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 나지 않는 발버둥

내 나름대로 혼자가 익숙해지려 했던 노력

by 오월

비록 처음은 나의 의사가 전혀 반영되지 않은, 혼자서 해내야 하는 생활을 해야만 했다.

처음에는 집 앞 1분 거리 슈퍼에 갈 때에도 남들 시선에 극한의 두려움을 느끼고 풀착장을 하고 다녔던 내가 지금은 혼자 여행을 다니는 경지에 이르기까지는 솔직히,

마냥 순탄하지 않았다.


혼자서 무언가를 한다는 것 자체로 괜히 위축이 되었다.

내가 어딘가 하자가 있는 인간이라 혼자인 것 같았다.

학교에서 느끼던 감정을 외부에서까지 느끼고 싶지 않았다.


엄마는 내가 과도하게 외적인 부분에 집착을 하자(슈퍼 갈 때 풀착장) 엎어지면 코 앞인 곳을 가는데 그렇게까지 해야 하냐고 타박을 했지만 그 말을 들을 때 나도 나 자신을 그렇게 타박했다.

"아, 나 알아서 한다고!!!"

내 입에서는 이렇게 날 선 반응이 터져 나왔지만 속으로는 나도 격하게 동의하는 바였다.

나도 내가 심각하게 집착하는 것 같다는 건 느꼈지만 머리와 몸은 동일한 나의 신체기관이 아니었다.

머리로는 과도한 집착행위를 멈추라고 외쳐대고 내 몸은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고 있었다.

나도 내 모습이 싫어서 눈물이 새어 나왔다.

나름대로 특단의 조치가 필요했다.





1. 사색하는 시간 (나에 대해 생각하기)

외면에 대한 과도한 관심을 내면으로 돌리기 시작했다.

우선 내가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또 무엇을 싫어하는지. 나의 장점과 단점이 무엇인지.

혼자 있는 기간 동안 힘들었던 이유 중 하나는 타인의 시선이 두려워서도 있었지만, 근본적인 것은 내가 별 볼 일 없는 사람처럼 느껴졌던 이유에서 출발했을 것이다.


어렸을 적부터 나를 알아가는 테스트를 좋아하긴 했었다. 최근 유행하는 MBTI도 초등학생 시절 이미 검사도 해 보고, 같은 유형의 친구들과 조를 지어 발표하는 시간을 갖기도 했었다.

설명을 읽어보면 내가 어떤 성격의 사람인지, 어떠한 환경을 좋아하고 어떤 환경에서 스트레스를 받는지.

그 당시의 나는 스스로를 평가할 때 좋은 점 하나 찾지 못하고 비판할 것들만 찾았었다.

'나는 말투가 싸가지가 없나 봐'

'와_ 진짜 내 표정. 인상 진짜 더러워 보인다.'

'내 성격 좋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나? 하긴 그러니까 지금 이 모양이지.'

스스로를 학대하는 생각뿐인 내게 유형검사의 설명은 따뜻하기 짝이 없었다.

나는 쉽게 하는 일이라 그다지 장점이라 생각하지 못한 것들이 나의 장점이 되기도 했고, 나는 내 생각보다 훨씬 괜찮은 사람이었다.


나를 알아가는 첫 시작은 유형검사의 도움을 받으면 좋다. 솔직히 나를 알아간다?

그 질문처럼 철학적인 질문이 또 어디 있겠는가.

이후에는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기록했다. 좋아하는 것들을 기록할 때 저절로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나라는 사람을 제 3자의 입장처럼 바라보며 나에 대한 기록을 시작했다.

그리고 매해 버킷리스트를 갱신한다. 나는 이 작업을 빠르게 시작하는 편인데, 추석 연휴무렵 여유롭게 카페에 앉아 '내년에 이루고 싶은 나의 모습'을 상상한다.

내 평생에 걸쳐 이루고 싶은 소망이라고 하면 너무 광범위하고 언젠가 되겠지 하는 마음으로 시도할 것 같지 않아 신년맞이로 그 해의 이루고 싶은 것들의 버킷리스트를 작성하고 갱신한다.

당장의 현실은 힘들지만 그러한 기록들이 쌓이고 그것들을 이루어 갈 때 점점 '진짜' 나에게 가까워지는 기분이 든다.



2. 산책

부정적인 생각은 예고도 없이 불쑥 뛰쳐나온다. 마치 천재지변 같이.

생각이 너무 많았지만 그 생각의 회로가 부정적으로 가기 때문에 중간에 생각을 끊어주는 순간도 필요하다. 그리고 산책은 '혼자서' 하기에 가장 좋은 취미이기도 하다.

어떠한 특정 장소에서 시간을 보내기란 타인의 시선이 의식되지만 혼자 길을 걸어가는 사람을 이상하게 쳐다보는 사람이 있나? 없을 것이다.


사실 집 밖으로 나서기까지가 너무나 오랜 시간이 소요되지, 막상 집 밖으로 나오면 찬 공기가 폐부에 꽉 들어차서 상쾌하다. 집에서 나는 향과는 다른 공기가 느껴진다.

복잡했던 머리가 함께 식어지는 느낌이 들고 내가 지금껏 했던 고민은 별 것 아닌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산책이라 사실 집에서 입는 목 늘어난 티셔츠를 대충 입고 나와도 되지만 개인적으로 산책할 때 적당히 깔끔하고 편한 옷으로 갈아입는다.

집 안과 밖의 경계는 명확히 해두자는 나만의 규칙이다. 깔끔한 옷을 입고 나와 좋아하는 플레이리스트를 실행시킨다. 내가 음악에 조예가 싶은 것은 아니지만 음악을 들으며 걷는 평범한 거리는 더 이상 평범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밝은 노래를 들으며 걸으면 걸음걸이부터가 다르다.

스스로 걸을 때 발에 실린 무게감이 다르다는 게 깨달아질 때면 웃음부터 새어 나온다.

나 혼자 이미 나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 한 편을 뚝딱 찍고 있었다.


When Will My Life Begin? (Mandy Moore)

개인적으로 출근할 때나 아침에 바쁘게 움직여야 할 때 라푼젤 ost 들으면 발걸음이 가벼워진다.



3. 목욕탕, 하지만 굳이 목욕탕일 필요는 없지. '잘' 씻으면 될 뿐.

사실 굳이 목욕탕이 아니어도 된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건, 청결을 갖추기 위한 샤워시간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엄청 깔끔해서 내 주변에도 하루에 아침, 저녁으로 샤워하는 사람들이 널렸다.

매일 머리를 감지 않으면 더럽다고 놀리기도 한다.

그만큼 우리나라 사람들, 청결에 예민하다. 그런데 목욕탕? 이게 혼자 시간 보내는 거랑 무슨 연관이 있다고?

그런데 생각보다 잘 씻는 거, 어려운 일이었다.


우울할 때는 씻기도 싫어진다. 아무것도 하기 싫고 그저 누워있고만 싶다.

생각보다 '잘' 씻어내는 게 어려운 일이었다.

밖에 나가지 않아도 되는 주말에는 늦은 아침 눈을 떠서 물 근처에도 가까이 가지 않았다.

만사가 귀찮았고 이불속에 그저 드러누워 있었다.

내가 우울할 땐 씻는 것 자체가 고난도 미션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목욕탕과 관련된 기억 중 딱히 좋았던 것은 없었다.

모르는 사람들 틈에서 씻는 것, 습기를 머금은 따뜻한 공기, 초록색 이태리타월에 밀리는 것이 때인지 피부인지 알 수 없는 고통, 씻고 나오면 느껴지는 극한의 추위.

그야말로 전부 싫었다. 간지럼은 또 얼마나 타는지 목욕탕을 갈 때마다 엄마와 나는 서로가 각자의 이유로 힘들었다.


그러다가 애니메이션에서 접한 목욕 후 우유를 마시는 장면을 보고 오랜만에 혼자 목욕탕에 방문했다.

어릴 적 목욕탕에 갈 때 유일하게 좋았던 건, 따뜻한 공기 속에서 음료를 마실 때였다.

그리고 씻는 것이 목적인 곳에는 '혼자' 방문했다고 시선을 보내는 이가 없었다.

난생처음 매점 이모에게 커피를 주문 후 빠르게 환복하고 온탕에 들어가기 전 간단히 샤워를 한다.

이모가 가져다준 얼음 동동 띄워진 아이스커피를 음미하며 온탕으로 들어간다.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고 멍하니 있다 보면 잡생각들이 비워진다.

더울 때쯤 아이스커피 쪽 빨아들이면 그저 힐링시간과 다를 바 없다.

샤워타월에 내가 좋아하는 향의 바디워시를 이용해서 내 몸의 더러움을 씻어낸다.

씻어내는 것이 그저 먼지뿐만은 아닐 것이다. 괜히 내 복잡했던 생각과 마음들까지도 개운하게 씻어내는 기분이다.

평소 집에서는 귀찮아서 잘 사용하지 않는, 간단히 씻어내기만 하면 되는 마스크팩을 하기도 하고 좋아하는 향의 바디로션도 온몸에 듬뿍 발라 향을 만끽한다.

괜히 내 피부에게 양분을 공급해 준다. 평소에는 하지도 않았을 행위인데 목욕탕이라고 굳이 해준다.


씻고 나온 후 평소 집에서 씻은 후 느낄 수 없는 정도의 상쾌함을 만끽하며 집으로 향한다. 집에서도 '잘' 씻어주기만 한다면 문제 될 것은 없다.

하지만 나는 집에서는 느낄 수 없는 감각을 느끼고 싶어 '굳이' 목욕탕에 방문한다.



4. 부끄러울 정도의 작은 도전과 성취

당시의 나는 혼자인 것에 노이로제가 걸려 있는 상태였다. 그래서 혼자 무언가 해야 할 때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았다.

배달의 민족이 생기기 이전, 음식을 주문하기 위해서는 전화 말고는 방법이 없었다.

하지만 전화를 걸어서 주문하는 것부터 난관이었다. 이 부분은 요즘에도 어려움을 겪는 20대 초중반이 많다고 하니 아마 당시 나의 상황에 공감할 수 있을 것 같다.

전화 신호음에 내 심박수도 함께 쿵쾅거리고 상대측에서 전화를 받기까지 속이 울렁거렸다.

뿐만 아니라 또래들이 많이 가는 옷가게 같은 곳에서 물건을 결제할 때 함께 방문했던 친구에게 대신 결제를 부탁하기도 했었다.

내 비슷한 또래의 시선에 극한의 공포심을 갖고 있었다.

"00아, 이번에는 내가 대신 결제하는데 언제까지고 내가 널 대신해서 해줄 순 없어"

정확한 워딩은 기억나지 않지만 언제까지고 나를 대신해 줄 수 없다는 친구의 대답에 부끄럽지만 할 말은 없었다. 그리고 친구의 말에 경각심이 들기도 했었고.

언제까지고 혼자서는 아무것도 하지 못할 수 없었다.


사람마다 '할 수 있는 것'에 대한 난이도는 다르다.

예전에 잠시 '혼밥레벨표'가 반짝 유행했던 적이 있었던 것 같다.

레벨별로 혼밥 하기 좋은 곳을 기재해 둔 것이었는데 이것이 사람마다 다르게 작용했다.

누군가는 식당은 아무렇지 않게 잘 들어가지만 편의점 식사는 어려워하는 경우도 있었고, 그 반대의 경우도 있었다.

나도 지인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혼자 할 수 있는 것이 서로 달랐다.

나는 영화관람, 카페방문, 여행은 혼자서도 잘 하지만 편의점에서 간단히 식사하는 것은 어려워한다.

여행을 가서도 식당에 들어가는 것을 잘 못해서 대충 카페에서 식사를 때우는 편이었다.

하지만 누군가는 식당에 들어가 아무렇지 않게 혼자 식사를 하지만 영화관이나 여행은 곧 죽어도 혼자 못 가겠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누구에게나 같은 레벨표를 들이밀 수는 없다.

나는 나의 박살 난 자존감을 높이기 위해 내가 해볼 수 있는 것들,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작성했다.

대신, 정말 공개하기도 민망할 정도로 귀여운 수준으로 작성했다.


- 혼자 편의점에서 삼각김밥에 라면 먹기

- 매장에서 직접 결제하기

- 전화로 배달 주문하기 (솔직히 이건 너무 떨려서 스크립트도 작성했었다..)


당시에는 큰 용기가 필요했지만 하나, 둘 도장 깨기 하듯 달성해 나가니 이게 뭐라고 은근 자신감도 생겼다.

그리고 바닥이었던 나의 자존감도 조금씩 회복되었다.

이전에 나 스스로를 생각할 때면 "혼자서는 아무것도 못하는 찌질이!!"였다면 별 것 아닌 계획들을 하나, 둘 달성해 보니

"어쩌면 나, 생각보다 쪼끔 더 멋있을지도...?" 하는 생각이 조금씩 자라났다.






지금 나의 모습에서 과거의 내 모습을 기억하고 정리해 보려니 '이게 뭐라고 못했었을까..' 하는 민망함이 올라왔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내가 대견했다.

그 당시 내 모습이 싫어서, 변화하고 싶어서 용기를 냈던 내가 대견했다.


내가 혼자에 익숙해지기 위해 행했던 모든 것들이 타인의 눈에는 보이지 않았을 수 있다.

솔직히 말해서, 혼자 계산하기? 배달 주문하는 것? 편의점에서 혼밥? 산책?

이게 뭐라고!!!!

하지만 이런 과정들이 쌓여서 지금의 나는 이전보다 더욱 단단해졌다.


시간이 약이다?

나는 단순히 시간이 약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처음 따돌림을 당하고 나서 그러한 일을 누군가에게 이야기할 때 괜히 눈물이 새어 나왔다.

내가 모자란 사람처럼 느껴졌었다.

하지만 나의 상처를 한 사람, 두 사람. 대화를 나눌 때 이야기를 꺼내다 보니 근육이 단련된 것인지 이제는 아무렇지도 않다.

당시에는 죽을 만큼 힘들었는데 지금은 그때가 내 인생의 터닝포인트였다 소개한다.

어쩌면 그때 그 일이 없었다면 지금 더 힘든 일이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시간은 단순히 약이 아니라 그 시간을 통해 내 마음의 근육을 단련하는 과정인 것 같다.


타인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것이라고 해서 기죽지 말자.

나 스스로 뿌듯하다면, 그걸로 성공한 것 아니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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