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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뷰티 연금술사 Dec 10. 2018

창업자의 일기(20)-우직한 소처럼

청년창업사관학교에 있을 적, 끈기는 축적이라는 걸 배우다.

 2015년의 나는 엄청난 열심쟁이였어. 청년창업사관학교에 입교 한 이후로 모든 다 잘 될 줄 알았고, 자신감이 넘쳐났지. 근데 약간 속 빈 강정 같던 시절이랄까? 까 보면 별로 성과가 없었어. 당시 열렸던 모든 공모전에 다 지원했었는데... 다 떨어졌어. 멀리 떨어진 지방에서 열리는 작은 공모전까지 다 지원했었다고. 청창사 대표들이 한 두 개쯤 가지고 있던 그 흔한 상장 하나 없었어. 얼마나 부러웠는데... 별거 아닌 종이 한 장이지만, 어디에 회사 현황 작성할 때마다 그놈의 "수상내역"란에 하나도 채울 게 없다는 사실에 불같이 일해야겠다던 열정이 급냉각되더라고.




 R&D 개발 지원사업은 좀 자신 있는 분야였어. 그도 그럴 것이 연구원 생활을 오래 했고, 첫 회사, 두 번째 회사에서 모두 과제 기획하고 연구 기획하는 쪽으로 나름 인정받았었거든. 근데 처참하게 다 떨어지더라. 그제야 깨달았지. 내가 잘 나서 큼직한 과제들을 선정시킨 게 아니라 회사라는 백그라운드와 갖춰진 레퍼런스들이 기본적으로 있었기에 가능했던 거구나. 


 문제에 마주하게 되면 과거를 되짚어야 해. 실패의 경험이든, 성공의 경험이든 무언가 다시 꺼내 볼 수 있는 경험이 있다는 것은 매우 큰 힘이야. "왜"라는 의문에 실마리를 얻을 수 있는 유일한 "증거"들이거든. 그리고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시작점이지.


 이전에 직장에서 승승장구할 때, 무엇을 갖추었었는지를 되짚어보게 되었어. 여러 인증과 관련 레퍼런스들, 인력과 기술지표들... 아뿔싸! 일에는 순서가 있다는 가장 기초적인 걸 잊고 있던 거야. 건물을 지으려면 먼저 지반 공사를 틈틈이 해야 하는데 얼른 건물 짓고 싶다는 조급증 때문에 기초공사를 생각지 못한 거지. 그래서 벤처기업 인증을 비롯한 특허, 팀빌딩에 집중하기 시작했어.   




 청창사 내부에서의 평가는 잘 받는 편이었지만, 그건 아무래도 결석 없이, 엄청난 양의 공부를 하는 기본 시스템에 잘 적응한 것일 뿐이었어. 그런 거 있잖아. 학교 다닐 때, 학교 규정 잘 지키는, 선생님 말씀 잘 듣는 모범생이긴 한데... 공부는 못 하는 친구!!! 우등생은 아닌 거 말이야. 내가 그랬어. 교육에 필요한 이수 시간이 160시간이었지만, 224시간이나 교육을 들었으니 말 다했지 뭐(외부교육 대체까지 모두 포함


 같은 방을 사용하고 있던 대표가 그런 이야기를 하더군. 나보고 도전하는 것에 비해 얻는 게 별로 없다고. 너무 난이도 높은 도전을 하는 거 아니냐고. 웃으면서 대답해 줬어. 어차피 창업하기로 한 것 자체가 무모한 도전이라고. 그 시점부터 우리는 계속 실패하고, 좌절하고, 거절당하는 거에 당연하다는 자세가 정상 아닐까 한다고.


 누구나 실패나 좌절, 거절당하는 걸 좋아하지는 않아. 그렇기에 회피하는 것만이 답일까? 회피도 전략이긴 해. 하지만 계속 마주치게 될 일이라면 언젠가는 승부를 봐야지. 권투를 잘하려면 많이 맞아봐야 하고, 유도를 잘하려면 많이 넘어가야 요령이 생긴대. 근데 이왕이면 아무것도 없을 때, 잃을 게 없을 때... 다시 말해서 초보일 때 두들겨 맞는 게 낫다고 생각해.




 그렇게 청창사에서의 10개월은 많은 도전과 실패가 연속이었고, 아무리 긍정적으로 이겨내던 나의 멘탈도 때로는 만신창이가 되고, 혼자서 쓰디쓴 눈물을 삼키기도 했어. 그러다 11월이 다가왔어. 매년 11월은 드라마틱한 사건들이 많았고, 전환기가 되어주었는데... 그 이야기는 다음 편에서 이야기할게.


 어쨌든 11월쯤이 되면서 그동안 청년창업 사관학교에서 작성했던 사업계획서와 이전의 것들을 복기하는 마음으로 살펴보기 시작했지. 근데 놀라운 것은 그 사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많이 바뀌었다는 거야. 비록 성과라고 할만한 것은 없었지만, 입교하기 전에 내가 만들어온 기록들과 입교 후의 기록들이 확연하게 차이가 났어.

 두 번째로, 입교 후와 그동안 많은 실패한 기록들이 다듬어지고, 더 채워지고, 더 업그레이드되어 왔다는 게 보이더라고. 게다가 이제는 아이디어 수준이 아니라 시제품 목업이 있었고, 나와 함께 사무실에서 일하는 동료도 있고, 처음 소소하지만 이전에 가지고 싶었던 현미경과 그 외 몇몇 실험장비도 생겼어. 돌아보면 나는 성장하고 있었고, 더 나아지고 있던 거야.


 하나도 볼 줄 모르던 재무제표를 볼 줄 알게 되었고, 세무에 대한 일정을 꼬박꼬박 챙기고 있었어. 은근히 알게 된 분들이 많아졌고, 피칭 데크(프레젠테이션 발표용 자료)가 세분화되었어. 비록 발표를 잘하는 편은 아니지만, 두렵다는 마음보다는 기대되는 떨림이랄까? 오히려 되든 안 되든 우리 회사/제품을 소개할 수 있는 자리라면 어디든 찾아다니는 나를 보며 신기하더라고.




 청창사 입교할 때, 오랫동안 묵혀두었던 네이버 블로그를 시작했어. 그때, 하루에 블로그에 들어오는 사람 수는 2~3명일까 말까였지. 매일은 아니더라도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글을 쓰기 시작했어. 별거 아닌 글들이었고, 그냥 기록을 나열하면서 그나마 취미라고, 그나마 일기장보다는 쉽게 접근할 수 있다는 이유로 지속했는데... 조금씩 방문수가 늘어나더라고. 그리고 지금도 가끔은 글을 쓰는데 유명한 블로거만큼은 안되더라도 한 달에 2,500~3,000 명 정도는 들어오고 있어. 물론 브런치와 네이버에 잠시 잠수탈 때가 많은걸 감안하면, 꽤 축적된 힘의 연속성을 실감하게 되지.(죄송하게도 정말 못 챙길 때는 6개월 동안 방치한 적도 중간에 있었고, 한 달에 한 번 글 남기기도 어려운 때가 종종 있었습니다. 죄송합니다.)


 끈기가 어떻게 축적의 힘으로 바 뛰는지에 대해 "브런치"를 예로 들까? 브런치는 처음 서비스가 나오고 몇 개월 동안은 있는지도 몰랐어. 어쩌다 발견한 이 곳에 글을 쓰기 시작할 때, 스타트업 관련 글은 총 900여 개 밖에 없더라고. 그래서 처음에 딱 글 100개까지만 채우자라는 목표로 시작했어. 네이버에 비해서 조회수나 방문자가 적은 편이지만 브런치에서는 다른 작가들의 글을 읽는 재미가 있어. 네이버는 찾으려면 좀 둘러봐야 하는데 여기는 딱 내가 원하는 글만 바로 볼 수 있는 매력이 있지. 결론적으로 처음에는 중간에 포기할 수도 있다고, 어느 세월에 달성하냐면서 멀게 느껴진 100개의 글을 달성했어. 그리고 그 외에 더 남기기 시작했지.(그 이후에 목표가 상향되어 이번엔 "구독자 500 만들기"로 잡았어. 이 목표도 참 무리다라고 생각했는데 얼마 전에 반 넘었다.)



 나는 천재이거나 기억력/이해력 등의 재능이 있는 사람은 아냐. 그러나 후천적으로 만들 수 있는 재능을 믿어. 그것이 바로 "끈기"야. 끈기 자체는 더디게 보이고, 특출 나 보이지 않아. 시작점에서 누구나 마음먹을 수 있고, 실행할 수 있는 쉬운 재능이야. 다만 그것을 습관화하고 강한 목적의식으로 지속하는 순간부터 조금씩 영향력을 발휘하지. 그리고 그 시간이 쌓이고, 하나씩 퍼즐이 모이다 보면 단시간에 이루지 못할 큰 성과로 나타날 거라 믿어. 

 끈기라는 게 너무 고전적인 덕목이라고? 고리타분한 이야기라고? 누가 뭐라 해도 기본에서 답을 찾아야 해. 끈기는 평범한 사람들이 천재를 이길 수 있는 유일한 무기라는 걸 나 역시 증명해 보이겠어. 내가 만들어 갈 수 있는 유일한 재능이 바로 끈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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