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는 끔직이도 싫었던 나의 홀로서기(?) 시작
인간에게 있어 선택의 권리가 있다는 건 참으로 좋은 것이다.
나는 지금껏 그 권리를 잘 사용해 왔었고, 그래서 선택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좋은 것인지를 알지 못했다.
반에서 영향력 있는 아이는 아니었지만, 그 누구와도 사이좋게 지내는 아이가 바로 나였다.
선생님 입장에서는 누구를 짝으로 붙여놔도 싸우지 않고 잘 지내니 그야말로 자리배치할 때 편한 아이였을 것 같다.
나는 무리의 중심에서 힘 있게 내 의사를 표현하는 아이는 아니었지만 반 친구들과 별다른 문제없이 두루두루 잘 지내는 아이였다.
그래서 체육 시간이나 소풍 갈 때처럼 짝을 지어서 움직여야 할 때는 서로 자신과 함께 앉자며 요구하는 친구들이 있어 선택에 있어 곤란함을 겪기도 했다.
그 당시에는 이것이 엄청난 힘인지 몰랐다.
중학교에 입학하고 나서 나의 일상의 큰 변화가 생겼다.
부모님의 이혼으로 정들었던 고향을 떠나 외가로 내려오게 되었다.
낯가림이 심했던 나는 새로운 지역으로 와서 새로운 사람들과 관계를 맺어가는 데 대한 부담감을 느꼈다.
아는 사람 하나도 없는 곳, 학기 끝자락에 전학 온 아이.
수많은 눈동자들이 내게 꽂히던 그 순간은 아직도 잊지 못한다.
한창 예민한 감수성을 지닌 시기에 환경이 크게 변한 건 정말... 최악이었다.
지금에서야 부모님 이혼이 뭐 대수인가, 싶지만 당시만 해도 부모님의 이혼이 나에게 있어 큰 결함처럼 느껴졌다.
다행히 전학생에게 관심을 가져준 친구들이 있어서 전학 첫날부터 하교를 같이 할 친구도 생겼다.
나름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친구들과 느리지만 천천히 관계를 쌓아가고 있었다.
"내가 왜? 싫은데?"
여자들 사이에서 홀수가 난감한 이유.
때는 체육시간, 하필 내가 속한 무리는 홀수였다.
매번 줄 설 때 혼자 서는 친구에게 미안해서 돌아가면서 혼자 서는 것이 어떠냐는 의견에 나온 대답이었다.
너무나도 단호한 대답에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의견을 제시한 나도 민망했지만, 당사자였던 친구를 앞에 둔 상태였던지라 그 친구도 민망하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의견 제시한 나도 체육시간에 혼자 서 있는 건 정말 끔찍하다고!
하지만 그럼에도 그런 의견을 냈던 것은 나의 위선이었다.
체육시간마다 당연스럽게 그 친구를 혼자 내버려 두었던 나의 일말의 죄책감을 덮고 싶어서였는지 모르겠다.
위선이었으면 뭐 어떤데!
나는 비록 내 위선에서 기인한 의견이었다 할지라도 나는 약간의 희생을 감수할 마음이 있었다.
냉정한 대답에 나는 할 말을 잃었고, 뻘쭘해진 나도 괜한 한 마디를 보탰다.
"한번쯤 혼자 설 수도 있지, 왜 그렇게 이기적이야?"
어쩌면 저 한 마디로 이전부터 존재했었지만 서로 내색하지 않았던 감정들.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고방식과 그로 인해 쌓아 두었던 상처가 더욱 달그락 거리며 부딪치기 시작했는지도 모른다.
별거 아닌 작은 언쟁을 기점으로 나는 무리 내에서 겉돌게 되었다.
그렇다. 왕따의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