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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뷰티 연금술사 Nov 27. 2018

창업자의 일기(18)-서식지가 바뀌다

집에 자주 못 가고, 사무실에서 살아요.

 집이 파주다 보니... 안산까지 왔다 갔다 하기엔 너무 먼 거리였어.

 그나마 나의 애마 "아반떼"라는 놈이 있어서 다행이었는데, 아침에 계양에서 중동 쪽이 막히고, 또 가다 보면 경인고속도로에서도 막혀. 안산에 다 와갈 때쯤... 안산역 근처에서 또 막히고... 그래서 출근할 때 새벽에 일어나서 부단히 밟아야 교통체증에 의해 수명이 줄어드는 걸 피할 수 있어.


 출퇴근에 소요되는 시간도 문제지만, 도로비(대부분 기름값)가 부담스럽지. 이전 글들 봐서 알겠지만, 난 가난한 창업자라구. 그래서 외부적인 여러 요인으로 서식지를 바꾸게 되었어. 그렇게 안산에서의 삶이 시작된 거지.




 아침 9시 "땡"하면, 기숙사 신청 페이지가 열려(아... 8시였나? 가물가물해지네)


 청년창업사관학교에 기숙사는 인화관이라는 기숙사가 있어. 하나는 신식 기숙사, 다른 하나는 구식 기숙사!

거기에 방을 잡으려면 아침에 청창사 홈페이지 접속해서 신청을 해야 하는데... 진짜 박터지는 경쟁이야.


 조금만 버벅거리면 기숙사고 뭐고 예약을 못해. 다들 월요일 오전이면 기숙사 예약으로 전쟁을 치르지. 미리 일주일 치를 예약하는데 뭐 중간중간에 가끔 취소하는 자리가 나오면 땡잡았다고 들어가는 경우가 있긴 해. 매우 드물기에 그건 언감생심이었지.

(뭐 지금은 기숙사비에 대한 지원이 사라져서 기숙사 방이 많이 남는다더군. 우리 때는 기숙사비가 지원되어서 그 점은 꽤 좋았지)




 초기에는 일단 몇몇 대표들이 야전침대를 샀어. 뭐 그런 거 있잖아 군대 경험한 분들은 잘 알겠지만, 튼튼한 나일론 천으로 된 들 것 같은 간이침대 말이야. 값이 싸서 한 두 명이 써보고 입소문이 났지. 근데 좀 지나니까 별루 안 좋더군. 어쩌다 한 번 씩 자면 괜찮은데 너무 자주 거기서 자니까 야전침대가 늘어나거나 금세 부서졌어. 


 그리고 몇몇은 라꾸라꾸 침대를 샀어. 이건 정말 굿 아이템이야. 좀 더 부르주아 대표는 라꾸라꾸인데 따뜻하게 데워지는 게 있더군(완전 부러웠음)


 거기에 더더더 여유 있는 분들은 텐트를 사셨어. 우와! 텐트는 그럴듯했어(하지만 비용에 비해 별루임. 결국은 바닥에서 자는 거니까.)


 나는 뭐였냐고? 흠... 사실 그럴 돈이 없어서 사무실 의자를 세 개 모아 놓고 그 위에서 잤어. 때로는 사무실 밖에 긴 소파에서도 잤고. 근데 몸이 더 피곤해서 그냥 큰 맘먹고 라꾸라꾸 질렀어. 지름 지름 지름~~! 


 아.. 그리고 침낭은 꼭 하나 있으면 좋아. 덮는 것 없어도 여름과 가을은 잘 버텼는데... 겨울은 어쩔 수 없더라고. 특히, 침낭 없이 사무실 밖에서 자는 건 정말 하면 안 되는 짓이야. 입 돌아가!

(사실 사무실 안도 마찬가지야. 난방기를 놓을 수가 없어서 진짜 춥거든. 기숙사는 따뜻하고, 푹 잘 수 있어서 더욱 경쟁이 치열했지. 사무실에서 자면 다음 날에도 데미지가 컸어. 그래서 나와 비슷한 처지의 대표들은 하나둘씩 침낭을 사기 시작했지)


 침낭은 정말 필수야. 지금도 우리 사무실에는 침낭이 있는데, 청년창업사관학교를 졸업하고 필드로 나와서 한동안은 집 근처에서 일을 했거든. 멋들어지게 디지털 노매드고, 사실은 그냥 근처 카페나 도서관 등 와이파이가 되는 곳을 찾아다니며 일했지 뭐. 어쨌든 집에서 자고, 일하고를 반복해서 침낭을 쓸 일이 없었어. 


 근데 왜 침낭을 아직도 가지고 있냐고? 하나는 침낭은 나에게 증거 물품이기 때문이야. 침낭을 보면, 추운 겨울에 침낭 속에 들어가서 노트북으로 일하며 각오를 다지고, 반드시 성공하리라던 다짐들이 떠올라. 마음이 나태해지지 않도록 날 이끌어주지.

 다른 하나는 지금도 여전히 사무실에서 먹고, 자고 할 때가 많아서야. 올해 8월부터 지금까지 쭈욱 다시 사무실을 서식지로 옮겼거든. 아직도 진상짓이냐고 핀잔 줄지도 모르겠지만, 그냥 내 성향이 그래. 몸에 익숙해진 사무실 취침과 낮에 미처 못 끝낸 일들, 특히 서류 정리의 업무는 결국 막차 시간을 놓치게 하지. 그러다 보니 그냥 사무실에 눌러앉게 되었어.



 청창사 사무실 사물함에는 꼭 컵라면과 과자가 필수야. 야근에 허기진 배를 채우는 데는 컵라면만 한 게 없지. 다들 컵라면 왕창 사 두었거든. 난 끓여먹는 라면은 좋아해도 컵라면은 별로 안 좋아했는데... 먹다 보니 좋아하게 되더라. 그만큼 살이 급증하는 시기야. 

 야근을 하면, 가끔은 컵라면 말고 배달음식을 먹게 되지. 결국은 또 살로 전환되지. 청창사에 있을 때 한 5킬로 쪘나? 중간에 살 빼려고 운동도 하고, 조절도 해봤는데 다 실패했어. 이런 된장!!!



 사실 나는 군대 전역하고 난 이후부터 두 가지 잘못된 습관에 길들여졌어. 하나는 아침을 안 먹는다. 다른 하나는 따뜻한 물이 아니면 안 씻는다! 


 아침에 일어나면 샤워를 하러 가지. 다행히도 따뜻한 물이 나와. 그래서 아침을 행복하게 만드는 시간이 바로 샤워시간이야. 사무실에서 자고 찌뿌둥했던 몸을 데우는 시간이지. 그래서 난 음악을 틀어놓고 씻었어. 가끔... 따뜻한 물이 안 나올 때가 있었는데... 그러면 기숙사로 갔지. 거기서 아는 대표들에게 부탁하고 씻었어. 


 점심과 저녁은 보통 구내식당을 이용해. 물론 아침까지 챙겨 먹는 부지런한 분들도 있었지만, 나는 안 먹었으니 패스! 구내식당은 식권을 구매해 두면 더 싸고, 나름 중소기업연수원 구내식당 메뉴는 맛있어. (밖에서 사 먹으러 가기 귀찮고, 멀다는 사실이 맛에도 영향을 주지. 하하하) 




 몇몇 대표들은 매일 꾸준히 기숙사에 있는 탁구장과 헬스장에서 운동을 했어. 처음에는 비장한 각오로 점심 먹고 운동하고, 저녁 먹고 운동하고 했는데... 점차 안 가게 되더라고. 

 굳이 변명을 하자면, 함께 운동하던 분들이 하나둘씩 사라지니까 마음이 해이해지기도 했고, 업무에 쫓겨서 급한 마음에 운동시간을 skip 하기 시작하더니, 시간이 지날수록 청창사 내부에 있는 시간보다 밖에 협력사 만나고 회의하고, 찾아다니는 시간이 많아져서 야간에 돌아오기 일쑤였어.


솔직하게 말할게. 운동에 대해서는 내가 의지박약이었어. 속이 후련하네~!



월요일에 출근해서 주 5일 꼬박 일하고 금요일 밤에 운전해서 집으로 갔지. 그래도 주말에는 아내와 아기를 돌봐야 하잖아. 아내는 육아로 밤잠 못 자고, 나날이 야위어가는데 일주일 중 2일 정도는 좀 잠들 수 있게, 좀 먹을 수 있게 잠깐이라도 육아에서 벗어나게 해야 하잖아.(그래도 내가 못 미더웠는지 아니면 내가 안 쓰러웠는지 좀 쉬라고 해도 굳이 나와 같이 주말에 아기를 돌 봤어. 아내가 말해줬는데... 그때... 못 미더워서 그랬대...ㅠ.,ㅠ)




 그렇게 서식지가 사무실로 바뀌어서 생활하고, 주말에는 집에 가고 반복이 청년창업사관학교에서의 삶이었지. 처음에는 힘들었는데 익숙해지면 나름 편해지더라. 그리고 추억 돋게도 그때가 즐거웠어. 비록 가진 것 없고, 어리바리 대표들의 좌충우돌의 연속이었지만, 그때가 천국이었어. 진짜 그때가 바보처럼 행복한 시간이었어. 졸업하면 알게 되지. 그 안에 있을 때는 몰랐는데, 항상 지나고 나면 깨닫게 되는 거지.


 그럼 다음에 일기는 조금은 무거웠던 "평가시즌"에 대한 이야기를 할께. 할 말이 좀 많은 글이 될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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