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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뷰티 연금술사 May 30. 2019

단점을 포장한 스타트업의 장점

누구도 사실을 알리고 싶지 않은 비밀, 외면하고픈 현실

막연하게 '스타트업은 이래서 좋아요'라는 몇 가지 주된 장점들이 있어. 언듯 보기에는 맞는 말 같고, 거기에 대한 사례나 예시도 공감이 되지. 마치 좋은 점이라고 가설을 딱 미리 정해놓고 거기에 맞춰서 논리를 전개하는 느낌이 강하게 들어. 


어쨌든 간에 여기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숨겨진 이유들이 있어. 아니, 알고 있더라도 애써 언급하지 않으려는 근본적인 원인들이지. 스타트업 대표로서 껄끄러운 이야기고, 창업자들에게는 뼈 때리는 소재라서 잠시 망설였어. 어차피 난 누구 눈치 보는 사람 됨됨이는 아니니까 글을 싸질러볼까 해.(스타트업 대표가 오히려 스타트업의 장점을 까는 글을 쓴다는 게 아이러니하지? 내 성향 자체가 좀 반골기질이 있어서 그런가 봐) 




1. 스타트업의 수평적 의사결정


수직적인 의사결정을 으레 나쁘다고 생각하는데... 너무 고딕 하게, 유연성 없고, 복잡한 보고 체계로 경직된 경우는 나 역시 굉장히 거부감이 커. 반대로 너무 수평적이라 아예 동아리 친구들처럼 운영되는 수평적 의사결정 체계도 상당히 위험한 거야. 뭐든 극단으로 치닫는 건 부작용이 큰 법이지.


스타트업의 수평적 의사결정은 솔직하게 말해서 조직 체계가 없고, 경험이 없어서야. 

이제 막 창업하는 경영진 또는 창업 멤버들이 제대로 된 회사 내규와 성과측정 체계, 인사관리 및 보고 체계에 대한 섬세함이 떨어지고,  그렇게 신경 쓸 역량이 안 되는 경우가 허다하지. 이건 특히 직장생활이나 조직생활 경험이 별로 없는 창업자 그룹들의 태생적인 문제점이야.


그러다 보니 어차피 인원도 적고, 먼저 제품/서비스 빨리 만들어서 시장에 진입해야 하는 게 우선순위다 보니까 이러한 관리 측면의 문제를 덮고 일단 내달리고 보는 거야. 


수평적 의사결정의 또 하나의 비밀은 각자 전문성이 부족해서 선뜻 이끌어갈 의사결정은 못 내리겠고, 그러니 다들 뿜빠이하듯이 동의 구해서 결정하는 거야. 서로 어디서 어디까지 어떻게 해야 할지 명확한 구분이 안되고, 다 같이 달려들어도 될지 안 될지 판단이 안되다 보니까 비록 전문가들은 아니지만 우리 원탁 테이블에서 같이 해결해 봅시다~라고 하는 게 수평적 의사결정이 된 거야.


함께 모여 회의하고, 직위나 경력 유무에 상관없이 아이디어를 주고 맡으며 커뮤니케이션하는 건 좋아. 근데 어떤 회의나 모임, 논의 든 간에 결론을 내서나 정리를 해주는 리더 또는 의장이 있어서 중간중간 조절해 주어야 해. 그리고 업무에 대한 보고가 복잡하면 비효율적이지만 적어도 대표와 담당 팀장에게는 알려야 하지 않겠어? 너무나 수평적이다 못 해 구두로 말한 걸로 퉁치는 건 영~~ 아니올시다. 게다가 스타트업의 업무라는 게 이일 저일 연결되어 있는 게 태반이라서 적어도 누군가는 교통정리를 해 줘야 해. 그러니 팀 단위 업무라던가 최소한 윗선과 커뮤니케이션이 되어야 하지. 


수평적 의사결정을 질서가 없다는 뜻이 아니라 최소한의 질서라는 인식이 필요해. 불필요한 연공서열이나 직급에 의한 영향을 최소화하고, 누구나 의견 제시와 업무 수행을 빠르고, 효율적으로 하기 위한 방식이지 그렇다고 선임들/경험자/윗 직급들의 의견/결정권을 지나치지 말라는 거야.





2. 자유로운 분위기의 업무 환경


스타트업의 장점 중 하나로 자주 언급되는 게 자유로운 분위기야. 누구나 좋아하는 말이지만 여기에는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어. 바로 누가 신경 써줄 여유가 없다는 걸 애써 그럴듯하게 포장한 거지. 


스타트업에 합류하게 되면 내가 뭔 일을 하든 내가 원하는 대로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지? 곰곰이 생각해봐. 정말 그런 건지 아니면 다른 동료들이 내 일에 관심을 주지 않기에 그렇게 흘러가는 건지.


대표도, C레벨 경영진도, 먼저 입사한 선배나 심지어 바로 옆에 앉아있는 동료도 자기 일에만 신경 쓰기 바빠. 널 케어해주거나 하나하나 가르치면서, 도와주면서 업무를 수행하기 어려워. 그만큼 한 사람이 쳐내야 할 일이 많으니까. 그래서 자유로운 분위기, 누가 간섭하지 않는 업무환경이 형성되는 거야. 한편으로는 간섭할 역량이 안 되는 경영진의 관리력 부재이기도 해. 그냥 좋은 게 좋은 거니까, 스타트업이란 게 그런 거겠지 하는 식으로 어물쩍 넘어가는 대표들도 많아.


어떤 분은 그 스타트업이 자유로운 분위기인지 알고자 하면, 사내 호칭을 보면 알 수 있다는 글을 봤는데...

뿡뿡이가 되었든 크리스토퍼나 앨리스가 되었든 간에 자유로운 분위기를 증명하지 않아.


진짜 자유로운 분위기는 어디서 나오냐고? 회사 재정 빵빵하고 월급 걱정 없고, 사내 복지에 자신할 수 있는 시스템이 구축되어 있고, 뭔 일을 하던 돈이 없어서 하지 못하는 상황이 안 생길 정도의 안정적인 스타트업에서 가능한 거야. 아니면 지금 당장 갖춰진 것은 없지만 성장세가 눈에 띄게 보이고, 그 희망 뽕으로 분위기가 고취되어 있는 케이스까지는 포함되겠네.


호칭이나 겉으로 보이는 자유로움에 집중하기보다는 본질적으로 자유로움이 우러나올 수 있는 회사가 되게끔 내실을 다져야 하지 않을까? 그래야 호칭도, 복지도, 사무환경도 빛나는 법이야.





3. 디지털 노마드, 카페에서 일하는 멋스러움?


누군가가 카페 창가에 노트북과 커피를 담은 사진을 올려놓고, "스타트업의 장점은 카페에서 일하기"라고 코멘트 단 걸 보고 얼마나 웃었는지 모르겠어. 그게 멋지게 보이는 건 사진 속 이야기고, 실제로는 고정적인 사무공간 또는 업무공간을 확보하지 못하기 때문이야. 그 정도 여력조차 없는 스타트업이다 보니까 카페에서 모여서 커피 한 잔에 하루 종일 자리 잡고 일하는 거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일하는 구조가 될 수밖에 없어.


이게 의도적으로, 자발적으로 노마드 형 공간 활용을 하는 걸까? 보증금 감당하기 어렵고, 임대료나 관리비도 부담되고, 이런저런 사무용 집기들 준비하기 벅찬 현실이 만들어준 장점이잖아. 그나마 코워킹 스페이스는 비용 대비 효율성이나 이런저런 목적에 따라 다른 이야기겠지만 말이야.


나 역시 카페와 여러 창업카페, 무료 오픈스페이스를 다 섭렵하면서 메뚜기처럼 이리저리 점프해가면서 일했어. 사실 이런 형태의 비정규적(?) 사무공간은 대표로서 직원에게 미안한 일이야. 때로는 카페나 오픈스페이스의 사정에 따라 다른 곳을 찾아 이동하고, 때로는 물건 놔둘 곳이 없어서 들고 다녀야 하는 상황들이 결코 스타트업의 장점이라고 할 수 없어.


주변이 시끄러워서 집중도 못 하겠고, 오래 엉덩이 의자에 붙이고 있자니 점원이 눈치 주는 것 같고 그렇잖아. 노트북 전원코드 꼽는 자리를 선점하지 못하면 다른 곳 알아봐야 하고, 프린트나 복사 필요하면 밖에 나가서 찾아다녀야 하잖아.



4. 프로젝트를 주도할 수 있는 기회?


스타트업의 업무들은 대부분 프로젝트 단위로 진행되지. 그러다 보니 어떤 때는 신입임에도 프로젝트 리더가 되기도 해. 흔히 들었던 기존 회사들에서는 직원이라는 존재가 시스템 속의 부품처럼, 나사처럼 인식된다고 하는데 스타트업에서는 자신의 역량을 제대로 보여 줄 수 있는 기회가 있고 그에 따른 보상을 기대할 수 있다고 하잖아. 


실상은 스타트업의 인력이 부족해서 생긴 장점이야. 모든 일을 대표가 다 리드할 수는 없다 보니 조금이라도 그 프로젝트에 그나마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은 멤버에게 맡기지. 그러다 보니 신입이더라도 포샵할 줄 알면 디자인도 해라, 콘텐츠도 만들어봐라고 하면서 관련된 프로젝트를 맡겨. 글 좀 쓸 줄 안다고 하면 기획부터 PPT 발표에 관련된 걸 맡기도 기사원고나 상세페이지 작업까지 두루두루 맡기지.


역으로 말하면, 허드렛일을 하는 것보다는 나은데 너무 비중 있는 일이라는 거야. 감당하기 쉽지 않아. 도움받거나 지원받을 환경이 아니거든. 결국 회사에서 추진하는 중요한 프로젝트를 맡기는 했는데 스트레스 팍팍 받기 시작하지. 너무 무리해서 번 아웃되거나 고민만 하다가 프로젝트 엎어지는 일이 일상다반사야. 진짜로 스타트업에서 프로젝트 실패는 너무 빈번한 일인걸. 그러니 보상을 받기는 더 쉽지 않겠지? 성과가 나야 뭐 보상을 얻지.




5. 너도 경영진이 될 수 있잖아!


일반적인 회사에서 신입으로 시작해 경영진까지 올라간다는 건 엄청난 확률게임이지. 반면에 스타트업에서는 그 기회의 폭이 꽤 넓은 편이야. 우리는 애플의 스티브 잡스를 떠올리지만, 그 옆에 워즈니악을 비롯한 창업 멤버들도 기억할 거야. 페이팔 마피아라던가, 흔히 OOO카르텔, OOOO멤버이라는 별명으로 성공한 스타트업 출신들이 연쇄 창업을 하거나 다시 뭉쳐서 이슈가 되는 걸 볼 수 있지. 스타트업에 들어오면 누구나 그렇게 될 수 있다는 착각을 주는데... 현실은 전혀 안 그래.


"당신에게도 기회가 있어요. 당신도 빠르게 성공할 수 있어, C 레벨이 되는 가장 빠른 방법이야"라고 스타트업이라고들 하는데... 여기에 간과하는 게 있어. 


만약 스타트업 대표가 경영진의 자리를 너무도 쉽게 약속한다면, 진심으로 거리 두고 다시 생각해봐. 자신이 경영진이 될  자격이 있는지. 검증된 게 없는데 그리 제안한다면 거의 공수표 거나 그 회사는 경영진이 수익 실현할 시점에 대한 계획이 전혀 없는 곳이란 반증이야.


그냥 스타트업에 들어왔다고 아무나 C레벨이 되는 건 아냐. 오래 다녔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사람이 적어서 되는 것도 아냐. 직원들은 칼퇴시키고, 탄력근무제/유연근무제, 야근 금지에 주말엔 업무 관련 연락을 안 하는 게 맞아. 근데 경영진은 야근이든 밤샘이든 꾸역꾸역 해야 해. 주말 따위는 물론이고 휴가나 휴일 따윈 없어. 급여? 경영진이 직원들보다 더 낮은 급여받고  때로는 4대 보험 비용을 조금이라도 더 아끼려고 무급으로 일하는 경영진이 얼마나 많은 줄 아니? 절대로 그냥 경영진 되지 않는다고.


그리고 대표가 그 사업을 자신하고 있고, 원대한 꿈과 계획을 가지고 있으며 회사가 엄청 커질 거라는 확신이 있는데... 쉽게 경영진을 늘리겠다? 반대로 너라면 그게 쉽게 나오겠니? 오히려 심사숙고하고, 그러한 제안은 더 면밀하게 검토하고 나오겠지? 


한 두 번 만나보고, "당신에게 지분을 줄게요", "넌 바로 C레벨이야"라는 건 Bull-Shit이다.




스타트업은 결핍이 많아서 그거에 맞춘 생존하는 방식이 생겨난 거야. 그게 잘 포장되면서 그럴듯한 장점이라고들 하지. 하지만 그러한 장점들이 필요한 이유와 본질을 잊는다면 보완하면서 다듬어져야 할 장점이 아니라 치명적인 단점으로 흘러갈 거야.


처음에 스타트업이 제시하는 장점들은 그냥 없는 것 투성이라 주먹구구로 어떻게든 끌어가기 위해 고육지책으로 짜낸 것들이야. 그게 말로만 끝나거나 유명무실해지지 않으려면, 그 취지를 다시 한번 생각해봐. 그리고 그 목적은 회사가 잘 돼서 진짜 장점이 되도록 만드는 거야. 비록 단점에서 출발한 장점이지만 그게 진짜 영향력을 발휘하고 성과가 나는 방식이라는 증명이고 검증을 해야 하는 거야. 


그래야 구성원 모두가 진짜 스타트업의 장점을 경험하게 되는 거야. 

그렇게 만들어가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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