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쫀쿠 예찬

가벼움의 시대, 우리가 씹어 넘겨야 할 묵직한 진심에 대하여

by Seongwon

와이프가 두쫀쿠를 먹어보고 싶다고 하루에 20번씩 외치기를 일주일째,

당근마켓에서 판매자를 찾아 드디어 두쫀쿠를 맛볼 수 있었다.

오아시스를 찾기 위해 며칠 밤을 걸었던 이가 맑은 물을 들이켰을 때 느끼는 갈증해소와 같이, 두쫀쿠라는 간식거리에 불과한 대상의 맛에 대한 호기심을 해소할 수 있었다. 그 기념으로 두쫀쿠를 예찬해보고자 한다.




세상은 점점 가벼워진다. 우리가 맺는 관계는 오프라인보다는 온라인에서만 다른 사람과의 관계가 성립되며, 쉽게 꺼지는 프로그램처럼 서로의 대화는 쉽게 휘발된다. 이토록 가볍고 공허한 세계 속에서, 손바닥에 묵직하게 잡히는 '두쫀쿠'의 존재는 역설적으로 우리에게 삶의 실존을 일깨워준다.




1. 무게가 주는 정직함

두쫀쿠는 타협하지 않는 밀도의 결정체다. 일반적인 쿠키가 입안에서 바스러지며 허무하게 사라질 때, 두쫀쿠는 그 육중한 두께로 존재감을 드러낸다. 그것은 단순한 칼로리의 총합이 아니다. 재료를 아끼지 않고 꾹꾹 눌러 담은 창작자의 정성이자, 중력을 거스르지 않는 '물리적 정직함'이다.


스마트폰을 쓰기 시작하며 우리는 오랫동안 '가벼운 것'이 곧 '세련된 것'이라 믿어왔다. 그러나 때로 우리는 가볍지 않은 기댈 곳이 필요하다. 손가락 끝에 전해지는 그 둔중한 무게감은, 흔들리는 일상 속에서 나를 지탱해 줄 작은 닻(Anchor)이 되었다.


2. 쫀득함, 저항과 순응의 변증법

두쫀쿠의 본질은 그 '쫀득함'에 있다. 이는 단순히 식감의 영역을 넘어선다. 치아가 쿠키의 표면을 파고들 때 느껴지는 기분 좋은 저항감, 그리고 이내 부드럽게 길을 내어주는 순응의 과정. 그것은 마치 우리가 삶의 고난을 마주하고 끝내 소화해 내는 과정과 닮아 있다.


바스러지는 쿠키가 '회피'라면, 쫀득한 쿠키는 '인내'다. 입안에서 머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피스타치오의 고소함과 설탕의 단맛은 혀의 미뢰를 타고 깊숙이 각인된다. 서둘러 삼킬 수 없기에, 우리는 비로소 '맛'이라는 감각과 온전히 대면하게 된다. 속도가 미덕이 된 시대, 두쫀쿠는 우리에게 '천천히 씹어 넘기는 법'을 다시금 가르친다.


3. 가장 작은 단위의 구원

달콤함은 가장 원초적인 위로다. 하지만 두쫀쿠의 달콤함은 가볍게 흩어지지 않는다. 두툼한 반죽 사이에 박힌 초콜릿 칩과 견과류는 예기치 못한 순간에 나타나는 삶의 작은 보상들과 같다.

커피 한 잔의 씁쓸함이 두쫀쿠의 밀도와 만날 때, 그 찰나의 조화는 번잡한 세상을 잠시 멈추게 한다. 그것은 거창한 구원이 아니라, 오직 나만을 위해 허락된 가장 작은 단위의 평화다.



마치며: 밀도 있는 삶을 위하여

결국 우리가 두쫀쿠에 열광하는 이유는, 우리 자신의 삶 또한 그렇게 밀도 있기를 바라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쉽게 바스러지지 않는 단단한 자아를 가지고, 타인에게 쫀득한 온기를 나누어 주며, 가끔은 묵직한 존재감으로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는 삶.


손바닥 위에 놓인 이 작은 원형의 우주를 가만히 응시한다. 차가운 기술과 규제의 세계에서 잠시 벗어나, 이 정직한 무게와 밀도를 온몸으로 받아들인다. 가벼운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우리는 가끔 이렇게 묵직한 것을 씹어 삼켜야만 한다.


사실 위의 글들은 다 개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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