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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뷰티 연금술사 Jun 03. 2019

채사장의 일기(3)-공모전을 할까?

상을 받아야 할 이유가 있을까 했었는데, 그게 또 마음에 걸려서...

회사 연혁 작성이나 양식이 정해진 지원서 등에 보면 자주 눈에 띄는 것이 바로 수상이력이야.


일단 군입대 전까지 그 흔하디 흔하다는 상장 하나 없었어. 심지어 학교만 꾸준히 출석해도 준다는 개근상조차 없었어. 그러다 군대에서 상장하나 받았는데... 그건 뭐 사회 나가서 인정도 안 해주고, 취업할 때 가점되는 것도 아니고...


지난 시즌에서 언급했듯이 퇴사 후에 [플랜트 공정 전문가 양성과정]을 교육받으며 연거푸 2관왕으로 상을 탄 건 있지만, 정해진 커리큘럼 잘 따르고, 시험 성적이 좋았다는 증명이고, 나름 충실하게 배웠다는 의미에 한정될 뿐, 창업을 한 이후에 그걸 어디에 써먹을 일은 없었어(물론 나중에 공장 공정을 구축하는 데에는 도움이 되었지만 상장이 도움된 게 아니라 배운 지식이 도움되더라)


물론 대학생일 때 몇 번 아이디어 공모전이나 대학별 토론 경진대회, 글쓰기 공모전 등에 도전하곤 했지. 죄다 떨어졌어. 그 시절 나에게 [수상] 이란 건 인연이 아니더라고. 하긴 목적도 불명확하고, 그냥 경험 삼아해 본다는 마음이라서 정말 치열하게 준비한 팀들과 같은 선상에서 비교되는 것 자체가 불공평한 거지. 당연히 떨어질만했어.




창업을 준비할 때, 여기저기 공모전에서 수상해서 상금과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창업자들의 모습을  접하고 부러움과 동경으로 바라보았지. 특히 2015년 초에 디캠프라는 곳에서 [데모데이] 자리에서 1등 하고 투자와 입주까지 지원된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넘어 충격이었어. "내가 모르는 이런 세상이 있구나"


하지만 역시 레벨이랄까? 그러한 자리에 나오는 팀들의 발표와 경연을 바라보면서 '우리는 아직 멀었구나'란 생각을 하게 되었지. 역시 평소에 준비된 팀들이 선발되고, 그들 중에서도 뛰어난 팀이 상을 받더군.


청년창업사관학교 들어간 이후에도 마찬가지로 상복은 없더라. 2015년 6월부터 11월까지 진행했던 공모전에 지원했는데 죄다 떨어졌지. 그나마 나아진 점이라면 처음에는 서류 불합격만 날아오다가 서서히 대면평가, 프레젠테이션 자리라던가 최종 경연까지 올라가는 빈도가 증가했다는 정도? 그만큼 나날이 다듬어졌다는 뜻이겠지만 결과적으로는 떨어진 거지 뭐.


그때마다 이런 식으로 스스로를 위로했어. "상 받는다고 사업 잘 되는 거 아니다", "우리의 진가는 고객이 알아줄 거다"라고...(소위 떨어진 것에 대한 정신승리 시전)

누군가 공모전에 떨어져 실망하고 있다면, 역시나 이런 말로 위로해 주겠지만, 실상은... 상관관계가 별로 없다야. 상을 받건 못 받건 고객에게 인정받는 건 별개의 문제거든.


공모전 수상은 성과가 아니야. 그리고 그건 니 사업이 잘 될거라는 보장도 아니야. 니가 상을 받던 말던 그건 고객이 관심이 없어. 고객은 니 제품 또는 서비스가 얼마나 필요한건지, 얼마를 지불해야하는지에 관심있지.



하지만 이왕이면 상을 받는 게 좋아. 상금 때문은 아니야. 수상한 이력이 있고, 없고 가 큰 영향은 없지만 없는 것보단 낫잖아. 비워두는 것보단 채울 수 있는 게 낫지. 게다가 일반인들은 그다지 관심 없지만 적어도 상을 받았다는 건 내부 직원의 사기도 올라가고, 적어도 스타트업계에서 한 사람에게라도 더 어필할 수 있는 마케팅 거리기도 해. 


그리고 공모전을 통해 심사위원의 피드백은 생각지 못 한 우리의 부족한 부분을 간접적으로나마 알 수 있는 기회야. 케이스에 따라서는 Seed 투자를 유치하기 위한 좋은 인연이 만들어질 수도 있기도 하고. 그러한 연유로 개인적으로 공모전은 경험해 보고, 가능하다면 수상하는 게 더 좋은 거야(몇몇 공모전 헌터라던가 이런 경진대회들을 폄하하는 주장도 있는데 일리는 있더라도 그거 무서워서 일부러 피하는 우를 범하지 마. 오히려 그런 전문적인 꾼들조차 발라버리고 수상하는 실력이라면, 꽤 괜찮은 거야. 그리고 이런저런 탁상공론하기 전에 일단 상부터 받아보고 비난하든가.)



지금 와서 정리하자면, 그동안 우리는 크고 작은 공모전에서 6번 수상을 했어. 다들 알만한 글로벌 기업에서 주최하는 대회에 한국 대표로도 뽑혀서 준결승까지 올라가고, 방송까지 나오는 대회에서 지역 예선 1등으로 뽑혀 본선에 나와 방송도 타보고(그 이후는 떨어짐..ㅠ.,ㅠ), 대상 또는 최우수상이라는 이름의 1등을 여러 번 했어. 원래는 수상이력 적는 칸이 최대 5칸 정도로 표기된 곳이 많아서 딱 5번만 수상하기로 목표였는데... 어쩌다 보니 6번이 되었네.(이건 뭐 자랑하려고 적은 건 아니고, 이 글을 적는 데 있어서 네가 상은 타보고 말하는 거냐란 공격을 사전에 입 막기 위해 밝히는 거일 뿐이야. 이런 거 말고 자랑하자면 하고픈 이야기는 많지만 굳이 별 영양가 없는 지표들을 나열할 필요는 없잖아. 사업은 결국 수익이 전부야. 그 외에는 다 곁가지일 뿐이지) 




아무것도 모를 때 막연하게 되는대로, 닥치는 대로 다 뛰어들다 보면 상금만 찾아다니는 하이에나가 되어버려. 그리고 그게 익숙해지면 상금 헌터, 공모전 헌터가 되어 원래 꿈꾸던 사업의 본질과는 멀어지지. 그렇기에 공모전에 대한 최소한의 기준과 규칙을 가지길 바라는 마음에 우리가 공모전을 도전할 때, 모두가 동의하고 나름 정한 규칙들을 올릴게.



1. 공모전에 응모하는 기간을 정할 것


공모전이 언제 어떻게 공지될지 모르는데 이걸 어떻게 정해 둘 수 있냐고? 단발성/일회성으로 생기는 공모전은 그렇겠지만 어느 정도 매년 정기적으로 진행되는 공모전들이 있어. 예를 들어, 아산나눔재단에서 하는 공모전이라던가, KDB 산업은행의 공모전, 신용보증기금의 공모전 등은 꾸준하게 운영되는 공모전이지.


이런 공모전을 선호하는 이유는 단지 수상의 특전만 기대하는 수준이 아니라 후속 투자, 공간 지원, 융자, 보증, 인프라 지원, 후속 관리, 교육 등의 다양한 프로그램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야. 게다가 이런 공모전의 경우, 먼저 수상했던 팀들의 포트폴리오를 확인할 수 있어서 대략 대회의 성향과 취지를 이해하기 쉬워. 또한, 이전 수상팀들이 그 이후에 어떤 방식으로 사업을 키워가고, 어떤 테크트리를 밟았는지 정보와 네트워킹이 이루어질 수 있지.


그렇기에 가급적이면 우리가 참가할 공모전을 추릴 수 있어. 정기적으로 열리는 공모전은 주최 측이 주로 기관이나 은행 등의 신뢰할 수 있기 때문에 상훈이라던가 사업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여지가 많아.




2. 수상 횟수의 한정할 것


많은 상을 받았다는 것이 꼭 좋은 건 아니야. 특히 스타트업의 연혁이 수상으로 도배되어 있다면, 사업에 집중하기보다는 지금 당장의 상금을 쫓아서 구색을 맞추는 껍데기뿐인 회사라는 의심을 받게 되지. 그러니 이왕이면 공모전은 적당한 수준에서 아이디어 또는 아이템을 검증받는다는 마음가짐 정도로 수상하는 게 정신건강에 좋아. (3년이고, 5년이고 계속 상만 받았는데 실제 사업/경영지표는 별것 없으면 당연히 안 좋게 생각하지~ 안 그래?)


그리고 수상이라는 게 공모전 지원한다고 뚝딱 쥐어지는 게 아니라 그만큼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하잖아. 그렇게 공들이는 걸 사업에 신경 쓰는 게 실질적으로 사업에 도움이 되거든. 물론 사전에 심사위원이나 청중단들에게 미리 선보이고 평가받는 용도로서의 공모전 활용도는 높아. 거기서 얻은 피드백과 반응들을 모아서 제품/서비스에 투영하는 게 올바른 공모전 사용법이랄까? 그냥 막 몰아붙이듯이 공모전을 지원하기보다는 하나의 공모전이 끝나면 복기하는 시간을 가지길 바라. 마치 시험에서 90점을 얻었기에 바로 시험을 또 치르러 가는 것보다 놓친 10점의 문제를 복기하는 시간을 가지고 나서 다음 시험에 응시하면 더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잖아. 그러면 자연스레 수상 횟수는 제한적이게 되겠지만 그만큼 아이템의 완성도는 더 높아질 거야.




3. 상금 사용용도에 대한 공개 할 것


성인군자나 재물에 해탈한 사람이 아니다 보니 당연히 상금에 욕심이 나는 건 어쩔 수 없어. 그 유혹에 맛들이 다 보면 상금 찾아다니게 되거든. 견물생심이라고 이건 어쩔 수 없나 봐. 그런데 그걸 제어할 수 있는 방법이 있어. 바로 상금이 내 돈이라고 생각하지 못하게 만들어버리는 거지. 뭐 회사 공용 자금으로 넣으면 되는 거 아니냐고 하는데 그 정도로는 부족해. 아무 조건이나 계획이 없이 공금으로 편입시키는 건 오히려 자기 합리화의 빌미를 주거든. 

"공모전에 목매는 이유는 회사에 필요한 운영자금을 마련하기 위해서니까 괜찮아"라는 식으로 흘러가. 넌 안 그럴 것 같지? 사람은 자기가 보고 싶은 대로 보려 하고, 자기에게 유리한 식으로 해석하고 싶어 하지. 그래서 미리 상금에 대한 사용용도와 규칙을 정해 놓으면 딴생각을 못해.


예를 들어, 상금 중 어느 정도 비중은 직원들에게 인센티브로 지급할 것이다, 그리고 얼마는 사무기기를 사고, 얼마는 어디에 쓸 것이다라는 구체적인 사용 계획을 정해 놓고 회사에 공지하길 바라. 그럼 두 가지 기대효과를 얻을 수 있어.


하나는 공모전에 올인하게 되는 불상사를 막을 수 있어. 회사가 수상하면서 상금을 불분명하게 축적하거나 흐지부지 사용하게 되면서 유혹의 불씨가 커지게 되거든. 처음에는 수상했다고 술 한잔, 주변에서 쏘라고 해서 밥 한 끼씩 돌리고 그런 식으로 쓰다 보면 그 맛을 잊지 못해서 공모전 자체를 어떻게 사업에 활용할지에 대한 생각보다는 그때 그때 상금을 받아서 쓰려는 마음이 커져. 애당초 그런 생각이 틈타지 않게 미리 사용용도와 계획을 모두에게 알리면 허투루 못 써. 그리고 딱 필요 이상은 할 이유가 안 생기지.


다른 하나는 한 번의 공모전을 지원하더라도 직원들의 지지와 응원이 커지지. 내부 단합도 되지만, 지원 과정에서 적극적으로 직원들이 돕다보면 퀄리티가 훨씬 높아져. 더불어 직원들의 입장에서 회사에 대한 신뢰가 커지는 계기가 돼.


상 줄 사람은 생각도 안 하나는데 김칫국부터 들이키냐고? 차라리 그게 나아. 괜히 설탕의 단맛만 보다가 이빨이 썩어버리는 것보다는 미리 예방하고 대비책을 마련해 놓는 게 더 나아. 때로는 망신이나 무안도 당해봐야 공모전 때문에 사업을 망했다느니 그런 소리가 안 나오지.




4. 공모전의 목적이 사업과 일치할 것


공모전에 맞춰서 해괴한 아이디어를 만들어내는 사람들이 있어. 이건 내 개인적인 망상 또는 뇌피셜을 좀 가미해서 말하자면, 정말 말이 안 되는 아이템들이 있음에도 그런 게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게 아이디어 경진대회 또는 아이템 공모전이더라고. 설령 그게 가능하더라도 사업과는 별개라고 보이는 아이템들도 있어. 뭐 남의 아이디어나 아이템을 섣불리 판단하는 말이 될 수 있으니까 단정 짓지는 않겠는데... 다만 네가 그러지는 말어.


다른 사람들의 아이디어/아이템들은 내가 잘 모르니까, 내가 그 영역이나 시장을 잘 모르니까 잠깐은 엉뚱한 생각을 할 수 있지만, 적어도 네가 그런 걸 가지고 공모전에 지원하는 건 스스로가 잘 알 거잖아. 본인 스스로 생각해도 이걸로 사업할 아이템도 아니고, 전혀 실행할 마음도 없는 아이템인데 억지로 공모전 수상을 위해 만들어와서 하지 마. 그리고 일부는 남의 아이디어, 다른 나라 아이템을 몰래 자기 꺼인 척 편집해서 나오는 공모전 뽀샵러들이 있는데 참... 안타깝다. 그깟 상금에 눈이 멀어서 그렇게 해야만 하는지 원.


네가 할 사업, 네가 만들어내고픈 진짜를 가지고 나오라고. 가짜들은 제발 가라. 훠이훠이~~!!! 순간순간의 선택들이 모여서 인생이 되는 법이야. 짝퉁으로 이어진 선택들이 너의 인생을 별 볼 일 없는 짝퉁으로 만드는 거야.




이 글을 보면서 그냥 지나칠 수도 있고, 뜨끔할 수도 있어.


난 솔직하게 말해서 내가 쓴 글이지만 뜨끔해. 


처음 수상했을 때, 경험한 상금에 대한 유혹에 갈팡질팡 했었고, 공모전에 대한 막연한 욕망이 컸었거든. 

그러다  번쩍 정신 들게 한 건 역시나 우리 CTO 겸 CFO의 질책과 경고였지. 


우리가 누구이고, 무엇을 하고 있고, 어떤 이유에 이 길을 걷고 있는지를 늘 인지하고 있어야 해. 

 

아직 가야 할 길이 많이 남았고, 시간은 늘 부족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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