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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나 김선자 Feb 17. 2023

나의 이야기 2

모든 게 숙명 같다



한 길만 걷기로 했다.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지 못하는 것도 내 능력의 한계 때문이라는 걸 잘 안다. 그렇지만 허약한 두 마리 토끼보다는 아름다운 하나를 원했다. 일반적이고 평범한 삶보다 결코 쉽지 않은 고독한 인생일지라도. 이것이 내 숙명이라 여긴다.


사람에게는 서로 다른 색깔과 형태의 독특한 자질과 성향이 있다. 그것이 좋고, 나쁘고, 싫든, 아니든가를 떠나서 나에게도 마찬가지 내게 주어진 크기만큼의 내 고유한 역량이 있기 마련이다. 선천적이든 후천적이든 간에. 어차피 그 안에서 나는 부족한 면을 채워가며, 오늘도 그 한계선을 넓히려고 꾸준히 애써며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물론 내가 피카소처럼 천재도 아니고, 부자도 아니듯이,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도, 세력과 힘이 될 뒷배경 같은 탄탄한 인맥도 없다. 더군다나 이것저것 다할 수 있는 튼튼한 체력 또한 타고나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예술적 재능과 감각, 강한 의지와 집념, 그리고 끈기 있는 도전 정신은 천부적으로 조금 남다르다 말할 수 있다. 한마디로 예민한 특성을 지녔다. 따라서 깡과 강단으로 나는 여태껏 작가의 길을 고수하며 살아왔다.

'체구도 작은 사람이 어떻게... 겉보기와는 달라요'라는 말을 사람들로부터 종종 듣기도 한다.

그럼에도 더 명백한 사실은 어릴 적부터 어떠한 고비가 올 때마다 그 선택의 기로에서 항상 진로를 밝혀준 촛불 같은 잊지 못할 몇몇 스승들을 만났고, 응원하는 친구들이 있었다. 그 가운데서 가장 헌신적이고 꿋꿋한 믿음으로 나를 변함없이 지탱하며 지지하고 격려해 주신 어머님이 계셨고, 가족이 있으며, 이후 지금까지 스승이면서도 선배이고, 동료의 역할을 다하는 남편이 있다. 내가 화가의 삶을 사는데 그지없이 큰 비중을 차지했던 사람들. 이들을 만난 그 자체가 나에게 숙명처럼 찾아온 행운인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의심 없이 이 길은 내가 가야 하는 행로라 여겼고, 지금도 생각한다. 비록 느리지만, 내가 옳다 믿고, 좋아하는 길을, 무조건 앞만 보며 중단 없이 묵묵히 나아가는 것이다.


봄날의 부드럽고 따스한 햇살을 맞아 마음에 물기가 사라지듯, 가끔 좋은 기분에 젖어드는데, 바로 오늘처럼 작업이 잘 될 때다. 우연찮게도 좋은 하모니를 이루어 뜻밖의 결과를 얻었을 때, 나는 형언할 수 없는 행복감에 젖어 완전한 자유를 느낀다. 햇살처럼 번지는 기쁨의 느낌. 비록 길지는 않지만 그 느낌은 아주 강렬하여 이때만큼은 어제의 부정적인 생각들이 완전히 씻겨진 듯 생각나지 않는다. 이 행복한 기분은 몇 분, 몇 시간 내에 사라질지언정, 나는 그 강렬한 느낌 때문에 나를 지탱하기도 한다.

이런 날 남편과 마주 앉아 늦은 점심을 먹으면서 나는 이 행복한 기분을 동료 같은 그에게 한층 고조된 감정으로 적나라하게 드러내어 보여준다. 이러한 내 모습을 보는 그도 그득하게 만족의 미소를 띠면서 이 활기찬 분위기가 지속되도록 한 잔의 포도주를 권한다. 우리들의 포도주잔이 흔쾌히 밝고 맑은 공기 위에서 '쨍' 하고 기분 좋게 부딪힌다. 그리고 작업에 대한 이야기를 유쾌하게 이어간다.

이렇게 우리는 서로의 작품에 대하여 자주 의견을 주고받으며 솔직한 심정을 털어놓기도, 고백 같은 심경을 나누기도 한다.


"올 겨울은 내가 누워 지낸 날이 적어 정말 다행이고, 덕분에 작업도 꾸준히 할 수 있어서 너무 기쁘요"

"그렇네, 참 다행이다. 당신이 좋아하니 내 기분도 좋은 걸"

"날씨가 예년보다 따뜻하고, 겨울장마도 주살나지 않아 몹시 습하지를 않았죠. 당신이 부엌일도 많이 도와주었고요. 무엇보다 나를 위해서... 적절한 휴식과 함께 음식조절도 잘했잖아요. 분명 내 이기적인 생활방식의 결정 덕분인 것 같아요. 요리 시간도, 가짓수도 대폭 줄였고요. 또 포도주도 자제하고, 식사 초대도... 초대를 하는 것도, 받는 것도 절제했잖아요. 좀 아쉽지만, 어쨌든 금욕적인 생활을 했던 덕택이라고 생각해요.

"당연하지. 건강이 제일 중요해. 마땅히 내가 도와야 하고, 그 정도 돕는 것쯤은 문제도 아냐. 응당 함께 해야 할 일인걸. 그동안은 요리를 대체로 당신이 맡았으니까... 한국 식단은 가짓수도 많고... 당연히 힘들지"

"어쩔 수 없죠. 내가 만든 요리가 맛있으니까. 난 당신처럼 간단히 놓고서는 먹기가 힘들어. 안 넘어가"

"나 역시 당신이 차린 음식을 좋아하잖아, 그 덕에 미식가의, 우리만의 그홀레 별 레스토랑에서 매일 하는 식사를. 하하하하하"

"호호호, 아, 아무튼 지금처럼 많은 시간을 나를 위해 온전히 쓸 수 있다는 게 너무 기분 좋아요. 정말 만족스러워..."

"옳고 당연한 거야. 건강과 작업이 우선이지"


남편은 내가 작업에 전념하는 걸 언제나 절대적으로 환영한다. 한결같다. 그런 그를 보면서 나는 이따금 그가 나를 아내로 여기기보다 작업하는 동료로 느끼지 않은가 착각이 들 정도다. 솔직이 우리는 자녀가 없다 보니 대체로 일반 가정에서 일어나는 화제와는 다소 차이가 있다. 주로 그림에 관하여, 작업에 대해 마치 미술 활동하는 동료끼리 나눌법한 대화가 더 큰 비중을 차지한다.

남편은 내게 청혼을 하던 날도, 그다음 날도, 또 그 어느 날도 마찬가지 그림과 자주 연관시켜서 얘기한다. 그 역시도 나 못지않게, 오히려 보다 더, 그의 인생에서 그림은 떨어질 수가 없는 것이다. 이처럼 우리는 같은 비전을 향한다.


"당신 여기서 계속 살면 어떨까? 생각 안 해 봤어, 여기서 사는 거?"

"무슨 뜻이죠?"

"난 당신과 계속 함께 살았으면 좋겠는데... 결혼해서... 당신 생각은 어때? 나와 결혼해 줬으면 좋겠어. 우리 결혼하자. 당신은 결혼할 생각은 안 해봤어?"

"결혼? 아직 구체적으로 거기까지는 생각해보지 않았는데..."

"그럼 잘 한번 생각해 봐"

.......

"단지, 당신이 여기서 살아도 행복했으면 좋겠어"

"사실, 음, 좀 두렵기도 해요. 하지만..."

"그림이 있잖아. 계속 작업하면서... 그러니 살아도 되지 않을까?"

"가족, 친구, 한국이 그리워지면 어떡해요?"

"한국도 자주 가면 되지...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못한가"

"생각을 좀 해 볼게요"

"그래, 신중하게 생각해 줘... 이왕이면 긍정적이게... 좋은 쪽으로 결정해 주길 바랄게"

"......"


동시에 그는 나를 위하여 잘 생각해 보라고도 했다. 결혼해서 내가 행복해 지기를 바란다고도 했다. 그렇지만 내가 가족과 고국을 떠나 혹여 이국땅에서 불행해질까 염려가 되기도 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긍정적인 쪽으로 생각해 주기를 바랐다. 그림을 통해서라도.

나는 심사숙고를 했고, 결론은 그를 혼자 두고 떠날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 결정에는 물론 두 사람 간의 믿음과 사랑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그림이 중요한 역할을 했던 것도 사실이다. 작가의 길은 어디에 있든지 간에 고통과 외로움이 따를뿐더러, 완전한 곳도 없지 않은가. 그리고 작업하기에 환경적인 조건은 이곳 파리 만한 곳도 없다고 생각했다. 아직 여기서 배워야 할 것들이 수없이 많았다.

비록 가족도 친구도 하나 없고, 문화도 전혀 다르지만, 내게는 그림이 있으니까 두렵지 않았다. 그림이 그 모든 것을 대신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 어떤 어려움도 과감히 극복할 수 있다고도 생각했었다. 그리고 한국과 프랑스를 자주 왕래하면서 작품활동도 충분히 펼쳐나갈 수 있다면 더할 나위가 없었다.

어차피 유학오기 전 그림과 일을 병행하던 때부터 언제나 시간에 대한 갈증을 느꼈고, 온전히 그림을 위해서 작업에만 몰두하는 삶을 간절히 원했다. 그 때문에 유학까지 결정하지 않았던가.

마침내 나는 그의 청혼에 동의했다. 조금은 미세하게 흔들리기는 했지만,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고서도 결단을 내릴 수가 있었다. 거기에는 또 다른 큰 이유가 있었다. 그 당시 나는 부모님이 이미 세상을 떠나시고 내 곁에 계시지 않았다. 그러므로 감히 내가 프랑스에 뿌리내리겠다는 결단의 용기를 내기에 보다 쉬웠던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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