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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뷰티 연금술사 Sep 15. 2018

창업자의 일기장(13)-중국에서 후퇴

이보전진을 위한 일보후퇴? 사실은 더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철수한 거야

그렇게 중국 쪽 [정종]과 직접적으로 사업을 이끌어가기로 했을 때는 이제야 우리가 인정받는구나라는 착각에 빠져 있었어.

우리에게 통역하는 친구를 붙여주었고, 그 친구를 교육하면서 하루하루 꿈은 부풀어 올랐지.


지지부진했던 연구소 세팅은 명단과 가격견적까지 다 나왔고, 어디에 무얼 넣을 것인지, 동선은 어떻게 구축할 것인지를 설계하면서 웃음이 끊이지 않았지. 게다가 우려했던 것보다는 [정종]이 사업을 추진하려는 열정이 강하게 느껴졌고, 차를 마시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더욱 유대감이 강해졌어.




생산공장 부지를 점검하러 다니고, 유틸리티 공정을 짜는 도중에 문제가 발생했어. 갑자기 공안이 들이닥친 거지. 무슨 일인가 했더니... 우리가 실종자로 신고 들어왔더래. 읭??? 울 가족들은 중국에 와있는 걸 아는데, 어제까지만 해도 통화하고 잤는데 웬 실종신고?


그래서 우리 멤버들은 공안에게 끌려갔지. 간단한 사실관계 확인이 있었어. 대한민국에서 살면서 경찰서 한 번 안 가본 나인데, 중국에서 공안에게 취조를 받다니...


[정종]은 그 지역 변호인(?)을 데리고 와서 공안에게 설명을 했지. 우리 손님이고, 누가 신고를 했냐고. 공안은 한국 기업에서 자기 직원들이 실종되었다고 신고를 했대. 이건 또 무슨 소리지? 회사 관둔 지가 언제인데...


자세한 내용을 들으니 더 어이가 없었어. 우리 말고 있었던 두 기업 중 하나가 우리를 실종 신고한 거야. 그도 그럴 것이 그들이 계속 우리에게 연락해 왔거든. 난 분쟁과 갈등을 좋아하지 않아. 그래서 좋게 좋게 대응하고 있었는데, 우리 보고 한국에 돌아와서 다시 시작하자는 거야. 그래서 정중하게 거절을 했지. 중국 쪽에게 신뢰를 잃은 것 이상으로 우리도 이전의 한국기업들에게 실망하고, 배신감에 화가 났지만 참고 있었거든. 무얼 믿고 그들과 일을 도모할 수 있겠어? 처음에는 좋은 말로 회유하다가 나중에는 협박성 말을 하더라고(아직도 괘씸해서 내가 카톡 내용은 저장해놓았어). 그래서 더 이상 그들과 대화를 접었지.


그러니까 그들은 중국 공안에 실종신고를 한 거야. 진짜 어이가 없었지. 화가 나는 게 아니라 헛웃음만 났어. 덕분에 그곳에서 공안들과 맛있는 저녁 식사를 대접받고, 인사도 나누고, 술잔도 기울였지. 


그런 해프닝이 있고 나서 진짜 세상은 무서운 곳이라는 걸 새삼 다시 느꼈어.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함께 밥을 먹고, 담소를 나누며 꿈을 키우던 사람들이 그럴 줄은 몰랐지. 역시 열 길 우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옛말이 틀린 게 없더라고.


더 재미있는 건, 나중에 한국에 돌아왔을 때 있었어. 그건 담에 이야기할게.




어쨌든 우리는 다시 일에 집중했지. 그러다 개인적으로 집에 가야 할 상황이 생겼어. 동료들을 뒤로하고 잠시 한국행 비행기에 오를 수밖에 없었지. 일주일 정도만 갔다 온다고 했었는데... 결국은 그 길로 돌아가지 못하게 되었어. 한국에 귀국하여, 집안일을 끝내고, 중국으로 돌아가려는데 비행기표를 안 보내주더라고. 무슨 일인가 연락을 했는데, 중국 정부에서 여전히 중국 쪽 회사에 대한 수사가 진행 중이었고, 그것 때문에 [정종]도 몇 번 불려 가 조사를 받고 있었던 거야. 그리고 연구소도 당분간 업무를 할 수 없게 되었고, 그곳 직원들 역시 모든 일에서 일시정지가 되어버렸지.


중국에 남아있던 멤버들을 통해 이거 금방 끝날 것 같지 않다는 이야기를 들었어. 우선은 상황을 지켜보기로 했지. 그렇게 나는 나대로 한국에서, 우리 멤버들은 멤버들대로 중국에서 페이퍼 워크를 하고 있었지. 일주일이, 한 달이 흘러버렸어. 그리고 우리 멤버에게 전화가 왔어.


"[정종]도 더 이상 끌어갈 수 없다고 미안하다네. 우리 이쯤에서 돌아가야겠어"


"형~! 무슨 말이에요. 뭔 일이 있는 거예요?"


"상황이 안 좋게 흘러갔나 봐. [정종]도 자기 사업체가 있는 시안으로 돌아간다고 하고, 여기서는 더 하기가 어려워졌다고 하더라고. 나도 자세한 이야기는 못 들었어. 대신 우리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 편이랑 귀국하는 데까지는 다 준비해 주겠대."


"[샤오 양] 좀 불러봐요. 직접 들어야겠어요."(샤오 양은 [정종]과 소통할 수 있는 유일한 통역사였다)


"[샤오 양]도 별 다른 이야기는 없어. 다만, [정종]이 끝까지 우리 챙겨주려고 애쓴 거라고 하더라고"


하늘이 무너지는 듯했어. 우리가 그동안 중국에서 추진하던 모든 일이 한순간에 사라지니까. 그리고 시간과 비용과 노력이 물거품처럼 없어지는 순간이었거든. 우리가 밤잠 설쳐가며 격렬하게 토론하고, 계획을 짜고, 수정하고, 세팅하던 모든 일들이 다 허사가 되어 버렸지.


참... 하늘을 향해 주먹질도 하고 싶었고, 가족에게 무어라 말해야 할지, 부끄럽기도 하고, 미안했어.


"네가 결정해주라. 우리 돌아갈까? 아니면 더 버텨볼까?"


"형! 다른 애들은 뭐래요?"


"다들 이제 돈도 떨어지고, [정종]이 없으면 여기서 할 수 있는 게 없으니까 이쯤에서 포기하는 게 낫다고..."


"그럼... 우리 접읍시다. 귀국 준비 하락 전해 주세요."


현장에 있는 동료들이 접자고 판단했다면, 그게 가장 정확한 판단이니까. 멀리서 보는 내가 억지를 부리는 건 더 바보 같은 일이지. 나보다 그곳에서 소식을 전해 듣고 나에게 연락하기까지 더 많은 논쟁과 좌절감이 있었을 동료들이기에 따르는 게 맞다고 판단했어.




그렇게 우리의 중국 도전기는 중국에 들어간 지 6개월 만에 쫑났어.

세상에는 발버둥 치고, 애를 써봐도 안 되는 것들이 있더라고.


무엇이 문제였을까?


먼저, 허술한 컨소시엄과 명확하지 않은 업무 분담 및 확인이 없었어. 그냥 처음부터 따라다녔고, 그러면 그런가 보다, 아니면 아닌가 부다 하면서 시키는 일을 했지. 경영이나 운영, 사업 진행에 대한 걸 전혀 듣지 못하는 상황에서 우리는 놀아나고 있었던 거야.


두 번째로, 해외에서 한다면서 언어에 너무 소홀히 했어.(물론 우리 멤버 중 2명은 1년 동안 중국어 공부를 해서 간단한 의사소통 정도는 가능했지만... 그걸로는 턱없이 부족한 실력이었어)


세 번째로, 전략의 부재였어. 대안이 없었고, 전적으로 중국 측에 의존하는 형태였어. 너무 쉽게 봤어. 자금이 턱없이 부족했고, 전후 사정에 대한 정보도 없었어. 아이디어? 꿈? 계획? 시제품? 노력? 열정? 팀? 이런 게 갖춰진다고 사업이 아냐. 그냥 기본적으로 갖춰야 하는 것들일 뿐이지.


네 번째로, 리더십의 부재. 대표는 나였지만 중국 측과 이야기할 때만 형식적으로 대표로 나선 거지 딱히 내가 리더로서 행동한 건 없었어. 어떤 결정이나 방안에 있어서 중재자의 역할이었지 리더의 역할은 제대로 한 게 없었어. 



우리가 얻은 것은 무엇이냐고?


1. 중국 쪽에 믿을 수 있는 사람을 얻었다.

일단 [정종]이라는 믿음직한 사람과 [샤오 양]이라는 동료를 얻었어. 지금도 [샤오 양: 본명은 양 OO]은 우리 멤버로 중국 시안에서 우리를 돕고 있어. 그리고 그 친구 소개로 우리에게는 또 다른 히든 중국 친구가 있어. 우리와 한 1년 좀 되었나? 


2. 우리 멤버 2명은 중국어를 매우 잘하게 되었다.

지금도 한 친구는 심천에서 우리의 미래를 만들어가는데 일조하고 있고, 한 친구는 지금 나와 같이 한국에서 이 험난한 길을 걷고 있어. 근데 이 둘의 중국어 실력은 대학교 중국어 회화 고급과정 다 패스하고, 지금은 한국 노래보다 중국 노래 흥얼거리는 수준이야. 


3. 그때보다는 조금은 업그레이드(?) 된 리더

당시의 나는 기술과 아이템, 사업계획에 대한 쪽으로만 빠꼼이였지, 경영이나 창업에 대한 가장 기초적인 지식도 없었어. 하지만 그 기간 동안 뼈저리게 느끼고, 체험하면서 몸이 습득하더라고. 결정장애로 우왕좌왕하고, 상대방과 협상을 할 때의 두려움을 느꼈고, 대표라는 말에 소름이 돋고 어색했지. 겁나서, 불안해서 잠 못 이루고... 절실하게 해야 하는 것을 배웠어. 비약적으로 내가 성장할 수 있는 계기를 준 시간들이었어.


 


팩트는 중국으로 최초의 정벌기가 실패하였고, 우리는 패잔병으로 돌아왔지 뭐.

(나중에야 그런 부분들을 보완하기 위해 노력했고 이전보다 나아진 부분들이 있어서 그것이 결과적으로 유익했다고 말할 수 있지만... 그때 이후로, 우리가 흩어지게 되고, 그대로 다 접었다면, 그냥 패배자인 거지.)


우리는 각자 먹고살 것을 찾아야 하는 상황에 내몰렸어.

우리 첫 아이의 첫 돌은 그렇게 아무렇지 않은 척하면서도, 아기에게 너무 미안한 마음 가득하게 맞이해야 했어.


가장으로써 제 몫을 못하고 있었기에 더욱 아내에게 미안했고, 

폐업을 준비하면서, 동시에 이력서를 긁적이기 시작했지.

채용공고를 뒤지기 시작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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