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는 점을 보고, 누구는 신에게 기도하고, 누구는 아무 생각이 없다.
우리는 불확실성의 시대에 살고 있다.
더군다나 창업자라면 더더욱 내일이 불확실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나 역시 매일 밤을 불면증과 두려움을 가지고 하루를 정리한다.
페이스북에서 어떤 페이지 광고를 보고 흠칫 놀랐다.
스타트업에게 점을 봐준다는 내용.
물론 재미로 클릭해 보는 것에 뭐라 깐죽댈 수는 없다.
다만 헛웃음만 나올 뿐.
인생은 한 번이라며 과감하게 지르는 분들과는 달리
우리는 인생이 한 번이라 더 신중해야 한다.
사업이란 게 모 아니면 도라는 식의 도박 정신은
너무 무책임한 생각이다.
사업에 운이 크게 작용하는 바를 부인하지는 않는다.
내가 바라보는 운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운에는 근거 있는 운과 근거 없는 운이 있다.
1. 근거 있는 운
만들어지는 운이다.
사람을 통해서, 과거의 행동에 의해서,
현재의 노력을 통해서 다가오는 기회와 흐름이랄까?
2. 근거 없는 운
진짜 아무 상관없이 다가오는 운이다.
마치 카오스 이론처럼 북경에서의 날갯짓이
샌프란시스코에서 허리케인이 되듯이...
하늘의 뜻으로 밖에 설명하기 힘든 기적이랄까?
경영을 하면서
여러 선택지 앞에서 우리는 망설인다.
고민하고, 이것저것 재가면서...
길을 찾는다.
모든 창업자들은
최선이 아니더라도 최악은 안 되길 바라면서...
운도 따르길 소원한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던가.
스스로 자문하고, 가능한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
가장 합리적인 방안을 도출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가 더 이상 손댈 수 없는
영역까지 다다랐을 때 비로소 하늘에 맡겨야 할 것이다.
흘린 땀과 잠 못 이루고,
포기해왔던 기회비용들에 대한
보상에 플러스 알파로 운이 따라주길 원한다.
그리고 그 운이란 녀석이
근거 있는 운이면 더할 나위 없이
환영하겠다.
그러나 우리는 정말 최선을 다했던가,
더 이상 방법이 없던가,
우리 손에서 공이 떠나갔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아직도 룰렛은 돌아가고 있고
공은 손에 쥐어져 있는 건 아닐까?
근거를 만들었던가,
인과관계가 있는 운을 만들어가는데
부족함이 없었던가.
막연한 낙관과 덧없는 희망으로
근거 없는 운을 기대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스타트업을 시작하면서,
다시금 우리 자신을 돌아본다.
우리는 누구인가.
어느 번호 또는 어느 색깔에 공이 들어갈지
가슴 졸이며, 오늘의 운을 시험하듯이
자금과 시간... 그리고 동료들을
칩으로 베팅하는 플레이어가 돼버린 것은 아닌지.
수많은 연습과 숙달된 경험으로
어느 곳에 공을 넣을지 계산하고
예상하는 포인트를 위해 힘 조절을 하고 있는
붉은색 명찰의 딜러가 될 것인가.
간혹 플레이어 이기는 경우가 종종 있다.
주위의 사람들이 환호하고, 운을 부러워한다.
하지만 시간은 누구의 편인가.
한 번, 두 번은 플레이어의 운이 뒤를 봐줄지라도,
플레이 횟수가 늘어나고 시간이 지날수록
이기는 횟수와 칩의 개수는... 누구의 것이 되는가.
나는 게임에 참여한 플레이어일까?
아니면 게임을 조율하는 딜러일까?
모두에게 운은 다가온다.
이게 될지 안 될지는
운에 의존하는 도박이 아니라
노력과 확률이란 근거에
살짝 "운"이라는 조미료가 들어간다.
(출처: 만화 바텐더, 운에 대하여, 참고로 전 노~오력만을 외치는 꼰대는 아닙니다)
운이 최고의 영향력이라고?
운이란 녀석은
어떤 이에게는 행운이 되고
어떤 이에게는 불운이 된다.
운을 활용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운을 잘못 사용하면, 오히려 화가 된다.
운이란 놈이
기회란 이름으로 다가올 수도,
사람이란 이름으로 다가올 수도,
돈이란 이름으로 다가올 수도 있다.
기회가 위기가 될 수 있고,
사람이 조직을 무너뜨릴 수도 있고,
돈이 정신을 홀릴 수도 있다.
하늘의 별자리를 보고,
카드의 그림을 보고 사업의 방향을 정하는 것!
근거 있는 운이라고 보는가.
아무 노력 없이 다가온 운에 노예가 되어
다음번에도 그 운에 기대려고 하진 않는가.
우리의 회사와
우리의 동료와
우리의 가족의 목숨 값이 그리 가벼운 건지
진지하게 무게를 달아보아야 한다.
아무 연관성 없는 점에 의존하거나,
가당치 않은 운을 기다리며
베팅하듯 사업하지 말자.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님은 어떻게 23번이나 왜군에게 승리했던가.
(물론, 보는 시각에 따라서 24전이라고 할 수 있지만... 그런 역사적인 논란은 제외하고)
23번의 베팅이 아니라
이길 수 있는 조건을 클리어한 싸움이었기 때문이다.
거기에 조수의 간만, 유속의 변화폭, 전투시간의 타이밍 등의
근거 있는 운이 반복되는 일상과 다름없이 다가와 주었다.
그 지역을 잘 알아야 하고,
공부해야 한다.
직접 눈으로 봐야 하고,
물길을 잘 아는 사람에게 자문을 구하기도 한다.
동료들을 다독일 줄 알아야 하고,
강한 제약을 걸 줄도 알아야 한다.
적군이 언제, 얼마나 올지를 알아야 하고,
우리 편의 장점이 무엇이고,
약점이 무엇인지,
적군을 효율적으로 이길 수 있는
전략은 무엇이고 그러한 사례가 있었는지를 찾아야 한다.
계획대로 안 되었을 때, 대안은 무엇이고,
승리하더라도
그다음에는 어떤 수를 두어야 할지
계획을 세워야 한다.
23번 중에 고비도 있었다.
계획처럼 따라주지 않은 아군들도 있었고,
달랑 12척이 남은 배와 패잔병들을 끌고 나가야 하기도 했다.
남은 자산이 없고,
시간도 얼마 없으며,
사람도 없다.
이런 절박함 속에서 단지 운에 맡기고, 굿이라도 벌이고
싸우러 가는 것은 얼마나 무익하고 불합리한지....
굳이 설명할 필요가 있을까?
우리 스타트업들이 배워야 할
표본이 되어주시는 이순신 장군님 짱짱짱!
감사합니다.
많은 분들이 스타트업을 하면서
즐기라고 조언하신다.
맞다.
게임처럼 즐기면서 하면 이 기나긴 길을
단축시킬 수 있고, 힘을 내서 갈 수 있다.
한 가지 더 첨언하자면,
게임이지만 절실함을 가져야 한다.
절실해야 더 강해진다.
절실해야 더 버틸 수 있다.
절실해야 더 생존 가능하다.
스타트업이 걸어야 하는 길은
꽃길이 아니기에
샬랄라~ 샤방샤방한 일보다
어둡고, 칙칙하고, 살 떨리는 일이 더 많다.
게임도 항상 즐거움만 있는 게 아니다.
어느 순간에 습관적인 반복적인 플레이가 지속되고
생각 없이 막일을 할 때도 있다.
매번 공략을 실패하며,
아이템도 떨구고,
죽고 살고 가 반복된다.
패배의 순간이 여러 날 지속되면서
게임이 싫증 나기도 한다.
같은 동료라고 생각했던 길드원(또는 파티원)과의 마찰,
아무리 경험치를 올려도 머나먼 렙업의 시간들.
단순하게 잠깐의 호기심이나 찰나의 즐거움으로
게임을 지속하기는 어렵다.
이 게임을 지속해야 할 절실함이 있어야 한다.
이 게임을 즐기는 일반적인 플레이어가 아니라,
이 게임을 즐기기에 생존이 돼버리는 프로 게이머가 되어야 한다.
이기지 못하면,
손가락을 빨 수밖에 없는 상황.
다수가 불안정하다고, 위험하다고
때로는 한심하게 바라보는 시선이 있을수록
뚝심을 발휘해야 할
이유는 단지 즐거움이 아니라
즐거운 절실함이 되어야 한다.
창업자에게는
즐거움과 두려움이 항상 1 + 1이다.
신중하자.
긴장하자.
그럼에도 웃자.
"가볍고 빠르게"가 스타트업의 전부가 아니다.
때로는 무거울 때도,
때로는 한 템포 돌아볼 때도 있다.
우리는 스타트업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사업을 시작하고 있는 것이다.
언제까지 스타트업이라고
누구보다 빨리 전력 질주하는 게 아니다.
길고 긴 레이스의 첫 구간을
스타트업이라는 이름으로
달리고 있을 뿐이고,
그다음 구간에서는
미진했던 부분을 돌아보며,
완성도를 높이는 사업이 되어야 하며,
그다음 구간에서는
페이스를 조절하며 다음 구간을 시뮬레이션하고,
계속적으로 반복하는 마라톤이며,
단지 첫 마일스톤 구간을 지나고 있는 것뿐이다.
더 빨리 달리려고 무리수를 두지 말자.
더 앞서기 위해 도박을 하지 말자.
100 m 달리기와 마라톤.
누구는 체조일 것이고,
누구는 싱크로나이즈이고,
누구는 축구일 것이다.
빠름이 우선일 수도,
완주가 우선일 수도,
퍼포먼스가 우선일 수도,
기술이 우선일 수도,
조직이 우선일 수도 있다.
존재는 하지만 기대는 하지 말 것!
기도는 하지만 가만히 기다리지는 말 것!
만나고 싶지만 사랑하지는 말 것!
그것이 바로 스타트업(창업자)이 가져야 할
"운"에 대한 태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