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다나 김선자 Feb 10. 2023

나의 이야기 1

그림을 선택했다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 존재를 확인하고 싶어 오늘도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쓴다.


나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그림과 동떨어져 지낸 적이 거의 없다. 그림을 향해서. 그림에 의하여 그것에 전념하며 살아왔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에 사용된 시간이 길면 길수록 내 삶의 희열도, 만족도 그만큼 비례한다. 그림을 통하여 희망을 품고, 꿈을 꾸기도 한다. 즐겁고 기쁜 순간을 맛보기도, 슬픔과 괴로움을 느끼며, 어려움과 고통을 겪기도 한다. 때론 환상과 착각 속에 빠져 오만하다가도 다음날 스스로 깨어나 부끄럽고 한심하다 느낄 때도 많다. 그럼에도 좌절 앞에서 항상 꿈틀거리며 도전 정신이 되살아 난다. 지금도 매일같이 당하며, 부딪히고, 겪는 일이다. 이것이 나이며, 내 성격이고, 기질이다. 그렇게 오늘날까지 작가의 길을 걷고 있다. 내일도, 그다음 날도 반복될 것이다.

또한, 그림은 내가 살아오는 동안 유일하게, 싫증도, 포기도 없었던, 열정을 가지고 가장 오랜 시간 몰두한 일이다. 따라서 나를 지탱하게 하는, 삶의 전부나 마찬가지다. 간단히 말해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일임에 틀림없다.

나는 그것을 위해 고국과 부모, 형제, 가족들 곁을 과감하게 떠나왔다. 친구들과의 관계도 소원하고 등한시했다. 돈도, 안락한 삶도 버리고, 부모가 되는 것 마저도 포기하며 작가의 삶을 선택했다. 고독한 시간과 맞바꾸었다.

현실적인 삶을 초월해야만이 아름다운 것을 얻을 수 있다는 그 원칙에 따랐다. 창작의 일이란 현재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한 도전이며, 이상적인 것을 위한 추구라고 믿는다, 끝없이 탐구하는, 고독한 도전이고, 자신과의 씨름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탈과 시간이 필요했다. 자유로운 영혼을 위해서. 비록 한량처럼 빈둥거리며 소용되는 시간일지언정.


결혼 당시에 남편과 나는 자녀 문제를 놓고 허심탄회한 논의가 있었다. 사실 남편은 자녀를 바라거나 원하지도, 그를 위한 요구도 욕구불만도 없었다. 그의 의사는 분명했고, 완고했다. 반면, 나는 있거나 없거나 크게 중요하게 여기거나, 솔직이 심각하게 생각해 보지를 않았었다. 남편이 원하면 가질 수도, 그렇지 않아도 별 상관은 없었다. 그러나 마음 한구석에서 내 보물 하나쯤은 있어도 좋지 않을까는 욕심이 없지는 않았던 것 같다.


"당신은 자녀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어?"

"무슨 뜻인가요?"

"자녀를 갖고 싶은지를 묻는 거야"  

"나는 자세히 생각해 보지 않았는데..."

"그럼 잘 생각해 봐?"

"그러는 당신은요?"

"난 사실, 자식을 원하지는 않아. 이미 늦었다고 생각하거든. 알다시피 우리가 젊지도 않잖아."

"그렇지만, 나중에 나를 부양하고, 봉양할 수 있는, 내 요청을 적극적으로 들어줄, 완전한 내 편 하나쯤은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도 하는데..."

"그런 목적으로 자녀를 원하다면, 그건 옳지 못한 방법이야. 자식을 도구처럼 생각해서는 안돼. 노후 문제는 우리 스스로가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그렇다면 당신은 이미 결정을 내린 거잖아요?"

"자식도 물론 좋지만, 내 솔직한 심정을 말한다면, 키우는 걸 생각해서... 자녀를 위해 현재의 내 시간을 몽땅 쓸 수가 없어. 그리고 나는 피카소가 아니거든.

"무슨 소리죠?"

"음, 피카소야 육아를 위해 작업 시간을 쪼개지 않아도 되었지만 나는 그처럼 부자가 아니잖아. 피카소처럼... 나 대신 맡아 상주하면서 보육할 가정교사를 둘 수 있는 형편도 못되고, 또 당신 혼자 도맡아 키우게 할 수도 없으니까. 당신도 튼튼하고 건강한 체질이 아니잖아"

"그래도 나이 들어서 외롭지 않을까요?"

"우리에게는 그림이 있잖아"

"그렇긴 하지"

"당신에게는 자식이 그림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

"그건 아니지만..."

"그래도 잘 생각해? 그림인지 자식인지?"

"......"

"......"

"그럼 없었던 일로 해요. 당신이 원하지 않는 걸 나 혼자 책임지고 키울 자신은 없어. 그럴 정도로 자식에 대한 욕심도 없고요. 자식도 완전한 부모 사랑으로 태어나야 할 권리가 있으니까"

"정말 후회 않겠어, 나중에 후회되지 않도록 잘 생각해?"

"안 해, 아니, 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뾰족한 방법도 없잖아. 솔직히 지금은 잘 모르겠어, 긍정도, 부정도, 후회도 그때 가서 생각하지 뭐!"


결국 그의 말은 충분히 설득력을 가졌고, 나는 그렇게 설득당했다. 아니 아주 조금 의아한 기분이 없지는 않았지만, 잘 납득되어 수긍했다. 출산을 하기에는 내 나이도 아슬아슬했으며, 육아까지 고려하면 아찔했다. 따라서 이상적이고 좋은 강구책은 없었다.

남편 인생 역시 나 못지않게 그림에 일심전념 몰두하며 열정으로 살아왔다. 더군다나 남편은 우리 생계를 책임질 일을 해야 하는 입장에서 시간이 항상 자유롭지도, 넉넉하지도 않았다. 그에게는 한시라도 시간이 소중했다. 작업할 시간이 언제나 부족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녀 양육을 위한 시간은 그에게서 자유를 빼앗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나는 자녀 양육에 있어 그에 따를 실질적 노고와 고충 따위는 깊이 있게도, 구체적으로도 생각해 보지 않았었다. 마치 결혼과 더불어 그저 생기기라도 하듯이 자연현상처럼 막연하게 인식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서 외적으로 내비친 모습만을 판단한 것이다. 아니 모든 것을 쉽게 가지려는 마음이 더 크게 작용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도 아니면 그만큼 관심이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처럼 단순하게만 생각했던 나와는 다르게 남편의 생각은 달랐다. 자녀가 성인이 될 때까지 어떤 방법으로든지 치르고 감내해야 할 희생을 먼저 고려했다. 물론 나 역시 혼자서 감당할 자신은 없었다. 내 시간도 그 못지않게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림을 위해서, 그림 때문에 내가 여기까지 달려오지 않았던가. 이제 와서 그림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그것은 나를 우롱하고 기만하는 짓이며, 내 인생관 자체가 사라지는, 뒤흔드는 것이나 매한가지다. 지금껏 나는 단 한 번도 그림과 분리시켜 나를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어차피 불혹의 나이를 훌쩍 넘는 동안까지도 자녀 문제를 심각하게 떠올리거나 고민하지도 않았잖은가. 그렇다. 나 역시 그토록 나를 희생시켜 가면서 자녀를 갖고자 애쓰지는 않았다.

젊었을 때부터 내 품에 아기들이 안기면 우선 벗어나려고만 했었다. 포근하고 편안하게 느끼지 않았던 것 같다. 내가 아무 짓도 않았지만 발버둥을 쳤고, 목청이 터져라 울어댔다. 나 또한 아기를 선뜻 안아 보는 것을 흔쾌히 원하지도, 좋아하지도, 승낙지도, 않았었다. 물렁물렁한 느낌과 젖내가 싫었고, 아기 몸의 어디라도 꺾어질까 봐 안절부절못했다. 그리고 뭔가를 끊임없이 요구하는 아기가 부담스럽고 불편했다. 늘 보살펴야 한다는 그 자체가 무거운 짐이었다. 그래서 강아지나 고양이 같은 애완동물도 키우지 않는다. 책임감은 귀찮고 괴로운 것이며 무겁다.

또 나에게는 작은 생채기 같은 추억도 있다. 어릴 적 나는 젊은 엄마를 둔 친구들이 부러웠다. 나는 여섯 남매 중 막내로 태어나 당연히 내 부모님은 또래 친구들 부모에 비해 훨씬 연로하셨다. 어머니께서 서른여덟에 나를 낳으셨고, 아버지는 어머니보다 열 살이나 많으셨다. 나에게는 언제나 노년의 부모님 모습만 기억되었다. 노쇠한 모습, 나는 그게 싫었고, 부끄럽게 느낄 때도 있었다. 그래서 만약에 자식이 생긴다면, 그도 어린 시절의 나처럼 생각될까 약간은 두려웠다.


결국 우리는 그림을 선택했다. 이 기로에서 최선의 선택을 해야만 했었다. 둘 다 가질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후회하지는 않는다. 미련도 아쉬움도 가지지 않는다. 가진 들 무슨 소용이겠는가. 어차피 내가 선택한 것이므로 책임도 내가 지는 것이다. 우리가 신이 아닌 이상 세상의 모든 것을 다 가질 수 없다는 것도 잘 안다.

그럼에도 누군가가 혹여 그래서 충족하느냐고 묻는다면, 그것은 아직 미지수다. 왜냐하면, 나이가 점점 들어가면서 가끔 두려움이 생겨나기도 하니까. 하지만, 아직까지는 내 일상에서 가장 많은, 대부분의 시간을 글 쓰고 그림 그리는 것으로 보내고 있으며, 더 크고 중요하게 내 삶을 차지하고 있다.

현재 내 인생은 진형 중이고. 그 때문에. 그리고 노력하는 중이다.

지금 행복하기 위해서.














  

매거진의 이전글 미술탐방; 샘 샤프란(Sam Szafran)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