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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뷰티 연금술사 Oct 31. 2018

창업자의 일기장(16)-처음 경험하는 청창사

청년창업사관학교에 입교하고, 경험하는 멘붕 5가지!

청년창업사관학교!

줄여서 '청창사'라고 부른다.


엄청난 경쟁을 뚫고 어렵사리 입교하게 되었다구 마음 놓지 마!

이야기는 시작도 안 했어. 합격의 여운이 사라지기도 전에 너는 현실을 만나게 될 거야.


게임을 시작하지! (악당의 목소리로) 움하하하!




 멘붕 1. 자부담금을 마련하기


 첫 멘붕은 입교를 하기 위해서 납입해야 하는 자부담금이야. 현물이야 내 인건비를 산정해서 채우니까 문제가 없는데, 현금을 납부해야 하는 게 여간 부담되거든. 게다가 난 이미 통장에 돈이 거의 없는 상태였단 말이야. 청년창업사관학교에 선정되고도 자부담으로 현금 납부를 해야 하는 것에 허덕허덕거리고 있으니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어.


 돈을 구하고 싶어도, 은행에서는 백수라고 돈이 안 나와. 오히려 전세자금 대출받은 것부터 일단 갚아나가야 하는 입장이라 은행에서 돈을 줘도 감당할 수 없었지. 합격은 좋은 소식이지만, 쉽사리 아내에게 당당하게 합격했단 이야기를 못 하겠더라고(사실 이 때도 아내는 내가 재취업으로 마음을 완전히 돌린 줄 알았었어. 미안해 여보!)


 결국 부모님께 살며시 이야기했지. 일 년 안에 꼭 다 갚겠다고. 우리 부모님도 넉넉지 않게 살아가시는데... 조용히 어머니께서 돈을 입금해 주셨어. 창업을 하면서 첫 융자는 바로 부모님이셨지(실제로 1년 내에 다 갚았어. 너무나 고맙고 소중한 자금이었기에 최우선으로 갚아 나갔지)



멘붕 2. 서류와 승인시스템에 대한 적응


 입교하고 나면, 오리엔테이션으로 창업지원금을 사용하는 방법을 배우는데 이게 여간 곤욕이 아니야. 물론 나의 경우는 이전에 직장에서 연구소 쪽이다 보니 연구자금 사용하는 방법에 익숙하니까 그나마 나은 편이었지만, 다수의 입교생들은 시스템에 등록하고, 증빙서류 준비하고, 검수받고, 보고서 작성하고 하는 일련의 과정들이 생소했지. 그래서 이 부분에서만큼은 다른 분들에 비해 내게는 수월했어.


 하지만 나라고 한 번에 척척 클리어 한건 아냐. 왜냐면 내가 이전에 쓰던 R&D 과제 지급받던 시스템(SMTECH와 산자부, 국토부, 농축산 쪽의 시스템)이랑은 다르니까. 게다가 사전에 전담 교수님께 확인을 받아야 하는데 그 단계에서 여러 번 서류가 되돌아왔어. 비교견적서에 회사 직인이 없다던가, 계약서에 간인이 빠지던가, 제출일이 너무 늦어진다던가 등 어찌 보면 사소할 수 있는 일인데 괜스레 돌려지는 느낌이었거든. 


 근데 그게 중요해. 사소한 것 같지만 사소하지 않아. 특히 계약서는 확실하게 배워놓는 게 좋아. 문제가 발생할 때, 계약서를 기준으로 책임을 따지게 되거든. 나중에 원 없이 계약서에 도장 찍게 될 거고, 도장 찍기의 달인이 되어가고 있을 거야. 그리고 계약서도 처음에는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다운로드하여서 사용하게 되지만, 어느샌가 용역 관련 계약/납품 관련 계약/투자 관련 계약 등 우리가 즐겨 사용하는 계약서의 양식이 틀을 갖추기 시작해. 그건 어쨌든 나중 일이고~~




멘붕 3. 기숙사 예약! 손은 눈보다 빠르다! 


 또 하나의 멘붕은 바로 기숙사 예약!

 기수마다 개성이 달라서인지 몰라도, 어떤 기수에서는 기숙사 이용이 저조하고, 어떤 기수에서는 기숙사 예약에 박 터지게 치열하더라고. 우리 기수는 매일 아침 치열한 경쟁으로 기숙사 쟁탈전이 있던 기수였어(흑흑흑! 기숙사에서 자는 날보다 사무실에서 라꾸라꾸에 침낭 펼쳐서 잠든 날이 더 많았다는...;;). 

 특히 파주에 집이 있던 나에게는 안산까지 왔다 갔다 하는 시간보다 그냥 사무실에서 숙식하며 일하는 게 더 효과적이었고, 아내도 일주일에 두 번 정도만 집에 가는 내 입장을 이해해 주었지.(여보! 또 미안해!)


 매주 월요일 아침 8시가 되자마자 기숙사 예약 시스템에 접속할 수 있는데, 아이디와 비번 치고 들어가자마자 바로 예약 버튼을 눌러야 해(일주일 치 예약). 근데 그게... 진짜 한 번 멈칫하는 순간 상황은 끝나버려. 기숙사 자리가 동 나버리는 거지. 다들 왜 집에 안 가고, 사무실 지박령이 되려는 건지... 그리고 왜 다들 손이 빠른 거야! 게다가 나는 왜 손이 둔한 거야.


 이 이야기를 다른 기수(선후배)에게 하니까 공감하는 분도 있고, 전혀 공감 못하는 분들도 계시더군. 그때그때, 어떤 산업 쪽이 더 많이 입교하는지에 따라 좀 다른가 봐. 아니면, 전체 분위기가 확 다른 걸 수도... 그랬기에 기숙사에 예약이 된 분들은 승자! 예약에 실패한 자들은 패자가 되었지. 난 주로 패자였어.



멘붕 4. 사무실과 숙소의 물아일체!

(여기가 곧 사무실이요, 또한 집이니라~)


 기숙사에 이어서 발생하는 현상은 바로 사무실의 숙소화!

 기숙사에 방을 못 잡은 패자들은 결국 사무실에서 일주일을 버티면서 다음 주 월요일 8시를 기약해야 하지. 운이 좋게 중간에 누군가 방을 빼면, 시스템에 접속해서 주중에 방을 얻는 경우도 더러 있지만... 매우 드물어. 그래서 다들 사무실에서 잘 수 있는 침낭이나 간이 야전침대나 라꾸라꾸... 심지어 텐트도 있었어. 관물대 안에는 컵라면과 야근용 간식들! 음료수가 상시 채워져 있었고. 승자들은 기숙사에서 내일을 기대하며 잠들 때, 패자들은 사무실에서 침낭에 몸을 묻고, 분노의 밤을 보내지.


 그러다 보니 밤이 늦었는데도 사무실 불이 안 꺼진 곳이 많았어. 잠이 잘 안 오는 사람들은 컴퓨터 앞에서 낮에 다 못 한 서류 작업이나 코딩, 설계 등 사무실에서 해야 하는 잔업들을 하곤 했지. 은근히 철없던 우리 기수들은 아무도 시키지 않았는데, 누구 사무실이 오래 불 켜져 있나 확인하면서 의미 없는 경쟁도 하고, 밤새고 아침에 새워하고 나오면 '우와~~~!' 한 번 외쳐주고 손뼉 쳐 주었지.(다 부질없는, 의미 없는, 쓸데없는 일이었다. 몸만 피곤하고) 그런 사람들이랑 지낸다는 게 재미있게 지낼 수 있는 원동력이었던 것 같아. 다들 순수하게, 어리숙한 대표들이라는 게... 참...




멘붕 5. 운동은 하면 살이 빠진다면서~ 그짓말!


 매주 수요일 오후 5시는 축구하는 날!이라고 몇몇 형님 대표님들이 꼬드겼어. 입교하면서 부쩍 늘어가는 체중이 걱정되고, 청년들의 아저씨 화를 막기 위해서 운동의 필요성은 다들 공감했지. 게다가 탁구장과 헬스장이 있기에 처음에는 점심 먹고 이용하고, 저녁 먹고 이용하고, 잠자기 전에 이용하고 부지런히 움직여. 근데 하루 이틀 씩 빠지기 시작하고, 한 명 두 명씩 안 보이기 시작해. 딱 2주 지나니까 이용하는 사람이 극소수가 돼버려. 혼자서는 끝까지 못 하는 이런 의지박약학 나 님~! 타인 의존성이 강한 운동이 적합하다는 걸 깨달은 몇몇이 축구를 제안했어.


"우리 어차피 롱런하려면 체력이 자산인데 운동해야 하지 않겠어?" 


 이 말에 넘어간 우리는 수요일이면 반바지, 반팔티에 공 하나 가지고 중소기업연수원 잔디 운동장에서 볼을 찼어. 다들 스트레스가 많았는지 똥볼을 차는 실력들인데도 열심히 차더라. 동네 축구보다 좀 더 어눌한 수준인데도 뭐 그리 집념들이 강한지.... 승부욕이 강한 거라고 해야겠지? 


 근데 그렇게 열나게 뛰어다니고, 공을 차도 살은 빠지지 않아. 오히려 늘어나. 축구 끝나고 치맥! 다음 주에는 축구 끝나고 감자탕! 그다음 주에는 축구 끝나고 중국집!!! 이거 이거 누가 창업자들 아니랄까 봐... 운동해서 줄인 칼로리(비용) 보다 더 많은 칼로리를 이익으로 남겨서 뱃살(자본)로 전환해! 몸으로 비용을 줄이고, 수익을 늘려서 회사 자산을 늘리는 걸 체득한 사람들이야! 그렇게 배둘레햄 아저씨들이 만들어진다고.




 이 글을 쓰면서 청년창업사관학교 시절을 그리워하고 있는지도 몰라. 그때는 몰랐는데, 창업하면서 가장 생각 없이 즐겁게 생활했던 것 같아. 지금도 내 일에 대해서 즐거움을 가지고 있지만, 청창사에 있던 때는 같은 고민과 같은 처지에 있던 사람들이 가까이에서 서로를 응원해 주고, 넋두리 펼 칠 수 있었다는 점에서 한결 마음이 편했던 거겠지.  


 말이 멘붕이지, 청년창업사관학교에서의 생활 그 자체였어. 게다가 경쟁 시스템이다 보니 알게 모르게 서로 경쟁심도 강했으면서 서로 정보 공유 하나라도 더 하려고 수다만 3시간 넘게 떨고~ 외근 나갈 때, 우리가 워낙 규모가 없다 보니 십시일반으로 함께 거래처 회의에 따라가 주기도 하고(두 세명이 같이 가면 업체에서도 무시하진 못 하더라)...


서로 손익 재지 않고, 웃으면서 창업 준비를 하던 사람들에게 많은 것을 배우며, 도움받은 시간이었지.




잠시 글 쓰면서 향수에 잠겼었는데... 정신 차리고~~!

다음에는 첫 협력사를 만나기까지의 이야기를 준비할게.


시제품 만들기 위해서 매우 중요한 첫 단추거든. 근데 그게 쉽지 않다는 거~~!

나는 고난도 문제를  이렇게 풀어갔어! 다음 여기서 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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