을 속으로는 품고 있었지만 그게 언제가 될지는 기약이 없었다. 그런데 내가 글라스토 취소표를 얻었던 바로 그 다음날, Busted가 글래스톤베리에 처음으로 출연한다는 포스터가 떴다.
Busted의 첫 글라스토 출연은 영국인들한테도 충분히 화제되는 일이었는지 공연 30분전부터 스테이지는 꽉 차 있었고, 공연을 보면서 어릴 적 추억에 잠겨 행복했다. 주변을 둘러보니 나 혼자 이런 감정을 느낀 건 아닌 것 같다. 글라스토에서 Radiohead를 비롯하여 짱짱한 밴드들을 정말 많이 봤지만, 보는 내내 설레고 가슴이 벅찼던 건 이 공연이었다.
첫 곡 Air hostess부터 마지막 곡 Those days are gone까지 신나는 노래들이 진짜 많았는데 한 곡 끝날때마다 아쉬운 감정이 교차했다.. 이제 영국에 또 오지 않는 이상 보지 못할 밴드.
공연 끝나고 쪼르르 달려가 옆에서 멤버들이랑 사진도 같이 찍었다.
다른 곳에서 가져온 Busted 공연할 때의 스테이지 사진인데, 위에 서커스 천막처럼 보이는게 Avalon Stage다. 위에서 보듯 스테이지 밖으로도 사람이 정말 많았는데 사실상 밖에 있는 사람들은 시각은 포기하고 그저 듣기라도 하겠다고 온 사람들이다. (하지만 다음날 Killers 공연때에는 바깥 부지까지도 아예 꽉 차서 입장을 막아버렸고, 그래서 보지도 듣지도 못하고 다른 곳으로 가야했다 ㅠㅠ)
내 어린 시절의 아이돌을 마침내 마주했던 흥분된 마음을 추스리고 이제 리암을 보러 다시 아더 스테이지로 돌아왔다. 여기에도 맨 앞에서 우리나라 깃발부대들이 열일하고 있었다.
리암의 목 상태가 예전같지는 않았지만, 오아시스 노래 중 가장 듣고 싶었던 Rock N Roll Star를 드디어 들을 수 있었다. 10년전 오아시스 내한공연 때 귀찮아서 안 갔던게 아직도 너무 아쉬운데... 이제 노엘, 리암, Ride의 앤디 벨까지 다 봤으니 이제 오아시스를 거의 본 거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하며 합리화해본다.. (사실 이번 글라스토의 secret set으로 오아시스의 재결합 공연을 기대했는데 역시 헛된 희망이었다.)
지나가다가 West Holts에서 신나는 The Avalanches도 보면서 놀고
피라미드로 돌아와서 The National도 봤다. 기대했던 것 보다 훨씬 세련된 음악을 하는 밴드였다. 정중앙에서 보니까 뷰도 엄청 예쁘다.
여기서 관람!
그리고 Father John Misty를 보러 갈까 하다가, Foo Fighters 보기 전에 체력 충전을 하기로 결정하고 저녁을 먹으러 갔다. 나랑 동행이랑 같이 이런 음식을 2개를 먹으려고 하니 옆에서 외국인들이 너네 절대 그거 다 못먹을꺼라고 도발한다. 그래서 우리는 그 외국인의 모자를 걸고 도전했고 기념품으로 모자를 획득했다. 덕분에 그 외국인들이랑 친해져서 푸 파이터즈때도 같이 공연보고 놀았다.
그리고, 2년만에 다시 보는 푸파이터즈!
2015년 글라스토 헤드라이너로 예정되어 있었던 푸파이터즈는 직전에 공연하다가 떨어져서 다리를 부러지는 사고를 당해 글라스토에 설 수 없었다. 2년만에 다시 돌아온 Foo Fighters는, 그들을 대신해 헤드라이너로 섰던 Florence가 커버했던 그들의 곡 Times Like These를 부르며 공연을 시작했다. 공연도 좋았지만 기타 띵가띵가 치면서 멘트하는게 너무 멋있었다.
2년전 공연하다 떨어져 다리가 부러졌을 때도, 간단한 응급처치만 한 채 다시 무대로 나와 "내가 발은 못 움직여도 기타는 칠수 있다" 면서 끝까지 공연을 마치고 내려갔었던 그들이었다. 푸 파이터즈의 공연은 언제나 가슴을 울리는 그런 락 스피릿이 있는 것 같다(쓰면서도 오글거리는데 진짜임... 내한 오면 무조건 가세요). 안산에서 봤을 때랑 99% 레퍼토리가 똑같았지만 언제 봐도 전혀 지루하지 않았던 공연.
한국에서도 본 적이 있던 만큼 나는 노래들을 다 따라부르며 신나게 놀고 있었는데, 옆에서 외국인들이 그걸 신기하게 봤는지 계속 말을 걸고 어깨동무를 한다. 중간중간 술도 주고 심지어 목마도 몇 번 태워줬다. 10만명이 가득 들어찬 피라미드 스테이지에서 보는 목마뷰는 정말 아름다웠다. 다음에 또 올 기회가 되면 나도 다른 사람들 좀 태워줘야겠다. 신기한 듯 우리에게 말 거는 외국인들에게, 우리는 이거 볼려고 영국에 왔고 글래스톤베리가 내 어릴 적 로망이었다고 하니 우리를 respect한다면서 서울은 정말 멋진 도시라는 이상한 립서비스도 해줬다.
Foo Fighters 공연이 끝나고 난 뒤 다시 그린 피스 존으로 갔다. 원래 Jamie XX가 디제잉하는 곳에 가려다가 누가 페북 그룹에 톰 요크가 여기서 디제잉한다고 하길래 달려온거였는데, 새벽 1시까지 기다렸지만 결국 낚시였다... 사실 이런 낚시는 매년마다 비일비재하다.
글라스토에서의 생활도 어느덧 반이 훌쩍 지나 하루만 남았다. 본 공연 두번째 날이었던 오늘은 Busted를 보고 난 뒤 감격에 젖어 다른 것들은 별로 상관이 없었던 그런 날이었다. 영국의 다른 도시와는 달리, 이 곳에서 동양인은 전혀 차별의 대상이 아니었다. 같은 음악 애호가들에게 있어서 국적이나 성별같은 건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오히려 단지 먼 한국에서 이걸 보러 왔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많은 관심을 받았고, 다들 전혀 모르는 사이임에도 술과 음식을 나누며 페스티벌과 음악 그 자체를 즐겼다. 게다가 사람들은 너무 다양해서 그들의 패션과 춤사위들을 보는 건 더 재미있었다. 다음번에 오면 나도 단단히 준비해올 것을 다짐하며 그들의 모습을 열심히 눈에 담았다.
내일은 대망의 마지막날. 사실 어제나 오늘에 비해 꼭 보고 싶은 밴드가 많지는 않은 날이지만, 이제 글라스토에서 라인업은 더 이상 중요한 요소가 아닌 것 같다. 내일은 아예 밤을 새고 일출까지 볼 예정이기 때문에 평소보다도 더 일찍 잠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