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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뷰티 연금술사 Sep 19. 2018

창업자의 일기장(14)-취준생은 힘들어

뒤늦게 취업전선에 뛰어들었으나 그 사이 더 높아진 벽을 체감했다.

졸업하고 취업 준비할 때와 전혀 다른 취업시장!


취업사이트와 정보공유 카페, 면접스터디는 뭐 내가 취업시장에 처음 나올 때도 있었는데, 이제는 그런 스터디나 모임에 들어가기 위한 면접을 또 보더라고. 취업 면접을 대비하기 위한 모임에 들어가기 위한 또 다른 면접이라...;;; 더 치열해지고, 더 피곤해졌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




한 곳은 대기업 수시로 나온 경력직 자리였는데, 인적성을 보더군. 아... 경력직도 인적성을 보는구나;;;난 신입만 인적성 시험이 있는 줄 알았는데.... 쩝;;;

인적성 문제지를 보는 순간 깜깜하더라. 뭔 수학 문제가 이리도 어려운지. 정해진 시간 내에 반도 못 풀었어. 내가 직장 두 번을 다니면서 굳이 수열 계산이나 통계 신뢰구간을 계산할 필요도 없었고, 가볍게는 톱니바퀴가 몇 번 돌아야 다른 톱니와 처음 접했던 톱니끼리 만나는걸 계산할 일따위는 없었거든. 그거랑 내가 지원한 업무랑 도대체 무슨 적성이 상관관계 있는건지 지금도 알고 싶어. 가장 실무적인 것은 spss 통계 프로그램 같은 걸 사용할 줄 아느냐,  독성시험에서 LD50 실험 같은거  그리고 떨어졌지.   


또 한 곳은 중견기업이었는데,  네 명의 실무자가 참 고압적인 면접관이시더라. 몇 가지 어이없는 질문에 어이가 상식과 함께 동반가출하여 버렸다.


우리 랩에서 최근에 OOO을 이용한 XX관련 프로젝트를 하고 있는데 전 직장에서 이쪽 경력자인데 왜 이걸 모르느냐(그럼 내가 니네 회사를 안 다녀봤는데 니네가 하는 일을 에떻게 세세하게 다 아냐? 너는 내가 했던 일들 프로토콜 순서 중 하나 꼭 짚어서 물어보면 대답할 수 있겠냐?)


OO대학교 연구실과 같이 진행해 봤는데, 그 때  몇 번을 반복해도 유의미한 결과가 도출이 안되었는데 무엇이 문제인가?(그걸 알려면 그 때 보고서를 내가 열람하게 해 줘야 기술이 문제일지, 사람이 문제일지, 프로젝트 설계 자체부터 문제였을지 확인하고, 알아봐야 대답을 할 수 있잖아. 지금 면접 보러 온 사람에게 니들 문제를 감으로 때려 맞추라는거냐? 내가 점쟁이야?) 


지원자분은 어떤 어떤 미생물 다뤄보셨나요? 우리는 OOOO, XXXX, ㅁㅁㅁㅁ 를 주로 다루는데...(내 이력서랑 포트폴리오는 제대로 읽어봤냐? 거기에 적어놨잖아. 그리고 내가 응답한 거 못 알아듣고, 들어 본적 없는건데 왜 OOOO, XXXX, ㅁㅁㅁㅁ를 안 다뤄봤냐고? 니가 말한거는 이쪽에서 안 써요. 신사업이라고 이쪽 경력자 뽑는다면서 불러 놓고 어쩌라는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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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공격적으로 압박하더라고. 지극히 좁고 깊은 질문들이 있었기에 '아! 얘네들도 연구원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 면접 중에 그런 느낌이 들더군. 마치 학교에서 얌전히 있던 아이에게 선생님이 '네가 내 대신 떠든 애 있으면 칠판에 이름 적어'라고 앞에 나와서 다른 애들 위에 군림하던 기억이 떠오르더라고. 일시적으로 이전에 없었던 권력을 준비가 안 된 사람에게 주게 되면, 권력에 익숙하지 않았던 사람은 자신이 경험했던 또는 자신이 보았던 것들을 그대로 답습하려는 경향이 있어. 그러한 모습은 일상에서 주로 일어나는 거고, 네 분이 다 그렇다는 것은 그 회사의 분위기가 그럴 가능성이 높다는 거야. 그래서 면접을 나도 연구원 기질의 고집으로 봤어. 까칠함에 유함으로 상대하지 않고, 같은 까칠함으로 응대했지. 새벽부터 정장에 면접 질의응답을 보고 또 보고 몇 번을 연습했는데 예상과는 전혀 다른 신상까지식의 질문에 나도 참지 않은거지뭐. 당연히 실무자 면접에서 똑 떨어졌어.


다음에는 S 모 회사에 신입으로 면접 보게 되었어. 경력자인데 신입으로 면접 보게 될 줄은 몰랐지. 거기서는 나이가 많아서 신입으로 입사하면, 기존 직원들과 좀 어색한 관계가 될 것 같은데 어떻게 해결할 거냐고해서... 사실대로 말했지. 그럼 경력직으로 채용해 달라고. 그렇게 또 탈락! 




퇴사하고도 꾸준히 영어 공부는 했고, 중국 가기 전에 중간점검 삼아 봤던 토익점수가 있어서 다행이었어. 약간 나에게는 유리한 부분이었다면, 경력자라는 점이야. 처음에 서류 통과해서 면접에 가면서 궁금했거든. 나이가 많아서 서류조차 통과 못 할 줄 알았는데 신기하게 잘 통과하더라고. 근데 막상 가보면, 신입으로 들어올 수 있냐고 하더라고. 경력자인데...ㅡㅡ;;; 알고 보니 취업시장의 트렌드가 신입이 아니라 경력자를 신입으로 뽑는 거더라고. 경력자를 신입으로 부려 먹으려는 기업의 입장과 그렇다면 신입은 어디서 경력을 쌓느냐는 취준생의 입장에서 간격이 컸어. 어쩌면 그 사이에서 나는 조금은 유리했나 봐. 면접 가서 광탈했지만 말이야.



역시... 취업은 쉽지 않아. 특히 재취업/이직은 직장을 다니고 있는 중에 해야 제대로 인정받는데 중간에 사업하겠다고 나와서 허덕허덕거리다가 다시 취업하려고 하면, 이력서 상에서는 '어? 특이한 경험있이 있네', '이 사람! 일단 면접은 보자고'라고 할 수는 있어도, 정작 면접까지만 가더라고. 2년 동안 창업 준비하면서 삽질한 이야기는 결국 실패담일 뿐이고, 그걸 인정해 줄만큼 사회가 유연하지도 않고, 그러기엔 줄을 서서 기다리는 더 좋은 경력/더 나은 스토리와 성공사례를 가진 인재들이 있으니까. 



또 면접에서 물먹고, 돌아오는 길에 집에 바로 들어가자니 좀 망설여졌어.

그래서 경기도에 있는 사무실에 들렀지(G창업 프로젝트로 배당된 사무실 자리를 4월까지는 사용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나보다 먼저 창업해서 이런저런 조언을 해 주던 대표님을 만났어. 


그 대표님은 삼성전자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하던 분으로 창업해서 스타트업 미디어와 전자상거래 중계 플랫폼을 준비하고 계셨는데, G 창업 프로젝트 선정 이후로 가끔 사무실에서 인사드렸던 분이야.


내가 몰랐던 스타트업이라는 세상에 대해 많은 이야기도 해 주고, 창업에 대하여 조언을 아끼지 않으셨지. 그분이 내 상황을 듣더니 이런 이야기를 해 주시더군.


"청년창업사관학교라는 곳이 있는데, 모집 공고가 떴거든? 한 번 지원해 볼래?"


"폐업하고, 취업전선에 뛰고 있는데 제가 무슨...;;;"


"아까워서 그래. 어차피 써 놓은 사업계획서 있으니까 거기 양식에 맞춰서 제출해봐."


"이따 집에 가서 한 번 볼게요."


"그래. 꼭 공고 한 번 보고, 난 네가 지원했으면 좋겠어."


"예~ 감사합니다. 청년창업 사관학교 공고 꼭 찾아볼게요."





어쨌든 그렇게 그날부터 청년창업사관학교에 대해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어.

나도 모르게 사업계획서를 쓰고 있었고, 제출 마감하는 날 겨우겨우 맞추어 지원서와 사업계획서를 입력할 수 있었어.


다행히 근 2년동안 준비했던 사업계획서들과 시장조사가 큰 도움이 되었어. 



그때는 몰랐어.

그 날 그 짧은 만남과 넌지시 지원하라고 했던 그 대표님의 말이 이렇게 큰 일을 저지를 줄은...

그리고 그때는 더더욱 몰랐어.

그때 그 대표님이 지금까지도 나의 든든한 멘토님이자 인생 조언자로 형님! 아우! 하는 사이가 될 줄은...


그래서 인생은 한 치 앞을 모르는 거야.



지원하고 나서 잠시 숨돌리고, 도서관과 일산 라페스타 근처 사무실을 교차로 오가며, 다른 일에 집중하고 있었어. 다른 일이래봤자 프리랜서로 할 수 있는 거랑 쓰던 이력서 더 지원하는거랑 틈나면 사업계획서 수정하면서 사업 테크트리 짜는거의 반복이었지. 


그러다 메일이 왔어.

청년창업사관학교 1차 서류 평가 합격과 대면평가를 위한 합숙 및 수정사업계획서 작성 프로그램에 참석하라는 메일!


그렇게 인생에서 또 다른 기회를 잡게 되었어. 그리고 통장에는 7만원이 남아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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