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부와즈의 왕실 성(le Château royal d'Amboise)
뚜르에서 이튿날 아침.
금빛 부드러운 햇살이 창으로 스며든다. 겨울날 보기 드문 귀한 하늘, 공기도 다르다. 미술관이라지만 실내에서 그리고 시내에서만 빙빙 돌기에는 너무 억울할 것만 같은 날씨다.
그러므로 황급히 일정을 바꾸어 르와르 성 투어에 나섰다.
프랑스에는 시대를 막론한 고성들이 곳곳에 즐비하다. 그 가운데 일명 <르와르의 성, Châteaux de la Loire>이라 일컫는, 고색창연한 메디에발(médiéval, 중세시대) 유서 깊은 성들이 르와르 강을 따라 잘 보존되어 있다. 여기에 왕들이 거주했던 성만도 10여 개가 넘을 뿐 아니라 역사적이고 문화유산적 가치가 높은 귀족들의 성까지 포함하면 어림잡아 100여 개가 넘는다. 물론 이 명성에 들지 않는 크고 작은 성까지 합한다면 그 숫자를 가름하기 어렵다.
르와르는 무려 1006km의 프랑스에서 가장 긴 강으로, 프랑스 남동쪽 마쉽 샹트랄에서 중부를 가로질러 북쪽으로 흘러 오를레앙에서 다시 서쪽으로 꺾어 뚜르를 지나 서쪽 대서양으로 흘러든다. 이 강은 풍광이 아름다울 뿐 아니라 활발한 교역으로 풍부한 물자 조달은 물론 적으로부터 방어 요충지로서도 안성맞춤이었다. 또한 중세를 거쳐 르네상스에 이르기까지 여러 왕들과 그 충의가 담긴 곳으로써 <르네상스의 요람>이라고도 한다.
따라서 우리의 3박 4일 짧은 기간 동안에 이 많은 성을 다 볼 수가 없다. 예전에 방문했던 성들은 두고 관심 가는 몇몇 성만을 골라서 둘러보기로 했다.
우선 가까운 <앙부와즈의 성(Château d'Amboise)>으로 갔다.
앙부와즈(Amboise)는 뚜르에서 동쪽으로 15km 떨어진 거리다. 르와르의 물줄기를 거슬러 강변 길을 달렸다. 곱고 부드러운 겨울 햇살이 물 위에 내려앉아 강물은 더욱 푸르고 깊게 느껴진다. 이곳저곳에서 르와르산 포도주 까브 이름을 자랑스럽게 내건 대 저택들이 마치 부의 상징처럼 보였다. 르와르 계곡은 온난한 기후와 비옥한 토양으로 포도주 생산지로서도 잘 알려져 있다. 따라서 이 풍부한 자연으로 인해 <프랑스의 정원>이라고도 불린다.
다리를 건너면 앙부와즈다. 맞은편 기슭을 따라 언덕 높이 우뚝 선 우아한 고성이 한눈에 들어온다. 바로 <앙부와즈의 성>이다.
이 성은 <르와르의 성>에 속하며, 샤를 8세, 루이 12세, 프랑소와 1세가 거주했던 하나의 대표적인 프랑스의 <왕실 성>이다. 르와르 계곡 언덕 위에 자리하여 최적의 요새다.
나는 출구까지 비탈길을 오르면서 어느 평지에 지어진 르와르의 성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 받았다. 마치 산사를 찾는듯한.
성은 생각보다 크지가 않았다.
중세 고딕식 건축물과 서로 다른 스타일의 거대하지만 심플한 르네상스 양식의 두 기마병 탑과 테라스, 그리고 샤를 8세 때 건축된 화려한 고딕 양식의 생-우베르(Saint-Hubert) 기도실과 테라스식 넓은 정원으로 이루어져 있다.
안뜰은 프랑소와 1세가 더욱 자주 기거함으로써 공간이 점점 더 확장되었다고도 한다.
방마다는 어느 다른 성들과 마찬가지로 왕들을 비롯한 그들 가족 초상화가 걸려있고, 그 시대 가구들이 전시되어 역사를 말한다.
타원형 계단을 비롯한 두 기마병 탑은 완만한 비탈 지대를 따라 바깥 출입구에서 실내 현관까지 마차를 타고 닿을 수 있도록 되었으며, 이 온화한 나선형 길은 정상 테라스까지 이어진다.
나는 흡사 나사가 풀리듯이 널따란 실내를 뱅글뱅글 걸어서 입구까지 나왔다는 점이 특이했다. 그 길을 걸어 내려오면서 그 시절 왕과 왕비를 실은 이륜마차가, 또는 긴급함을 알리던 기마병의 말발굽 소리가, 마치 지금도 나를 비껴 쏜살같이 내달리는 듯 그 모습을 상상했다.
또 근대에 와서는 포로의 감옥 역할로도 유명하다.
이 흥미로운 특별한 사건은, 프랑스 식민지 나라였던 알제리 독립운동의 주창자 아브델까데르 (Abd el kader)와 함께 그 가족과 측근 80여 명이 포로로 구금되어 이곳에서 생활하다 숨을 거두었다. 그들은 지금 정원 한편에서 그들 묘석 이름 아래 고요히 잠들어 있다.
그리고 시원하게 트인 테라스에서의 전망은 한참 동안 넋 놓아 볼 정도 아름답고 멋지다. 성 측면 구조도 아름다울 뿐 아니라 성채 아래로 르와르 강줄기가 기다랗게 뻗어, 그 옆으로는 아르도와즈 지붕을 이은 집들과 고급 호텔이 눈 안으로 한꺼번에 들어온다. 정원을 가로질러 반대편 성벽 넘어 흑백색의 앙부와즈 시내가 평화롭게 펼쳐져 있다. 가히 빼어난 풍광이라 아니할 수 없다.
성채 맞은편 안뜰에 자리한 생-우베르 기도실에는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잠들어 있다지만, 공사 중이라 들어갈 수 없다. 고개를 쭉 빼어 들어다 보았으나 비계 설치만 보일 뿐. 우리는 정원을 한 바퀴 돌아서 나왔다.
마지막 손님으로 들어간 레스토랑에서 늦은 점심을 먹고 소화도 시킬 겸 천천히 걸어서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거주했던 집을 찾았다.
길 끄트머리 즈음, 조용하고 널따란 정원과 개천을 낀 고색의 운치 있는 작은 성은 그 자체가 멋스럽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프랑소와 1세의 초청으로 이탈리아를 떠나 이곳에 정착하여 수많은 창작물을 남겼다. 그가 생전에 고안했던 각종 기계들의 마켓트가 전시되어 있다고 한다. 그러나 그림 작품이 아니어서 입장은 포기했다.
솔직히 말해서 앙부와즈의 성과 더불어 내용에 비해 입장료가 너무 비싸게 느껴졌다.
우리에게는 내부장식보다 건축적인 구조와 주변 환경으로 어우러진 전체적 분위기가 더 감각적이고 아름답게 와닿는다. 그래서 차라리 동네를 한 바퀴 걸었다. 중심가는 성곽에서 내려다보던 거와는 달리 크지가 않았다. 하지만 또 다른 흥미로운 점을 발견했다.
앙부와즈에는 2차 대전 당시 독일군의 폭격을 피하기 위해 주민들이 언덕 아래 석굴을 파서 피난처로 삼았단다. 이 언덕은 연한 석회암으로 형성되어 굴을 파기가 어렵지는 않다. 지금도 언덕을 따라 오르면 그때 만들어졌던 많은 거처들의 흔적이 남아 있다. 그중 일부는 까브를 이용하거나 비어있기도, 또는 그 외의 석굴들은 많이 개조되어 사람들의 터전으로 여전히 그 안에서 살고 있었다.
습하거나 자연채광이 부족하지는 않은지? 의문스럽기도 했지만, 양지바른 나지막한 언덕에, 현대식 문과 창을 달아 굴뚝까지 설치되어 있으니 충분히 살 수도 있으리라 여겨졌다. 비록 이 집들에 내부 삶을 자세히 들어다 볼 수는 없으나 아주 독특한 취향의 집임에는 분명했다. 그리고 충분히 내 호기심도 자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