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관론자는 대체로 그르다.
토마스 프리드먼 선생님 명언에 조금 개인적인 딴지성 사족을 덧붙이자면,
낙관론자가 이루는 위대한 변화 안에...비관론자의 영향이 어느 정도 있었기에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프리드먼 센세~!!! 전 낙관론자라고 믿고 사는데 님의 명언을 보고는 '역시 힘나네'라고 위안 받기보다는...'과연 그럴까'라고 불현듯 떠오르는데....전 사실 비관론자인가봐요.
"비관론자든, 낙관론자든 보는 관점이 다를 뿐, 대체로 옳아야 한다. 대부분의 위대한 변화는 둘 사이의 균형과 합리적인 선택에서 이루어진다" 라고 봅니다만....
1인에서 4인 정도 수준의 초기 스타트업에서 의사결정 과정에서 다양한 의견과 균형적인 토론이 존재하기는 쉽지 않아. 실제로 많은 창업자들은 촉이나 감을 따르기도 하고, 경험에 비추어서 독단적으로 밀고 나가는 경우가 많아. 비록 논리적/체계적으로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이것 역시 무시 못할 능력이라고 생각해.
하지만 멤버가 늘고, 서서히 규모를 갖추기 시작하면서 이러한 의사결정 방법에는 한계점이 발생하지. 반대급부가 생기고, 상대를 설득할 근거와 증명이 필요해지거든. 이전에는 정성적이던 것들을 정량적이고 수치로 표현할 수 있는 형태로 시스템화해야 하거든. 한 가지 사실에 대한 멤버 수만큼의 관점과 의견이 생겨나. 어느 정도 토론과 논의를 통해서 카테고리를 분류하다 보면 결국 최종안에서는 "할 것인가", "하지 말 것인가"라는 선택으로 좁혀지지.
더 나은 결정을 위해 스타트업의 일상적인 토론 중에 발견할 수 있는 잡다한 비관론 중에서 얻을 수 있는 본질에 대하여 남기려고 해.
가벼운 비관론? 크게 맥락상 낙관론과 비관론으로 나누었을 때를 뜻하는데 큼지막하게 전제가 비관론 수준이랄까?
낙관론의 스타트업들은 대체로 두 가지 형태의 비관론과 만나게 되는데 하나는 컨셉이나 아이디어처럼 '기존 경쟁자처럼 미처 생각하지 못하는 것'과 기술적 허들이나 개발의 난관에 의해 발생하는 '안 될 것 같은 것'이야.
그런데 이러한 비관론을 극복했을 때 스타업의 성장은 어떨까? 기존의 경쟁자와 달리 미처 생각하지 못하는 것 찾아냈을 때... 그리고 안될 것 같던 것을 되도록 만들었을 때... 생각만 해도 짜릿하지 않니?
생각하지 못한 일을 성공시킨 프로젝트는 먼저 시장을 선점할 수 있는 기회와 빠르게 시장에서의 포지션을 키울 수 있는 베너핏이 주어지지만 후발 주자가 쉽게 따라올 수 있어. 그래서 이 쪽은 시장 선점을 위한 어쩔 수 없는 치킨게임을 대비해야 하지. 따라서, 대규모 투자와 마케팅에 승부를 거는 방향을 주된 전략으로 차용하는 거야.
반면에 안 될 것 같았던 일을 성공시킨 회사는 후발주자가 금방 따라 하기는 어렵지. 난이도가 장벽이고 안전장치인 셈이거든. 기술이나 노하우로 비지니스 모델을 완성시키는 경우인데 시장에 진입하면 독보적인 포지션을 차지하는 특성이 있지만 문제는 타겟 시장에서의 포지션이 좁아. 대중성보다는 전문성/기술성에 니즈를 충족하는 아이템일 가능성이 높다 보니 시장 자체가 좀 깊지만 좁은 특징이 있지.
이것도 이젠 세상이 바뀌고 빠르게 변하면서 과거에는 이런 구분이 명확했지만 현재는 그 경계가 모호 해 졌어. 이전보다 자본과 마케팅이 중요해진 지금은 기술력 중심이건, 아이디어나 컨셉 중심이건 간에 빠른 성장과 확장에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뚜렷해졌지. 시작점이 어디었던 간에 규모가 커진 회사들은 자신들의 취약점을 보완하려고 하거든.
단순 서비스로 시장을 선점하게 된 모 스타트업은 여러 개발자와 기술을 사들이면서 차별화를 시도하고, 역으로 기술력과 탄탄한 신제품 라인으로 시장에 등장한 모 스타트업의 경우는 대규모 투자 유치와 전방위적인 마케팅을 하며 대중적인 브랜딩까지도 이끌어내는 걸 보면서 다른 시작점에서 동일한 도착점을 향하는 모습으로 진행되는 건 어쩌면 당연한 귀납적 논리가 아닐까 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인사이트는 공통적으로 컨셉이든 아이디어든 기술이 든 간에 '가벼운' 비관론을 뒤집어보면 그 속에 숨겨진 차별성을 찾을 수 있어. 상식적이고 별다를 것 없는 지극히 현실적인 주장 속에서 차별되는 점이 무엇일까 고민하는 거지. 스타트업 창업자들에게는 귀가 따갑게 듣던 '일반적인 시장 속에 숨겨진 틈새시장/특수한 시장을 내 것으로 만드는 것'이라는 단순하고 당연한 명제의 시작점은 가벼운 비관론에서 발견되는 거야.
'일반적인' 비관론의 시작은 경험이나 통찰력에 근거해서 논리가 펼쳐지지.
"다른 경쟁사가 이걸 안 한 이유가 있을 거예요." (추정)
"이거 전에 해봤는데 안되더군요." (시기/범위)
"여러 케이스를 조사해보니까 이거 했던 곳들은 다 실패했어요." (유사경험)
여기서 두 가지 맹점은 경험이나 통찰력의 수준이 매우 한정적이라는 것과 증명 과정이 빠져있다는 거지. 사례에 비추어 추정하거나 이전의 경험을 토대로 대입하거나 조사에 의한 예측은 결국 내 것이 아니야. 시장조사에서 남의 통계나 누구에게나 알려진 공통의 자료를 내놓는다면, 그건 우리의 시장이 아니라 우리가 속해 있는 시장의 단편이자 편린의 조각이야.
수박의 겉을 핥는다고 수박의 맛을 안다고 할 수 없고, 수박 속까지 드러내 한 입 배 어물어 봐야 참 맛을 알 수 있어. 누군가 내 것이 아닌 것을 내 것인 양 주장하는 것은 의심해 봐야 해. 다른 곳이 안 한 이유가 있을 거라는 수준이 아니라 그 이유가 뭔지,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이 있는지/없는지까지 제시되었을 때 그 주장의 진미를 알 수 있어. 이 전에 해 본 경험에서 안 된 이유와 배경을 지금 현재에도 통용되는지 그때와 바뀐 점이 무엇이 있는지를 확인/비교하여 주장해야 해. 조사했던 다른 사례들이 충분히 공감할 정도의 다양성과 신뢰성을 가지고 있는지, 실패한 이유는 무엇인지를 알아내야 해.
그 이유와 원인들을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이 될 수 있는 방안들이 우리가 그들과 달라질 수 있는 가능성이야.
안 되는 이유와 되는 이유를 나열하면 우리가 하는 일의 대부분은 안 되는 이유가 더 많고, 할 수 없는 제약 사항이 더 많아. 그러니까 스타트업이지. 되는 이유가 더 많았다면 이미 누군가가 쉽게 시작했을 거야. 벌써 누구나 알만한 일이 이루어졌을 거고. 가능성은 될 거다라는 가정에서 찾는 게 아니라 안될 거다에 대한 이유/원인에서 찾아야 해.
내 성향은 낙관적인 편이야. 반면에 나의 절친이자 함께 이 길을 걷고 있는 CTO는 비관적인 편이지.
여기서 잠깐! 근데 뭔가 이상하지 않니? 어떻게 비관적인 성향의 경영진이 스타트업에 합류 할 수 있지? 낙관적인 사람들이 스타트업 하는 거 아냐?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냥 창업하지 마! 너 그런 생각이면 머지않아 크게 후회하게 될 거야.
우리 CTO의 비관론에는 나름 철학이 있어. 현실감 쩌는 "진짜" 비관론이지. 명확한 숫자와 부인 못할 근거를 가져오지. 때로는 직접 실험까지 해서 결과를 들이 내밀기도 해. 적어도 우리 가진 상황에서 최선의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신뢰할 수 있는 관점을 제시해 주지.
그에 대한 나는 "진짜" 낙관론을 들이대야 해. 낙관론도 수치와 근거가 있어야 해. 나 역시 증명의 과정을 거쳐 나온 결과를 제시하기도 해.
낙관론과 비관론의 차이는 이상과 현실/모험과 안전/보상과 리스크 등 서로 중점을 두고 보는 시작점이 다른 것일 뿐 동일하게 원인과 결과에 대한 예측, 근거와 추론, 증명과 대안에 대한 제시는 공통적이어야 하는 거지.
"그럼 결정이 나긴 나나요? 서로 팽팽하게 대립하기만 하는 거 아닌가요?"
-> 결정이 나! 이건 이념 싸움이나 사상에 대한 세뇌가 아니야. 양비론으로 나뉘어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는 어떤 나라의 후진적인 정치판 하고는 달라. 비지니스고, 사업이니까. 팽팽하게 대립한다고 생각하는 전제 자체가 잘못이야. 치열하게 거리를 좁혀가는 거야. 서로의 논리에서 미흡한 점과 확실한 점을 추려내는 과정이야. 우리에겐 시간과 자원, 인력이 제한적이기에 질질 끌면서 싸울 시간이 없어. 신속한 결정과 최선의 해답을 도출하기 위한 "진짜"토론이 되어야 하지.
무조건 낙관론을 말하거나 무조건 비관적인 관점을 가진 사람들은 고집쟁이에 꼴통들이야. 스타트업의 경영진은 유연성을 가져야 해. 서로 다른 관점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상대방의 의견에 공감하고 수긍할 수 있어야 하지. 왜냐면 서로 누가 맞냐 틀리냐 다투려고 모인 사람들이 아니라 잘 되도록 이끌어가기 위해 모인 사람들이니까 더 나은 제안, 더 합리적인 의견을 인정하고 의결할 수 있어야 해.
근데 함께 무언가 프로젝트를 이끌어감에 있어 현실과 이상을 적절하게 조율하며 일이 되도록 만들어가야 하는데 이론과 달리 그 균형을 맞추기는 쉽지가 않아.
"균형"이라는 표현을 쓰는데 이건 단지 찬성/반대의 숫자를 조정하는 것을 뜻하지 않아. 더군다나 서로 대립되는 주장이라는 이유로 같은 수준이라고 착각하는 걸 뜻하지 않아.
재미있는 현상은 회의를 하면 낙관론이든 비관론이든 어느 한쪽으로 기울기 시작하면 하나 둘 그쪽으로 점차 끌려가거든. 특히, 대표나 경영진 다수가 지지하면 그쪽으로 훅 넘어가던가, 일거리가 늘거나 고생할 일 또는 리스키 한 일이라는 판단이 들 때 회피하려는 방어기작으로 표가 몰리기도 하지. 쉽게 꿀빨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되면 그쪽으로 몰리는 현상을 경험하게 될 거야.
"가짜"표 쏠림을 조심해야 해. 이걸 조정하고 조율하는 것이 균형이야. "진짜" 의견들에 대한 "진짜"피드백을 매칭 하는 것/ "진짜" 낙관론에 "진짜" 비관론을 같은 의제로 올리는 것/ 감정적이거나 즉흥적이고 껍데기만 남는 다수결로 흘러가지 않도록 관리하는 것이 균형이야.
또 한 가지 주의할 점은 균형을 맞추는 것이 결정을 미루는 것과는 다르다는 점이야. 모든 회의나 토론에서 균형을 잃지 않음은 보다 나은 판단/결정을 이끌어 내기 위한 과정이지 평행선을 달리면서 결정장애를 유발하기 위함은 아니라는 거야. 리더는 양 쪽의 말을 다 듣고, 합리적인 판단을 해야 한다. 결정을 해야 한다.
그럼에도 항상 올바른 판단을 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아. 우리도 오판이 많았고, 실수와 사기도 당했어. 섣부른 결정으로 굉장히 위험한 한계상황에 몰리기도 했고, 판단 미스로 슬럼프를 겪기도 했지.
그럼에도 꾸준히 회사가 성장해 왔고, 마주 했던 상황들에 대하여 가장 합리적이고 적절한 선택을 해 왔다고 자부해. 그때는 긴가민가했는데... 과거형이 되고 나면, 보이더라고.
마지막으로 꼭 당부할 메시지가 있어.
이 글은 비관론을 비판하고자 하는 내용이 아니야. 언급된 비관론이라는 단어에 낙관론으로 대체해봐.
"일반적인 낙관론 속에서 리스크를 찾아내고, 가벼운 낙관론 속에서 취약점을 찾아내지."
대표자로써 최종 결정에 앞서 접하게 되는 그 어떤 말도 안 될 의견이 제시되더라도 무시하거나 간과하지 말고 찬찬히 살펴보고 그 속에서 취할 것과 버릴 것에 대한 뚜렷한 기준점을 잊지 말길 당부하기 위함이야.
또한, 서로 대척점에 있고, 견제하기 위함이 아니라 함께 더 나은 방법을 찾아내기 위함이고, 뭐 하나라도 더 건지기 위함이야.
"진짜 스타트업"이 되기 위한 의사결정 과정에 대한 이야기고, "진짜" 최선의 선택을 이끌어내는 스타트업 멤버들이 될 수 있도록 당부하는 메시지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