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비지니스매너에 대한 이야기
요즘은 부쩍 나의 과거를 되돌아보는 시간이 많아졌어.
아마도 혼자 한참을 걷는 시간을 늘리다 보니 온갖 생각이 늘어나나 봐.
대학을 졸업하면서
취업 준비를 하며 가뭄에 콩 나듯이 면접 기회를 잡게 되면,
어떤 복장을 입고 갈까 고민하곤 했어.
취업 성공하고는
첫 출근을 할 때, 넥타이를 몇 번이나 고쳐 맸는지....
그리고 중요한 미팅에 참석한다고
구둣솔로 먼지 하나 없게 털어낸 갈색 구두로 뛰다가 넘어져
앞코가 쓸린 게 어지간히 신경 쓰이던 기억도 있지.
어차피 시계를 볼 것도 아닌데
기어이 손목에 채워 온 메탈 시계의 째깍거림과
양복에 주름이 잡힐까 봐 지하철 빈자리를 봐도 그냥 서서 이동하던 그런 기억들 말이야.
그랬던 내가 창업을 하고는 복장이 자유로워야 한다고 주워들은 말에 혹해서
저지른 실수를 바로잡기 위해 글을 남겨.
나는 직장인일 때, 드레스 코드에 대하여 반감이 있었어.
기본적으로 셔츠와 긴 면바지,
그리고 가끔 세미 정장 수준으로 그렇게 빡빡하지 않은 복장이었음에도
출근할 때마다 복장 점검한다는 거 자체가 귀찮았지.
딱히 특별한 외부 일정이 아닌 이상은
그래도 어느 정도는 복장에 대해 뒷말이 안 나왔었지만
그것조차 갑갑했었다고 해야 하나.
오히려 출근 복장보다 근무할 때, 좀 번거로웠지.
연구원이다 보니 실험실 들어갈 때, 하얀 가운을 입어야 했고,
생산 라인에 들어가면
손 소독부터 장갑, 일회용 방진모와 신발 커버 등 챙겨야 할 것들이 많았어.
그러다 창업을 하면서 우리는 자율 복장이라는 것부터가 당연하다고 여겼어.
그 당시 스타트업들은
스티브 잡스의 검은 목 폴라와 청바지, N000 운동화에 열광했었고,
구글의 자유로운 회사 문화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게
반바지에 샌들을 신고 출근하는 괴짜(너드)들의 이미지였거든.
거기서부터 나는 잘못된 생각을 가진 거야.
직원들에게 타이트한 복장 규정을 강요하는 것에 대하여
불필요하다는 점은 공감해.
하지만 말이야.
적어도 회사 대표는 복장에 신경 써야 한다는 걸 깨닫게 되었어.
정장은
입는 사람 입장에서 언제나 불편해.
그럼에도 정장을 입는 이유는 상대방에게 보여주기 위함이야.
직원들은 업무 하는데 지장만 없다면 반바지든, 슬리퍼든, 찢어진 청바지든 상관없어.
그러나 나는 대표야.
영업을 뛰기도 하고,
다른 회사를 찾아가기도 하고,
제안하고 설득하며 회사의 얼굴이 되어야 하는데...
사장이라는 직함이 나 편하라고 있는 게 아니라
나를 더 불편하게 해야 하는 자리라는 걸 인지하지 못했었어.
엄청 성공한 스타트업 창업가가 입었다고,
스타트업은 자유로워야 한다고,
복장이 중요한 게 아니라 업무 내용이 중요한 거 아니냐고 구구절절 변명하지 말자.
직원들은 몰라도, 너만은 그러면 안돼.
업종의 특성상 젊게 보여야 할 수도 있어.
다만, 때때로 패션이나 디자인이나 뷰티 등 화려하게 또는 튀는 복장을 전략적으로 활용한다는 것과
그냥 나 편하라고 편한 복장인 거랑은 달라.
복장은 상대방에게 마음가짐을 보여 줄 수 있는 가장 1차원적이고 직관적인 지표야.
서로 비지니스로 인연이 닿아 만나게 되었을 때,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최초의, 최소한의 검증된 정보는 바로 옷차림이거든.
명품을 입으라는 게 아니라 마음가짐의 표현을 옷과 태도, 겉모습에 담으라는 거야.
'이 사람이 나를 만나기 위해 옷을 단정하게 고쳐 입었구나'
'이 자리에 나오려고 얼마나 기대하고 나왔을까'
부스스한 머리,
제대로 입 다만 듯한 옷차림,
어두운 안색과 불쾌한 냄새 같은 것이
'이 사람 어제 밤새서 일한 독종이구나, 성실하고 근면한 사람이구나'라는 걸 뜻하지 않거든.
오히려 준비 안 되고,
같이 일하기 꺼려지는 사람이라는 인상이 먼저 들 거야.
부지런하고 근면 성실하다면...
설령 어제 밤샘 작업을 했더라도
최대한 그러한 티가 안 나도록 단정하게 가다듬고 나온 사람이어야 할 거야.
지금은 은퇴하셨지만 나의 아버지는 20년 넘게 작은 사업체를 운영하셨었어.
그리고 매년 명절 때만 되면 온 가족이 모여 상품권과 선물세트를 분류하곤 했어.
아버지는 거래처들 뿐만 아니라 협력사 직원들까지 챙기셨지.
"아니, 왜 이래야 하는 건대요? 이거 잘못하면 뇌물로 본다고요. 그리고 이거 받아도 크게 좋아하지 않을 것 같은데..."
"작은 회사 직원들이 명절 때만 되면 가장 서러운 게 남들 다 받아가는 선물세트 하나 못 가지고 지하철이나 버스를 탈 때야. 비싸고 정말 기지고 싶었던 선물이었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적어도 이 날만큼은 뭐라도 손에 들고 퇴근하는 게 더 의미가 있어."
" 아니, 그건 그쪽 회사가 자기 직원들에게 챙겨줘야 하는 거지 왜 우리가 챙기냐고요"
"아빠가 그들에게 뭔가 노골적으로 뭘 바라고 준비하는 건 아니지만 분명 바라는 것이 있는 선물이긴 해. 고마웠고, 수고했고, 앞으로도 잘 하자는 마음을 기억해 달라는 거지. 직장인들은 자기 회사에서 받는 것은 당연하게 생각하지만 거래처에서 받는 것은 이런 것도 신경 써 줬다는 기억에 남는 법이야"
그때는 이해하지 못했어.
선물에 담긴 마음이라는 것이
나를 어떻게 잘 봐달라는 것이 아니라
받는 사람의 마음을 헤아려 공감하고,
그것을 선물로 표현할 때,
고마움과 기억이 남게 된다는 걸 말이야.
창업을 한 이후, 아는 대표님이 사무실을 오픈하게 되어
찾아갈 때마다 개업/개소 선물을 딱히 고민하지 않았어.
그냥 남들 하듯이 화분이나 책, 디퓨저 정도?
남들 다 하니까 그거에 맞춰서 대충 했지.
나 역시도 그동안 사무실을 오픈하고,
공장을 개소하면서 받았던 이런저런 선물들이 있지.
지금에 와서는 딱히 누가 무엇을 주었는지 기억이 헷갈리더라고.
그런 거 있잖아.
추석이나 설 연휴처럼 명절이 되면 으레 들어오는 선물들 중에서
스팸이나 식용유, 샴푸 세트 같은 건 누가 줬는지 금세 가물가물해지는 거처럼 말이야.
근데 눈에 들어오는 것이 있었어.
사업 번창하라고 응원해 준 카드와 함께 받은 전자책 리더기(리디북스)야.
유일한 취미가 알라딘 서점이나 도서관 가서 책 읽는 거였는데
백팩에 책 한 권 정도는 넣고 다녔거든.
그걸 본 지인인 형님이 선물로 주셨어.
그리고 이걸 꺼내 볼 때,
간간히 그 형님에 대한 고마움과 늘 배움의 마음가짐을 잃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지.
그러다 보니 더욱 자주 연락을 하게 되고
형님은 나와 만날 때마다, 이런저런 사소한 것까지 수다 나누며 나날이 돈독해지더라고.
그 선물은 여전히 나의 애장품 중 하나이고,
언제나 나에게 쓴소리와 위로를 해 줄 수 있는 든든한 인생선배가 있다는 증거라고
내 머릿속에 강하게 각인되었어.
이 깨달음을 통해 일상 속의 관계뿐만 아니라
비지니스라는 상황에서 의미가 부여된 선물은
1000장의 명함을 돌리는 것보다 더 강하다는 걸 알게 되었어.
혈당이 높은 거래처 사장님에게 양파즙을 선물했어.
처음에는 손사래 치지만,
마침 양파 농가가 힘든 시기라 구매가 농민들을 위해 좋은 일이라고 해서
혈당 걱정하던 사장님 생각이 나서 샀다고 전해 주면, 그것은 양파즙이 아니라 마음이 되는 거야.
아는 사장님은 거래처 직원이 승진했다고 새 명함을 주자,
그것과 똑같은 명함을 순금으로 얇게 만들어
아크릴 케이스에 담아 책상 위에 올려놓을 수 있게 해서 선물로 주었어.
승진한 그 직원은 그 순금 명함을 볼 때,
누군가 그 명함을 물어볼 때마다
그 사장님을 떠올릴 거야.
이것이 진짜 선물이라고 믿어.
그리고 이전에는 이 사실을 몰랐던 내가 참 바보 같더라.
앞으로 내가 스타트업이라는 이름에 홀려서
바보 짓하고, 잘못한 일들을 기록할께.
그리고 이전의 바보 같은 나에서 조금씩 더 나아지는 오늘의 내가 되기 위해
반성하고, 복기해서,
내일은 더 진일보한
어제보다는 더 성장한 제대로 된 사장이 되도록 더 애쓰고 노력할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