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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뷰티 연금술사 Nov 14. 2018

창업자의 일기(17)-첫 인연을 만들다.

우리와 함께 시제품을 제작하게 된 첫 협력사이자 지금도 든든한 협력사!

 지난 화에서는 청년창업사관학교에 입교하면서 경험하게 된 멘붕의 순간들을 나눴어. 하긴 처음엔 경험하는 모든 게 멘붕이지뭐. 심지어 탁구장 사용 규정이라던가, 교육 후에 시험으로 평가하는 규정도 그렇고... 하하하!


 청창사에 입교하면 가장 첫 과제는 얼마나 빨리 시제품을 만드느냐야. 시제품이든 베타 서비스든 먼저 만들어야 누구에게 보여주고, 사용해 보라고 건네줄 거 아냐. 아이디어 단계에서 MVP(최소 기능 제품: Minimal Viable Product)으로 넘어가야 피드백을 받아서 수정을 하건, 추가를 하건 할거 아냐. 그러려면 뭐가 필요하지? 바로 협력업체를 찾아야 해. 찾아가면 어디에서나 널 환영할 것 같지? 아냐 아냐 그렇지 않아! 널 환영한다면, 네가 가져올 돈을 환영하는 거야. 적당한 퀄리티에 과다한 견적 청구로 너를 유린할 거야. 그래서 이제부터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한다잉~~!




 처음에는 별거 아닌듯한 서류 제출에 진이 빠졌지. 그리고 업체 방문이 더 나의 멘붕을 가속화시켰어. 시제품을 제작하기 위해 디자인부터 목업(Mock up)을 맡기려 다녀볼수록 뭔가 잘못되어 있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어.


 "정부지원으로 하시는 거죠? 예산이 얼마로 책정되어 있죠?"


 "아... 뭐 지원은 맞는데 제가 의뢰하는 걸로 견적이 나오는 게 아닌가요?"


 "고객님이 얼마의 예산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다른 거죠."


 이 무슨 댕댕이 짓는 소리야! 정부 지원하고 견적하고 뭔 상관관계가 있어? 그럼 정부지원 안 받으면 견적이 싸지고, 받으면 비싸지냐? 안 그런 거 같지? 정부지원에 빠싹한 시제품 제작사들은 특정 시기가 되면 자실들을 찾아오는 사람들이 대부분 지원받은 사람인 줄 알거든. 그래서 터무니없는 퀄리티와 더 터무니없는 가격을 부르지. 근데 거기에 그런가부다 하면서 계약하는 놈은 호구되는 거야. 근데 나처럼 따지고 들기 시작하면, 상대를 안 해. 견적조차 안 내줘. 처음에는 별 그지 같은 업체 찾아갔다고 생각했는데, 횟수가 늘어날수록 다들 정부지원 어디 선정되었냐고부터 물어. 이건 청년창업사관학교에 물어봐도 뾰족한 수가 없어. 왜냐면 정부기관이 어디 업체가 좋고, 어디 업체가 안 좋고를 구분하거나 언급하는 것 자체가 시빗거리가 될 소지가 있거든. 그런 식으로 시장에 관여하면 안 되니까. 그게 청창사 시스템의 태생적 한계 중 하나지.

(솔직히 이 점 때문에 청창사 동문회가 결성을 환영했어. 정부기관에서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할 수 있는 대의적인 역할을 할 수 있으니까. 청년창업가들의 절실함을 등쳐먹으려는 업체들을 분간하고, 알려 줄 수 있는 일을 졸업 선배기업들이 목소리 내주길 기대하고 있어.)




청창사에서 처음 겪게 되는 난관이자 풀기 어려운 문제는 믿을 수 있는 협력업체 찾는 것!  말처럼 쉬운 게 아니라 진짜 하늘의 별따기였지. 견적이라도 받으면 다행인데, 그렇게 쉽게 견적 주지 않아. 게다가 발주내 준다는 확답이 없으면 견적 내줄 수 없다는 곳들도 있어. 그래서 이미 졸업한 선배기업들을 찾아다녔어. 그분들에게 좀 추천해 달라고, 좀 괜찮은데 소개해달라고 끈덕지게 붙어 다녔지. 그러다가 어떤 업체 하나를 알게 되었어. 일단 찾아갔는데 웬걸... 대표를 만나자마자 안 하겠다고 하더라고. 


"일단 제 이야기 좀 먼저 들어주세요."


"대표님~! 저희는 정부지원받아서 시제품 제작 의뢰받는 거 안 해요."


"무슨 일이 있었나요?"


"지난번에 처음으로 정부지원으로 시제품 의뢰받았는데, 너무 피곤하게 서류도 내달라, 수정해 달라, 가격 더 깎아달라고 하다가 나중에는 원하는 대로 안 나왔으니 다시 만들어달라고 생떼를 써서 그냥 돈 돌려주고 앞으로 이런 일 안 받기로 했어요."


순간, 머릿속에서 빛이 스쳐갔어. "여기다! 찾았다!"


"아.. 그랬군요. 저도 그런 일이 있으면 다시는 하기 싫을 거예요. 그래도 한 번 제 이야기 들어주세요."


"뭐 여기까지 오셨으니까 커피나 한 잔 하시면서 이야기는 들어드릴 수 있습니다."


"저는 예전에 OOO에서 일을 했는데요, 거기서 XXXX 관련 일을 했어요."


"XXXX요? 그걸로 사업을 하는 곳이 있나요?"


첫 만남에서 딱히 내 아이템을 이야기하기보다는 내 이야기를 주절거렸어. 내가 살아온 이야기, 왜 창업하게 되었는지, 회사 관둔 이야기, 얼마 전에 중국에서 일을 도모하다 퇴각한 이야기 등... 그러다가 끝에 잠깐 내 아이템에 대해 살짝 언급했지. 그러고는 정중히 인사드리고 사무실로 돌아왔어.




다음 주에 다시 그곳을 찾아갔지. 그곳 대표님은 나를 반겨주시더라고. 그리고 이런저런 이야기하다가 내 아이템을 물어주셨어. 저번에 만나고 나서 뒷 이야기가 궁금했다더군. 그래서 왜 이 아이템을 하게 되었고, 해 보려고 돌아다니면서 무시당한 이야기, 이거를 하려고 청창사에 라꾸라꾸 침대 펴 놓고 그림 그리고 있다는 이야기 등을 했지. 그 대표님은 자신이 중국에서 제조공장 만들었다가 실패한 이야기, 디자인 회사의 한계와 현재 진행하고 있는 일들에 대한 어려움, 조만간 이사도 가려고 계획하고 있는데 쉽지 않다는 이야기, 자신이 최근 어떤 교수님에게 받은 투자 제안 이야기까지 나누게 되었지.


넌지시 그 투자건을 물었어. 근데 OO대학교 교수라는 분이 어떤 특허를 가지고 있는데 그걸 이용해서 OOO을 만든다는 거야. 거기에 투자하라며 연락이 왔는데 자신은 잘 모르는 분야라서 고민이고, 그쪽에서는 재촉을 한다고 하더라고.


"혹시 문제가 되지 않는다면, 그 투자제안서 중에서 내용만 조금 알려주실 수 있으세요? 마침 우리 멤버 중에 끄 쪽을 잘 아는 연구원이 있어서 확인은 해 드릴 수 있는데..."


"그래요? 제가 그럼 메일로 간단하게 내용 정리해서 드릴게요. 확인해 주면 감사하죠."


"다음번에 만날 때까지 제가 정리해서 오겠습니다."


그렇게 헤어지고, 사무실에 온 나는 우리 멤버와 주변 지인들에게 OO대학교 교수의 논문과 특허 사항, OOO 관련 정보를 수배시켰어. 나름 논문과 기술 검색은 능숙하고, 관련 기술이 화학 쪽이라서 더욱 수월하게 서치 맡길 수 있었지. 그리고 그다음 주에 다시 업체를 찾아갔어.


"우리 팀원들과 관련된 쪽 아는 교수님들께 자문 구했는데... 아직은 섣불리 진행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아니 왜요?"


"그게 이미 일본에서 상용화되어서 제품이 나왔었는데, 부작용으로 문제가 있었던 물질이라... 특히, 그걸 나노(Nano)화하여 침투율을 높인다는 것은 역으로 잔류되거나 깊이 침투해서 잔류하는 문제 등에 대한 부정적인 영향이 많이 언급되어 있더라고요."


"그래요? 안 그래도 이번 주 금요일까지 얼른 투자 결정 내려달라고 하도 전화가 와서 고민이 깊었는데..."


"혹시 가능하다면, 우리 팀 말고도 다른 학교나 관련 기업들에게도 물어보시고 확인하시는 게 좋을 듯합니다. 시간에 쫓기시는 것보다는 돌다리도 두들겨보고 건너가는 게 낫잖아요."


"그래야겠네요. 고마워요"




 그리고는 그분께 전화가 왔어. 알아보니까 투자 요청한 회사가 재무적으로도 문제가 많고, 이런저런 논란이 좀 있어서 거절 의사를 전 했다고 하시더라. 그러면서 고맙다고. 후회할만한 결정을 내릴 뻔했는데 이 인연으로 피해 갈 수 있었다고. 그러면서 이번 주 중에 시간 되면 찾아와서, 같이 시제품 어떻게 만들지 실무진들과 회의 나누자고 하셨어. 그렇게 좋은 업체와 협력하게 되었지. 덕분에 시제품 개발뿐만 아니라 목업과 금형까지 중간중간에 많이 배울 수 있었어. 특히나 협력사 대표님은 제조업 경험도 있고, 몇 개의 다른 기업도 운영하고 있다 보니 만날 때마다 많은 가르침과 도움을 주었고, 소개도 시켜주고, 크게 성장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지. 더 놀라운 건 그 인연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어. 게다가 꼭 일이 없어도 근처를 지날 때면, 들러서 커피 한 잔에 가끔은 식사도 나누고, 이런저런 이야기 주고받으며 고민을 들어주시지. 




 사실 스타트업 기업은 불안정하기도 하고, 요구하는 것도 많아서 귀찮아하기도 해. 설령 이번 개발 건이 잘 되더라도 다음번에 또 같이 일을 하게 될 거란 보장도 없고, 중간에 소리 소문 없이 망하기도 하지. 그래서 장기적으로 협력관계를 가져가기는 어렵다고 보는 게 이해도 되지. 그러다 보니 스타트업과 함께 일을 하는 업체는 돈이 떼이지 않도록 정부지원금이 얼마고, 어떻게 결제받을지를 생각하지. 건 바이 건으로만 계약하는 이유도 그러한 연유고. 계약 끝나면 더 이상 신경 쓰지 않고 싶기도 하고. 잘해주지 않아도, 얼마 안 가서 사라질 거라 생각하기도 해. 설령 살아남더라도 규모가 작아서, 경험도 없어서 항의 한 번 못 할 거라고 생각하지. 그래. 현실적으로 항의 제대로 하는 창업자가 드물지. 그럴 여력도 없고...


 그래서 우리가 처음 협력사를 만나고, 선택하고, 설득하기 위해서 무작정 하기보다는 하나하나 더 꼼꼼히 따져보면서, 더 알아보고, 더 신중하게 접근해야 하지. 분명 좋은 업체/ 좋은 사장님들이 있어. 우리 눈에 안 들어왔거나 우리가 지나쳤을 뿐이야. 우리가 게을렀거나 우리가 세심하지 않았기 때문이야.






여기서 잠깐!!!


좋은 협력사를 찾는 Tips!!!


1) 좋은 업체는 너의 자금 출처가 어디인지를 궁금해하지 않아.

2) 좋은 업체는 니가 만들어온 계획보다는 같이 만들어갈 계획에 관심을 가져.

3) 좋은 업체는 대표를 직접 만날 수 있는 곳이야. 널 상대하는 사람이 대표가 아니라면, 결과물은 딱 그만큼만 나온다.

4) 좋은 업체는 너가 만들어가는 거야. 네가 자주 찾아가고, 네가 자주 얼굴을 비치는 만큼 잘해 준다.

5) 좋은 업체를 찾았다면, 무조건 매달려! 어떻게 해서든 관계를 맺고, 인연을 만들어야 해!




내가 메일을 보낼 때, 협력사들에게 자주 남기는 마지막 인사가 있어.


"좋은 사람에서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좋은 인연을 아름다운 인연으로 만들어가겠습니다. 오늘도 OOO님의 도움으로 우리는 성장하였습니다. 감사합니다."


 우리는 협력사와 함께 성장해야 해. 초반에는 미미했지만, 우리도 상대에게 도움이 되는 회사 관계가 되어야 해. 그 가치를 인정해 주는 분들이 분명히 어딘가에 있어. 그러니 오늘 만난 업체들에게 실망했더라도 포기하지 말고 내일은 더 눈을 크게 뜨고 찾아봐. 너와의 인연의 끈이 닿아있는 좋은 파트너를 찾을 수 있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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