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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뷰티 연금술사 Nov 30. 2018

창업자의 일기(19)-경쟁과 평가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아니, 얼추 맞아! 적어도 좁게는 말야~

 세상에 태어나면서부터 우리는 극심한 경쟁 속에서 자라게 되지. 형제간에 맛있는 걸 더 먹으려고 싸우기도 했고, 또래 애들보다 선생님에게 더 잘 보이려고 나서기도 하고, 시험을 치고 일희일비하면서 숫자로 기록되는 성적순 등수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기도 해. 하루를 돌이켜보면, 지금도 매일이 보이지 않는 경쟁 속 매몰되어 살아가지. 경쟁이라는 건 이기면 행복하지만, 지면 기분이 다운되는 건 어쩔 수 없나 봐. 승부욕이 유독 강한 내 성향이 문제인가 싶기도 하고... 쩝...




 청년창업사관학교에서 생활하면서 세 번의 큰 평가를 받게 되지. 1차/2차/최종평가!!! 그 시즌이 되면 모두 열공모드야. 평소에도 열심+바쁨 모드인데 특히나 평가 시즌이 되면 신경이 곤두서는 느낌이 들어. 친한 대표들끼리 크게 싸울 일은 없는데 유독 평가 시즌이 되면 예민하게 반응하는 분들이 보이지. 평소라면 그냥 넘어갈 말 한마디에 목소리가 커지곤 해. 그만큼 다들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는 거겠지?


 



1) 1차 평가 시즌

 입교 한지 얼마 안 된 거 같고, 별로 한 거 없는 듯한 그때! 방심하고 있는 우리에게 훅 들어오는 게 바로 1차 평가야. 이제 서류제출에 좀 익숙해지고, 규칙적인(?) 삶이 자리 잡아갈 때 1차 평가에 대한 공지가 올라오지. 정신 차리고 주위를 둘러보면, 나 빼고는 다 진도가 어느 정도 나간 걸 깨닫게 되지. 나만 너무 뒤처진 느낌?


 팁을 하나 주자면, 1차 평가에서는 얼마나 진행되고 있는지에 대한 부분을 주로 어필했어. 어차피 벌써 시제품이 나오기는 어려워. 그럼 평가는 무엇으로 볼까? 시제품 제작이 어느 정도 진행되었으며, 얼마의 예산을 어떻게 사용하고 있고, 기본적으로 교육과 출석은 꾸준히 잘하고 있는지, 계획 대비해서 어느 정도 진도가 나갔는지를 보여주는 게 좋아. 특허나 신규채용도 빠를수록 좋지. 


 처음에 입교할 때는 사업계획서로 평가받았으니, 시제품은 아니더라도 뭔가 보여주면서 설명할 수 있는 실물이 필요해서 급하게 3D 프린터 빌려서 목업 같지 않은 목업을 뽑아내기 시작해. 그리고 협력사에게 재촉하기 시작하지. 평가 전까지 모든 게 계획대로, 계산대로 다 준비되어야 하는데 꼭 이럴 때면 하나둘씩 펑크가 나버리거든. 디자인 시안도 나오고, 랜더링 돌린 것도 확인하고, 평가 발표 자료 만들고 후다닥 며칠 밤낮을 새 가면서 두근두근 심장이 펌프질 하는 아침을 맞이해. 나름 가장 좋은 정장과 달달 외워둔 스크립트를 PPT에 맞추어 중얼거리지. 시간은 절대 오버하지 말 것! 심사위원의 지적에 유하게 받고, 꼭 대안을 언급할 것! 말을 빠르게 하지 말고 여유로운 모습을 보일 것! 제스처와 시선처리까지 작은 것 하나하나 다 체크해봐.(이 때는 첫 평가라 꽤 긴장하고, 과할 정도로 준비를 했다. 그리고 우수등급을 받았으며, 추가로 지원금을 받게 되었다. 좋았지만... 다시 복기를 했을 때, 군더더기가 많았고, 너무 서둘렀기에 놓치고 넘어간 문제들이 있었다. 결국은 그게 언젠가 수습해야 하는 상황이 와서 고생을 했다.)


2) 2차 평가 시즌

 1차 평가 당시에 시제품 또는 베타 서비스까지 나오지 못했기에 2차 평가에서는 시제품/베타 서비스 버전이 있어야 해.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해. 대다수는 여전히 시제품조차 완성을 못했거든. 그나마 시제품 또는 베타 서비스가 있던 분들도 피드백에 의한 수정 및 보완 작업으로 이래저래 늦춰지고 혼이 쏙 빠져나가지. 2차 평가받을 때가 젤 바빴어. 해외에 나갈 일도 생기고, 여기저기 외부 업무가 밀려들어서 정작 사무실에 있는 시간은 거의 어둑어둑해질 때쯤에야 돌아오거든. 초반에 계약하고 진행했던 외주들의 결제가 도래하다 보니 증빙서류와 챙겨야 할 것들이 꽤 밀리기 시작하지.

 그럼 어느 세월에 2차 평가를 준비하냐고? 이미 1차 평가를 경험하고 나면 한 번 호되게 당해서 이를 갈면서 준비해 온 분들이 있어. 독을 품고 준비하다 보니 1차 평가 때랑 정말 달라져있더라. 각종 인증/인허가/수상/전시회/고용 등의 성과를 준비하였더라고. 솔직히 아차 싶었어. 그리고 2차 평가를 받을 때 또 다른 분들은 맘 편하게 대충 준비하기도 해. 마음을 비운 분들이 생기지. 주변을 둘러보면 쭉쭉 진도를 잘 빼는 사람은 더 속도감이 붙는데 속도가 더딘 사람은 크게 바뀌지 않더라고. 


 하지만 명심할 게 있어. 어차피 이건 청창사 내부에서의 평가 시스템이고, 사업과는 또 달라. 뭐든 이왕이면 자신이 속한 그룹에서 성과 내고 잘하는 게 좋겠지만, 그것은 단지 일시적이고 단편적인 시간의 파편일 뿐이야. 평가 잘 받아서 추가 지원금을 받고, 자신감을 얻는 것도 좋아. 진지하게 말하면 그것뿐이야. 

 뉴욕의 시간이 시애틀보다 3시간 빠르다고 해서 뉴욕이 시애틀보다 더 나은 도시라고 할 수는 없잖아. 누구나 자신의 사업에 맞는 시간과 스케줄이 있어. 억지로 평가에 맞춰서 무리하지는 마. 긴 숨 내쉬고 가야 할 길이고, 끈기와 인내의 시간들이 더 많을 거야. 옆에 친구가 더 빠르다고 좌절하거나 자책할 필요 없어. 자신만의 페이스를 지키는 게 더 멀리 보면 현명한 판단이야.(이런 마인드를 가져서인지... 2차 평가에서는 1차 때와 달리 점수가 낮아졌고, 우수등급을 못 받았다. 당일 하루는 신경이 쓰였지만... 진심으로 그다음 날에는 화창한 하루를 맞이했다)



3) 최종 평가

 여기에는 많은 분들이 진심으로 전력투구를 하지. 연달아서 지원을 받고자 하는 열망이 드러나는 평가야. 여기서 우수를 받는다는 건 연계지원으로 이어지는 중요한 거점이기도 해. 하지만 이쯤에서 확연하게 창업자 간의 우열이 드러나게 되지. 왜냐면...청년창업사관학교 시스템에서 정해 놓은 기준으로 볼 때, 앞선 사람들이 보인다는 거야. 이것이 꼭 사업을 잘하고 있다는 뜻은 아니니까 오해하지 마. 정해진 틀 안에서 충족하는 사람들이 보인다는 거고, 그건 청창사 시스템 안에서 좀 잘했다는 거뿐이니까. 이걸 반복해서 말하는 이유는... 사업이란 게 단순비교로 우열을 가리는 헛짓하지 말라고 당부하려고.


 어쨌든 이쯤에서 기준은 매출이 있으면 일단 유리해. 하다 못해 구매계약서라도 많으면 좋지. 지금 막 팔기 시작했더라도, 어디 입점했다거나 막 판매망을 확보한 케이스가 유리해. 적게나마 샘플이라도 수출한 기록이 있으면 또 가점이지. 물론 현실적으로 이 정도가 되기 위해서는 입소형으로 온 창업자가 도달하기 힘들어. 이미 창업 유경험자로 준입소형인 분들에게 좀 어드벤티지가 있는걸. 아이디어 가지고 시제품/베타 서비스 막 만들어낸 창업자가 매출을 일으킨다는 건 좀 어려운 일이야. 대신...청창사에 있을 때, 투자유치를 받았다거나 장관급 수상경력이 있으면 매출과 비견될 만큼 효과가 있어(요것도 쉽지 않아...ㅇ.ㅇ;;;)




 연계지원받고자 한다면, 스트레스를 많이 받을 거야. 그러나 꼭 그것만이 답은 아냐. 실제로 시제품/베타 서비스 나왔으니 필드로 직행하는 것도 나쁘지 않아. 더 많은 기회와 고난이 기다리고 있어. 그것이 강하게 만들어주고 더 필사적으로 만들어주지. 


 모든 일에 과거를 후회하는 것보다 지금 현재에 주어진 상황을 후회하지 않도록 만드는 게 중요한 거야. 그러니 일희일비할 필요 없어. 때로는 결과를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그 이상의 목표를 향해 더 빨리 뛰는 게 좋아. 


 내가 그랬기에 자기 합리화하는 건 아냐. 워낙 잘하는 대표들이 많았기에 나에게 연계지원의 기회는 오지 않았어. 하지만 그래서 지금의 내가 더 감사할 일이 많아진 거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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