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아웃은 아닌데

나는 지금 토스트야

by 오월

뭐랄까, 번아웃은 아니지만 무기력한 상태가 몇 날 며칠을 이어간다.

날씨의 영향을 많이 받는 편이라 그런지 장마 주간이 시작되기 전부터 흐린 하늘과 푹푹 찌던 더위는 나를 지치게 만들었다. 신체리듬도 직장인 신체리듬이라 그런가, 휴직 상태가 꽤 오랜 시간 지속되니 스스로 나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겠다던 포부는 사라진 지 오래다.


직장을 다닐 적에는 직장 동료와 겪는 갈등 최고조 상태로 너무 힘들었다.

오랫동안 알고 지냈다는 이유로,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나를 생각해서 하는 말이라는 포장으로 나를 깎아내리는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더 나은 사람이 되어야지'라는 생각으로 무너진 자존감을 회복하기 위해 부단히도 노력했다.

솔직히 갓생 사는 멋진 사람들처럼 새벽부터 일어나 운동하고 독서, 공부 등의 활동을 하지는 못했지만 조금씩 나은 삶을 살아가기 위한 걸음을 뗐다. 마치 막 첫걸음을 내딛는 아이처럼.

비록 운동 한 번 다녀오면 방전이 되어버리는 비루한 몸뚱이였지만 내 기분을 나아지게끔 자기 계발 영상이라던지 좋아하는 기록물 영상을 보며 애써 회사에서 있었던 부정적 감정을 털어내기 위해 애썼다. 한 주간 일하느라 수고했다며 주말에 가고픈 카페를 알아보는 활동도 즐거웠다.


휴직 상태로 꽤 오랜 시간이 흘렀다. 퇴사만 한다면 이번엔 꼭!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싫어하는 것이 무엇인지. 스스로와 친해지는 시간이 되게끔 하려 했다.

하지만 퇴사 전 가보고 싶다던 카페 근처도 갈 생각을 하지 않았고 즐겁게 시청하던 자기 계발 영상도 어느새 뒷전이었다. 일기장은 빈 공간이 우후죽순 생겨났으며 스케줄러도, 블로그에도 글을 작성한 날보다 작성하지 않은 날이 더 많아졌다. 퇴사만 한다면 나는 더 나은 삶을 살겠다며 매번 다짐하지만 이번에도 희망찬 포부로 끝이 났다.


분명 번아웃은 아닌데, 번아웃까지의 단계는 아닌데.

나는 무기력했다.

번아웃 상태의 나는 지금의 모습보다는 더욱 심각했다. 그 누구도 만나기 싫어했으며 무언가 해보고자 하는 의욕은 소멸되었다. 자기 계발 영상은 무슨, 운동도 글쓰기도 생산적인 활동은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그저 하는 것이라고는 내 뇌를 도파민에 절일 뿐이었다. 재미도 없는 숏츠 영상을 무표정으로 계속 훑어 내렸다.

지금의 나는 그 정도 단계는 아니다. 주 2회 규칙적으로 요가도 배우며 적당히 사람들과 소통도 했다. 다독은 아니지만 책도 꾸준히 읽었다. 나름대로 무언가 하고는 있었다. 다만, 내 마음은 즐겁지 않았다.


그러던 중 귀여운... 내용은 전혀 귀엽지 않은 신조어를 보았다.

토스트 아웃.

아예 새까맣게 타버린 건 아닌데 토스트처럼 노름 직하게 구워진 상태로 번아웃 직전의 약간 무기력한 상태라고 한다. 사람들 생각하는 게 너무 귀엽다. 번까지는 아니지만 토스트라니!

하지만 내용은 전혀 귀엽지 않아!!


내가 번아웃 시기를 겪었을 때 스스로 이겨내고자 할수록 늪에 빠지는 기분이 들었다. 분명, 나는 이 상황을 헤쳐나가고 싶고 무엇이든 잘 이겨내고 싶은데 결과물은 엉망진창이었다. 이전보다 에너지는 배로 소모시켰지만 결과물은 이도저도 아닌 무언가.

그 시기를 어떻게 극복했나 곰곰이 생각해 보니 주변인들의 도움과 시간이 나를 번아웃에서 벗어나게끔 도와주었다. 무기력한 상태의 나를 이끌고 새로운 환경에 데려가 주었다. 물론 평소 내가 좋아하던 사람이라 가능했던 일이었다. 어정쩡하게 친한 사람이 그랬다면? 으. 상상만으로도 싫다.

새로운 환경은 나에게 자극을 주었고 정신을 차려보니 원래의 내가 되어 있었다. 그 이후 혼자 근교 여행을 자주 다녔던 것 같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면죄부를 쥐어주었다.

다이어리를 작성하는 사람들이라면 어느 순간 딱! 멈추는 시기가 존재할 것이다. 나에게는 5월과 11월이 멈칫하는 시기였다. 작년 스케줄러와 일기장을 확인하니 대부분의 모든 기록이 5월과 11월에 공란이 많았다.

단순히 여름에 무기력해지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그래서 올해 스케줄러를 받자마자 안식월을 지정했다. 이때는 기록이 없어도,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자책하지 말자는 면죄부였다.

6월을 살아가는 지금, 스케줄러를 펼쳐보니 5월은 스케줄러가 비어있었다. 나의 에너지 소모 시기를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상반기와 하반기를 맞이하기 한 달 전. 나는 그때 무기력해지는구나.

물론 빈 페이지들을 보며 속이 쓰리긴 하지만 먼슬리에 표기된 안식월이란 글자를 보고 다독였다.

그래. 지금은 안식월이니까. 쉬어가도 괜찮아. 잘 쉬고 나중에 더 잘하지 뭐!


번아웃은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 생기는 것이라기보다,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에게서 나타나는 현상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사실 번아웃 시기에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내 모습이 너무 싫었는데 오히려 너무 열심히 살고 싶었기에 그랬구나 싶었다.

다행히 지금은 번아웃은 아니니까.

토스트아웃 시기니까 얼마나 다행인가! 이름도 귀여운 토스트아웃이니까.

다그치지 말자. 천천히 해도 되니까 스스로 잿더미가 되지는 말자. 그냥 내 마음 가는 대로 움직이자. 그러다 보면 이름만 귀여움뿐인 토스트아웃 시기에서 벗어나 있는 나를 발견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