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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뷰티 연금술사 Jul 03. 2020

[개미와 베짱이]를 믿나요?

개미가 옳고, 베짱이도 옳았다!

이솝우화의 [개미와 베짱이]를 보면서, 

베짱이가 되지 말아야겠다 내지는 개미처럼 성실해야겠다는 교훈을 마음에 새겼던 때가 있었어.


그런데 세상 살다 보니까 성실하다고 꼭 그에 대한 보상이 있는 걸까 갸우뚱하게 되더라고.

나만 그런가?

어쩌다 뉴스나 이런저런 소식들을 접하면서 

'성실하다는 건 바보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잖아.

사회에 대하여 염세적이고 비판적인 마음을 가졌던 때가 있어.


[개미와 베짱이]는 사용자가 노동자들을 세뇌시키기 위해서 만들어낸 각본이라는 말에 '그럴 수도 있겠네'라고 동조하기도 했지. (그 시절에 이솝 이 자식은 권력자들의 끄나풀이다~~라고 모함하기도 했어)




처음 이솝우화를 읽었던 어릴 적에는

베짱이처럼 즐기면서 살아가는 게 나쁘게 그려지고, 

'개미처럼 열심히 일만 하는 게 좋은 거다'라는 인식이 강하게 박혀서 무조건 베짱이가 밉게 보였는데


조금 머리가 굵어지니까 베짱이처럼 플렉스(flex)하며 사는 것도 멋져 보이잖아. 


자기가 좋아하는 일, 즐기는 일, 잘하는 일을 하는 게 뭐가 어때서? 


추운 겨울에 급 반전되어 개미가 Winner로 결말지어지지만

 1년 중 3 계절을 하고 싶은 거 맘껏 한 베짱이와 

고생을 엄청한 개미를 비교하면, 

꼭 베짱이의 인생이 나쁘지만은 않은 거 같아. 


게다가 현대 시대에 비춰보면, 

베짱이처럼 즐기고, 좋아하는 일 하다다 유튜브로 뜰 수도 있고, 

가수나 연예인이 될 수도 있고, 그러한 개성이 빛을 발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잖아.


반면에 개미처럼 살아가는 것이 

꼭 겨울을 대비해서 풍족하게 된다는 보장이 없는 현실에 

개미가 불쌍한 캐릭터로 느껴지기도 했어.


그렇게도 개미가 바보 같이 느껴지던 때는...

번번이 서류 광탈과 면접의 허들을 넘지 못하고 좌절의 연속이던 취업 준비생 시절이었고,

취업한 후에도 매일 반복되는 야근과 주말 근무에 찌들어 있기도 했지.

내 상황이 그렇다 보니 기존에 알고 있던 상식이란 게 다 부질없고 잘못 배운 게 아닌가 의심했어.


그런 거 있잖아. 

나 스스로가 자존감이 낮고, 멘탈이 무너져 있어서 

환경 탓하고, 남 탓하고, 세상 욕하면서 카타르시스를 느끼던 한심했던 경험 말이야. 

될 대로 되라는 마음으로 가만히 집에서 키보드 배틀을 하거나 

아무런 의지도, 의욕도 없이 하루하루 날짜만 보내는 거...

(그럴 때는 정말 더 되는 것도 없고, 될 일도 안 되는 삶이 반복되니까 더욱 네거티브하게 되더라)




그러다가 인생의 선생님들을 만나게 되지.

내 경우는 직장에서 새로 합류하게 된 팀장님이 그랬고,

협력사 사장님이 그랬고, 잘 나가는 친구가 그랬어.


어찌 보면 나에게 그때그때 롤 모델이 되어준 분들이야.

네거티브했던 나에게 다시금 

희망과 꿈, 철학을 가질 수 있도록 조언과 경험을 나눠주셨던 분들이지.


나중에 퇴사하고 다음 직장으로 취직하기 전까지 

잠시 아버지의 일을 도우던 시기가 있었는데 

가까이에 계시던 아버지도 나에게는 큰 스승이라는 걸 뒤늦게 깨닫게 되었지. 


그때, 나에게 [성실]이라는 단어가 다시금 새롭게 다가왔어.




우리 잠시 베짱이가 되어 보는 상상을 해 보자.

베짱이는 자신이 잘할 수 있는 일, 좋아하는 일이 

노래를 부르는 것이란 걸 알고 있기에 매일 노래를 불렀어. 


말이 쉽지 봄, 여름, 가을 내내 노래를 부르는 건 쉽지 않은 일이야.

매일 노래를 부르다간 새에게 잡아 먹힐 위험도 있어.

날이 너무 더워 아무것도 하기 싫은 날도 있을 테지.

비가 오는 날에는 들어주는 이 하나 없어 외롭기도 할 거야. 


그리고 주변에서 뒷이야기 나오는 게 들릴 테지.


"저러다 어쩌려고 그러지?"

"개미처럼 노동을 해야지. 너는 놀고만 있니?"

"인생낭비나 하고 있고, 너 도대체 뭐 되려고 그러니?"


하루 이틀도 아니고 매일 이러한 말을 들으면 누구라도 불안한 마음이 생길 거야. 

어찌 보면 베짱이의 노동은 지금 당장 어떠한 결과물도, 눈에 보이는 성과가 나오는 일은 아니야. 


하지만 땀 흘리고 힘든 일을 하던 개미에게는 잠시나마 흥을 북돋아 주었을 수도 있고, 

한 여름의 매미에게는 짧은 삶 속에서 함께 화음을 맞춰 삶의 환희를 노래해주는 시간이었을 수도 있어.

봄/여름/가을 사이에 베짱이의 노랫소리는 많은 이들에게 알게 모르게 영향을 주었을 거야.


베짱이는 그렇게 자신에게 주어진 삶에 성실했다고.



개미의 노동을 평가절하하면 안 되지. 

누군가에게는 단순하고, 고되기만 한 노동으로 밖에 안 보여서 개미가 안쓰럽고, 

별 볼 일 없는 일이라고 폄하하기도 할 거야. 


"그거 해봤자 티도 안나는 일인걸"

"평생을 해봐라! 코끼리 똥만큼도 못 모으지"

"남들은 세상을 바꿀 만한 업적을 쌓는데 너는 그 정도로 만족하니?" 


우리가 꼭 세상을 바꾸고, 엄청난 영향력을 지닌 인물이 될 필요는 없어.

사회에는 유명하고, 권력과 부, 명예를 가지며 뉴스에 자주 얼굴을 비추는 사람들이 있기도 하지만, 

삶의 작은 일에도 최선을 다하면서 행복을 만들어가는 사람들이 더 많아.


"평범한 삶, 보통의 삶"을 꿈꾸는 사람들 보고 

꿈이 뭐 그리 작냐며 핀잔을 주는 사람들의 말에 귀 기울일 필요 없어.


사실 그 평범함과 보통의 삶을 쟁취하는 것조차 쉽지 않은 일이거든. 

개미 역시 가장 잘할 수 있는 일, 자신의 철학을 잘 녹여낼 수 있는 일에 성실하게 집중한 거야.


개미도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 성실했어. 




한자로 풀어 본 성실의 의미는 다음과 같아.

성실(誠實): 정성스럽고 참되다

무엇에 정성스럽고 참될까?    

특히 첫 글자인 [성(誠)]이 눈에 띄었어.

誠 = 말씀 언 + 이룰 성


머나먼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보면, 

사람들은 신의 계시나 명령을 절대 계율로 여기고 따랐어.

성(誠)은 신의 말씀을 이루라는 뜻에서 나온 거야.


그렇기에 성실하다는 것은 인간이 신에게 가까워지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행동이라고 생각해.

그리고 그 행동에 신의 응답이 "행운, 천운, 기회, 사필귀정"이라는 이름으로 돌아오는 게 아닐까? 


[實: 열매 실]은 집에 돈이 많다에서 나왔는데(집 면 + 돈 꾸러미 관)

열매나 작물 등이 많아 돈을 번다는 뜻이야.


과수원이나 농사를 살펴보면, 

제때에 비가 와줘야 하고, 일조량도 충분해야 하고, 

기온과 병충해라던가 많은 요인들이 하늘에 달렸어.


그렇다고 사람은  노느냐? 

빗물을 모으거나 흐를 수 있는 골을 파야하고, 

잔가지를 제거하던가 잡초를 솎아주기도 하고, 

짚을 둘러주거나 비료를 뿌려주기도 하지. 

그렇게 작물은 여물어가고 때가 되면 열매를 맺게 되는 거야.


또한 성실을 영어로는 faithful이며 

신뢰할 수 있는, 정직한, 순수한(진심 어린)이란 다른 뜻도 가지고 있어.


성실이라는 단어는 우리에게 말하지.

(나 자신 또는 신 앞에) 정직해야 해. 

(나 자신 또는 신에게) 신뢰할 수 있어야 해. 

(나의) 진심을 담아 (신 앞에) 순수해야 해.


남의 시선이 느껴질 때만 성실한 척하는 건 

나를 속이고, 신을 속이려는 어리석은 행동이야.

세상 누구도 모를지라도 나 자신과 신은 알기에

진심을 다해서, 정직해야 하는 거야



세상은 불공정하고, 불공평해. 


모든 사람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제각기 다른 환경, 다른 삶을 시작하게 되지.


조물주는 인간들에게...

누군가는 이런 재능을 가지게 하고, 

누군가는 저런 배경에서 살아가게 하고,

누군가는 어떤 사람을 만나게 하지.


시작점은 다 다르지만 

우리가 어떠한 삶을 살아가느냐, 

어떠한 행동을 이끌어 내느냐는 우리의 몫이야.


냉정하게 말해서

천성적인 것, 타고난 것, 시작점은 이미 되돌리 수 없어.

그러나 이 상황을 끝나는 점까지 질질 끌고 가느냐, 

아니면 간격을 좁히거나 추월하느냐 하는 결말은 달라질 수 있어.


타고난 재능을 잘 살리는 것도,

타고나지 않았던 재능을 만드는 것도,

부족한 능력을 완성하는 것도,

부족함 없는 능력을 그 너머 초격차의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것도


결국은 현재 상태에 머무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려는 지속적인 몸부림이 있어야 가능해.


우리는 

나 자신과 신 앞에서 떳떳할 수 있는 삶을 살아야 해.



과거에 이솝우화는 교훈을 주기 위해서 

어느 한쪽을 대비되게 그려 놓고 억지로 결과를 만들어냈지만, 

사실은 개미와 베짱이 모두 성실한 삶을 살았어.


이솝이 지금 다시 [개미와 베짱이]를 각색을 한다면, 

둘 다 승자/성공하는 모습은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어.

베짱이는 베짱이 나름대로, 개미는 개미 나름대로 해피엔딩 말이야.




우리는 지금 무엇에 성실한지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어.


가족에게는 어때?

친구에게는 어때?

직장에서는 어때?


가장 궁극적으로

넌 너에게 성실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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