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뷰티 연금술사 Feb 13. 2019

창업자의 일기(23)- 청창사 졸업?

창업부터 인큐베이팅까지의 시즌이 끝났습니다.

 1월이 되었어. 청년창업사관학교에서 졸업은 앞으로 달 남았는데 당최 사무실 구하기가 어렵더라고. 창업기업들에게 저렴하게 사무실을 임대해 주는 BI 센터들에 찾아가 보고, 몇몇 대표님들은 사무실 하나 임대해서 여럿이 함께 의기투합해서 들어가더군. 미처 대비하지 않았던 나는 발등에 불이 떨어진 거지. 서울에 위치한 대학교 내에 있는 웬만한 임대 사무실을 다 뒤져봤어. 그러다 경기도에 있는 곳곳을 찾아다니고... 강원도 춘천까지 다녀왔어. 역시나 나와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이 많다 보니 장소 구하기가 하늘에 별따기더라고.


 하지만 이 일만 할 수는 없잖아. 최종 평가도 준비해야 하구. 2월 졸업 준비도 해야 하고. 마케팅 비용 정산하고 시금형 제작 비용도 지불해야 하고 연말정산이랑 미뤄둔 한 해 계획에 대한 정비도 하고... 1월이 후딱지나가버렸어. 눈 감았다 뜨니깐 2월이더라.




 2월이 되니까 청창사에 남아있는 사람이 거의 없었어. 이미 졸업 전에 사무실 구해서 나간 분들이 대부분이고 우리는 이제 마지막 28일 전에 사무실을 빼야 한다는 통고를 받았지. 트럭 하나를 빌려서 일단 26일에 짐을 빼기 시작했어. 급한 마음에 서울에 지인 분 사무실에 잠시 짐을 놓겠다고 하고 옮겼지. 그때, 남아있던 대표님들이 도와주어서 간신히 밤 12시에 짐을 다 옮겼어. 오후에 시작된 이사가 이래저래 서로 품앗이로 한 분 씩 이사 짐을 나르고 나니까 내 차례에 밤이 돼버렸더라고. 그날 밤에 집으로 돌아오는 길을 기억해. "반드시 성공해서 다시는 이사하지 않는 본사를 만들 거야" 다짐을 했지.(그렇지만 이사는 계속 된다~)




 그렇게 청년창업사관학교를 졸업하게 되었어. 마지막에는 연계지원을 받지 못했지. 연계지원은 1년 더 청년창업사관학교에서 인큐베이팅 프로그램을 받고 지원을 한 번 더 받는 건데... 워낙 쟁쟁한 분들이 있었기에 나는 사실 떨어졌어. 그때는 그 사실에 잠시 좌절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어서 빨리 필드에서 고생하고, 실전에서 굴러 살아남으라는 하늘의 뜻으로 받아들였지. 사실 돌이켜보면, 내게는 그게 다행이었어. 밖으로 나오니까 바로 닥친 생존의 고민과 현실 속 우리 회사의 초라함을 느끼며 엄청난 두려움에 밤잠을 못 이뤘어. 아침이면 걱정으로 시작해서 잠들 때도 걱정이었지. 그래서 더욱 미친 듯이, 쉼 없이 일했어. 일이 없으면 만들어서 했어.

 

 청창사 졸업식 때, 몇몇 기업들에게는 우수제품이라면서 소개할 수 있도록 부스를 마련해줬어. 졸업식날 찾아온 내외 귀빈들에게 한 해 동안 우리의 성과를 보여주는 자리였지. 물론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분들도 있고, 나처럼 그냥 드문드문 찾아와서 응원해 주고 가는 정도의 자리도 있었어. 다음 날 안 사실이지만, 내가 처음으로 온라인 신문기사에 회사 이름과 함께 실린 날이야. 의외로^^;;; 짧지만 회사 이름이 대외적으로 나온 날이지.




 졸업식인 그날에 부모님께서 오셨어. 그리고 찾아와서 날 보고 사진을 찍고, 기도를 해 주셨어. 못난 아들이 창업한다고 생고생을 하고 부모님 속을 썩였건만... 사실 지금까지 우리 회사가 존재한 이유는... 내 능력도 아니고, 내가 뭘 잘해서가 아니라 우리 부모님의 기도 덕분이었음을 확신해. 매일 새벽마다 나를 위해서 기도 해 준 부모님의 정성이 있어서 무사히 그리고 여태껏 살아남았던 거야. 그래서 믿어. 비록 나는 신앙이라던가 모범적인 교인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지만... 진심으로 부모님 덕분에 살아남았고, 앞으로도 그 보이지 않는 힘이 날 져버리지 않을 것을 믿어. 이걸 근거 없는 자신감이라고 부를진 몰라도 항상 위기의 순간에서 도움을 받아왔고, 살아남을 수 있었어. 절묘하게, 아주 타이밍이 딱 맞춰서 말이야.


 이 일기가 나를 교만하지 않게, 자만하지 않게 초심을 지켜주는 지침서이지. 그리고 두 번째 안전장치는 바로 부모님의 기도와 그 정성이야. 그리고 그 이후 내가 체험했던 정말 아슬아슬했던 순간에서 보호받고 이겨 낸 경험들로 항상 남들이 안 보는 곳에서도 하늘은 지켜보고 있다는 확신이 들더라고. 세 번째는 아내와 아이들이야. 그래서 몸가짐과 마음가짐에 신경이 쓰이지.

 나는 멘탈이 약하고, 귀가 얇으며, 나약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겁쟁이야. 그래서 나 스스로는 창업자로서 부족한 것 투성인데 과거의 내가 남긴 쓴소리와 부모님의 기도소리, 아내와 아이들의 목소리가 나를 달리게 하고 있어. 어쩌면 나는 이러한 환경에 지배받기에 흐트러지려 할 때마다 다시 바로 서려는 탄성이 있는 게 아닐까?




 여기까지가 그동안 창업하기 전부터 청년창업사관학교 입교 후, 졸업까지의 이야기야. 

 원래는 딱 여기까지만 쓰고 마무리하려고 했어. 근데... 아쉽기도 하고, 그 이후에 파란만장했던 이야기들도 남겨야 훗날의 내가 삽질을 덜 할 것 같아서... 다음 이야기들로 연장할게. 지금까지 이야기는 딱 탄생과 알껍질깨고 나오는 수준이었어. 계획보다 별로 한게 없고, 생각보다 힘든 일과 위기투성이었지만 이 정도는 앞으로  

펼쳐질 사건들에 비하면 행복한 순간들이야.

 이전까지는 독자들이 궁금해하지 않을 내 이야기였다면, 앞으로는 좀 관심이 갈만한 생존기가 될 거야. 왜냐고? R&D/IR/매출/사기당함/채용/해외진출/또 사기당함/투자/퇴사/시스템 구축/관리/피보팅 등의 이야기들이 펼쳐질 거거든.



한 동안 브런치에 글을 안 썼어. 바쁘기도 했고... 한 동안 힘들기도 했거든. 영업하면서 좌절도 많이 하고, 일도 잘 안 풀리고. 그러다가 오랜만에 글 쓰며 스트레스를 풀어본다.

매거진의 이전글 창업자의 일기(22)- 한 해가 저물어갈 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