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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나 김선자 Aug 07. 2021

프랑스 에로 주, 위대한 대 자연 그
고요함에 빠지다.




프랑스 남단에 위치한 에로 주(l'Hérault), 랑그독(Languedoc) 지방, 넓게는 랑그독-후실롱(Languedoc-Roussillon), 중부 마쉽 상트랄 남쪽 지맥으로부터 드넓게 펼쳐진 고원과 평야, 얕은 여울, 암초 그리고 황무지에 자라는 가시덤불 영역을 지나서 지중해까지. 거기에서 에로 강이 연안을 가로질러 흐르며, 지질학적 다양한 경치와 풍부한 층을 이룬다. 

행정 중심도시 몽펠리에(Montpellier)를 비롯한 베지에(Béziers), 쎄뜨(Sète)가 지중해 연안 가까이 위치, 인구분포가 높은 도시다. 

이 도시들은 연간 햇빛량이 프랑스에서 가장 풍부한 도시 중 하나로써, 온화한 겨울을 자랑한다. 연중 쾌적한 날씨 덕분에 인구가 점차 밀집되는 추세이며, 고온 건조한 여름 동안 많은 사람들이 바캉스를 보내러 해수욕장 및 산과 계곡으로 모여든다. 


비탈진 골짜기를 따라 흐르는 물, 좁은 띠 모양 연안에서 바다로, 거기서 수많은 강어귀가 성립되며, 원형극장 형태로 열려있는 지중해의 한 측면, 활처럼 굽어진 해안선 따라 모래 해수욕장은 끝없이 펼쳐진다. 해안의 크고 작은 운하와 더불어 포구, 자연보호구역, 염전, 못 일대에서는 수많은 철새들이 둥지를 틀고, 해안 기류를 말미암아 사방용 잡초, 수송나물, 골풀, 등심초 같은 식물과 포도나무, 올리브나무, 싶으레(cyprès, 사이프러스), 빤 파라솔(pin parasol, 파라솔 소나무), 로리에(laurier, 월계수), 미꼬꿀리에(micocoulier) 등이 주를 이루어 서식한다. 


또한 지중해 영향으로 적절히 긍정적인 기후와 동시에 훌륭한 노출, 풍부한 토양, 고 품종의 다채로운 포도 묘목 덕분에 강건하고 향기로운 맛을 지닌 포도주 생산지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이 지방에 들어서면서부터는 사방천지 포도밭이라 눈을 돌려 보지 않으려 해도 아니 볼 수 없고, 포도밭 사잇길이 아니고서는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을 정도다. 고원, 언덕, 비탈, 평야를 두루 망라한, 잘 경작된 포도나무들이, 옹기종기 모여, 이랑을 이루며 서 있다. 그러므로 어찌 이 지방까지 와서 포도주 농장을 방문해 그 맛을 보지 않겠는가?


올해는 비가 많이 내려서인지 고원지대 잡초들도 파릇하게 생기를 띄며, 목장마다 푸르른 빛으로 물들었다. 은은히, 사방팔방 양탄자를 깔아놓은 들꽃들이 행락객들에게 기쁨을 안겨주고, 집집마다 월계수 꽃이 만발하여 그야말로 축제 분위기다.      


막다른 길 끄트머리, 도시 소음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난, 인적 없는, 포도밭과 올리브 나무를 울타리 삼아, 남부의 살구빛 둥근 로마식 기왓장이 평평하게 얹힌 지붕, 붉은 황토색 벽, 작고 하얀 창, 그 옆으로 늙은 올리브 나무와 파라솔 소나무는 적당히 그늘을 드리우고, 사치스러운 종려나무가 정원의 격조를 높이어, 무화과, 대나무 그리고 뜨거운 햇살까지 선사하는 안락한 쉼터. 이 모든 것이 내 감성을 온전히 자극하는, 에로 주, 우리는 남쪽 악센트가 심하게 섞어 나오는, 안드레의 집에 와 있다.

      

마치 이 집의 수호신처럼, 대문 한편에 우뚝 서서, 절반 이상 지붕을 너그럽게 감싸 안고, 시원스레 펼쳐진 떡갈나무, 이 뜨겁게 내리쬐는 남불 햇살을 관후하게도 잘 막아준다.  

동쪽으로부터, 포도나무 밭고랑 사이로, 잔잔히 몰려오는 물결소리, 이것은 분명 산을 내려와 협곡으로 미끄러져 강물과 더불어 달려오는 선선한 바람이다. 공중에서 요요히 출렁대는 떡갈나무, 소스라친 이파리가 물결치듯, 마른 잎들은 마당을 휩쓸며 굴러간다.

40년 전, 안드레 어머니께서 요량 없이 지줏대 구실로 꽂아 놓았던 떡갈나무가 울창하게 가지를 뻗어 이처럼 관대한 품을 만들었단다. 이 덕분에 더위 식히기에는 형언할 수 없고, 자그마한 집이지만 미학적인 품위마저 상승시켜 누구라도 '참 잘 왔구나' 환대받는 기분을 가지게 한다. 우리는 이 나무 아래서 아침, 점심, 저녁 식사는 물론, 수영복도 말리고, 쇠공 놀이와 책 읽기에 열중이다. 이렇게 아낌없이 주는 중년의 떡갈나무, 그 위력은 가히 어느 힘 있는 천박한 능력자의 그것보다도 거룩하다. 


다시 침묵, 이 잠잠함 속에 내 머릿결이 조심히 살랑대며 목덜미를 애무하듯 간지럽힌다. 순간, 귀청이 떠나라 쩌렁대는 매미소리, 햇살이 막 깨어나고 곧 더위가 몰려오려는 징조다. 

에로 주, 고온 건조한 대기 속 식물들이 햇살에 반사되어 눈부시게도 투명하게 반짝인다. 그 투명한 푸른 질감은 강렬한 태양 아래서 거칠고 단단하게 짜여, 그 촘촘함이 주는 섬세한 느낌, 가볍고 산뜻하다. 부드럽고 음습하게도 짙은 북쪽 지방 식물들과는 완연한 차이로 지각된다. 


사람은 때로 일상의 공간에서 탈출하는 동기가 필요하다. 적어도 우리의 경우는 그렇다. 아무리 궁정 같은 보금자리라 할지라도 한 곳에서 매일같이 머물러 생활하다 보면 타성에 젖어 좋고 나쁨은 물론, 옳고 그름에 대한 분별력이 흐려져 실체적 본질마저 제대로 잘 보이지 않는다. 또한 창작물을 작업하는 데 있어서는 틀에 박힌 방식으로 인해 독창성도 신선미도 떨어져 결국은 매너리즘에 빠지기가 일쑤다. 또한 일반적인 삶에서도 마찬가지 스트레스로 인하여 나쁜 영향을 가져오기도 한다. 

인간은 자고이래, 정착을 필요로 했던 농경사회 이전에는 움직이던 동물이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가끔 공간 이동을 필요로 하는 게 당연한 이치리라. 물론 현대인의 실상은 그때와 다르지만, 그러나 자신의 익숙된 공간에서 벗어나 일련의 리듬과 때로 단절시킬 필요성을 느낀다. 다른 공간의, 색다른 분위기에서, 새롭게 환기된, 새로운 정기를 받으면, 생활에 활력과 의욕도 새로이 생겨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즘 코로나 바이러스의 기세로 자유롭지 못한 이동과 압박된 생활이 애통할 뿐이다.   


이곳 남쪽은 물도 바람도 흙도 돌도 나무도 집들도 내가 사는 북쪽과는 참으로 다르다. 이 쾌적한 땅과 공기와 냄새가 편안히 나를 끌어안는다. 우리는 이 대자연의 남쪽 공기를 맡으려 무려 730킬로가 넘는 긴 거리를 자동차로 7시간 이상 달려온 이유다. 그러나 불쾌하게 지친다거나 불평 한마디 없었다. 비록 낯선 잠자리 탓에 밤을 설쳐 잠을 덜 자도 전혀 피곤하지 않을뿐더러, 소란한 매미소리가 소음 공해로도 들리지 않으며, 개미들이 내 종아리를 타고 기어올라도, 또는 내 커피잔에서 마라톤을 하더라도, 언짢거나 못마땅한 마음이 들지 않는다. 때론 무심하게, 때론 정겨울 뿐. 자연 속에서 조화롭게 나와 함께 공존하는 일부분!       


우리 부부는 지중해 영향을 받아 온화한 땅, 이 남쪽 지방을 그지없이 좋아한다. 내가 이 심한 엑센트 발음에 익숙지 않아서 가끔 이해하는데 어려움은 겪지만, 이 거친 지역 엑센트가 더없이 정겹고 듣기 좋다는 남편도 있다. 그렇다. 지역 특색이란 바로 이런 것에서부터 비롯되는 법. 

세상 모두가 제복을 입은 듯, 독특함도, 색깔도, 개성도, 한결같이, 표준화를 이룬다면, 이 얼마나 지루하고 답답할까? 


계곡은 계곡대로, 언덕은 언덕대로 대 자연에 힘을 보태어 준다. 강에서 노 젓는 카누에 소리, 물장구치는 소리, 삼각주 갈대밭은 낭만적인 한 편의 시를 떠올리고, 해수욕장 가는 길, 황무지 사구에 펼쳐진 가시 돋친 사방용 잡초들과 성기게 짠 나무 울타리까지, 흡사 <카뮈>의 <이방인>이 유랑하던 그 뜨거운 길을 연상케 한다. 


나는 프랑스에 있는, 특히 남쪽 지중해 연안의 해수욕장을 좋아한다. 맑은 물, 적당한 온도, 높지 않은 파도, 해심의 완만한 경사, 비록 헤엄에 능숙하지 못하더라도 한가롭게 바다 몇십 미터 안에서 수영을 해도 무관하고 위험하다거나 무섭지가 않다. 또한 옆 사람과 적절한 간격을 유지하면서 조용히 지낼 수 있어 좋다. 

한국의 혼잡하게 북적이는 해수욕장도 아니고이탈리아처럼 호텔이나 식당에서 깔아놓은 영업용 파라솔과 긴 의자가 독차지 않아서 자유롭다. 

바닷물은 내 몸의 독소를 몰아내고, 파도는 내 긴장을 훑어낸다. 한산한 백사장에 누워서 살랑살랑 불어오는 바람에 젖은 몸을 말리며 태양 아래 수영복 자국이 남도록 적당히 태운다. 잘 데우진 모래의 온기가 내 차가운 배에 닿아 자연치료제 역할도 서슴지 않는다.    

 

무엇보다 조용한 공간이라면 어디든지 드러눕거나 엎드려 소설책에 빠져 지내는 기분 또한 나쁘지 않다. 나는 떡갈나무 아래서, 늙은 올리브나무 그늘에서, 중천에 떠 있던 해가 방향을 틀며 달아나는 줄 모르고, 짧아진 그늘이 옮겨 갈 때마다, 의자를 무의식적으로 돌려가며, <프랑수아 모리아크>의 <테레즈 데케루>와 동무하여 자아를 찾아간다. 소나무 송진 냄새가 나는 듯, 유벽한 곳, 매미 소리에 파묻혀. 한 권의 소설책으로 이 고요한 하루를 삼킨다. 




 Abbaye de Saint-Guilhem -le-Désert
생-길헴-르-데제흐 대사원 Abbaye de Saint-Guilhem-le-Désert
악마의 다리 Pont du Diable (Aniane et Saint-Jean-de-Fos)
해수욕장 가는 길 모래사장 
포도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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