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만과 편견

겪지 않고는 함부로 판단하게 된다.

by 오월

작은 소도시에서 지냈던 내가 다녔던 초등학교는 학생 수가 많지 않았다.

최근 출산율 저하로 각 반의 학생 수가 20명 안팎이라는 이야기를 주변에서 자주 들었지만 나의 초등학생 시절 학생수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마저도 바로 아래 학년부터는 어느샌가 하나의 반으로 통합 운영될 정도로 조그마했던 학교에서 6년 내내 생활한다는 것은 이미 서로가 누군지 다 안다는 말과도 같았다.


대부분의 아이들과 섞여 잘 지냈지만 딱 한 명. 그 아이와는 쉽사리 친해질 수 없었다.

참 독특한 아이였다. 언제나 콧물을 질질 흘리고 다녔으며 콧물이 흐르지 않을 때에도 콧물자국만은 선명했던 아이. 친구들이 더럽다고 면박을 주어도 일종의 방어기제였는지, 정말 장난으로 넘겼는지는 내가 알 턱이 없었지만 온갖 면박에도 뻔뻔할 정도로 대꾸하던 아이였다.

그 아이는 콧물을 쓱 닦아 면박 주는 아이들에게 묻히려는 행동을 보였고 그에 짜증 났던 친구들이 때리기라도 하면 곧 죽을 것처럼

"선생님!!!!! 00이가 때려요!!!!! 아아악!!!!!" 하고 외치는 아이였다.

아예 겉도는 아이는 아니었지만 은근한 무시와 비아냥이 깔린 태도로 그 아이를 상대하고 있었다.


그 아이뿐 아니라 친구들 사이에 겉도는 다른 아이들을 보며 답답함을 느꼈다.

감히 불쌍하다는 생각을 가졌다. 당시의 나는 어색한 친구는 있을지언정 나를 싫어하는 친구는 없었기에 따돌림당하는 아이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왕따 당하는 아이를 멋대로 불쌍하게 여기면서도 왕따를 당하는 데는 그 아이의 태도도 문제가 있는 것이라 판단했다.




중학교 시절 난생처음 왕따를 당했다.

이전까지는 왕따를 당하던 아이들이 어떤 기분을 느낄지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아니,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 감히 멋대로 생각하고 판단했다. 그 아이 입장에서는 자신에게 직접 위해를 가했던 이들이나, 그것을 안쓰럽게 바라보며 방관하던 이들이나 뭐가 달랐을까.

나의 오만함과 편견이 참으로 부끄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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