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우주

우리에게는 각자의 안전공간이 필요하다

by 오월

'내 방'이란 개념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다. 그저 허울뿐인 공간이었고 사실상 창고로 쓰이거나 공용 공간으로 쓰일 뿐이었다.

어릴 적 나는 주택에서 살았다. 지금은 재개발로 터조차 남아있지 않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끔찍하면서도 내가 좋아하던 공간이었다.


내가 살던 군산 집은 산 초입구에 위치해 있어 습기가 가득했다. 내 방으로 사용하기로 했던 방은 도배까지도 싹 해뒀지만 감당되지 않는 습기로 곰팡이가 금방 슬었고 그저 허울뿐인 방으로 창고 공간처럼 활용되었다. 습기 가득했던 방에 들어서면 눅눅함이 느껴졌고 바닥을 걸을 때마다 쩍- 쩍- 하고 장판에서 발이 붙어 천천히 떨어져 나갔다. 책장에 있는 책들은 습기를 머금어 눅눅한 질감이었고 간혹 페이지 중간중간 곰팡이가 슬어있기도 했다.

그렇게 사람이 실사용할 수 없는 볼품없는 방이었지만 한편으로 가장 아늑한 공간이기도 했다.

3대가 함께 모여 살던 조그마한 주택에서 할머니의 차별에 상처받은 마음을 달랠 곳은 눅눅한 창고방밖에 없었다. 자존감은 박살 나고 자존심만 매우 센 내가 티 나지 않게 마음 놓고 울어버릴 수 있는 공간은 그곳밖에 없었다. 내가 한껏 울어도 습기를 머금은 방에서는 내가 눈물을 흘렸던 흔적조차 찾을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창고방은 유년기의 슬픔을 보관한 창고였다. 좋은 기억을 담은 곳이 아니라 슬픔을 묻어둔 곳이었다. 내가 우리 집에서 제일 좋아했던 공간은 다름 아닌 마당이었다.

옆집과 붙어있는 낮은 담장 너머 홀로 지내시는 인상 좋은 할머니와 인사하는 건 나의 아침 루틴이었다. 봄이 되면 커다란 돗자리를 펼쳤다. 그 위에 소꿉놀이 세트를 쭉 진열했다. 접시와 찻잔, 티팟을 꺼내 들고 홀짝이는 시늉을 했다. 우리 집에서 바로 보이는 산은 월명공원이었다.

10분 정도 걸어올라 가면 수시탑에 도착할 만큼 집에서 가까운 공원이었기에 봄이 되면 벚나무가 가득한 월명공원은 분홍빛으로 물들었다. 초등학생 시절 그림을 그리면 봄날의 월명공원은 언제나 초록색 하나 찾아볼 수 없는 분홍색으로 칠했다. 그 광경을 집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고 편하게 구경했다.

여름이 되면 미니 볼풀장을 설치해서 동생과 함께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물놀이를 즐겼다. 제철과일도 먹고 또래 아이들과 함께 놀기도 했으며 저녁에는 삼겹살을 구워 먹기도 했다. 군산의 겨울은 너무나 추웠고 눈이 가득 쌓여있었다. 잠에서 덜 깬 나는 마루 문을 열기 전 불투명한 창으로 하얀색밖에 보이지 않는 공간을 보며 눈이 많이 왔음을 깨닫고 차가운 눈을 가지고 눈뭉치를 만들었다.

그때는 집이 없어질 것이라는 생각도 해본 적 없고 너무나 평범했던 일상이었기에 그리움을 느낄 것이라는 생각조차 할 수가 없었다.


이후에도 내 방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 현재까지도. 그래서 나만의 공간에 대한 열망이 있다는 것을 알아채지 못했다. 카페에 자주 방문하다 보니 내가 좋아하는 곳은 무언가 유사한 특징이 있었다. 그리고 엄마와 나는 성향이 정반대이다. 그러다 보니 별거 아닌 일에도 의견충돌이 생기곤 한다. 가장 가깝고도 먼 친구 같은 존재였다. 그럴수록 더욱 나만의 색으로 칠해진 공간에 대한 열망은 점차 커져만 갔다.

나는 외부에서 오는 자극들을 잘 걸러내지 못한다. 내게는 취향에 맞지 않는 인풋보다 아웃풋이 더 필요했다.

그저 고요한 곳에 나를 던져둘 필요가 있었다. 번잡하게 머릿속을 떠돌아다니는 생각들을 더 추가할 게 아니라 정리를 해줘야 했다.


하지만 어디 현실이 그리 만만하던가?

내가 자취하고 싶다는 말을 하면, 자취선배들 대다수는 그냥 결혼 전까지 최대한 부모님 집에서 지내는 것이 좋다고 이야기한다. 집에서 숨만 쉬어도 돈이 나간다나?

그리고 지금 살고 있는 집이 위치가 좋았다. 어디를 가던 최대 1시간을 넘는 법이 거의 없었다. 지금은 그만뒀지만 직장과도 도보 20분 거리였고, 번화가도 30분 내외로 도착할 수 있는 거리였다. 자주 방문하는 곳은 30분이면 다 갈 수 있었다. 서울경기권에서 지내는 다른 지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이게 얼마나 축복받은 것인지를 깨달을 수 있었다.

그래서 당장 자취를 하기보다 내 눈에 담고 싶은 공간, 분위기, 온도를 나누려 짐을 챙겨 들고 카페로 향한다. 온전히 나만의 공간은 아니지만, 적어도 좌석 하나에 딸린 책상 한편은 커피 한 잔 값으로 나의 공간이 되어주었다. 점차 sns에서 유명한 카페보다는 내 취향에 맞는 공간, 나의 색과 일치하는 공간을 찾아 헤맨다.

그곳에 도착하면 나와 닮은 사람들이 존재한다. 나는 오늘도 커피 한잔 값으로 나의 공간을 샀다.

커피 내리는 잡음, 공간을 가득 채운 원두 향, 잔잔한 인디 감성의 노래, 그곳에 존재하는 사람들의 조곤거리는 말소리를 오늘도 수집한다. 나만 존재하는 공간은 아니지만 군중 속에서 홀로 앉아 뾰족하게 나에 대해 생각한다. 나의 세계를 오늘도 조금씩 다듬어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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