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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나 김선자 Feb 18. 2022

Tours(뚜르)에서 3박 4일 첫날



판데믹 속 지루한 겨울의 무거운 공기를 박차고 파리에서 남서쪽 240킬로미터 떨어진 고풍스러운 도시 뚜르에서 3박 4일을 하기로 했다. 그동안 이 도시를 여러 차례 우회적으로 지나다니긴 했지만, 막상 한 곳에 머물면서 도심 속 곳곳을 살펴보지는 못했다. 

내가 이곳을 지날 때마다 떠올린 인상은 흑백색의 고결한 도시였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완전히 검고 희다 할 수도 없는 검푸른 청색과 밝은 상아빛 우아함이 깃든 세련되면서도 예스러운 도시다. 

특히 뚜르를 포함한 이 지역 일대는 지붕이 아르도와즈(ardoise, 응회암, 청석 돌판 )로 덮인 고장이다. 이 원석판은 고급 재료로써 견고하나 다루기가 까다로워 오직 전문가의 손을 거쳐야만 한다. 


프랑스는 각 지방의 기후나 자연환경에 따라 지붕에서 독특한 특색을 띤다. 구조적 형태에서도 차이가 있지만 재료의 쓰임도 다르다. 즉 지중해 연안도시는 살구빛 둥근 로마식 기와, 중부지방은 평평한 붉은 기와, 파리는 아연판, 그리고 노르망디와 뚜르를 비롯한 르와르 계곡 따라서는 아르도와즈(청석) 지붕이 그 대표적인 예다. 

먼 옛날 집을 지을 때, 운송 발달이 용이하지 못해 그 재료들을 손쉽게 구할 수 있던 방법은 대체로 근방에서 생산되는 것들을 이용했다. 그러므로 오래된 건축물을 보면, 자연히 그 지역의 자연 원천적 지질과 특질까지도 알 수 있으며, 특산물처럼 그 지역 특징을 잘 드러낸다. 

따라서 뚜르의 건축은 르와르 계곡 일대에 혼재하는 석회암을 채석해지었으며, 외벽 재질에 쓰인 이 연한 성질의 뚜프(tuf, 연한 석회암)는 톱으로 말끔하게 자르기도 쉬울 뿐 아니라, 색상 또한 아주 밝은 암석으로 반듯하고 간결하면서 동시에 고급스러운 귀족적 품위를 준다. 그리고 비늘모양 아주 얇게 자른 짙은 유색의 아르도와즈(청석돌판) 지붕과 윤해를 이루어 세련되고 섬세하면서도 활기차다. 그리하여 회색빛 겨울 하늘 아래서도 무겁고 어둡기보다는 경쾌하면서도 우아한 멋을 안겨준다. 

이 또한 뚜르는 파리와 매일반 역사적 유서 깊은 도시로 막무가내식이 아니라 전통이 고수된 제한된 규칙 아래 아주 정갈하면서도 고색창연하다. 거기에 강과 더불어 풍부한 대자연이 한데 어우러져 아름다움을 간직한 <작은 파리>라는 별칭도 가진다. 


뚜르는 안드르-에-르와르(Indre-et-Loire) 지역의 중심 도시이며, 북쪽으로 르와르(Loire, 강 이름)가 흐르고, 남쪽에서 세르(Cher, 하천(강) 이름)가 도시를 끼고 돌아서 르아르로 흘러든다. 마치 두 물줄기가 뚜르를 가운데 두고 양팔을 벌려 끌어안은 듯 흘러 하나의 큰 섬 같아 보인다. 가히 전략적 자연 요새화라 아니할 수 없다. 

그래서인지 뚜르는 발루아 왕조 루이 11세 때의(15세기) 수도였고, 그 이후 앙리 3세, 앙리 4세를 거쳐 종교전쟁이 있기까지 충의의 중심이었다. 지금도 풍요와 화려했던 그때의 전통이 계승되어 전형적으로 귀족적인 분위기가 깔려있다. 그로 인하여 고급 표준어를 사용함으로 프랑스어를 배우려는 많은 외국인들이 이 도시를 찾을 뿐 아니라 뚜르 대학을 비롯해 많은 국제적 젊은이들로 활기가 넘치는 도시다. 

 

뚜르에 도착했다. 날씨는 금빛으로 화창했고, 고목이 된 플라타너스 나무가 강변도로를 따라 일렬로 행진하듯 늘어서 있다. 눈부신 햇살이 겨울 나뭇가지 사이를 뚫고 파고든다. 그 곁으로 기다란 주차장이 있다. 우선 무료 공간을 찾아 차를 세우고 대성당을 구경하기로 했다.



Cathédrale Saint-Gatien (생-가시앙 대성당)


뚜르 대성당은 프랑스 북쪽 지역과 마찬가지로 연한 석회질 돌에다 섬세하게 조각한 중세 고딕식 성당으로 입구 정면에는 한층 고양된 볼륨감이 있지만, 그 범위가 다른 대성당에 비해 화려하거나 웅장하게 크지는 않았다. 그러나 금비초 같은 햇살 덕분에 오색빛 아름다운 비트로(vitraux, 스테인드 글라스) 로자스(rosaces, 장미)를 볼 수 있는 행운을 가졌다. 그리고 우리는 걸어서 대성당 주변을 한 바퀴 돌아 약속시간에 맞춰 예약한 아파트로 향했다.


아파트는 뚜르 중심가에서 걸어서 10여분 거리의 조용한 주택단지 작은 3층 건물이다. 맞은편으로 자그맣고 아름다운 보석 같은 고딕식 성당과 꼴롱바주식 그윽함이 감도는 옛 건물이 멋진 분위기를 더하는 곳이다. 아파트는 좁다란 복도와 계단을 지나 3층에서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면 다시 좁은 실내계단을 올라 지붕 밑 아담한 공간. 욕실과 방은 계단 오른쪽에 독립되어 있고, 부엌과 거실이 열린 구조로써 도로 쪽으로 접해있다. 희고 낮은 천정과 벽에 짙은 색 오래된 나무 들보가 칸칸이 박혀 장식적이며크지 않는 거실의 조그만 창에는 아름답게 조각된 중세 성당이 액자 속 사진처럼 또렷이 걸려있다. 이 아늑하면서도 고풍스러운 운치와 더불어 맞은편 방 안쪽 창으로 검청색 아르도즈 지붕들이 시원하게 펼쳐져 있다. 이러한 아파트 구조로 보아 족히 수백 년은 된 건물임을 알 수 있다. 

 아파트는 작다는 점이 약간의 흠일 수도 있겠으나, 골고루 없는 것 없이 잘 갖추어졌으며, 위치, 전망, 소음문제 등의 많은 장점들로부터 그 흠결까지 충분히 덮을 수가 있었다. 특히 장인이 만든 곱고 멋진 도자기 그릇을 비롯한 식기들과 질 좋은 안락한 침구는 우리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리고 아침식사용으로 비치된 브리오슈(brioche, 부드러운 빵)와 추가용 바이오 생빵, 각종 가정식 잼, 오렌지 주스, 우유, 버터는 물론 쌀, 눈알 콩, 커피, 올리브유 및 발자믹 식초 등 거의 완벽한 수준으로 구비되어 별도로 구입할 필요가 없었다. 이 모두가 바이오 식품이며 샴푸, 치약까지도 바이오 제품이었다. 이토록 관대하게 완비된 숙소는 아직 어디에서도 보지 못했다. 아래층에 있는 불랑제리(boulangerie, 제과제빵집)는 이 도시에서 최고의 맛을 자랑한단다. 이 사소하게 느껴지는 것들 조차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기쁨이고 묘미다. 


우리는 짐을 풀고 아침식사용으로 비치된 브리오슈에 잼을 듬뿍 발라 카모마일(camomille) 차와 간식 요기를 한 후, 시내 분위기도 살필 겸 밖으로 나갔다. 

중심가에는 뚜르를 상징하는 유명한 광장이 있다. 광장 가장자리를 따라 나무와 벽돌을 기하학적으로 혼합시킨 꼴롱바주(colombage, 기둥, 대들보 따위의 목재를 외부에 노출시키고 그 틈새를 석재, 흙벽, 벽돌 같은 것으로 메우는 건축방식) 양식 건물이 늘어서 있다. 분명 중세시대 지어진 건물임에 틀림없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놀랍도록 좋은 상태를 유지하여 문화적 가치를 빛내고 있다. 

이 뚜르를 상징하는 대표적 장소답게 식당 및 카페 야외 테이블이 빽빽이 늘어서 이른 저녁부터 수많은 젊은이들로 벅적댄다. 겨울임에도 포근한 날씨 덕분인지 광장 풍경은 봄날 같다. 

우리는 왁자지껄한 소리를 가로질러 생 마르탱 성당을 거쳐 시청까지 걸었다. 시청 앞 대로에는 전차가 다니고 있었다. 이 또한 소도시에서나 볼 수 있는 중심가 편리성은 물론 활기를 넘치게 만드는 정취다. 

전차선로 건너편, 눈에 띄는 아늑한 카페로 들어갔다. 창가에 자리를 잡고 아뻬로(apéritif 아뻬리띠프 준말, 식전 술과 요기) 용으로 키르(kir, 칵테일 종류) 두 잔을 시켰다. 이 여정은 우리가 여행 때마다 목적지 도착 첫날 저녁에 즐기는 하나의 의례적인 행사다. 이 축하 잔은 피로회복제인 동시에 이방인으로써 그곳에 젖어드는 하나의 기회와 방법이며, 또한 신고식 겸 동시에 자치적 환영도 내포되어 있다. 그로 말미암아 그곳의 특색이나 인심까지 파악하며, 관찰적 도구로도 삼는다. 

역시 질과 가격 대비해서 물가가 파리보다 저렴함을 알 수 있었다. 인심도 좋다. 사람들에게서 여유로움이 풍겨 났고, 따라서 도시의 첫인상은 좋았다. 우리의 발걸음도 가벼웠다. 

밖으로 나오니 어느덧 어스름이 내려앉고, 돌아오는 길에 골목을 바꾸어 걸었다. 


이렇게 작고 소소한 것까지도 즐거움과 행복감을 안겨주는 것이 여행이다. 거기에는 자유가 있다. 익숙된 일상에서 벗어난 해방감이 있다. 낯선 것에 대한 신선함과 새로움이 있고, 놀람과 환희가 공존한 문화적 발견이 있다. 또 새로운 공간, 색다른 분위기, 아름다움은 몸과 정신에 쌓인 불순물을 제거하는 윤활제 역할을 한다. 비우서 가볍다. 보고, 느끼고 지각하며 새로움으로, 신선함으로 다시 채운다. 반응한다. 표현한다. 비로소 살아 있음을 인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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