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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나 김선자 Jan 28. 2023

미술탐방; 샘 샤프란(Sam Szafran)



매년 그렇듯이 올 겨울도 어김없이 파리의 각 미술관에서는 풍성한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그 가운데 얼마 전에 오랑주리 미술관에서 막을 내린 전시 하나를 소개한다. 

다름 아닌 2019년에 작고한 프랑스 화가 샘 샤프란(Sam Szafran)이다. 나는 이 작가에 대해서 아는 게 전혀 없었다. 아예 그 이름조차 들은 바 없었고, 미술관 그 어디에서도 그의 작품을 본 적이 없다. 아니면, 이미 보긴 했어도 내가 기억할 정도로 시선을 잡아끌었거나 미처 인지되지 못했을 수도 있을 것이다. 

솔직이 남편 역시도 이 작가 작품을 크게 좋아하지 않지만, 그가 평소 좋아하던 철학자가 이 작가의 작품에 대해 쓴 평론 글을 읽고서 새롭게 관심을 가진 나머지 다시 확인하고 싶은 마음에서인지 내게 전시를 보러 가자고 했다. 나 역시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 전시장에 가는 것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외출이기도 하니까. 


우리는 생-딴 거리의 일본식 가락국수집에서 점심을 먹고 번잡한 도로를 걸어 튈르리 공원에 발길을 들어놓았다. 북적이는 사람들 틈으로 텁텁한 기름냄새가 진동을 한다. 공원 입구에 설치된 관광객을 위한 장터에서 새어 나오는 튀김 냄새다. 재빨리 그곳을 벗어나 겨울의 한적하고 썰렁한 공원을 걷었다. 콩코드 광장 쪽에서는 회전 놀이 기구가 공중에서 세차게 원을 그리며 돌아가는 것이 보인다. 사람들의 비명소리도 들린다. 기구를 탄 손님들이 숨 가쁘게 내지르는 소리다. 회전 속도가 빠를수록 그 외침도 거세진다. 그 광경을 보노라면 오히려 땅을 밟고 서있는 내가 현기증을 일으키며 멀미가 난다. 


우리는 줄을 서서 오랑쥬리 미술관(Musée de l'Orangerie)으로 들어갔다. 역시 관람객이 많다. 오랑주리는 모네의 <수련> 대작을 비롯한 많은 인상주의 작품들이 소장되어 있으므로 항상 세계 곳곳의 여행객들이 붐비는 미술관 중 하나다. 특히 루브르 박물관과 아주 근접해 있다는 것도 또 다른 이유다.


샘 샤프란(Sam Szafran)은 그의 아호이고, 본명은 샤무엘 베르제(Samuel Berger)다. 그는 1934년 파리에서 폴란드 유대계의 이민자 가정에 장남으로 태어나, 2019년 파리 근교의 말라코프(Malakoff)에서 생을 마감했다. 유년시절 2차 대전을 맞게 되면서 그는 가혹하고 불안정한 삶을 살았다. 독일 나치를 피하여 처음 지방도시의 프랑스 농가에서, 다시 스페인 가정에서 숨어 지내기도 했다. 10살 때는 드란시 캠프(Camp de Drancy)에 잠시 구금되어 있다가, 8월 18일 독일군 철수와 함께 미국인에 의해 구출되었다. 

하지만 그의 아버지와 많은 가족들이 나치 캠프에서 학살되는 끔찍한 상황을 맞게 된다. 1944년 또다시 그는 적십자사에 의해 스위스의 빈터투어(Winterthour)로 보내졌다가 그곳에서 할버슈타트(Halberstadt) 가족의 환영을 받는다. 그리고는 1947년 그의 모친과 누이와 함께 마르세이유에서 외삼촌이 있는 오스트레일리아로 떠난다. 그러나 1951년 프랑스로 다시 돌아온다. 

그동안은 독학으로 그림을 그리다가 파리 시의 학교에서 저녁 데생 수업을 듣고, 1953년과 1958년 사이에 자주 파리의 아카데미 그랑-소미에르에서 미술수업을 받기도 한다. 그리고 파리 생-제르맹-데-프레와 몽파르나스에서 니콜라스 스타엘, 쟝 폴 리오펠, 조안 미첼, 이브 클라인 등 여러 화가들을 알게 된다. 또 다른 면에서 한타이, 쟝 뒤뷔페 등으로부터 재료학과 조직학을 습득, 그리고 커트 슈비터에게서 콜라주를 발견하기도 한다. 이어 그의 첫 콜라주와 첫 번째 추상화를 실현한다.  

그러나 다시 구상으로 되돌아간 그는 첫 번째 작품으로 양배추 시리즈(1958-65)를 제작한다. 그리고 1960년에 그에게 제공된 파스텔 상자는 그의 작품에서 중요한 전환점을 맞아, 그때부터 파스텔 작업을 유달리 좋아하며 매달리게 된다. 1964년에는 그에게 공식적인 스승이 된, 알베르토 자코메티를 만난다. 

1965년 첫 개인전을 시작으로 작업실(1969-1970), 인쇄소(1972), 계단(1974년부터) 등 몇몇 주제들로 압축되어 나타난다. 또 1977년과 1978년에 첫 수채물감을 도입하면서 아뜰리에와 온실, 계단 등을 편애적으로 그리며, 1987년부터는 건조함과 습함의 조화로 파스텔과 수채물감을 함께 사용한다. 


역시 이 전시도 크게 분류해서, 크뤼줄 아뜰리에, 벨리니 인쇄소, 계단 그리고 작업실의 식물 시리즈로 이루어졌다. 그의 작품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것 파스텔과 수채물감으로, 그리고 사실화에 가까운 데생 그림이라는 점이다. 작품의 전체적 느낌은 <샴 샤프란, 화가의 집착들>이라는 전시회의 주제와 마찬가지로 유년시절에 겪었던 트라우마가 어떤 것에 저항하는 집착으로 채워져 나타났다. 즉, 그림에 사용된 재료는 물론, 그가 추구한 주제나 방법 또한 애착과 집념으로 보였다. 특히 파스텔에 대한 열정과 기교, 탐구적 묘사는 기이할 정도다. 


그의 말을 인용하면 "왜냐하면 나는 항상 원칙에서 시작했다 : 이 모든 것은 어떤 부분에서 나를 저항했고, 그래서 나는 포기하거나 또는 내가 통제할 수 있을 때까지 고집한다. 그리고 파스텔은 아주 오랫동안 나를 저항했다. 그것은 내가 그 위에서 끈질겼음을 설명한다."


또, 그 시대의 미술 동향은 구상을 외면하고 다른 방향으로 이끌던 시기였다. 그럼에도 그는 당시의 논쟁을 제쳐두고 구상을 선택했다. 사실적 묘사를 외면하지 않으면서 형태의 정확성에 대한 추구는 또 다른 집착으로 나타났고, 그림은 그에게 있어 현실의 닻처럼 보였다. 

아마도 그것은 2차 세계 대전 동안 가족의 상실과 함께 그를 거절했던 위험한 역사, 거기서 위협받던 그의 삶은, 변형된 투시적 공간, 식물이 침범한 작업실 등처럼 그림으로 반영된 것이리라.  

그림에서 그가 구성한 세부적인 사항은 우리가 완전히 접근할 수 없는 개인적인 이야기를 만드든 요소로 가득 차 있다. 예를 들어 크뤼졸(Crussol) 길에 있는 작업실의 모습에서 수많은 파스텔 상자와 유리 지붕 중앙에 자주 매달려 있는 욕조(종종 목욕을 위해 아연으로 만들어진 큰 대야). 

그리고 벨리니 인쇄소 시리즈는 르네상스 시대 베네치아 화가 지오바니 벨리니(Govanni Billine)에게 경의를 표하는 뜻으로 붙인 이름으로, 1970년 당시 파리의 예술적 풍경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것이다.  

계단 시리즈에서는 나에게 그것은 마치 독일 나치를 피해 낯선 다락방에 몸을 숨긴 한 유대계 소년이 느끼는 공포를 떠올리게 했다. 계단으로 오르는 묵직한 발자국 소리에 소름 끼치게 무섭고 두려움을 느끼는 영화의 한 장면처럼 거기서 심리적 불안을 느꼈다

이것은 건축적 구조의 투시법과 분리된, 여러 각도의, 왜곡되고 변형된 시각적 착각으로, 현기증을 일으키는 구성이다. 미로 같은 나선형 계단들은 마치 환상적인 아뜩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계단은 두 공간이 전환되는 사이의, 다소 무서운 행동을 위한 설정으로 그림보다 영화에서 훨씬 더 자주 사용되는 모티브지만 영화에 깊이 젖어 있던 그는 계단이 전달하는 아찔한 감각을 고정된 이미지로 기록했다.


 "그래서 전체를 위해 나는 움직이기 시작했다. 내가 아래를 볼 수 있도록 계단통의 실 끝에서 위아래로 움직이는 거미와 동일시하면서 나 자신을 카메라처럼 움직였다" 



크뤼졸 길의 아뜰리에, 종이 위에 파스텔, 1972 / 크뤼졸 길의 아뜰리에, 종이 위에 파스텔, 1972
벨리니 인쇄소, 종이 위에 파스텔, 1972 / 벨리니 인쇄소, 종이 위에 파스텔, 1972-74
벨리니 인쇄소, 종이 위에 파스텔, 1972 / 화가와 벨리니 인쇄소, 종이 위에 파스텔, 1974  
 계단, 54 센 길, 종이 위에 푸잔, 1974 / 센 길의 계단, 종이 위에 푸잔, 1975
계단, 종이 위에 파스텔, 1980 / 무제(계단) 종이 위에 파스텔, 1981  
계단, 종이 위에 파스텔, 1981-82 / 무제(계단), 비단 위에 수채 물감, 1993  


"내가 식물을 그릴 때, 그 자체의 창조성에 놀라고, 그것들을 보면서, 자연에 경외감을 느낀다. 그의 광기 앞에서, 그의 폭력 앞에서, 역시 그의 사나움 앞에서, 그 평온 앞에서, 그 모든 것 앞에서. 나는 내가 정한 것에 도달했다고 생각할 때 나는 다른 것이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래, 이것은 끝이 없다." 


식물 시리즈는 전체적으로 이처럼 몽환적인 효과를 나타내면서, 헤아릴 수 없는, 춤추는 정글의 이파리로 얽힌 숲을 창조했다. 큰 형식으로 구성을 확장시키는 수채 그림은 식물의 진화 상태와 변형 상태를 관찰하면서 모두 기록하려는 시도를 끈질기게 했다. 

또한 식물 시리즈에서 빠짐없이 등장하는 인물, 특히 그의 부인 릴레뜨가 식물로 뒤덮인 숲 속에 가만히 보일 듯 말 듯 앉아 있는 모습은 관조하듯 평온하지만, 공간을 침범한 거대한 식물 앞에서 아주 작은 존재일 뿐이다. 나는 역시 거기서 조용히 숨어 있는 유대인, 그러나 평온한 삶을 갈망하는 소년의 애틋한 심정을 엿보는 것 같았다. 

 

개인적으로는 그의 1960년대 작품 온실과 베스나르디에르, 연한 파란색 파스텔과 푸잔으로 그린 그림이 가장 마음에 와닿았다. 은유적이고 섬세한 회화적인 표현은 다소 수수께끼 같으며 여백과 함께 데생이 주는 가벼운 느낌과 더불어 감각적이고 매력적이었다. 멋지다.

작품의 어떠한 객관적 평가를 떠나서 파스텔과 수채 물감으로 세밀하게 표현하면서 이토록 큰 규격의 작품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은 과연 그의 집착과 집념이 없다면 불가능하다. 그는 뛰어난 데생 작가다.

그러나 예술적인 면에서 내 개인적 견해는, 작품을 보고 난 후 시원하고 명쾌한 기분도, 아름답다고 느껴지지도 않았다. 비상을 위한 날개가 필요하다고 느꼈다. 매우 사실적인, 테크닉적으로 뛰어난, 아주 열심히 잘 그린 그림이었다. 엄청난 시간과 공이 든, 강한 집념과, 신념, 끈기와 아집이 느껴졌다. 그래서 오히려 답답함을 느꼈다. 비록 그에게는 현실의 닻이 되었을 망정,  


그림은 사진도, 개념도, 사실도, 기술도, 기록도 아니다. 그 모두 다. 아름다운 그림은 그 이상의 것이어야 한다.


우리는 전시장을 나와 마티스 작품을 보기 위해 옆 전시장으로 걸음을 옮겼다. 세잔, 마티스 작품 앞에서 비로소 우리는 가볍게, 안도의 숨을 쉰다. 영혼이 자유로워짐을 느낀다. 



온실, 종이 위에 푸잔과 파스텔, 1969
베스나르디에르의 식물, 종이 위에 푸잔과 파스텔, 1968-69
아뜰리에 안의 식물, 종이 위에 파스텔과 수채 물감 / 판화 작업실, 종이 위에 푸잔과 파스텔, 1967
인물과 잎파리, 판지 위에 파스텔, 1984 / 잎파리 속의 릴레뜨, 종이 위에 파스텔 1974
무제(말라코프 아뜰리에 안의 릴레뜨), 종이 위에 수채 물감과 크레용, 1998
아뜰리에 안의 릴레뜨, 종이 위에 수채 물감, 1997-98 / 무제, 종이 위에 수채 물감, 1989
무제(말라코프의 아뜰리에), 종이 위에 파스텔과 크레용,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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