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볼 땐, 엄마가 나한테 독립해야 해
독립. 다른 것에 예속하거나 의존하지 아니하는 상태를 의미한다.
어릴 때 독립적인 사람이 되라는 가르침을 받았다. 독립이 주는 의미를 알고 받아들였다기보다 환경이 그렇게 교육하고, 교육을 받게끔 만들었다.
맞벌이 부부가 당연한 것이 되어버린 요즘. 전업주부를 찾아보기란 쉽지 않다. 내가 어릴 적만 하더라도 맞벌이 부부가 흔하지 않았다. 대부분의 가정에서 엄마는 전업주부로, 아빠의 사회생활로 벌어오는 돈으로 생활을 꾸려갔다. 저학년까지만 하더라도 엄마는 전업주부로, 학교에서 부모님이 참여가 필요한 행사에는 최대한 참석하며 도왔다.
3학년 무렵 담임선생님이 나를 불러 세웠다. 방학을 코앞에 둔 시점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함께 하교하려던 친구와 함께 선생님께 가자 선생님은 조심스럽게 어떠한 질문을 내게 건넸다.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생활이 어려운 학생들에게 혜택을 주는 부분이 있는데 신청이 필요하냐는 식의 내용이었다. 사실 그 질문만으로도 약간 부끄러웠지만 아무렇지 않은 척했다. 하지만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선생님의 잘못이 아니었다. 그저 나의 무지에서 옆의 친구에게 질문을 했을 뿐이다.
"부도가 뭐야?"
"사업 망했다고."
부도란 단어를 난생처음 들었던 나는 순수한 궁금증으로 친구에게 물었고, 나의 질문에 친구도 순수하게 대답을 해준 것뿐이었다.
"아."
그 이후에 무슨 대화가 더 오고 갔는지, 내가 신청서류를 들고 왔는지, 어쨌는지 그런 것은 기억에 남는 것이 없다. 그저 내게 남아있는 것은 당시의 수치심뿐이었다. 하지만 애써 쿨한 척,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친구와 함께 하교했지만 머릿속은 대화를 하면서도 부도란 단어가 하루종일 맴돌았다.
당시 우리 집에는 빨간딱지가 수두룩하게 붙어 있었고 가뜩이나 햇볕이 잘 들지 않는 어두컴컴한 집은 사방곳곳에 부착된 빨간딱지로 더욱 우중충했다. 딱지가 붙기 전에도 우리 집엔 비싼 것 하나 없었다. 정말 생활을 하는데 필요한 살림살이들 뿐이었다. 푼돈 수준인 물건에 딱지를 붙이던 그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렇게 엄마는 어쩔 수 없이 맞벌이 전선에 뛰어들었다.
나와 동생이 일찍이 혼자 하는 것들에 익숙한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실이었다.
필연적으로 혼자 하는 것이 익숙할 수밖에 없던 시간들을 보냈다.
아파도 혼자 끙끙대는 것도, 거리가 상당한 병원을 혼자 방문하는 것. 퇴근 시간이 다 되어가지만 간혹 늦어지던 엄마의 퇴근 시간과 그 공백시간을 함께하는 어스름한 노을 지는 해 질 녘도 우리에겐 너무나 익숙한 것들이었다.
이후 사춘기를 맞이하고 나서는 당연스레 가족보다 친구가 더 소중한 시기를 지내고 개개인의 성향을 알고 난 후에는 혼자 보내는 시간을 소중히 사용하고 있다. 그래서 나는 생각이 많아지거나 힘들 때 혼자 여행을 떠난다. 먼 곳이 아니더라도 잠시 쉬어가는 시간을 좋아한다.
혼자 여행을 다닌다고 해서 독립적인 것은 아니다. 나도 혼자 잘 놀고 오겠다며 훌쩍 떠나지만 정작 그 좋은 것들을 보고 나눌 사람이 곁에 없으면 아쉽고 쓸쓸한 마음에 엄마에게 전화를 건다. 다만, 혼자라서 여행을 가지 못한다는 사람보다는 독립적일 것이라 생각한다.
비록 육체적인 독립은 하지 못했더라도 나름 정서적 독립은 했다고 생각한다. 쌓인 스트레스를 어떻게 해소해야 할지, 나를 다루는 법을 알아가고 있다.
가끔 먼 곳으로 여행을 갈 때는 엄마에게도 함께 갈 것이냐고 묻는다.
혼자 여행하기를 좋아하지만, 가끔 그 시간을 포기하고 엄마와의 시간을 선택할 때가 있다. 방학을 끝마치고 학교에 나오면 친구들은 서로 방학 때 어디를 다녀왔는지에 대해 신나게 이야기하는데, 우리 집은 당장 먹고살기 급급해 가족여행을 다녀오지 못했다. 그때의 기억이 무의식적으로 남아있는 것인지 엄마와 여행을 함께 하면 싸우는 것을 분명히 알면서도 엄마와의 여행을 추진한다.
엄마는 그때마다 "상황 봐서."라고 이야기한다. 왜 내가 꼭 같이 가달라고 사정하는 것 같지...?
가뜩이나 급작스런 마음으로 여행 계획을 세우고 떠나는데 엄마의 대답은 여행 계획한 일자의 하루, 이틀 전에나 성립되는 편이다. 나도, 엄마도 항상 여유롭지 않은 계획을 세우고 결정을 내린다.
'상황 봐서'라는 4음절을 듣고 나면 괜한 짜증이 올라온다. 기껏, 나의 소중한 혼자만의 시간을 포기하고 엄마에게 제안한 건데! 엄마랑 같이 여행 가면 내가 가고 싶은 곳을 포기해야 하는 건데 그 고통을 알아주지 않는 엄마가 야속해서 됐다며, 혼자 갈 것이라고 나도 튕겨본다.
여행을 가네, 마네로 여행 출발 전부터 한참을 투닥거리고 엄마를 동생을 함께 꼬셔본다.
극강의 집돌이 성향을 지닌 동생은 당연히 가지 않을 것이라 대답한다.
"엄마도 누나 따라가게?"
같이 놀고 싶다고 하면 얼마나 좋을까?
"야, 네 누가 혼자 칠칠맞고 불안해서 어디 혼자 보내겠냐? 툭하면 휴대폰 어디다 두고 나와, 지갑 못 찾아..."
당사자를 앞에 두고 꽤 오랜 시간 '칠칠맞은 네 누나'에 대해 일장연설을 진행한다. 그 칠칠맞은 행동들은 대부분 다 청산한 지 오래인데 엄마의 눈에는 초등학생 시절에 머물러 있는 딸이 보이나 보다.
불안하다는 핑계로 핀잔을 주며 꾸역꾸역 여행길에 동참한다. 그냥 솔직하게 같이 여행하고 싶다 말하면 좀 좋아?
다른 부모들은 빨리 독립하라고 하거나 이중으로 나가게 되는 돈 때문에 독립을 반대하던데 우리 엄마는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서른 살, 칠칠맞은 딸이 불안해서 나의 독립을 반대한다. 물론 이중으로 나가는 돈도 무시할 순 없지만.
농담 반, 진담 반 독립이 필요한 건 내가 아니라 엄마라 말한다.
내 나이 벌써 서른이 되어버렸는데 엄마의 눈에는 덩치만 컸지, 칠칠맞은 초등학생 시절에 머물러 있나 보다.
만약 내가 독립하면 우리 엄마는 심심해서 어떻게 지내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