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삼국지를 읽다가 스타트업을 찾다
고전을 좋아한다면,
삼국지라던가, 수호지, 초한지를 읽어봤음직하다.
그중 많은 사람들이 선호하는 이야기는 바로 삼국지!
조조나 손권, 유비의 리더십에 대한 서적도 많고,
관우, 장비, 제갈공명쯤은 다들 한 번 씩은 들어봤을 테다.
여포, 조운, 방통, 서서, 하후돈, 황충, 순욱, 초선, 공손찬, 손책, 조비, 주유 등
조연인 듯 조연 아닌 조연 같은 각양각색의 인물들의 이야기들.
군웅할거의 시대에 영웅담들과
위기, 승리, 패배, 배신, 전략이 난무하는 역사를 기반한 소설!
원저자인 나관중 이후에도 여러 작가들의 시각에서 재해석되면서
시대에 따라 멋짐이 묻어나는 인물이 달라지고,
픽션인지, 사실인지 혼동되기도 한다.
잠시 주말을 맞아 중고서점에 들러서 삼국지를 잠깐 탐독하였다.
학창 시절에 참 즐겨 읽었고,
좋아하는 영웅들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상상도 했었는데...
오늘 읽은 부분들은 이런저런 생각이 많이 들더라.
스타트업 창업자로서,
작지만 함께 생존기를 써가고 있는 회사의 리더로서,
그리고...
여전히 모르고, 막히는 것이 많아
선현들과 선배들의 길을 모방해 배워가야 하는
말학의 햇병아리로써...
잠깐 동안 느낀 점을 나누고자 한다.
시작하기 앞서 삼국지란 책의 시대적 배경은
한나라의 말기에서
위, 촉, 오라는 세 나라가 탄생하고
최후에 진나라의 탄생까지
주요 무대이다.
(여기서 진나라는 진시황의 진나라가 아님, 후진이라고도 부름)
그중,
유비와 제갈량(제갈공명)의 이야기를 잠시 나누어보자
삼고초려라는 말이 있다.
제갈량을 영입하기 위해 유비가 세 번 찾아가 간 유래에서 나온 사자성어다.
유비가 인재를 얻기 위해
자존심을 굽히고, 예를 갖추어 찾아간 모습에 감탄하곤 한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제갈량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제갈량은 왜 그러한 유비를 고생시켰을까?
유비를 인물됨을 시험한 것이라고 단순하게 보기엔....
그렇다고, 내심 조조가 찾아와 주길 바라거나
다른 군주들 간에 비딩(biding, 경쟁입찰)시킨 건 아닐듯하다.
어쩌면 이 사건을 레퍼런스로 자신의 이름을 천하에 알리는
최고의 홍보, 마케팅 수단이었을 수도 있다.
더불어서 우리 주군이 인재를 얻기 위해
이런 수고로움까지도 감내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리는 좋은 사례가 되었을 수도 있다.
스타트업의 구성원으로 보는 시각에서는
시작부터 좋은 기획자이기도 하고, 마케터이기도 하다.
그 당시의 상황 속에 나를 넣어본다.
내가 유비였다면...
어땠을까?
일단, 소문만으로 듣던 제갈량을 처음 찾아갔다.
이제 그토록 바라던 인재를 영입한다는 기대감과
앞으로 천하통일을 하는데 한 걸음 아니, 세네 걸음 더 앞당겨지는...
아니 어쩌면 벌써 천하를 가진듯한 착각에 빠져있을 수도 있다.
근데... 웬걸...ㅡㅡ;;
이거 제갈량 양반! 너무한 거 아니오?
만나보지도 못 하고, 기다리다가...
결국 돌아가야 했다.
혼자 간 것도 아닌데...
옆에 함께 창업한 동료들인 관우, 장비에게
얼굴을 못 들게 부끄럽게스리...
면상을 구기고 돌아오는 발길이 무거웠을 거다.
"그래!
내가 타이밍을 잘못 잡았던 거야.
다음에는 꼭 만나서 영입 제안을 해야지."
그리고 다음에 다시 찾아갔다.
그런데 또 없다.
분명 사환(심부름을 해 주는 종)에게 메시지를 전했는데...
내가 왔었고, 기다리다 갔으니,
다시 오겠노라고 전달했는데...
제갈량은 나보다 더 중요한 미팅이 있는 걸까?
나를 깔보는 걸까? 내가 사람을 잘못 봤나?
예의가 없는 걸까 아니면 일부러 나를 시험하나?
사환에게 다시 물어봐도
전달했다고 한다.
슬슬 같이 온 동생들이 불만을 표현하기 시작한다.
"지가 뭔데 우리를 두 번이나 퇴짜 놓는 거야?"
"소식 들었으면, 지가 찾아와야 하는 거 아이가?"
"형님! 이거 이거 지략은 뛰어난 놈인지 몰라도 버르장머리가 없네요."
동행한 동생들을 진정시키기는 하지만
내심 의심도 생긴다.
제갈량을 추천한 사람들이 잘못 본 것 아닐까 하는 생각!
이 사람을 얻으면 팀 내에 불화가 더 증폭되진 않을까
나는 이 사람을 받아들일 준비가 안 된 건가,
이미 누군가에게 내정된 사람은 아닐까
하지만 이런 의심을 뒤로하고,
다시 한번 찾아가기로 결심한다.
그 시간 동안 팀 내에 구성원들에게
소문이 퍼지기 시작한다.
이야기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빠르게 퍼진다.
나는 나 하나의 개인이 아니라 한 조직의 리더이다.
이러한 대우는 어찌 보면 우리 조직의 얼굴에 먹칠을 한 것이다.
과연 그러한 리스크에 대비해서
이번 영입이 더 높은 가치를 가지는 것일까 하는 고민이 든다.
딱! 여기까지만 생각해보자!
다시 한번 더 세 번째로 제갈량을 찾아갈 것인가,
아니면 다른 사람을 알아볼 것인가.
우리 창업자들에게는 수많은 선택의 기로에서
매일 한 가지 이상의 결정을 내려야 한다.
하나의 결정을 완성하는데
한 번의 실패는 수차례나 경험한다.
그런데 동일한 실패를 두 번 하였을 때,
이 때는 진지하게 고민할 수밖에 없다.
무엇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처음부터 선택하지 말았어야 하는 건 아닐까.
그리고 세 번째 동일한 시도를 한다는 것은
무모하지 않을까.
냉정하게 말해서,
유비의 삼고초려는 상식적으로는 이해하기 어렵다.
제갈량이 아무리 지략과 전략에 뛰어난 사람이고,
와룡봉추 중 한 명이며,
천하를 얻기 위해 꼭 필요한 사람이라는
세간의 평가와 소문은....
사실 소문이고, 검증되지 않았다.
아무리 이 세계에서
경력과 능력이 출중하다고 하여도
소문은 그냥 소문일 뿐이다.
우리 팀에서 함께 할 때,
꼭 그 소문만큼 퍼포먼스를 낸다는 보장은 없다.
이미 검증된 관우와 장비가 옆에 있는데
이들이 불만을 가질 영입을 진행할 근거는 무엇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밀어붙였던 이유는...
아마도 유비는 이런 상황이지 않았을까?
내부적인 상황을 적용하자면,
사실 무리한 영입이라고 판단된다.
하지만 외부적인 상황도 적용해 보자.
천하는 여전히 각 영지의 강한 군사력을 가진
군주들이 즐비하다.
그들과 경쟁을 하려면,
자금, 인력, 시스템, 인프라 등 뭐하나 이길 수 있는
유비만의 차별성은 없다.
허울만 있는 몰락한 황숙(황제의 삼촌뻘)쯤 되는 혈연관계.
오히려 세간에서는 조롱의 대상이고,
무능함의 아이콘이 되는 마이너스한 요소이다.
특히나 황제가 저리도 매가리가 없는 상황에서는
경쟁자들이 더 호시탐탐 제거하려는 대상일 뿐.
떠돌이 생활에는 이력이 났고,
패전에 익숙해져 내륙으로 밀리고, 또 밀리는
그런 입장에서...
이러한 상황을 타개할 방법은 무엇이었을까?
그렇다면, 제갈량을 한 번 살펴보자.
일찍이 그 이름은 널리 알려졌으며,
그를 영입하려고 탐내는 사람은 많았으나
그는 한사코 거절하고, 숨어 다녔다.
자신만의 확고한 계획과 철학이 있었기에
적합한 군주를 만날 때를 기다렸을 테다.
천하삼분지계!
위나라, 오나라, 촉나라로 나누어져 천하를 나누고,
오나라와 촉나라가 힘을 모아 위나라를 시장에서 밀어내고,
오나라를 M&A 하여 옛 한나라의 부흥을 꽤 한다.
일단 자신이 조조에게 가면 쉽게 천하 일통은 하겠지만,
자신의 기여도는 낮을 것이다.
이미 거의 다 완성형이 되고,
인재가 넘치는 대기업에
자신이 들어간들 다 된 밥에 숟가락만 얹는 꼴이다.
그림으로 치자면, 이미 채색이 거의 끝나가면서
조조 이름으로 작가 서명을 할까,
아님 황제 이름으로 해둘까
고민하는 정도?
오나라는 강동의 풍부한 물자와 인구를 기반으로
조용하게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
중견기업이랄까.
자신이 비집고 들어갈 여유는 있겠지만
오래된 가신들과 후원자들이 있다.
우리식으로 말하자면,
시스템이 자리 잡혀있고,
안정적인 매출과 거래처가 있어
꾸준한 성장이 보장되어져 있다.
거기다 많은 경력자들과 투자자들이
한 자리씩 다 자리 잡아있는 상태!
그림으로 비유해서 밑그림(스케치) 다 해놓고
들어갈 물감도 다 구비해 놓고,
붓질 시작한 정도?
그에 반해, 유비의 경우는....
일단 절실하다.
그리고, 작품은 만들겠다는데 계속 헤매고 있다.
캔버스 들고 이리 갔다 저리 갔다 하는 정도.
세력도, 자본도 없다.
제갈량 자신이 참여하면 기여도에 따른 지분은
확실하게 보장될 것이다.
자신과 중복되는 사람도 없기에
자신의 역량이 곧 그 회사의 역량이 되고
자잔하게 마찰 일어날 염려도 없다.
하지만 역으로,
제갈량 입장에서는 리스크 이상의 무언가가 있어야 한다.
1) 그래도 관우, 장비가 있어서 그들과 서열정리는 필요하다.
2) 기존에 다른 영입 제안을 거절한 것에 대한 명분이 필요하다.
3) 소문으로 듣던 유비에 대한 검증이 필요하다.
4) 자신의 가치를 내부뿐만 아니라 외부에도 확실히 각인시킬 필요가 있다.
실제로 삼고초려가 있었는지는 여전히 의문이지만,
어쨌든 이를 통해서 많은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유비가 제갈량에 대한 필요 정도를 알 수 있고,
기존 멤버를 어떻게 핸들링하고, 이끌어가는지도 알 수 있다.
대의를 위한 인내심과 목적을 위한 유연성도 엿볼 수 있다.
이렇게 글을 적고 보니 무슨 제갈량 빠인 듯한데....
개인적으로 제갈량을 좋아하지는 않는다.
삼국지의 후반부로 갈수록
제갈량의 모습에서 이전에 꿈을 향해 가던 모습보다는
점차 수세적, 방어적으로 전환하는 모습이 눈에 띈다.
유비의 후계를 능력이 아닌 혈연으로 이어가는 모습,
부하의 의견을 단박에 거절하는 완고함,
시스템을 구축하지 못하여, 홀로 원맨쇼를 하며
촉나라의 말미를 재미없게 만든 장본인이라고 생각하기에
아쉬운 부분이 많다.
우리는 뛰어난 능력자를 찾고,
우리와 fit이 맞는 멤버를 찾아다닌다.
소문을 듣고, 추천을 받고, 서류를 보고...
그리고 그들도 우리를 체크해 본다.
나는 유비가 옳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제갈량 영입에
사활을 걸었을지는 몰라도...
좀 더 세심했을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한다.
그 절실한 마음은 공감을 하지만,
방법과 과정에서 더 협상과 조율이 필요하지 않았을까?
와룡봉추가 있어도 천하를 얻지 못했다.
위나라와 오나라를 규모가 좀 있는 회사로
비유를 했지만, 사실 부러워서 그렇다.
처음부터 위나라와 오나라가 강하지는 않았다.
조조도 모든 걸 잃고 도망 다니던 시절이 있고,
주유(실질적인 오나라의 리더)는
기성 시스템의 우려와 반발에도
능력위주의 인재 발탁을 꾀하며 시스템을 바꾸었다.
유비가 인덕의 리더십이라고?
조조도 자신의 부하를 아끼고, 그들에게 지지를 받았다.
주유가 지병으로 앓을 때,
부하들은 전쟁의 승패보다 리더의 몸 건강을 더 걱정했다.
그들에게는
시스템이 있었고,
제갈량을 능가하는 책사는 없었지만,
다양한 의견과 다방면에서 자기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까지 나름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단지, 촉나라가 후발주자였다는 것의 차이일 뿐
위나라도, 오나라도 스타트업의 시절이 있었다.
그리고 그들 나름이 색깔로
시장을 지배하고, 고객을 확보해왔다.
어찌 보면,
타이밍이 그때가 딱이었기에,
속도전을 하였겠지만,
마라톤을 하기에는 전략의 미스는 아니었는지...
정답은 없다지만,
적어도
내가 나 자신에게 묻는 질문의 답은 정해져 있다.
지금 이 글은
그냥 별 다를 것 없는
소소한 이야기다.
가끔은 회사 업무에서 벗어나려
잠시 이런 상상을 하다 보면,
결국은 나도 모르게 스타트업의 이야기로 빠져든다.
별 것 없는 스타트업 창업자 나부랭이지만,
나는 여전히 천하제패를 꿈꾼다.
이제 슬슬 또 일하러 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