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절부절못하고, 겁먹은 선장은 선원들에게 공포를 전염시킨다.
어느 집단/조직/모임의 리더라면 한 번쯤 이런 생각을 했을 거야.
분명 주변에 사람들이 있는데, 조력자 또는 동료들이 있음에도 외로움을 느끼곤 하지.
그래! 외로워져.
가까이 있는 가족조차도 이해하지 못할 세계에 살고 있으니까.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우리가 입을 다물고 있어서 이해를 못하는 게 더 많아.
꼭 창업자들만이 외로움에 빠져 지내는 건 아냐.
직장인이나 학생들이든 세상살이에 속한 모든 이들이 가족에게는 말 못 할 고민과 걱정을 가지고 있는 법이니까. 다만, 회사의 대표들은 직원들을 비롯해서 외주/관계사/투자자 등 여럿 생계가 묶여있어서 그 고민이 더 큰 것 같아.
"그럼 답이 뻔하네~! 가족에게 말하면 되잖아"
근데 그게 쉽지 않더라고. 한 발짝 물러서서 조언하면 그게 답인 듯 보이는데.... 당사자가 되어보면, 그런 말 입에서 떨어지지 않아. 온전히 리더, 대표로서 짊어지는 게 더 낫다는 생각이 들어.
그래서 우리네 아버지들이 집에 와서 굳이 회사 일을 말하지 않았나 봐. 가장이라는 자리에서 가족에게까지,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거든.
늦은 시간에 아버지가 사 온 통닭에만 정신이 팔려서 아버지의 고단한 일상에 대하여 질문할 겨를이 없어지지. 오늘 회사에서 무슨 일이 있었고, 얼마나 치열하게 살다가 집으로 오셨는지는 궁금하지 않았어. 그냥 오늘도 늦게 집에 들어오시는 아버지 손에 들려진 치킨의 브랜드가 뭔지, 콜라는 가지고 오셨는지가 궁금했지. 다음번에는 피자 사달라고 조를까 고민하는 정도?
이제와 서야 그때의 아버지 모습이 얼추 공감이 되더라. 분명 힘들고 고된 하루였고, 집에 들어가는 길에 '내가 왜 이렇게 살아가는가'에 대한 질문에 가족을 떠올리셨을 테고, 집으로 향하는 길 모퉁이에서 아들내미가 좋아하던 통닭집에서 발길이 머물렀을 거야.
회사 대표는 직원들이 마음껏 일할 수 있도록 안정감은 느끼게 해 주어야 한다는 말이 마음에 와 닿았어.
불안하게 하지 않으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최우선, 가장 중요한 건 역시 회사가 돈에 쪼들리면 안 돼.
쉽지 않은 일이면서 가장 핵심이지.
이건 사업하고 있는 분들이라면 너무나 당연한 명제이기도 하고,
아무도 반문하거나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거니까 패스!
이 글에서 말하고 싶은 건 바로 이 두 번 째야.
이전에 나는 뭐든 다 투명하고, 뭐든 다 말하는 게 좋다고 생각했어.
(여전히 가급적 다 공개하는 게 좋다고는 믿지만, 모든 건 아니올시다란 입장이 되었어.)
업무가 만들어지는 과정부터 결과가 좋든, 나쁘든 모든 걸 공개하고
그렇게 되면 나와 바라보는 시각이 같아질 거라고 예상했거든.
성공과 성취에 익숙해진 팀원들은
회사가 성장하고 있구나, 잘 되어가고 있구나란 신호로 받아들이지만
잦은 실패와 실수들에 대하여는
뭔가 회사가 어려워지고, 안 좋아지는 것으로 느끼게 하더라고.
노련한 사장님들은
내게 아직도 리더로서의 경험이 부족하고,
역할에 대한 디테일에 약하다는 말씀들을 하시더라고.
"넌 혼자 해결해야 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거야"
"그럴까요? 그래도 같이 공유하고, 더 올바른 선택을 위해서 알려야 하는 게 아닌가요?"
"물론 그래야 할 건 그래야지. 근데 그러지 말아야 할 것도 그러는 건 문제야 "
"그걸 어떻게 구분해야 하는 거죠?"
"가능성의 과정이나 성공의 보상에 참여하는 것은 공유하고,
결과의 책임은 대표가 홀로 안고 가져가야 하는 거야."
"그래도 실패에 대하여 무엇이 잘못되었고,
어떻게 더 나아질 것인지도 머리를 맞대고 서로 공유하는 게..."
"조직운영은 심리적인 거야. 대표 입장에서는 그런 의도일지라도, 구성원들은 실패를 언급하고, 그 과정을 들추려 할 때 다들 부담을 가지게 되지. 혹시나 책임을 전가하거나 부담시키는 건 아닐까 하고."
"뭐가 됐든 모든 책임은 제가 진다고 누누이 말해왔는데도요?"
"그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건 직원들 탓일까 아니면 대표의 탓일까?"
"..."
"정말 이상적인 회사라면 실패에 대하여 들추어낼 때, 거침없이 난상 토론할 수 있는 회사겠지만 현실적으로 그런 회사 문화가 쉽지 않아. 업력이 짧은 기업이고 대표가 안정감을 주지 못하는 기업일수록 작은 일에도 불안해하지. 유한 성격이나 민주적인 의견수렴을 강점으로 뽑는 대표들이 이런 거에 약해. 오히려 강한 카리스마를 가진 리더들이 더 심리적인 안정을 주는 법이거든."
"..."
"대표는 실패를 자양분으로 삼고, 같은 실수를 하지 않으려는 의도를 보이 거겠지만, 직원들 입장에서는 불안하고 불편한 게 바로 실패, 실수를 공유하는 거야. 처음부터 고기를 먹이려고 하지 말고, 소화가 잘되는 음식부터 차근차근 훈련이 되어야 비로소 들을 귀 있는 사람은 듣고, 볼 수 있는 사람이 보는 거거든. 그때까지는 대표가 혼자 짊어질 필요가 있어. 적어도 직원들이 불편, 불안하게 될 일들 정도는 말이야."
신세계, 신대륙을 찾아 떠난 탐험대의 배가 항해를 하는 모습을 상상해봐.
출항했을 때만 해도 선원들은 꿈에 부풀어 있을 테지만 망망대해,
가도 가도 끝없는 바다라면 선장을 바라볼 테지.
우리가 제대로 가고 있는가,
매일이 쳇바퀴 도는 듯하는데 방향을 잃은 건 아니겠지.
이럴 때, 선장은 어떠한 모습을 보여야 할까
우리 한 번 상상해 볼 필요가 있어.
그래서 결론은...
가끔은 말하고 싶어도 말하지 않고 안고 가야 할 것들이 있다는 거야.
동료들이 흔들리고, 불안해할 부정적인 것들 말이야.
외로움?
더 이상 네게 외로움이 부정적인 감정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어.
그게 널 두렵게 하거나 힘들게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네가 대표로서 외로움을 느낀다면 잘하고 있다는 증거가 아닐까?
짊어져야 할 책임으로부터 해방되기보다는
묵묵하게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내딛는 걸 즐길 줄 아는
우리가 진정한 대표로 성숙되는 과정일 거야.
외롭다고 청승 떨지 말자.
힘들다고 한탄하지 말자.
답답하다고 드러내지 말자.
안절부절, 갈팡질팡한 우유부단한 모습은 우리 모두를 불안하게, 불편하게 만든다.
나 개인의 나약함은 내가 해결해야 하고,
우리의 책임은 대표가 짊어져야 한다는 걸 잊지 말자.
우리는 가끔 여우 탈을,
우리는 가끔 사자탈을 쓰는
리더가 되어야 한다.
(마키아벨리의 군주론 참조)
때로는 유비가 아닌 조조가 되어야 하고,
때로는 시골총각이 아니라 명배우가 되어야 한다.
그것이 리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