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셋째날 아침이자 본 공연 첫 날. 오늘도 워디뷰에서 경치 좀 구경하다가 내려왔다.
오늘은 새로운 길로 내려가보았다. Green Futures라고 하는 이름을 가지고 있는 여기도 환경과 관련된 곳인 것 같다.
간이 연못도 있고 여기에도 재밌는 부스들이 많다.
부스 구경을 좀 하다가 슬슬 아침을 먹으러 갔는데, 잉글리시 브렉퍼스트고 뭐고 그 어떤 음식도 진짬뽕을 범접할 수는 없는 것 같다.
밥을 다 먹고 피라미드 스테이지에 과연 누가 첫 공연을 할지 궁금해서 서둘러 보러 갔다. 그런데..
금요일 오전 첫 공연의 인파. 원래 금요일 오전이면 슬금슬금 일어나서 짐 챙길 시간인데 벌써 몇 만명이나 부지런하게 공연을 보러 왔다. 우리나라에서는 라디오헤드 공연때나 구경할 수 있었던, 콘솔 뒤까지 사람들로 채워져 있는 광경을 여기서는 언제든지 발견할 수 있다.
Hacienda Classical이라고 하는 크로스오버 오케스트라 밴드였다. 유명한 곡들을 편곡해서 오케스트라로 연주하는 것 같은데 금요일 아침을 여는 첫 공연으로써 굉장히 훌륭했다.
그리고 나서 The Pretenders를 보기 위해 세컨스테이지인 The Other Stage로 이동했다. 그런데,
여긴 아까보다 사람이 더 많다.. 이제야 글로만 읽었던 글라스토의 인파가 실감나기 시작했다.
스테이지 간에 이동하는 길에도 군데군데 작은 스테이지들이 있다. 여기는 BBC Introducing stage인데, 글라스토 출연 밴드 중 일부가 쇼케이스 형식으로 몇 곡씩 공연하는 스테이지이다.
오늘은 이런 애들이 출연한다. 보면 알겠지만 안알랴줌이 곳곳에 있다. 저 TBA가 Blossoms였었나..
맞은편에는 빈티지 디제잉 스테이지도 있고
서커스 천막같이 생긴 이 곳은 John Peel Stage이다. 글라스토의 스테이지는 메인을 제외하고는 조금씩 특색이 있다. 존 필 스테이지는 몽환적이거나 사이키델릭한, 드리미한 밴드들이 자주 오르는데 가장 나의 취향에 알맞은 스테이지였다. Ride, London Grammar, Real Estate, Father John Misty 등이 이 스테이지에서 공연했다.
안에는 이렇게 생겼다. 사진을 찍지는 못했지만 이번에 펜타포트에도 오는 Dua Lipa의 공연을 보았는데 굉장히 좋았다.
그리고 Circa Waves를 보기 위해 다시 아더 스테이지로 돌아가는데
이젠 그 넓은 광장이 아예 꽉찼다. 2015년 글라스토 베스트 공연으로 선정되었던 Circa Waves라서 그런지 인기가 굉장히 많다.
어느 덧 점심 때가 되어 이번엔 고기파이를 선택했다. 가격은 6.5파운드. 어딘가에서 글라스토 음식 진짜 별로니까 많이 챙겨오라고 하는 글을 봤었는데, 솔직히 영국 물가를 감안했을 때 전체적으로 나쁘지 않은 것 같다.
피라미드로 이동해서 Kris Kristofferson의 공연을 보았다. 공연도 좋았지만 더 놀라운게 있었으니
중간에 조니 뎁이 나와 몇 곡 정도를 객원 기타로 같이 연주했다!
끝나고 Royal Blood를 기다리는 중. 이번 글라스토에 한국인들이 200명 넘게 왔다고 하던데, 그래서 그런지 곳곳에 한국어 깃발들이 넘실대고 있다. 특히 저 깃발들은 3일 내내 무대 앞쪽에서 계속 보였다. 의지의 한국인들..
베이스 드럼 2명만으로 이렇게 꽉찬 사운드를 낸다는게 참 신기하다. 2015년에 안산에서 보고 싶었는데 호주 락페에 뺏겨서 못 봤던 아쉬움을 이렇게 풀게 되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v=mR0YgX4qDSQ
가장 듣고 싶었던 Figure It Out. 이 곡이 끝나자마자 바로 존 필 스테이지로 뛰어갔다. 하필 가장 보고 싶었던 Royal Blood와 Ride가 30분 가량 겹치는 바람에, 둘다 포기할 수 없었던 나는 심지어 피라미드에서 어떻게 하면 존필로 가장 빨리 갈 수 있는지 예행연습까지 해봤다.
10분동안 쉴새없이 뛰어가 2년만에 맞이한 RIDE. 도착하자마자 위스키를 홀짝이며 슈게이징 사운드를 들으니 뛰어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까지 10년동안 공연을 보러 다니며 한번도 같은 (외국)밴드를 2번 본 적이 없었는데, RIDE가 드디어 그 징크스를 깨 주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v=XpKzxBMI9wo
포스트락 밴드들의 공연은 아무리 열심히 찍어도 사운드가 제대로 담기지 않는게 너무 아쉽다. (그래서 어쩔수 없이 BBC 오피셜 영상으로..) 개인적으로 라디오헤드보다도 더 좋았던 첫 날 베스트 공연.
그리고 요새 어마어마한 The XX를 보러 다시 피라미드 스테이지로 나왔는데,
진짜 끝이 안 보인다.
넉넉히 20분 일찍 와서 기다리는데 발 디딜 틈이 없다.
https://www.youtube.com/watch?v=hd0ZsrhpnBU&t=18s
사실 그렇게 취향에 맞는 밴드는 아니었는데, 듣던 대로 공연은 매우 훌륭했다. 조금 더 어두울 때 공연했으면 분위기가 더 좋았을 것 같다.
어느덧 다음 순서는 대망의 라디오헤드. 5년 전에 지산에 왔을 때 5시간을 죽쳐가면서 거의 맨 앞에서 한번 본 적이 있기 때문에, 또 그렇게 기다리면서 볼 필요까지는 없을 것 같아서 비는 시간동안 Lorde를 먼저 보고왔다.
도착하자 마자 시작했던 Lorde의 공연. 목소리 뿐만 아니라 퍼포먼스와 무대도 굉장히 파워풀했다.
아니 피라미드 스테이지에 사람이 그렇게 많이 있었으면 다른 데에는 좀 없어야 정상 아닌가... 심지어 다른 스테이지에서는 이제 라디오헤드가 공연하려고 하는데도 사람이 이만큼 많다.
Green Light Intro. 제일 듣고 싶은 노래였는데 오프닝으로 인트로만 해줘서 아쉬웠다. 나중에 셋리스트를 확인해보니 마지막 곡으로 다시 제대로 불렀던..ㅠㅠ
절반 정도 보다가 이제 슬슬 금요일 헤드 라디오헤드를 보러 이동했다.
가운데 나무 사이가 피라미드로 들어가는 입구인데, 이미 여기서부터 사람들이 정체되어 있다.
우여곡절 끝에 겨우겨우 들어가서 드디어 공연 시작. 5년 전이나 지금이나 라이브 실력은 여전히 변함 없는 것 같다. 다만 라디오헤드는 꼭 좌우 스크린에 본인들이 편집한 영상을 틀어주는데 그래서 멀리서 보기는 조금 불편했고 생각보다 공연에 집중하기도 힘들었다. 맨 앞에서 볼 땐 몰랐었는데..
https://www.youtube.com/watch?v=16YHF6a_iK0
나의 라디오헤드 최애곡인 Paranoid Android. 5년 전 지산에서 이 노래를 정말 듣고 싶었는데 2시간 30분동안 안하다가 10번째 앵콜곡(?)때 마지막으로 해줘서 날뛰었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사실 이번에 꼭 듣고 싶은 곡은 Burn The Witch였는데, 본인들도 이 곡을 라이브하면 망한다는 걸 깨달았는지 요새는 잘 안해준다. 아쉽지만 잘 듣기 힘든 Creep을 들은 걸로 만족하기로 했다. (사실 요새는 Creep 엄청 자주 부르고 다닌다.)
글라스토의 라인업은 자비가 없는 것으로 유명한데, 굉장한 아티스트들을 많이 섭외하지만 그들을 다 같은 시간대에 붙여놓아서 정작 다 볼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번 글라스토에서 가장 화제가 되었던 건 Radiohead vs Flaming Lips였다. 플레이밍 립스를 잘 모르던 나는 이걸 왜 고민하지?라고 생각했었는데, 그래도 궁금한 마음에 라디오헤드가 끝나자 마자 20분을 열심히 뛰어가 Flaming Lips의 마지막 앵콜 2곡을 들을 수 있었다. 공연을 보고 나니 라디오헤드를 포기하더라도 좀 더 일찍 올걸 하는 생각이 든다. 사이키델릭이란 진정으로 무엇인지 음악과 퍼포먼스로 보여주는 밴드였다.
https://youtu.be/gEaptmLBp0Y?t=87
Flaming Lips 공연을 마지막으로 텐트로 돌아왔다.
글라스토 하면 비, 장화가 떠오를 정도로 6월말의 서머셋의 날씨는 비가 많다. 그리고 글래스톤베리가 열리는 Worthy Farm은 원래 농장인 만큼 비가 오면 그냥 그대로 뻘이 되기 때문에 장화는 필수로 챙겨야 할 물품 중 하나다. 작년만 해도 비가 너무 많이 와 텐트에 물이 새는 것은 물론, 그냥 신발을 신으면 발이 빠져서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상황이었다고 한다. 잔디밭에 앉는 건 생각도 할 수 없는.. 그런데 올해는 날씨가 너무 좋았다. 토요일 새벽과 오전에 잠깐 비가 내린 것 말고는 계속 맑거나 구름이 낀 날씨가 지속되었다. 장화는 사놓고 잠깐밖에 못 신었고, 우비는 나중에 추워서 바람막이용으로 입었다. 글라스토만 10번 정도 참가했었다고 하는 사람의 말로는 2007년 이후로 이렇게 맑은 페스티벌은 처음 본다고 했다. 공연 보다가 힘들면 잔디밭에 앉아 쉬면서 맥주를 마실 수 있고, 밤에 텐트로 돌아올 때 언덕에서 잠깐 누워서 하늘을 바라볼 수 있는 올해 날씨는 천운이라 생각될 정도로 놀기에 좋았던 것 같다.
이렇게 본 공연 첫날 밤이 저물어갔다. 지난 이틀은 글라스토가 무엇인지 느끼기 위해 열심히 탐험을 했다면 오늘은 처음으로 공연들을 접한 날이었다. 사람들은 생각보다 더 어마어마하게 많았고, 그런 많은 사람들과 같이 보는 공연은 더욱 웅장했다. 다만 어제 텐트에서 잠을 제대로 못 잔 탓인지, 라디오헤드를 보는데 몸이 생각보다 많이 피곤해졌다. 이날 새벽에는 글라스토 영화관에서 한국 영화 '옥자'를 상영한다고 해서 동행들은 영화를 보러 가서 거기서 틸다 스윈튼이랑 사진도 찍었다고 했는데, 나는 내일을 위해 텐트로 먼저 들어가 쉬었다. 텐트에서 페이스북을 보는데 내가 있었던 곳이 BBC Live로 실시간 중계가 되는 것을 보니, 내가 정말 글래스톤베리에 있긴 하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