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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나 김선자 May 06. 2022

프라하 여행기

 7일간 프라하에서



프라하에서 일주일은 결코 길지가 않았다. 이 정도 기간이면 넉넉하고 여유롭지 않을까 했던 것이 옹졸한 발상이었고, 프라하를 가볍게 생각하고 너무 쉬이 여겼던 것이다.

그러나 저녁마다 온몸이 녹초가 되도록 열심히 발품을 판 결과 우리가 소원했던 것들은 소홀함 없이 거의 보고 온 것 같다. 물론 욕심을 내자면 한 달도, 일 년도 부족하고, 또는 유명 관광지만 후다닥 겉핥기 식으로 본다면 하루 이틀만으로도 충분할 것이다.


이왕 하는 여행 우리는 제대로 보고 싶었다.

언제나 그랬듯이 예술 문화 분야를 집중해서 일정을  나갔다. 우리 여행의  목적은 미술관과 박물관에 소장된 미술품을 보는 것이다. 더군다나 바다도 산도 아닌 대도시에서  부분이 빠진다면 앙고 없는 찐빵 같은, 쵸코렛이 빠진   쇼콜라(pain au chocolat, 쵸코렛 ) 먹는 기분이지 않을까? 그만큼 여행의 만족도가 달라진다. 따라서 삶과 정신적 윤택함도 다를뿐더러,  나라의 문화적 수준이나 가치를 판가름할 수도 있다.

그러므로 이번 체류 일주일 동안에 4일간은 네 군데의 미술관을 비롯해 오페라 공연과 오케스트라 공연장에서 주되게 보내었고, 그 나머지 자투리 시간과 날들을 다른 관광객들과 마찬가지로 역사적 문화적 장소에서 사진도 찍고, 도심의 풍경을 탐미하며 즐겼다.

사실 목적지 대부분이 주된 관광 명소에 속하거나 접해 있어 어차피 하루에도 몇 번씩은 그곳을 거쳐 지나야 만 한다. 가끔은 인파를 피하고 싶어 또는 구석구석을 즐기고 싶어 매일 골목을 바꾸어 우회하는 발품을 팔기도 했다. 그리고 여행객의 발길이 적은 지역을 찾아 프라하를 좀 더 깊숙이 보고 음미하는 것으로 여행을 마무리했다.


사실 대부분의 관광객들은 주요 공간에서만 움직이는 게 그 특성이다. 그래서 약간의 시간적 여유가 있다면, 이 개미 군단 같은 통로에서 조금만 벗어나 보는 것도 좋다. 단 한, 두 골목이나 50미터, 100미터만 비껴 나도 한가하게 나만의 여행을 즐길 수가 있다. 비록 아름다운 정경은 견줄 수 없겠으나 그 못지않은 색다른 즐거움과 호젓한 낭만을 찾기도, 의외의 공간에서 여유로움을 만끽할 수도 있다. 더욱이 관광객을 위해 다듬어진 인위적인 멋이 아닌, 그 지방 특유의 전통과 문화, 일상적인 삶과 모습들을 발견하기도 한다. 이런 곳에서는 음식점 또한 여행객들을 위해 만들어진 국적불문 퓨전이 아닌, 그 지역민들이 먹는 음식을 싼 값에 맛볼 수도 있다.

어떤 나라 관광지들이 다 비슷하겠지만, 특히나 프라하의 유명한 주요 관광지는 대체로 도시 중앙에 집중되어 있다. 대중교통으로 트램을 이용하면 빠르고 편리하게 움직인다는 장점도 있지만, 굳이 교통수단을 이용하지 않고도 웬만히 걸어 다닐 수 있다. 역시나 시간적 여유가 있다면, 이 두 방법을 다 경험해 보는 것이 좋지 않을까 쉽다. 아니 꼭 경험해 보라고 말하고 싶다. 서로 다른 풍경은 물론이고, 여행의 다양한 참맛을 고루 즐길 수도 있을 테니까. 참고로 교통료가 70세 이상은 무료, 60세 이상은 절반값이며, 어린이, 학생도 할인 대상이다. 그리고 짧은 운행 배차로 인해 오래 기다린다거나, 붐비지 않아서 전혀 불편함을 느끼지도 않았다. 단 프라하 성으로 가는 22번 트램은 소매치기가 많으니 조심하라지만 직접 목격하지는 않았다.     


프라하는 중부 유럽에 위치한, 한때 공산주의 체제하에 있었던 크지 않은 나라, 체코의 수도다. 겨울 흐리고 어두운 날씨에 회색빛 하늘 아래 빨간 지붕이 인상적인 아름다운 도시, 그래서 많은 여행객들이 찾는 도시라고만 알았다. 프란츠 카프카와 밀란 쿤데라, 그리고 프랑스 소설가 장 에슈노즈의 <달리기> 속 주인공이며, 당대 최고의 장거리 선수의 명성과 '인간 기관차'라는 별명을 얻은 체코의 육상선수 에밀 자토페트(Emil Zatopek)의 고국이란 정도. 그리고 막연하게 집시들이 많은 나라로 알았다.

그러나 일주일의 체류 동안 이토록 만족도가 높고, 풍성한 여행이 될 줄은 미처 몰랐다. 떠나기 전에는 짧은 시간에, 큰 무리 없이, 가까운 중부 유럽의 약간 색다른 공기와 분위기를 느끼고 마시며 기분 전환이나 하자는 가벼운 마음으로 단순하게 생각했다.

반면, 프라하는 솔직히 내가 20년 동안 소원하며 기다렸던 여행지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번 여행은 봄날의 꿈처럼 그 뜻을 이루었을 뿐 아니라 프라하를 좀 더 구체적이며 새로이 깨닫고 다가가게 되었다. 그리하여 내가 평생에서 일, 이년 정도 살아보고 싶은 도시들 목록 주머니 속에 당당히 끼워 넣는 계기였다.


그 첫째 이유가 아름다운 도시라는 점은 말할 필요조차 없을 것이다. 두 번째는 시민들의 생활 태도와 방식이 문화인으로 느껴졌다. 교만함이나 오만 불순하지 않고, 억지 선언적 잘난 체하지도 않으며, 지나치게 개인주의적이라고 생각되지 않았다. 물론 짧은 기간에 본 내 단편적이고 국한된 일부분일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내가 아는바의 파리지앵이나 프랑스인들과는 다른 성향이었다. 따라서 이 조용하고 예의 바른 친절한 도시가 좋았다. 세 번째는 블타바 강을 더불어 도심 곳곳에 녹색 공원단지가 잘 조성되어 풍성한 자연을 접하며 쾌적하게 살 수 있다는 점이다. 네 번째는 전철, 버스, 트람 등으로 교통의 혼잡함이 없었다. 그리고 다섯 번째 생활필수품 가격이 파리에 비해 절반 수준이라는 점이다. (물론 유로가 아닌, 체코 화폐 코루나를 사용한다.) 레스토랑, 커피점, 맥주 가격 등 이 모두가 파리의 절반 값이며 내 입맛에도 잘 맞았다. 다시 말해 수많은 여행객들이 찾는 도시임에도 불구하고 불쾌함을 줄 만큼 혼잡하지도 않으며, 크지도 작지도 않는 기분 좋은 도시였다.  

  

내 마음속에 처음으로 프라하 여행을 품은 지가 20년 전이다. 이를테면 같은 유럽권 근거리에 두고 그 뜻을 실행에 옮기기까지가 20년이 걸렸다.

사람마다 어떤 경우나 까닭에서든 매력적으로 느끼거나 끌어당기는, 그래서 직접 가보고 싶다 간구하는, 또한 마음에 새긴 도시가 하나 또는 몇 개씩, 그 이상도 있을 것이다. 누군가는 꿈꾸며 만들어 놓은 여행 목록과 그 순서들도 있을 것이라. 나 역시 체코의 프라하도 그중 하나였다.

20년 전, 파리에서 같은 기숙사에 살며 유학하던 친구가 다녀온 첫 여행지가 바로 프라하였다. 그때부터 내 마음속에 간직하여 조만간 가리라 벼르던, 꼭 가보고 싶은 도시중 한 곳이다. 그런데 여러 가지 연유로 미루고 미루다 결국 이십 년이 걸렸다.

왜냐하면 세상은 넓고 볼 것도 갈 곳도 너무 많다. 지금보다 젊어 근력이 있을 때는 그 바탕으로 장거리, 장시간의 여행을 원했었고, 겨울에는 낮도 짧고 춥다는 이유로 프라하 날씨를 탓하며 감히 갈 생각을 접었다. 여름 바캉스는 또 뭐니 뭐니 해도 바다가 최고지 했었고, 봄과 가을은 항상 햇빛이 그리워 좀 더 따뜻한 지방을 찾았었다. 이처럼 프라하가 내 여행 목록 속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그 순서에서 비껴 났다.


이번에도 역시 한국, 로마, 프라하를 리스트에 올려놓고 갈등과 주저함으로써 목적지가 왔다 갔다, 내렸다 올렸다 여러 차례 바뀌기를 반복했다. 프라하, 춥지는 않을까? 햇볕이 그리울 텐데? 그럼 한국은? 한국은 너무 멀어, 마스크 착용도 해야 하잖아. 로마도 볼게 많으니 일주일로는 너무 짧아, 하지만 너무 많은 시간 투자는 불가능해, 이처럼 경쟁이라도 하듯이 조건과 상황을 마치 저울에 올려놓고 자로 눈금 재듯 고심을 했었다. 그렇게 내린 결정이 바로 프라하에서의 일주일이다.


프라하 여행은 사월 말경이 최적의 계절이라 생각된다. 춥지도 덥지도 않을뿐더러 낮 길이가 차츰 길어지고 강수량도 적은 시기다. 처처에 나지막한 언덕이 많아 단조로움도 밋밋함도 없는 다양한 형태의 도시가 투시도처럼 펼쳐진다. 경사진 곳으로 꽃들이 만발하고 나무들이 연초록빛 새싹을 움트는 다채로운 계절. 그 무성하지 않은 나뭇잎 덕분에 새겨진 잔가지들 사이로 도심의 전경이 투명하게 비친다. 변화무상, 젊음의 감성이 생동하는 계절. 흐리면 흐린 대로 붉은 지붕과 대조되어 신비롭고, 햇살이 나오면 살포시 비추는 반사광에 더욱 선명히 드러나는 아름다움, 이 다양한 날씨만큼 그 경치 또한 다채하다. 아니나 다를까 프라하를 소개하는 책자 사진에도 사월의 봄 풍경이 많다. 프라하의 봄은 파리보다 적어도 2주가 느리다.


걱정했던 것만큼 햇빛이 그립지 않았다. 하루에도 수시로 변하는 날씨, 주어진 그대로도 좋았다. 비를 맞아도 싫지가 않았다. 이것이 여행의 힘일까?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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