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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뷰티 연금술사 Jun 27. 2019

채사장의 일기(4)-R&D 지원을 받아볼까?

국가기술개발지원과제(R&D)를 받아야지라고 생각한다면 "누구 맘대로?"

R&D, 소위 기술개발과제라는 것에 대한 이야기


 2008년부터 2013년까지 직장생활을 하면서 경험했던 R&D는 어느 정도 업력과 기업부설연구소를 갖추고, 대학교를 비롯해 산학연 정도의 컨소시엄 정도는 구성해야지만 국가기술개발사업에 참여할 수 있었어. 인력 역시 석박사는 기본으로 포진하고,  논문과 특허를 챙기는 건 당연한 업무 중 하나였지.


 그렇게 R&D라는 것은 아는 분들만, 할 줄 아는 분들만 접근 가능한 영역이었고, 기술개발 레퍼런스나 역량이 없는 기업은 섣불리 덤비기는 어려웠어. 때문에 주로 기업 업력이 좀 있는 곳들이 주로 선정되었었지.




 당시 선임을 잘 만나 연구개발을 하고, 사업기획을 꽤 체계적으로 배웠지. 그리고 자연스레 사업계획서와 전략기획서, R&D기술서 등에 눈이 뜨고 큼직한 몇 십억 짜리 계약 수주 제안서도 만들었고, 정부기술개발 R&D도 작게는 3억에서 크게는 40억짜리 다년차 국책사업도 따냈어. 당시 우리 팀은 R&D 7전 6승이라는 성과로 회사에 이쁨을 받았어. 그때는 우리 팀의 역량이라고 착각했는데 사실은 [회사가 만들어 준 배경], [회사가 걸어온 이력], [회사가 가진 레퍼런스]를 비롯해서 대표/경영진의 역량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는 걸 뒤늦게 알아버렸지.


 대학교 산학협력관과 교수님 랩방에 수시로 들락거리고, 때로는 대학교에 3개월짜리 파견근무를 가서 랩실의 석박사들과 이런저런 실험과 레포트를 준비하곤 했어. 국가 소속의 연구소에 읍소하면서 시험 스케줄 조정하느라 하루 전에 미리 가서 숙박하고 기다렸고, 실험/원료 샘플 구하려 전국 곳곳을 돌아다니기도 했어. 출장 후에는 사용한 비용 증빙을 일일이 분류하고, 정리하고, 종이에 영수증을 붙이고, 결재 올리고, 연구노트 작성하고... 서류 작업의 반복이었어.


 R&D라는 건 노가다의 연속이고, 선정되는 것보다 실행하는 게 더 피곤한 일이더라고. 그래서 절대로 R&D를 만만하게 보지 않아. 결국은 정해진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수행해야 할 수많은 업무들이 담당 직원들에게 밀려오거든. 그리고 이걸 다시 문서화하여 레포팅 하는 작업이란 생각만 해도...




 시간이  흘러, 정부는 R&D의 제한적 접근성과 불필요한 업무가 많다는 민원 그리고 시대적 흐름에 의한 창업 열풍에 의하여 여러 가지 변화를 주었어. 정부 계획안으로는 2010년에 기획되었고, 2011년에 듣도보도 못했던 기관들이 설립되기 시작했어. 본격적인 시작은 2012년으로 기억해. 창업 관련 정부지원사업들이 막 생겨나고 있었고, 그때까지는 그저 뉴스로만 접하면서 '그렇구나'하며 한 발 뒤에서 소문만 접하고 있었지. 


 R&D 과제에 대한 스타트업들의 지원기준을 완화하고, 갓 창업한 기업들을 위한 맞춤형 R&D 프로그램을 선보인 건 2013년부터였어(정부의 창업 지원 과제가 아니라 진짜 R&D라고 부를 수 있는 기술개발과제들 말이야). 그리고 점차 해를 거듭할수록 첫걸음 R&D부터 투자연계 R&D, 창업성장 R&D 등 순간적으로 R&D 과제의 수와 카테고리가 늘어났지.  뭐 그중 일부는 일몰사업으로 종료돼버린 것도 있고 명칭이 바뀌어 여전히 공고가 올라오고 있는 과제들도 있어. 


 지원에 대한 기준(주관기관의 자격/컨소시엄 유무/고급 참여인력 구성 등)도 많이 풀렸지만 이전처럼 영수증 모아놨다가 붙이는 작업도 없어지고, 연구노트의 간소화 기재, 자금집행 방식의 변화(주로 바우처 제도)와 같은 제도적 변화가 많았어. 


 R&D 과제를 경험한 분들은 혀를 내두르며, 온갖 서류 작업에 지친다고들 하는데... 사실 이전에 비하면 꽤 많이 줄어든 거야. 뭐 하나 잘못 지출해도 그거 수정하려면 담당자 전화 걸고, 기관 찾아가고, 수정 확인 도장받고 얼마나 비효율적이었는데... 지금은 SMTECH나 각 부처의 기술개발과제 전담 시스템 사이트가 있어서 훨씬 수월해 진거라구.(그럼에도 여전히 업무량이 부담스러운 건 어쩔 수 없어.)




 우리가 창업한 후, 첫 R&D는 2016년 1인 창조기업 R&D였어. 금액은 그다지 크지 않았지만, 우리가 단독으로 레퍼런스를 만들기에는 꽤 좋은 과제였거든. 그리고 연이어 창업성장 R&D 과제를 따내고, 기술개발에 매진할 수 있었어. 덕분에 연구개발에 속도를 높일 수 있었고, 연구개발비용의 부담에서 한결 자유로워질 수 있었지.


 현실적으로 작은 기업일수록 지금 당장의 먹고살기에 급급해져서 연구 개발이나 R&D를 신경 쓰기 어려워져. 역으로 R&D를 할 역량이나 여력이 없는 기업이 억지로 참여하게 되면 매출을 내는 본업에 소홀해지게 되지. 그러니 정말 신중하게 생각해야 해. 우리가 이걸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이 잃게 될 것들에 비하여 얼마나 더 손익이 되는지 잘 따져봐야 한다고.


 R&D를 하다가 회사 접는 분들도 몇몇 봤어. 담당하는 직원이 없이 대표가 혼자 끙끙 끌고 가다가 결국 사업도 엉망진창이 되고, R&D도 완수 못하여 한번에 훅 가더라고. 특히 스타트업은 매우 취약해. 남들 따라서 R&D에 발 담그지 마. 그건 할 수 있는 계획과 역량이 필요해. 게다가 선정만 되고 보자 식으로 말도 안 되게 목표 설정하는 분들 있는데... 아는 분들 중에는 그 목표 달성 못하고, 개발자금 다시 토해내는 분들도 사례도 있어. 


 또한, R&D를 하다가 사업이 산으로 간 회사들도 봤어. 뭔가 열심히 하는 것 같긴 한대... 뭘 하는 회사인지 도통 모르겠더라고. 내가 그쪽 영역에 대하여 무식해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안면 트고 지낸지는 3년 넘게 봐왔는데도 정체를 모르겠어. 연구 개발한다는 것도 연관이 없어 보이지만... 뭐... 그건 주관적인 견해니까 넘어가더라도 어쨌든 오래 지켜봐도 제품 하나 나온 게 없다는 건 문제가 있는 거 아닐까? 하긴 그래서인지 얼마 전에... 거기도 R&D 실패 판정받았지 뭐. 



R&D에 관심 있는 분이 이 글을 읽는다면 적어도 이 네 가지는 기억해 주길 바래.


1) 계획 없이 공지 보고 무턱대고 지원하지 말 것

2) 담당 인력을 채용하되, 단절 없이 꾸준히 진행할 것

3) 사업과 연관된 기술개발을 할 것

4) 딱 필요한 정도만 수행할 것


 그리고 이건 약간 내 개인적인 사항 하나 더 넣는다면, 돈을 아껴 쓸 것! R&D 하는 분들 중 자금 집행할 때, 할인이나 깎지 않는 경향이 있는데... 그러지 좀 말자. 그거 다 우리 세금이고, 한 푼이라도 더 아껴 쓰고, 더 가치 있게 써야지. 남의 돈 쓰듯 그러지 말자. 하다 못해 딜하고 협의해서 더 저렴하고 가성비 돋게 사용해도 되잖아.



  R&D에 관심 있는 분들에게 꼭 연구인력을 채용하라는 점은 다시 강조하고 싶어. 연구전담인력이 없이 R&D를 하는 건 그만큼 대표의 시간과 노력이 더 투여된다는 거고 어쩌면 회사의 유일한 영업인력이 연구 쪽으로 과몰입되는 결과를 초래하거든. 대표는 R&D 과제를 총괄하고 관리하는 정도의 선에서 일정 거리를 두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해.



 넌 기술력이 왜 필요하다고 생각하니? 타사 대비 차별성? 경쟁력? 뭐 이런 이유들도 얼추 답이 될 거야. 하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기술력이라는 건, 고객의 요구에 맞춰 요리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생각해. 적어도 우리 영역에서는 우리가 셰프가 되는 거지. 기술력이라는 것을 통해 자유자재로 수정하고, 고객의 피드백에 맞춰 바로 보완할 수 있는 역량을 가지게 되는 거야.


 우리는 R&D 덕분에 신제품을 꾸준히 개발할 수 있었고, 많은 기술력을 축적하는 기회가 되었어. 많은 실험을 통해 우리가 이루고자 한 기술을 구현하였고, 다수의 특허와 노하우를 쌓게 되어 이것을 제품으로 만들게 되었지. 


 물론 이렇게 만들어진 제품이 고객의 선택을 받는다는 보장은 없어. 우리가 만든 요리가 입맛에 안 맞을 수도 있거든. 간이 안 맞거나, 값이 비싸거나, 먹는 방법이 어렵거나, 시간이 너무 걸리거나....

 그렇듯 기술이란 것은 단지 일부분에 지나지 않아. 정성 들여 숙성시킨 발효음식이라고 항상 잘 팔리지 않아. 오히려 레트로 음식/편의점 도시락이 더 잘 팔릴 수도 있어. 때로는 그냥 별다를 것 없어 보이는 라면집이 더 장사 잘 될 수도 있거든. 꼭 요리사가 없더라도 고객의 취향에, 니즈에 맞는 그때, 그곳에 있는 집이 더 잘 나가기도 해.


그러니까.... 이 글을 보고 엉뚱하게 생각하지 말아 줬으면 좋겠어.


"얘네들도 R&D 했는데 우리도 해 볼까?"라는 망상에 빠지지 말고, 너에게 정말로 R&D가 필요한가에 대한 고찰을 하길 바래. 그리고 너의 사업에 꼭 기술개발이 필요한지, 아니면 필요 없는데 억지로 하는 건 아닌지 진심으로 다시 생각해봐. 


너에게 진심으로 조언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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