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전 방문에 이어 두 번째다. 첫 방문 때 인상 그대로, 그다지 퇴색되지는 않았다.
프랑스 남단에 자리한 쎄뜨(Sète), 지중해 연안의 작은 항구도시, 에로 지방에서는 몽펠리에, 베지에 다음으로 거주민이 많은, 문화 도시다. 그리고 끝없이 펼쳐진 모래 해수욕장이 있다.
이 도시는 강, 못, 하천의 물이 지중해로 흘러들면서 수많은 수로와 함께 방파제, 특히 바둑판 모양에 운하들, 따라서 <랑그독의 베니스, la Venise du Languedoc)라는 별칭을 가진다.
이 수로를 따라 들고나는 다양한 배들, 발동기 소음과 모터 타는 냄새 동시에 물을 자르는 소리, 거기서 뱃사람들의 굵고, 세찬, 가파른 호흡, 꿈틀거리며 박동하는 혈관, 태양볕에 잘 그을린 구릿빛 팔뚝 그 위에 새겨진 타투와즈(tatouage, 타투, 문신), 절은 땀냄새, 그리고 바람을 가르며 유유히 날아오르며, 행진하는 돛배들. 이 모두가 비릿한 바다 냄새에 켜켜이 묻혀 나온다.
그러나 세월의 뒤안길에서, 사그라진, 숨 막히게 했던 예전 어부들의 광영과 격양된 삶은 자취를 감추고, 그 희미한 모습만이 현저히 오늘날 차별적으로 나타난다.
먼바다 한가운데, 항만에서 멀찌감치 떨어져 섬처럼 외롭게 정박해 있는 대형 선박, 항구를 따라 어귀마다 질서 정연하게 줄지어 누워있는 취미용 고깃배, 그리고 돛단배와 요트. 수로 양쪽으로 마주 보며 서있는 건물과 카페들, 도심 곳곳 스며든, 소금기 먹은, 생선 비린내가 포변에 늘어선 식당에서 백포도주와 뒤섞여 넘쳐난다. 이것이 오늘날 쎄뜨와(sétois, 쎄뜨에 사는 사람을 애칭함)들의 활기찬 분위기다.
오! 이 바다 냄새.
그때도 그랬었다.
특별히 아름다운 사연이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많고 많은 추억들 속에, 한 자락, 아주 작게 그러나 맑고 뚜렷이, 환히, 내 뇌리에 박혀있던 작은 항구도시. 단지 요트와 돛배로 비롯된, 이 이국적 풍경만 없다면, 흡사 고향 바다같이, 서민적이며 포근한 느낌을 안겨주었던 곳이다.
다시 그것은 바다를 앞마당 삼아, 확 트인 시야, 언덕 위 공동묘지를 거쳐 내리막 길 따라 늘어선 낡고 작은 거주민들의 건물. 거기에서 방치되듯, 소홀한 듯, 페인트가 벗겨져도, 되레 손길이 덜 닿아 정겨운, 따뜻한, 이 남쪽 어촌도시를 다시금 만나게 된다. 인간의 원초적 본성으로 마주한, 아련히, 그리움 되어.
매년 팔월, 쎄뜨에서는 생-루이 축제(fêtes de la Saint-Louis)가 열린다. 올해로 278번째 맞는 축제다. 그러나 판데믹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취소한다는 공고가 비로소 오늘 아침에야 올라왔다. 행사를 코앞에 둔 당일, 이 뜻밖의 소식은, 주최 측이나 축제 위원에서도 결코 쉽지 않은 결정이었음을 잘 보여준다.
우리 역시 이 축제를 보기 위해 오늘, 쎄뜨행 일정을 잡은 것이며, 이 축제에 대한 호기심 또한 컸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쎄뜨를 방문하면, 우선 내가 느꼈던 첫 방문 때 인상을, 재차, 확인하고 싶었고, 다시 그날의 평온함을 가지고도 싶어, 물론 티엘을 맛보기 위한 계획 또한 남아있으니 일정대로 떠나기로 했다.
티엘(tielle, 파이 모양을 한 음식 이름)은 쎄뜨와들의 전통 음식인 동시에 상징적인 것이다.
내 남편에게도 한가닥 섬세한 추억이 깃든, 어린 시절 부모님 따라 이 도시를 여행하던 중에 먹었던 티엘, 그는 그 맛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지금도 그때의 맛을 회상하며 장을 볼 때마다 바구니에 꼭 담아오지만, 여태까지 그날 먹었던 맛을 되찾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그 맛을 다시 찾을 수 있을지 티엘의 본고장, 현지에서 확인하기로 했다.
20년 전에도 자신의 어린 시절 맛을 직접 전해주고 싶어 나를 이곳에 데리고 왔던 것이다.
그날, 내가 난생처음 먹었던 티엘 맛, 비록 나쁘지는 않았지만, 남편처럼 그리움이 묻어나는 유년의 맛은 아니었다. 그러나 티엘 맛보다는 이 작은 항구도시가, 그 어떤 큰 도시보다도 나를 애정으로 품었고, 고향과 고스란히 닮지는 않았지만, 비슷한 정서가 묻어났다. 푸른 하늘, 바다, 그 가운데서 낮게 활주 하던 갈매기, 낙천적 그러나 억센 숨결, 마치 고향 바다에 있는 도시처럼 느껴졌다.
오늘, 이곳에서, 우리는 그 모든 것을 다시 맛보기로 했다.
사실, 티엘의 오리지널 고장은 쎄뜨가 아니라 이탈리아 나폴리 북쪽이다. 19세기 후반에 이주한 나폴리탄(나폴리에 사는 사람을 일컬음)들이 쎄뜨에 정착한 후, 이 지역특산물로 그들의 음식을 만들어 먹기 시작한 것이 시초가 되었다. 이후, 생계 목적으로 팔기 시작하면서, 널리 전파되었고, 따라서 오늘날 쎄뜨와즈 티엘로 전해져 내려온다.
티엘은 문어나 낙지, 오징어를 비롯한 바다의 두족류 연체동물을 잘게 썰고, 고추를 살짝 곁들어 토마토소스와 함께 갖은 재료로 양념한다. 이렇게 만든 소를, 버터가 첨가된 밀가루 반죽 피에다 넣어서 파이 모양으로 둥글게 감싼다. 그리고 끝을 톱니처럼 빚어, 그릴에서 구워낸 것이다.
일요일 오후의 한낮, 운하를 따라 기다랗게, 나란히, 물 위 정박해 있는 돛배들, 그 너머 주차장을 꽉 채운 자동차, 거기서 겨우, 그러나 운 좋게 빈자리 하나를 찾았다. 무슨 일인가? 주차된 모양새가 예사롭지 않다. 벌써 해수욕장에서 돌아올 시간도 아닐 텐데? 그러나 수로를 따라 한가히, 물고기 노닐듯 도달한 중심가.
눈앞에 별안간 펼쳐진 모습은 운하 양쪽 인도를 꽉 메우고 있는 사람들, 다름 아닌 취소되었다던 축제가 한창 진행 중이다. 소 규모인 것으로 보아 완전히 철회하기는 아쉬움이 많아 열린 자체적 행사인 것이다. 그러나 '오길 잘했군' 하면서 우리는 운집한 사람들 틈을 비집고 다리 난간에 붙어 섰다. 경기장과는 거리가 멀지만 막힘없이 볼 수 있었다.
한참을 뜨거운 햇살 아래 서 있은 탓에 눈도 시리고 지루함이 없지도 않아 그늘진 자리로 옮겼다. 노천카페 테라스 파라솔 밑에 자리를 잡고, 파스티스(pastis, 향초로 만든 남쪽 지방 술) 한잔씩을 주문했다.
생-루이 축제는 1666년 개항 이후 그 정체성을 토대로 한 민간 전통으로써, 이 도시에 불을 지피는 역할을 한다. 매월 팔월, 6, 7일간, 중심 수로에서 시합이 열리는 동안 도심 곳곳에서는 각종 문화, 스포츠 행사 및 불꽃놀이가 동시에 있다.
이 경기는 청, 홍색 팀으로 나뉜 건장한 남성들이 양쪽 배 위에서 정해진 규칙에 맞춰 상대방 선수를 창으로 밀어 물속에 빠뜨리는 것이다.
그 큰 덩치가 공중에 날려 '풍덩'하고 물속에 떨어지는 장면과 함께, 솟구치는 물보라는 관중들에게 여름 한낮의 시원한 쾌감을 맛보게 하며, 호쾌한 웃음을 선사한다. 그것은 마치 무료하게 바라보던 그림 위에 별안간 물감통이 통째 떨어져 일어난 파열, 그 새로운 전환점, 시공의 단절과 동시에 삶이 재생되는 기분을 안겨준다.
우리는 몇 장의 사진을 남기고 자리를 떴다. 미흡한 행사인 만큼 기대에 다소 못 미친 흥미였지만, 이방인으로서는 충분한 감상이었다. 생-루이 축제에 대한 막연한 공상도 해소시켰다.
그리고 운하를 따라 방파제 쪽으로 향했다. 언덕을 오르니 잔잔하고도 평온한, 푸르른 지중해가 한눈에 들어온다. 왼쪽으로는 시내, 오른쪽은 먼바다, 세상을 품은 듯 경치 좋은, 이 언덕에 자리한 공동묘지, 여기에 잠든 폴 발레리의 묘를 찾아왔다. 그런데 너무 늦은 시간, 벌써 문을 닫는다. 우리는 그를 만나지 못한 채,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돌아서 내리막 길을 걸었다.
경사진 도심의 작은 광장, 드문드문, 편안히 의자에 기대앉아, 문학 강연에 귀 기울인 청취자들, 아래 큰 광장에는 작은 출판사들의 살롱전, 운하에 배를 띄우고 유유자적 시 낭송하는 오묘한 모습까지. 이 운치 있는 풍경, 모두가 쎄뜨를 아름답게 덧칠한다.
폴 발레리(Paul Valery), 그가 태어나고 묻힌 곳, 역시 그의 고향이다.
다시 우리는 해가 떨어지기 전 바다에 뛰어들러 해수욕장을 향했다.
마침 해수욕객 대부분이 자리를 뜬, 덕분에 더없이 넓고, 그지없게 펼쳐진 해안, 따끔거리는 모래, 수없이 남겨진 발자국으로 곰보빵이 된 백사장. 첫 입욕 때의 물은 찼지만 더위에 젖은 땀과 나른해진 몸을 깨워 팽팽하게 되살린다. 견딜만하다. 우리는 따뜻한 온기가 남아있는 모래 위에 드러눕는다.
이 지역에는 모래 해수욕장이 많다. 가까이는 먼 옛날, 남편을 아찔하게 했던, 갑 다그드(cap d'Agde) 누드 백사장도 있다. 그는 심심풀이용으로 그 오래된 사연을 소환해 다시 들려준다.
젊은 시절, 그가 남쪽 지방을 여행하던 중, 사방천지 칠흑의 어둠 속에 도착한 해변, 너무 지친 나머지 주변 상황은 파악도커녕, 텐트만 대충 치고 곧바로 잠에 곯아떨어졌단다. 다음날 아침, 눈을 뜨고 밖으로 나와 펼쳐진 눈앞의 풍경을 보고서야 비로소 아연실색했다. 자연스럽게 움직이는 나체들, 그를 어리둥절하게 했고, 민망하고도 부끄럽게 만들었다. 너무나 자연스럽고 자유로운 그 모습에 그에게 걸쳐진 옷이 되레 낯설었으며, 자신을 되돌아보게 했다.
나 역시 그리스 에게해 섬에서 비슷한 첫 경험을 했었다. 당시, 처음 목격은 물론, 몇 차례를 겪기까지는 무언가 망측한 수치심도 가졌다. 이후 여러 섬을 돌며 자주 접한 뒤에야 막연했던 호기심도 사라졌지만, 지금도 여전히 그들 앞을 지나칠 때 느끼는 미묘한 감정, 덤덤함까지 억지로 가장해야만 한다.
(참고로, 그리스 에게해 섬에서는 특별히 정해져 있지 않아도, 어느 조용한 해수욕장이라면 쉽게 누드해변이 된다.)
익숙된 습관 및 편견적인 사고, 우리는 도덕적 규율 앞에서 소수의 문화와 관습에 참으로 자유롭지 못함을 잘 보여 준다. 따라서 우리들의 사고와 그 경계를 견고히 만든 규범, 역으로 그 경계와 벽을 허물어 주는 것 또한 바로 경험에서 비롯된다. 그러므로 여행은 그 역할에 충실한, 경험뿐 아니라, 거기서 다양한 사고를 가지게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