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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뷰티 연금술사 Sep 13. 2018

창업자의 일기장(12)-호구의 탄생

군대에서만 삽질을 하지 않는다. 창업하고 삽질은 계속되더라.

이전에 다니던 첫 직장에 손님들이 왔었다더군.


중국 쪽에 무슨 계약을 진행하는데, 

자신들은 기술도 없고, 경험이 없어서 수소문 끝에

내가 다녔던 그곳을 찾아간 거래.


근데... 그곳에서 협상이 잘 안돼서 나오는 길에 물어봤대.


"여기 시스템 구축했던 사람들 누구예요?"



그곳을 퇴사한지는 오래되었지만,

그래도 남아있던 직장동료들이 우리 연락처를 준거야.


그래서 연락이 닿았고, 바로 미팅을 가지게 되었어.


일단, 의뢰가 들어온 회사 두 곳은 

이미 중국 쪽 회사와 컨택이 된 상황이었고,

사업을 착수하기 위해 기술인력을 영입해야 했어.


아직 사업자를 낸 건 아니지만,

나와 내 동료들은 한 팀이었기에

그들의 제안을 가지고 몇 날 며칠을 고민했어.


"이거 하겠다고 하면 우리 중국에 좀 오래 넘어가야 하는데..."

"중국어도 못하는데 거기 가서 어떻게 하지?"

"가족은 어떻게 설득하고"


많은 의견이 오가고,

우리는 몇 가지 조건을 걸었어.


1. 우리는 개별로 인정해 주고, 컨소시엄 형태로 진행할 것

2. 우리가 원하는 금액을 제공해 줄 것(체제비용 포함)

3. 숙소/식비/비행기 왕복 비용도 제공할 것

4.  그 외 제반사항들


그런데 바로 흔쾌히 수락하더라고.

(일단 우리가 너무 쉬운 제안들을 넣은 것 같았고, 둘째로 너무 쉽게 받아들이는 것이 찝찝했지만... 기회라고 생각해서 놓치고 싶지 않았어. 뒤늦게 깨달았지만, 우리가 크로스체킹도 안 했고, 너무 성급했어)



그때부터 한국에서 중국으로 넘어가기 위한 준비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어.


중국 측에 제안해야 할 사업계획서와 관련 근거 및 데이터를 요청했고,

우리는 그동안 작성했던 사업계획서를 모두 모아서 총 집약체로 110 page 짜리 계획서를 만들었지.


아이템 설명부터 시장/현황/기술/장비/설비 면적/필요인원/예상 생산량/생산물 부속물 활용방안/초기 비용/현재 시장 판매가/매출 계획/Scale up 계획/인프라 사업 연계계획/부지 조건/기후조건/시제품 데이터/실험 결과보고서 등...


그리고 발표용 PPT도 만들고, 중간에 뭐 홍콩에서 투자자 만나러 가야 한다고 같이 가자는 거 시간이 안 맞아서 정중하게 거절하는 대신, PPT 발표까지 한국에서 다 설명하고 교육해 드리고, 한국에서 우리와 연관된 기업에 같이 가서 현장도 보고, 회의도 하고...


그 시간 동안 혼신의 힘을 다 쏟아내면서, 준비를 했어. 

일산 사무실에 가서 계속 연구소 도면 스케치하고, 공정도 만들고, 늦게 집에 들어가는 건 예사였어.



중국 허난 성 주마디옌!

들어 본 적도 없고, 가 본적은 더더욱 없는 지역이었지.


출발하는 비행기 안에서도 솔직히 우리 장기 털리는 거 아니냐면서 농담을 했지만, 진심으로 마음 한 켠에는 그런 걱정을 하고 있었어. 어디 팔려가는 건 아닐까 하는 막연한 두려움.


막상 도착하니, 중국 측 회사에서 환대를 하더라고.

숙소도 준비해 놓았고, 화장실까지 다 뜯어고쳐서 좌식으로 해 바꾸어 놓았더군.


중국 측 회사 임원들과 미팅을 하고 , 식사 접대를 받고

진짜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곳이란 걸 그제야 확인하게 되었지.

(이때의 안도의 한숨은 나중에 후회의 한숨으로 바뀌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식사접대는 계속되었어.

지역 유지를 만나고, 계열사 사장들을 만나고,

주변 친구라고 소개받은 분들과도 만나고


근 한 달 동안 업무 이야기보다는 식사접대의 연속이었어.


게다가 그 해에 열린 전시회가 있었는데,

급히 시제품을 뚝딱 만들어서 참가했지.


현지에서 반응도 좋았고, 여기저기서 문의화 상담 요청이 들어왔어.

아무래도 우리가 한국인이라는 점과,

듣지도 보지도 못한 시제품이라는 것이 호기심을 이끌었나 봐.


우리는 한껏 고무되었어.


'여기가 기회의 땅이구나'




현지에서 사업에 관련된 이야기는 모두 우리와 함께 온 기업들이 담당했어.

우리는 그저 필요한 장비 구매와 연구소 세팅에만 집중했지.


연구소 건물이라고 제공된 부지가 엄청 넓었어.

솔직히 연구소로 어떻게 개조해야 할지 막막할 정도로...


그리고 공장으로 건설되고 있는 현장을 갔는데...

어마어마하더라. 겁이 날 정도로 규모가 후들후들하였어.


중국이라는 나라가 크고, 급성장하는 건 알았지만,

우리가 부담스러울 정도로 통 크게 진행하는 점은

우리가 과연 감당할 수 있을까 하는 우려가 되더라고.


중국 측 회사는 굉장히 우호적이고,

상당히 많은 배려와 지원에 적극적이었어.


문제는 한국 측에서 발생하였지.



한국에서 온 컨소시엄은

우리 팀 빼고, 두 곳이 있었어.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이상한 낌새를 느꼈어.


서로 대화를 잘 안 하더라고.

그리고 따로 모여서 이야기가 진행되더라고.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이권에 대하여 두 업체가 갈등이 생겼고,

서로 딴마음을 품기 시작한 거야.


사실 핵심적인 부분은 기술을 담당하는 팀이다 보니

개별적으로 우리 쪽에 접촉해서 미팅을 가졌어.


우리는 영문을 모르다 보니 처음에는 했던 이야기를 두 곳에 반복해서 말하게 되고,

뭔가 의사소통이 두 갈래로 나누어진 걸 알게 되었지.


혼란스러웠어.

우리 팀은 사실 이 두 곳 회사를 믿고 먼 타지로 온 건데...

그들이 서로 갈라서면서,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하더라고.


그러던 와중에 한 기업이 한국으로 돌아가게 되었어.

중국 쪽 기업도 바보가 아닌지라 

이렇게 돌아가는 상황을 우리 팀보다 먼저 눈치챘더라고.

그래서 면담이 있었는데, 결국 둘 중 하나의 기업에 손을 들어 준거지.


한쪽이 짐을 싸서 나가면서,

분위기는 많이 가라앉았어.




매일 밤마다 우리 팀은 숙소에서 앞날에 대한 걱정을 토로했지.

게다가 갑자기 일의 속도가 확 줄었어.

중국 쪽 회사 입장에서도 막 밀어붙이자니 우려가 있었던 거지.


그러다가 이번에는 외부적인 문제가 발생했어.


시진핑 주석이 부정부패 척결을 내세우면서,

정경유착이 있는 기업들을 전수 조사하기 시작했지.


그런데 하필이면, 우리랑 함께 하기로 한 중국 기업의 모 회사 경영진이 걸린 거야.

물론 우리는 그쪽 계열사 중 하나와 추진하는 사업이었지만,

계열사 사장인 정종은 혹시나 우리에게 피해가 갈까 봐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 티켓을 주었어.

(중국의 "종"이라는 직급은 우리식으로 "사장"이다, 한마디로 "정 사장")


우리는 잠시 한국에 귀국하게 되었어.

돌아와서 가족에게 미안했다.


호기 있게 중국 가서 자리 잡아서, 부른다고 했는데...

여기랑 잘 되면, 그동안 못 해 준거 조금이나마 보상해 준다고...

그러고 떠난 중국행에서 초라하게 돌아왔다.




2주 정도가 지난 후에 연락이 왔는데, 다시 중국으로 돌아와 달라더군.

비행기표를 보낼 테니, 중단된 사업을 계속 진행하자고 했어.


그래서 다시 중국으로 넘어갔는데...

일단 모 회사(본사)는 해체되었다더군.

임원들 싹 잡혀가고...


그리고 함께 하기로 한 사업은 [정종]이 직접 끌고 가겠다고 했어.

자신이 회사 자체적으로 이끌겠다고 했지.


솔직히 미심쩍었지만, 어쩌겠어.

이미 중국에 와서 짐까지 다 풀었는데...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생각하고 다시 연구소 세팅에 들어갔어.

그런데.....


이번에는 남아있던 다른 한국 기업이 말썽이었어.


그쪽에서 우리에게 비용 지급이 차일피일 미뤄지고,

우리는 우리가 가지고 있던 비상금으로 생활해야 했지.


중국 쪽 회사가 큰 문제를 겪은 후부터,

자금이 안 들어와서 그렇다고, 이해해 달라고...

곧 자금 들어오면 비용 정산 소급해주겠다고...


뭐 그럴 수 있겠지 하고 믿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우리 호주머니도 텅텅 비어 가고,

중국에서의 기본적인 생활 자체가 어려워지기 시작했어.


시내 나가서 간단한 간식조차 사 먹기 부담스러울 정도로 

우리의 재정상태는 최악이었어.


너무 하다 싶어서, 한국기업을 통하지 않고 바로 중국 쪽 기업에 찾아갔지.

(그전까지는 우리가 한국 기업에게 요구하면, 그들이 중간에서 중국기업에게 전달하는 방식이었어.)


"당신들이 비용을 지급하지 않아서, 우리는 여기서 생활할 수 없다. 그래서 떠나야겠다."


"무슨 소리냐? 우리는 생활비와 거주에 필요한 비용을 지급하고 있는데"


"????!!!!! 뭐라고????!!!!"




충격과 배신감에 분노가 끓어오르는데...

머나먼 이국 땅에서 싸울 수도 없고,

게다가 우리는 중국어를 못 하니까 다툼 나서 공안이라도 오는 날이면,

어떻게 대처할 수도 없었어. 

(이건 내가 호주에서 지내봐서 느낀 건데... 현지어 못 하는 외국인은 어딜 가나 약자야)


일단 화를 가라앉히고

내부적으로 회의하여, 우리는 떠나기로 결정했지. 

그리고 한국 기업 대표를 만나서 담판을 짓기로 했어.


"왜 그러셨습니까? 어제 중국 쪽과 이야기하고 왔는데 비용 지급했다던데요."


"먼저 떠난 기업이 돈 관련된 부분은 담당을 했고, 그 이후에 우리도 파악하는데 시간이 걸렸어요."


"그전에 있던 회사가 문제가 있었더라도, 나중에 지급된 돈은 나눠 주셨어야 하지 않습니까?"


"우리도 이런저런 사정이 있어서 선지급할 게 있었고, 다 해결하지 못한 게 있어서 그런 거지 나중에 다 정산해 주려고 했다니까."


"솔직히 이제는 못 믿겠고, 저희는 돈도 다 떨어져서 돌아가겠습니다."


"아니, 이제 제대로 진행할 수 있다니까 그러네. 우리 믿고 한 번만 넘어가세." 


그 이후에도 굉장히 긴 시간을 이야기했고, 며칠 동안 정말 계속 회의와 미팅과 설득작업이 있었어. 어차피 이 상태로 한국에 돌아가 봤자, 우리에게 남는 것이 없었고, 가족들을 볼 낯이 없었지. 그러다 보니 결국은 다시 한번 더 믿고, 일하자는 의견으로 모아졌어.

(실수에서 배우고, 다시는 반복하지 말아야 하는 실수를 또 반복하게 되는 결정이었다)


물론, 이때부터는 우리 팀 내의 의견도 갈렸어. 이전에는 만장일치였는데... 반대의견과 찬성 의견으로 나누어지고, 서로 얼굴 붉히며 다투기도 했지. 가장 미안했던 것은 내가 이 팀의 리더였다는 거야. 어떤 결정 이든 간에 최종적으로 내 의견, 내 선택을 믿고 따라준 팀원들인데 이모양, 이 꼴이 되는 데까지 나의 잘못된 판단들이 모여서 삽질하게 된 거지. 



중국 쪽 회사에서 호출이 있었어.

[정종]은 진지하게 나를 따로 만났지.


"너희 상황에 대해 알고 있다. 왜 그렇게 한국 측은 일관성이 없느냐?


"무슨 말이냐?"


"벌써 이번이 두 번째로 신뢰를 잃는 일이 발생한 거다. 너희 내부에서 왜 이런 일들이 발생하는지 이해를 못 하겠다."


"아무래도 우리는 기술 쪽 인력이다 보니, 우리를 데리고 온 한국 기업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우리에게는 통역도 없고, 자금도 없고, 이곳에 대한 사전 지식도 없다. 너희랑 한국 회사는 다 통역이 붙어있지만 우리 팀은 언어가 안돼서 그동안 한국 회사를 통해서 건의하고, 불만을 말했다."


"너희들, 같은 회사 소속이 아니었냐?"


"아니다. 우리는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은 팀이다. 여기에는 컨소시엄으로 왔다."


"나는 너희 기술팀이 그 회사 소속인 줄 알았다. 그래서 왜 의견이 다르고, 왜 전달이 잘 안되는지 이해를 못 했다."


".... 아...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모르겠지만... 우리 팀은 다른 두 회사 소속도 아니고, 우리랑 별개다. 다만, 그들이 우리에게 제안을 했고, 우리의 조건을 받아 준다고 해서 여기까지 왔다."


"이제 전체 상황을 알겠다. 나에게도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


"나도 돌아가서 팀원들과 할 이야기가 많이 생겼다. 다음에 다시 미팅하자."


우리 팀은 그날 밤도 날이 새도록 열렬히 토론하고, 울분과 억울함에 속이 디지버졌다.

처음부터 우리는 덫에 걸린 느낌이랄까?



2일 후, [정종]과 미팅이 잡혔다.

그도 많이 고민을 했는지, 얼굴에 수심이 가득했다.

우리도 떠날 준비를 하자고 했었고, 더 이상 화도 안 났다.


"이 사업계획서는 너희가 만든 거냐?"


"그렇다. 우리가 만들었다."


"그럼 연구소 세팅과 장비 구매도 너희가 리스트 만든 거냐?"


"그렇다. 한국에서부터 우리가 준비했던 사업내용이었고, 우리는 그들에게 제공했다."


"마지막으로 다른 한국 회사가 여기서 한 일은 무엇이냐?"


"나도 모르겠다. 너희랑 협상하고, 무언가 경영이나 지분, 계약 이야기를 한 거겠지."


"너희 팀과 함께 일 하고 싶다. 중간에 누구도 안 끼고, 너희랑 1대 1로 사업하고 싶다. 너희는 이거 할 수 있겠냐?"


"우리는 할 수 있다. 해내 보이겠다."


"그럼 오늘부터 다시 시작하자. 나도 너희를 믿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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